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17.00
Description
돌며 살며 사랑하며 세계 곳곳을 ‘쓰는’ 작가, 서정.
지금 이 순간 그가 단단히 붙든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와의 어떤 사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들이 연상되지 않는 지명이다. 그간 세계 곳곳에 머물며 그곳의 삶과 사람을 ‘써온’ 작가 서정이 이번에는 이 미지의 도시 카라카스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책은 두 개의 부로 나뉜다. 1부는 카라카스와 저자의 관계가 점차 경계심에서 호기심으로, 호기심에서 친밀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저자에게도 카라카스가 낯설었던 것은 마찬가지. 차베스 사후 악화된 경제공황과 사회 혼란은 정착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저자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조금씩 귀를 기울이며 숨겨진 것을 찾아나서자 카라카스는 숨겨온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2부는 그러한 친밀감을 토대로 저자가 발견한 카라카스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명한다. 당대 유럽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점차 고유한 흐름을 형성한 이들의 식문화, 음악, 미술 등을 저자는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들의 가슴이 무엇으로 뜨거워지고 또 그들은 무엇으로 위로받는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저자

서정

저자:서정

서울출생.서울에서노문학과영문학을,모스크바에서정치문화를공부했다.그리스와베네수엘라,노르웨이에서살았고현재는오만의무스카트에거주하고있다.문화가교차하는지점에서발생하는일들에관심이있으며다양한매체에산문을싣고러시아어와영어로된글을우리말로옮긴다.산문집『그들을따라유럽의변경을걸었다』『낙타의눈』을썼고,류드밀라울리츠카야의『행복한장례식』을옮겼다.

목차

프롤로그─7

1부.보다친밀한
1.아빌라가여기에─16
2.페타레의율레이시─28
3.이주와정주의순간들─40
4.아시엔다산타테레사─51
5.언제까지나야생─62
6.벌레의집─75
7.대정전─87
8.스페인어수업의장면들─103

2부.보다진실한
1.민중성의색채─114
2.시대적상징성을획득한한개인의취향─129
3.착시,혹은찰나의진실─146
4.먹는다는것,그리고환대한다는것─162
5.열대의리듬과가락─180
6.세개의점,대학들─198
7.이민자들의산지,콜로니아토바르─216
8.타인은지옥일까─229

에필로그245

출판사 서평

완벽한미지의도시,카라카스
“카라카스에몇년간살게되었다.”책은이런문장과함께시작된다.유려한발음과는별개로카라카스라는지명은우리에게어떤뚜렷한이미지도연상시키지못하는듯하다.베네수엘라의수도라는추가적인정보가주어져도크게달라지는것은없다.남미최대의메트로폴리스중하나인카라카스는그렇게완벽한미지의도시로남아있다.
이곳에저자는한동안‘살게된다’.대단한사연이있는것은아니고그저“밥벌이의문제”.저자에게이곳에서의정착은쉽지않아보인다.오랫동안공부하고살았던덕에러시아어를쓰는데에는아무런문제가없고영어역시어렵지않지만베네수엘라의공용어인스페인어는하나도알지못하기때문이다.게다가당시베네수엘라의상황은우고차베스사후엄청난혼란에서헤어나지못하고있었다.치안은극도로불안했고,제반시설관리미흡으로인해도시전체의전기가끊기는것은다반사,극단으로치닫는두정치세력의갈등은상황을악화할뿐이었다.
베네수엘라라는나라에대한문화적친숙함도전무했기에카라카스는저자에게짐작조차하기어려운,완전하게타인의땅이었다.

아르헨티나에는보르헤스가,칠레에는아옌데가,페루에는바르가스요사가,콜롬비아에는마르케스가있어서비록한번도그땅에대한실제경험이없었어도그곳에사는사람들이무엇때문에고난받고무엇으로가슴뜨거워지는지짐작하는바있었다.하지만베네수엘라에대해서머릿속에떠오르는것이라고는차베스라는이름이전부였다.(9~10쪽)

완전한타인의땅에서의은밀한교류
저자는친숙한문학작품속상황을호출하여카라카스에서의삶과나란히놓고서로를이해하기시작한다.카라카스를병풍처럼둘러싸고있는아빌라산,그산이드리우는자욱한안개속에서시간경계가흐릿해짐을느끼며저자는제발트가『현기증.감정들』에서묘사한독일의숲속짙은안개와사냥꾼의방랑을떠올린다.이연상은자연스레저자자신의방랑을생각하게한다.나아가베네수엘라와독일,두안개의겹침은카라카스사람들의독특한시간인식에대해다시금생각하게한다.러시아문학을전공한저자이기에러시아문학역시종종호출된다.럼을제조,판매하여얻은막대한부를각종사회사업을위해써베네수엘라인들의존경을받게된볼메르가문을저자는곤차로프의소설『오블로모프』에나오는게으르고도너그러운지주귀족오블로모프의미덕을통해이해한다.
물론가장많이호출되는것은남미의문학이다.베네수엘라의야생과물라토여인의생명력에대한묘사는마르케스의『콜레라시대의사랑』을경유하며더욱생생해진다.도시전체의전기공급이끊긴대정전사태를겪으며가장안전감을느껴야할집이더이상피난처역할을해주지못하는상황을훌리오코르타사르의「점거당한집」을통해,지루한재난상황속에서형성되는역설적인평화로움과유대감은「남부고속도로」를통해이해한다.
이처럼완전한이방인인저자가카라카스를경험해나가는과정은(문학이라는운송수단을통해)친숙한것과이질적인것이섞이며이루어진다.그것은낯선것을포섭하여‘자기화’하는것이아닌,낯선것의‘낯섦’을그대로인정하고이해하는동시에‘나’의세계와교류하게만드는행위이다.예컨대저자가러시아에서,아테네에서,또베네수엘라에서경험한지루한줄서기의경험은각각의고유함을유지한채저자에게허무한삶속에서어떻게소극적이나마생을긍정할수있는지생각하게만든다.베네수엘라에게오기전배웠던,아프리카와유럽과중남미의리듬이뒤섞인춤,메렝게를카라카스에서다시경험하며저자는어떻게“서로무관하게보이는사건들이하나의흐름속에서비밀스럽게교류하는지”생생하게느끼게된다.그렇게지구반대편,완전한타인의땅의이야기는그처음의이질성을그대로간직한채여기우리삶에대해다시금생각하게만든다.

책속에서

아르헨티나에는보르헤스가,칠레에는아옌데가,페루에는바르가스요사가,콜롬비아에는마르케스가있어서비록한번도그땅에대한실제경험이없었어도그곳에사는사람들이무엇때문에고난받고무엇으로가슴뜨거워지는지짐작하는바있었다.하지만베네수엘라에대해서머릿속에떠오르는것이라고는차베스라는이름이전부였다.그러나그럴리가있겠는가.차베스를빼놓고이야기한다면진실이아니지만,차베스만가득한이야기도진실이아닌것,그것이베네수엘라의수도,남미최대의메트로폴리스중한곳인카라카스의프로필이었다.
_9~10쪽,「프롤로그─작동하지않는도시」

세뇨라,맨홀뚜껑이바예아리바꼭대기부터저아래쪽까지굴러가는것봤어요?바예아리바대로에뚜껑열린맨홀이몇개나되게요?그맨홀하나에누군가커다란나뭇가지를꽂아놓지않았겠어요?그냥보통팔뚝만한나뭇가지가아니라가로수를통째로뽑아다꽂아놓은것같다니까요.맨홀뚜껑가져다팔면돈을좀받나봐요.지나던차가큰구멍을미처못보고그위로지나가거나하면,하필차바퀴가좀작은편이거나바람이시원찮게들어있거나하면정말큰일나지않겠어요?밤에는특히더그렇고요.그래서나무를뽑아다그냥맨홀에심어버리는거예요.알아보고피하라고요.
_38쪽,「페타레의율레이시」

“헤이,보라쵸,주정뱅이.”주정뱅이들은쉬지도않고춤을추었다.제한급수로속시원히몸을씻어본지가언제인지까마득한,생활고때문에공공재산인구리케이블(전깃줄,인터넷선등등)을몰래끊어다가파는,항생제를구하러열흘째시내의약국이란약국은다뒤지고있는,또현금인출을위해이른아침부터서너시간씩줄을서는그런일상을보내고있는모두가이시간만큼은오로지럼과메렝게에의지한다.버티고견디는고단한삶이곳곳에있다.다른방도가없는일을마주했을때사태를낙관하여불안을잠재우는데에익숙한이들이다.럼주에달뜬이들이메렝게를흔들자정원은이내유쾌하고나른한기운으로충만해졌다.
_61쪽,「아시엔다산타테레사」

승강기가움직이지않으니건물이몇층이건걸어다니는것이당연했고대개승강기가있는복도는따로창이없어어둠이잠식했다.그러자사람들은현관문을열고공용공간을향해자신들의빛을내주었다.재난의현장이란참혹한삶의한페이지이면서도인간성의불씨를확인하는공간이기도하다.저마다상황은비슷해서저장해놓았던먹을거리를풀어요리한것들을나누기시작했다.무법천지라고,치안이좋지않다고해서마음놓고거리를다니지못하다가사람들은이제거리를걷기시작했다.서로연락할수없었으므로안부를물으려면직접찾아가는수밖에없었고차에기름이없다면결국걸어가는수밖에없었다.다음달,다음계절,혹내년을대비하며냉장고에쌓아두었던것들을이웃들과나누는사람들이많았다.
_97쪽,「대정전」

벗어나기를원했지만도리어갇혀버린,그립고도지긋지긋한평원을통해후안룰포가그리는멕시코민중의마음처럼베네수엘라의산지가그렇게헤수스를통해지금도그려지고있다.모든낡고허약한것들,위태롭게버티면서도어떤리듬안에서온기를느끼며살아가는사람들을그의그림에서본다.우리에게대개는먼듯,그러나아주가끔은눈앞에다가온듯생생한희망이없다면어떻게살아갈까.
_127~128쪽,「민중성의색채」

카라카스에서음식준비로거의모든가정이분주해지는때는아무래도크리스마스다.보르헤스가하버드대방문교수시절“미국인들은많은장점을가지고있음에도고독을향해가는희생자들”이라고말하면서“중남미인들이가지고있는장점중하나가사람들과쉽게어울리는것”이라고말한것처럼,모이기를즐기는것은중남미인들의특성이라할만하다.또거기엔음식이빠질리없다.
_168쪽,「먹는다는것,그리고환대한다는것」

사르트르는말했다고한다,타인이라는지옥에대해.그러나‘완전한’타인의땅인신대륙에서만나는‘완벽한’타인인신인류혼혈인이야말로자아라는거울에갇힌,탐욕스럽고이기적인인류의세계관을깨우칠신의종소리같은존재라고,이역사적인인물들은기록으로말하고있다.
_243쪽,「타인은지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