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양장)

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양장)

$17.80
Description
"이런 순정을 잊기는 어려운 일이다"
효율과는 상관없는,
오래된 물건이 건네는 조금은 소심한 위로!
12년 만에 선보이는 은희경의 신작 산문
언제나 새로운 재미를 약속하는 소설가 은희경이 12년 만에 신작 산문 『또 못 버린 물건들』을 출판사 난다에서 펴낸다. 2022년 7월부터 12월까지 채널예스에 연재하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은희경의 물건들’ 원고를 세심하게 매만져 책으로 묶었다. 효율과는 상관없지만 함께한 시간과 삶의 궤적이 스며 있어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에 대한 산문 스물네 편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담았다. 28년 차 소설가 은희경이 산문이라는 장르에 본격적으로 데뷔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책 곳곳에 인용된 은희경 소설들의 출처와 이 물건이 어느 작품에 등장하는지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 밝은 은희경의 전작주의자들에게는 더욱 반가울 이번 책이다.
술잔, 감자 칼, 구둣주걱, 우산과 달력, 목걸이 등 취향이 담긴 친근한 물건들로 은희경이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일상이 지속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한다. 비싸거나 희귀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나의 부족했던 모습, 변하고 성장하며 통과한 추억을 담고 있기에 이 물건들과 작별하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항변(?).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이들은 어느새 그에 공감하며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변화와 상실 등 우리를 웃게 하고 울게 했던 일들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통해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글맛이 살아 있는 문장으로 생생히 그려낸다. 그 활달한 태도는 무거울 수 있는 삶을 한두 걸음 비켜 가볍게 바라보게 한다. 삶이 정면에만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러한 시선이 직관해낸 삶을 맛보는 기분이 시원하다.
물건을 정리(!)하려다 거기에 깃든 시절과 인연에 하염없어지는 때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나 돌아보게 한다. “그게 왜 필요한데?”라는 질문 앞에서 이 무용한 것의 존재 증명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닮아 있는지 모른다. 은희경은 쓴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라고. 물건에 담긴 시간과 재회하며 작가는 그렇게 ‘모르는 자’로서 한 발을 내딛을 용기를 가만히 손안에 쥐여준다.
또한 책에는 은희경 작가가 아이폰 11로 찍은 사진 스물네 컷을 함께 담았다. 이야기를 글로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한 컷의 사진에 어떻게 담아야 할까 궁리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진에 담은 세심한 디테일들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엔 기억과 현재, 그리고 빚어나갈 미래의 시간이 함께 깃든 애틋함을 선물한다. 책에 실린 스물네 컷의 사진에서 포인트가 되는 각각의 컬러를 뽑아 본문 바탕색을 디자인하고 이 광택감이 돋보이는 본문 종이를 사용했다. 탄탄한 양장에 가죽 질감이 살아 있는 친환경 종이를 바르고 은은히 빛나는 은색 박을 찍었다. ‘또’ 버리려다 못 버린 이 지나간 시간들이 결국 미래의 나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니까. 곁에 두고 쓰다듬다 ‘단 하나의 고유한 내가 되는’ 힘을 얻고플 때 또 한번 펼쳐보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러고 보면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적인 감정이 작용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볍고 단순해지려는 사심이 있었다. 무겁고 복잡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때로 그 가벼움과 단순함이, 마치 어느 잠 안 오는 새벽 창문을 열었을 때의 서늘한 공기처럼, 삶이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신념을 구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상이 지속된다는 것이야말로 새삼스럽고도 소중한 일임을.
(…)
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_「내 물건들이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부분
저자

은희경

1959년전북고창에서출생했고전주여고를거쳐숙명여대국문과와연세대대학원국문과를졸업했다.졸업후출판사와잡지사에서근무하였다.오늘을살아가는인간의고독과내면적상처에관심을쏟는작품들을잇달아발표하여젊은작가군의선두주자가되었다.등단3년만인1998년에『아내의상자』로제22회이상문학상수상하면서소설가로서확고하게자리를잡았다.한국문학번역원비상임이사(제4대,임기3년)...

목차


0내물건들이나에대해말하기시작했다…7
1술잔의용량은주량에비례하지않는다…13
2감자칼에손을다치지않으려면…21
3나의구둣주걱,이대로좋은가…31
4우산과달력선물하기…39
5친구에게빌려주면안되는물건…47
6다음중나의연필이아닌것은?…57
7다음중나의사치품이아닌것은?…67
8떠난사람을기억하는일…77
9목걸이의캐릭터…89
10소년과악의가면…99
11솥밥주의자의다이어트…109
12돌과쇠를좋아하는일…119
13발레를위한해피엔딩…129
14칵테일과마작,뒤라스와탕웨이…139
15또못버린물건들…149
16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인형…161
17스타킹의계절…169
18메달을걸어본적이있나요…181
19책상에앉으면보이는것들…193
20마침내,고양이…203
21왜필요하냐는질문은사절…213
22지도와영토와번호판…223
00겨울날의브런치처럼…235

출판사 서평

술잔,감자칼,구둣주걱,우산과달력,목걸이등취향이담긴친근한물건들로은희경이써내려가는이야기는일상이지속되는일이얼마나소중한지깨닫게한다.비싸거나희귀해서특별한것이아니고그것이나의부족했던모습,변하고성장하며통과한추억을담고있기에이물건들과작별하는데엔충분한시간이필요하다는작가의항변(?).정리를잘하지못하는이들은어느새그에공감하며함께고개를끄덕이고있을지도모른다.살면서피할수없는변화와상실등우리를웃게하고울게했던일들을버리지못한물건들을통해사랑스럽고유머러스한글맛이살아있는문장으로생생히그려낸다.그활달한태도는무거울수있는삶을한두걸음비켜가볍게바라보게한다.삶이정면에만놓여있지않다는사실을일깨워주는이러한시선이직관해낸삶을맛보는기분이시원하다.

물건을정리(!)하려다거기에깃든시절과인연에하염없어지는때나는어떻게지금의내가되었나돌아보게한다.“그게왜필요한데?”라는질문앞에서이무용한것의존재증명은언제나인간의편으로같은자리를지켜주는,실생활에서는쓸모없어보이는예술,문학의위로와닮아있는지모른다.은희경은쓴다.우리모두살아본적없는오늘이라는시간의초보자라고.물건에담긴시간과재회하며작가는그렇게‘모르는자’로서한발을내딛을용기를가만히손안에쥐여준다.

또한책에는은희경작가가아이폰11로찍은사진스물네컷을함께담았다.이야기를글로구성하는것과마찬가지로,이이야기를한컷의사진에어떻게담아야할까궁리하는재미가있었다고작가는말한다.애정어린시선으로사진에담은세심한디테일들은이야기가끝날무렵엔기억과현재,그리고빚어나갈미래의시간이함께깃든애틋함을선물한다.책에실린스물네컷의사진에서포인트가되는각각의컬러를뽑아본문바탕색을디자인하고이광택감이돋보이는본문종이를사용했다.탄탄한양장에가죽질감이살아있는친환경종이를바르고은은히빛나는은색박을찍었다.‘또’버리려다못버린이지나간시간들이결국미래의나를상상하게하는것이니까.곁에두고쓰다듬다‘단하나의고유한내가되는’힘을얻고플때또한번펼쳐보는책이되기를바라는마음을담아서.

그러고보면이글을쓰게된데에는여러가지사적인감정이작용한셈이다.무엇보다도내가가볍고단순해지려는사심이있었다.무겁고복잡한사람이라면한번쯤생각해봤을것이다.때로그가벼움과단순함이,마치어느잠안오는새벽창문을열었을때의서늘한공기처럼,삶이우리의정면에만놓여있지않다는사실을일깨워준다는것을.신념을구현하는일도중요하지만일상이지속된다는것이야말로새삼스럽고도소중한일임을.
(…)
오래된물건들앞에서생각한다.나는조금씩조금씩변해서내가되었구나.누구나매일그럴것이다.물건들의시간과함께하며._「내물건들이나에대해말하기시작했다」부분

책속에서

작가가된뒤첫번째책의인세로샀던여섯개들이맥주잔세트가생각난다.왜그것부터장만했을까.연년생아이들을키우느라외출을거의못하던시절,맥주를사들고갑자기집에찾아온손님들이있었다.급히쟁반에잔을챙기는데,모여앉은사람수대로유리잔다섯개는가까스로갖춰놓았지만짝이맞는게한벌도없었다.크기조차다달라서맥주를따르니술의양도제각각이었다.그술상이어쩐지임시변통으로살아가는내삶의남루한모습같았다.그이후나에게술잔세트는술을마신다는행위와함께사적인호사의시작으로여겨졌던것같다.
---「술잔의용량은주량에비례하지않는다」중에서

사진속에는연필이아닌펜이또한개있다.은행에서방문객에게주는파란색볼펜으로,어느은행어느지점이라고찍혀있다.나는그볼펜을은행에서가아니라그은행에다녀온것으로짐작되는시인선생님께받았다.10여년만에문학행사에서마주쳐잠시같은테이블에앉았는데갑자기가방에서꺼내건네주셨던것이다.의아하게바라보는내게선생님은담담하게말씀하셨다.응,너무반가워서.

어쩐지마음이뭉클해져말없이내손바닥위의볼펜만뚫어지게바라보았던그때.나의머리위로는청춘의한시절이천천히지나가고있었다.인생이무서워서이불을뒤집어쓰고선생님의시를읽다가잠들었던밤들,선생님의시집을함께읽으며친구와약속했던먼미래들,단지바닷가높은바위에기댄채선생님의시구를중얼거리기위해떠났던남쪽여행.
---「다음중나의연필이아닌것은?」중에서

무엇보다엄마는,두아이를키우며살림과일에지쳐있던내가삼십대중반에소설을써보겠다고혼자길떠날결심을했을때‘애들은어쩌고’라든가‘아줌마가이제와서뭘하겠다고’같은말을하지않았다.대신아빠의도움으로얻은리조트방에혼자찾아와내가끼적거리고있던글을읽어주었다(사투리를살려서쓴그문장을엄마가하도어색하게낭독하는바람에그때이후나는소설에표준어만쓰고있다).그리고어렵사리신춘문예에당선됐는데도청탁이전혀없어좌절한내가장편소설을쓰기로마음먹었을때,노인불교대학의연줄을이용해서외딴절에방을구해준것도엄마이다.
---「떠난사람을기억하는일」중에서

역시인간은단순한존재가아니다.복잡한존재이다.그러므로스스로그것을의식하는한누구나섬세함이라는상식을가질수있다고생각한다.타인역시나와마찬가지로복잡한존재이므로나의틀안에서함부로해석해서는안되는것이다.나는단하나의물건을만드는예술가는못되지만문학이우리에게주려는것,인간이가진단하나의고유성을지켜주도록돕는다는생각으로글을쓰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목걸이의캐릭터」중에서

뚜껑을열었을때얼굴에끼쳐오는따뜻한김과갓지은밥의구수한냄새.주걱에닿는차지고부드러운양감.그리고자작하게부은물속에서솥의남은열로부드럽게풀어지는누룽지.전복이나장어를얹은솥밥도좋지만나는버섯과나물,은행,대추채가들어간솥밥에더욱마음이끌린다.더운여름에도내선택은덮밥보다는솥밥쪽이다.

그걸꼭나이가들어서그렇다고특정해주는친구가있지만,아니거든요.저는어릴때부터따뜻한음식을좋아했어요.더운날학교에서돌아와,엄마가막끓인보리차를식히려고부엌의타일바닥에내려놓은주전자에서조심조심물을따라그따뜻한컵을손에쥐는순간이지금도기억나고요.땡볕아래에서걷는걸좋아해여름방학이끝날때마다새까만꼬마가되어있었다구요.
---「솥밥주의자의다이어트」중에서

초보가된다는것은여행자나수강생처럼마이너가되는일이기도하다.익숙하지않은낯선지점에서나를바라보게된다.나이들어가는것,친구와멀어지는것,어떤변화와상실.우리에게는늘새롭고낯선일이다가온다.우리모두살아본적없는오늘이라는시간의초보자이고,계속되는한삶은늘초행이다.그러니‘모르는자’로서의행보로다가오는시간을맞이하는훈련한두개쯤은해봐도좋지않을까.
---「칵테일과마작,뒤라스와탕웨이」중에서

쓸모는없지만,어쩌겠나.나는그런물건들의모양과텍스처와만듦새를보고있을때에느껴지는일상적이지않은기분이좋은걸.무용한것의존재증명이,누구인지모를내안의다른나를발견하고살아나게하는데말이다.(…)물건들을버릴수없게만드는데에는거기깃든나의시간도한몫을차지한다.물건에는그것을살때의나,그것을쓸때의나,그리고그때곁에있었던사람들의기억이담겨있으며나는그시간을존중하고싶은것이다.
---「또못버린물건들」중에서

서툴고무능한이방인이자소수자로지내야했던외국생활에서,달리기는내게사소하나마성취의감각을느끼게해주었다.내몸을스스로컨트롤하고견인해서원하는지점에이르는순간내가조금더강해진느낌,할만큼해봤다는후련함.어쩌면그것은강해졌다기보다내가약하지만은않으며내안에힘이들어있다는확인과다짐같은거였는지도모른다.그쯤되니낡은운동복이제법어울렸는데옷에신경을안쓸만큼은배짱이생겼다는뜻이기도했다.
---「메달을걸어본적이있나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