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모호 2

사랑 - 모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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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르그리트뒤라스

저자:마르그리트뒤라스
소설가,극작가,그리고영화제작자.1914년,당시프랑스식민지였던인도차이나의도시지아딘에서태어났다.1921년아버지가돌아가신후,프랑스어교사인어머니의인사이동에따라두오빠와함께동남아시아곳곳으로이사를다니며어린시절을보낸후,1932년프랑스로귀국했다.『모데라토칸타빌레』『롤베스타인의환희』『부영사』『죽음의병』등의작품을발표하며작가로서의입지를굳혔다.생전소설,희곡,시나리오등다양한장르에걸쳐70편에달하는작품을발표하였다.1975년에는소설『부영사』를각색한영화〈인디아송〉으로칸영화제예술·비평부문에서수상했다.1984년에는어린시절인도차이나에서의시간을바탕으로쓴소설『연인』이프랑스최고의문학상인공쿠르상을수상했다.마지막몇년간의글을모은『이게다예요』로마침표를찍고1996년3월3일,파리의자택에서타계했다.

역자:장승리
시인.2002년중앙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습관성겨울』『무표정』『반과거』가있다.

출판사 서평

글쓰기라는불가사의,비밀을향한움직임
『타키니아의작은말들』(1953)『모데라토칸타빌레』(1958)등의작품으로뒤라스는일찍이대중과평단의지지를고루받게된다.그런그녀의문학세계는『롤베스타인의환희』(1964)『부영사』(1966)등의작품을거치며점차전통적인소설의논리에서벗어난다.
“글을쓴다는것,그것은지성의시간에있지않다는것이죠.”
뒤라스는글쓰기를결코자신이아는것을명료하게정돈하는과정이라고여기지않았다.뒤라스에게글쓰기는위험지대로기꺼이발을들이는행위였다.뒤라스는어둠속에잠겨있어감지하기어려운비밀스러운이야기,존재자체를태워버릴위험을내뿜는과거,혼돈속에뒤섞여있는인간의정념과충동의덩어리를글쓰기를통해표현하고자애썼다.중요한것은그것이과도한것이될지라도글쓰기를통해저멀리,어둠저깊은곳까지도달하는것이었다.
이러한뒤라스의변화에당대대중은당황했고비평가들은그뜻을알아보지못했다.명확한시공간이특정되지않는배경,이름없는인물들,통속적인감정으로해석되지않는순수한대화의연속으로이루어진소설은단지몰이해의대상이었다.그러나뒤라스에게이러한글쓰기는“불가피한것”이었다.그녀가선택한것이아닌글쓰기가종용한것,그것을향해뒤라스는끊임없이나아갔다.
“글쓰기라는불가사의가앞으로나아가지요.나는아무것도모른채앞으로나갑니다.나는내가어디로가는지알지못해요.”

망각으로기억되는순간,그고통스러운유혹
『사랑』은이러한변화의중심에놓인작품으로뒤라스는이작품과더불어비슷한배경을공유하는『롤베스타인의환희』〈갠지스강의여인〉등세작품을쓰며비로소글쓰기를시작한것같다고고백한바있다.
뒤라스는『사랑』을마지막으로영화시나리오와연출작업에매진하며한동안중편분량이상의글을쓰지않았다.이를반영하듯소설적글쓰기의가장자리에서탄생한듯한이작품은바다를배회하는익명의인물들을아득한시선으로담아낸다.인물들은스스로를,상대방을,그리고방금경험한일들을끊임없이망각하는동시에그망각속에서도결코잊히지않는기억을스스로되감기는파도처럼되풀이한다.
“망각과구멍이야말로진정한기억이죠.”
뒤라스는한인터뷰에서망각이진정한기억의장소라고이야기한다.즉,어떤망각은과거의보잘것없음을증명하지않는다.반대로과거의특정한순간이기억의가능성을초과하는강렬함으로인해‘망각된다’.이망각은구멍으로남아우리를고통스럽게유혹한다.기억의불능이도리어무한한기억을촉발한다.

“언제고『사랑』을펼치는일은
파도를열고들어가닫히지않는문이되어버린슬픔앞에서는일이될것이다”
두남자와한여자,『사랑』의인물들에게는이름마저부여되지않는다.그나마끊임없이,마치죄수의발걸음처럼똑같은보폭으로바닷가를걷는남자는‘걷는남자’로호명되고다른남자는“느린발걸음과정처없는시선”을이유로‘여행자’라불릴뿐이다.이들은바닷가도시에스탈라근처를배회한다,들어가지는못한다.끊임없이비켜갈뿐이다.마치에스탈라,이“뚫고들어갈수없는육중한”도시가그들이접근할수없는광기어린시공간이된것처럼.
이들의배경에대해서는많은정보가주어지지않는다.파편적인정보를토대로가장기본적인것을정리해보면다음과같다.‘여행자’와여자는과거에스탈라라는도시에서만난적이있었으며그과거의중심에는호텔에서열린무도회가있다.어떤충격적인사건이벌어진후‘여행자’는이곳을오랫동안떠나있었다가어떤결심을한후에스탈라에돌아온다.이곳에스탈라에서‘여행자’는여전히머물고있는여자와정체불명의‘걷는남자’를만난다.이빈약한정보를가지고는이들의과거에대해서다양하지만불충분한추측이가능할뿐이다.또한여자의존재역시대단히모호하게서술되기때문에어느순간여자자체가과거에머물러있는에스탈라라는공간과함께유령과같은존재가아닌가하는생각이들기도한다.
『사랑』을두번,세번읽어도과거에이들에게벌어졌던일이무엇이었는지를속시원하게이야기해줄단서는나타나지않는다.과거는영원히망각되었고이야기는단지그망각된과거를향해어둠으로나아가는이들의움직임에주목할뿐이다.어둠으로나아가는인물들과그인물들을아득한시선으로따라가는이야기,『사랑』은이움직임에독자를초대한다.이때『사랑』은과거에무슨일이일어났는지를규명하기에집착하지않고그것이현재로끊임없이소환되며‘지금이곳’에남은이들에게어떻게다시경험되고감각되는지를독자에게전달한다.서사가아니라감각에주목할때『사랑』은한편의긴시가된다.

언제고『사랑』을펼치는일은,다시,바다앞에서는일이될터이다,파도를열고들어가닫히지않는문이되어버린슬픔앞에,우리를응시하고있는어떤‘뒤’의앞에,무엇보다속절없는아름다움앞에.모든것에서멀어져,파도에쓸려간죽은개속으로들어가,오랫동안그곳에머무는여자와우리가오버랩된다.(‘옮긴이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