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론연구 조론오가해 세트 (양장본 Hardcover | 전 6권)

조론연구 조론오가해 세트 (양장본 Hardcover | 전 6권)

$300.00
Description
· 중국불교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조론』 주석에 대한 최초 완역
· 수많은 주석서 중 각 시대를 대표하는 5종의 주석서에 대한 역주
· 교감 표점 등의 작업 거쳐 역주, 풍부하고 상세한 각주도 주목
· 각 책의 「해제」와 함께 읽으면 중국불교 흐름 파악할 수 있어

성철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 학술사업

“우리 시대의 부처님”으로 칭송받는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은 생시에 “『대지도론』과 『조론』을 통해 반야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이해해야 선(禪) 사상의 정수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강조하신 바 있다. 이에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는 성철 대종사 열반 30주기를 맞아 추모 학술사업의 일환으로 『조론오가해』를 도서출판 장경각(대표·원택圓澤 스님)을 통해 출간하였다. ‘조론선집肇論善集’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전6권 1질로 구성된 것으로 『조론』에 대한 역주와 연구논문을 묶은 『조론연구肇論硏究』 1권과 『조론』에 대한 대표적인 논서 5편에 대한 역주를 묶은 『조론오가해肇論五家解』(전5권)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조병활

趙炳活
*북경대학철학과에서북송北宋선학禪學사상연구로철학박사학위취득.
*중국중앙민족대학티베트학연구원에서티베트불교연구로박사학위취득.
*『불교미술기행』[이가서.2005],『다르마로드』[상·하.랜덤하우스중앙(주).2005]등의저서와「『바세』5종필사본에보이는‘김화상기록’비교연구」,「「조론서」연구」,「「물불천론」연구」등우리말·티베트어·중국어로쓴다수의논문이있다.

목차

1.조론연구
2.조론소-조론오가해1
3.조론소-조론오가해2
4.조론중오집해-조론오가해3
5.조론신소-조론오가해4
6.조론락주-조론오가해5

출판사 서평

반야중관사상의요체를담은승조스님의논서

‘조론선집’표지

1.후진後秦시대(384-417)를살았던승조(僧肇,384-414)스님이반야·중관사상의요체를설명하고자「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부진공론不眞空論」,「물불천론物不遷論」,「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등을지었고,그이후의어느때사람들이이글들과동진(東晉,317-420)의유유민(劉遺民,?-410)거사가쓴「유유민거사의질문편지」와이에대해승조스님이대답한「승조스님의답변편지」등을묶어편찬한책이바로『조론』이다.승조스님의이름인‘조肇’자와이치를논의한글이라는의미의‘논論’자를결합해『조론』이라불렀다.승조스님이지은논문의묶음이라는뜻이다.1061년찬술된『조론집해령모초肇論集解令模鈔』에“당나라(618-907)부터북송때까지출간된『조론』주석서는20여종이나됐다[始自有唐終於炎宋,疏鈔注解二十餘家].”는기록이있을만큼『조론』은주목받는중요한저서였다.
2.현존하는『조론』주석서들가운데남조南朝진나라(陳,557-589)의혜달惠達스님이지은『조론소肇論疏』3권(하권결락),당나라(唐,618-907)의원강元康스님이627-649년찬술한『조론소肇論疏』3권,북송(北宋,960-1127)의비사(秘思,994-1056)스님이1053년강술한내용을토대로북송의정원(淨源,1011-1088)스님이1058년집해集解한『조론중오집해肇論中吳集解』3권,원나라(元,1271-1368)의문재(文才,1241-1302)스님이저술한『조론신소肇論新疏』3권,명나라(明,1368-1644)의감산덕청(憨山德清,1546-1623)스님이1616년짓고1617년출간한『조론략주肇論略注』6권등각시대를대표하는다섯부의책을선택해역주한것이바로『조론오가해』이다.
3.각시대를대표하는스님다섯분이주석한책들을모았다는의미에서‘오가해五家解’라는이름을붙였다.『조론오가해』가운데『조론략주』를제외한나머지는이번에처음으로번역됐다.일본어나영어그리고현대중국어로도옮겨진적이없다.여기에『조론』을연구·분석하고『조론』본문을주해注解한내용을담은『조론연구』를보탠것이전6권1질의‘조론선집肇論善集’이다.

1.‘조론선집肇論善集’각권의내용
*제1권『조론연구』:중국불교의토대를다진『조론』의내용을분석하고역주譯注한책이다.‘연구편’과‘역주편’으로구성됐으며‘연구편’에는『조론』을연구한논문들이,‘역주편’에는『조론』본문에대한우리말번역이각각들어있다.신국판양장432쪽,4만원.

*제2권『조론소』:『조론오가해』1.진나라의혜달스님이찬술한현존최고最古의조론주석서이다오래된책이라문장도어렵고필사과정에생긴것으로추정되는‘뒤섞인단락[錯簡]’도있다.위진남북조시대(220-589)의중국불교에나타났던열반학파,성실학파,섭론학파,지론학파등과관련된내용이곳곳에기록되어있다.위진남북조시대의불교를연구할때반드시읽어야될책으로평가된다.신국판양장488쪽,5만원.

*제3권『조론소』:『조론오가해』2.당나라의원강스님이삼론학三論學의입장에서저술한책으로『조론』에대한현존최고最高의주석서로평가된다.중국고전과훈고학서적등에서인용한내용과불교의경전과논서의내용을인용해설명한것이중요한특징이다.이책에인용된문헌가운데에는현존하지않는책들도있다.신국판양장528쪽,5만원.

*제4권『조론중오집해』:『조론오가해』3.북송의비사스님이강설하고정원스님이집해한,송대宋代를대표하는조론주석서이다.분량은혜달스님의『조론소』나원강스님의『조론소』에비해적은편이나압축된설명이특히돋보이는책이다.신국판양장428쪽,5만원.

*제5권『조론신소』:『조론오가해』4.원나라문재스님이기술記述한,원대元代를대표하는『조론』주석서이다.방대한내전內典과교리에근거해『조론』을풀어낸솜씨가탁월하다.훌륭한책이기에‘상당한인내심’과‘정교한사고력’을갖고도전해야된다.역주자는다섯권의주석서가운데굳이한권을추천해달라고요청한다면이책을권하고싶다고밝히고있다.신국판양장600쪽,6만원.

*제6권『조론략주』:『조론오가해』5.감산스님이본인의수행경험을바탕으로찬술한책으로명대明代를대표하는조론주석서이다.간략한말속에풍부한의미가내포되어있다.『조론』을보다쉽게설명한점도돋보인다.신국판양장476쪽,5만원.

2.‘조론선집肇論善集’의주요특징
*현존하는각권들의여러판본들을비교·교감校勘했고,표점標點을모두찍었으며,이를토대로역주譯注했다.
*주석서들이탄생된그시대의불교적·정치적·문화적배경을알수있도록상세하게설명한「해제」를각권의앞부분에붙여놓았다.
*자세한설명이포함된각주를달아보다쉽게이해하도록했다.
*『조론』본문과주석서에있는내內·외전外典의인용문들의출처와근거를확인했다.
*제1권『조론연구』에수록되어있는「공空사상,현학玄學그리고『조론』」이라는글과『조론오가해』각책의앞부분에있는「해제解題」를함께읽으면중국불교의흐름을파악할수있다.

3.『조론』은어떤책인가
후진시대(後秦.384-417)를살았던승조(僧肇.384-414)스님이저술한『조론肇論』은중국불교역사상중요한전적典籍가운데하나이다.승조스님이지은「물불천론物不遷論」,「부진공론不眞空論」,「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등과동진(東晉,317-420)의유유민(劉遺民,?-410)거사가쓴「유유민거사의편지」와이에대해승조스님이답변한「승조스님의답신」등을하나로엮어편찬된책이바로『조론』이다.승조스님의이름가운데‘조肇’와이치를논의한글이라는의미의‘논論’자를묶어『조론』이라불렀다.승조스님이지은논문의묶음이라는의미이다.
인도불교중관파의개조용수(대략150-250)논사와서역쿠처[庫車.구자국]출신의명승名僧구마라집(鳩摩羅什.343-413)스님의반야·중관사상을계승한승조스님은『조론』으로삼론종三論宗개창에사상적인길을제공했고,인도사상과중국사상의교류및범어梵語와중국어의회통에새로운모범을보였다.『조론』은중국사상사에서도없어서는안될귀중한위치를차지하고있다.실재론實在論적인노장철학의무無·유有개념으로유학儒學을새롭게해석하며형이상학적인논의를진행하던위진현학魏晉玄學의물줄기를성공性空을통해공空·유有를탐구하는수당불학隋唐佛學으로돌리는인도자역할을했기때문이다.
명나라말기부터청나라초기까지활동했던운서주굉(雲棲袾宏,1535-1615),자백진가(紫柏眞可,1543-1603),감산덕청(憨山德淸,1546-1623),우익지욱(蕅益智旭,1599-1655)등4대고승가운데한명인우익지욱藕益智旭스님은각종경전과논서들을열람하고지은『열장지진閱藏知津』에서“중국에서찬술된저서가운데승조스님,남악혜사스님,천태지의스님등의것이유일하게순일하고순일하다.진실로인도의마명논사,용수논사,무착논사,세친논사등의저술에비해도부끄럽지않다.그래서특별히대승종론에포함시켰다.나머지여러스님들의저작들은순일한맛은있으나흠이있기에다만잡장에넣었다.”며승조스님을인도의마명·용수논사와어깨를나란히하는인물로기록했다.
중국의정사正史이십사사二十四史가운데종교에관한기록이있는『위서魏書』권114「지제誌第20·석노지釋老誌」에도구마라집스님과승조스님을높이평가하는기록이있다.

“그때후진의요흥왕은구마라집스님을존경했다.장안초당사에교리를연구하는사문8백여명을소집해경문을새로이번역시켰다.구마라집스님은총명하고또한깊은사상이있었다.인도와중국등여러나라의말에능통했다.당시사문도융·승략·도항·도표·승조·담영등은구마라집스님과서로상의하고탁마하며부처님가르침의깊은뜻을밝혔다.…도융스님등은모두학식이대단히넓고깊었다.그가운데서도승조스님은특히뛰어났다.구마라집스님이글을쓰고경전을번역할때항상승조스님이붓을잡고기록했으며여러단어와문장의뜻을확정했다.『유마경』을주석한『주유마경注維摩經』등(승조스님의)저술이수십여종에이른다.저술들에절묘한의미가담겼기에,불법을배우고익히는사람들이전부승조스님을스승으로존경했다.”

역사서가출가자에게이처럼높은평가를내리는경우는매우드물다.중국불교사에서승조스님이차지하는위치가그만큼높다는것을보여준다.

4.구마라집스님은누구인가
모든사람들이스승으로존경했다는승조스님에게반야·중관사상을정확히가르쳐준구마라집스님은401년12월20일후진(後秦,384-417)의수도장안[長安,현재의서안西安]에도착한뒤‘국가적인후원’과‘조직화된역경譯經팀’등을두축으로삼아체계적인경전번역에착수했다.장안에도착하기전머물렀던감숙성고장姑藏엔불법佛法을전파할여건이제대로갖춰지지않았다.『고승전』권제2「구마라집전」에보이는“구마라집스님이양주에체류한지여러해,여광呂光과아들여찬呂纂이불법을홍포하지않았다.불교에대한심오한이해를갖고도가르침을펴고교화할수없었다.”는기록에서정황을알수있다.시대와지역을뛰어넘는탁월한학승인그가고장에머무른데는사정이있었다.
서기382년전진(前秦,350-394)의부견(苻坚.338-357-385)왕은장군여광呂光을서역에파견했다.이미사해四海에이름이쟁쟁한명승구마라집스님을구자龜玆국에서장안으로모셔오기위해서였다.서역여러나라의조공을받으려는목적도있었다.구마라집스님을데려오자는계획은도안(道安,312-385)스님의건의에따른조치였다.『고승전』「도안전」에“도안스님은구마라집스님이서역에있다는소식을먼저들었다.경론을함께강의하고그뜻을토론하고싶었다.매번부견왕에게구마라집스님을모셔올것을권했다.”는기록에서사실을확인할수있다.
물론도안스님이건의하기전에부견왕은이미구마라집스님을만날생각이있었다.『고승전』「구마라집전」에보이는“전진건원13년[377]정축년정월에태사가아뢰었다.‘정축년정월의별자리와상응하는외국의어느곳에별이나타났습니다.필시덕이높은지혜로운분이우리나라에들어와보좌하게될것입니다.’부견왕이말했다.‘짐이들으니서역에구마라집스님이,양양에도안스님이라는분이있다고한다.아마도이들이아니겠는가?’즉시사신을파견해그들을찾게했다.”는구절이이를증명한다.전진前秦의10만대군이양양을공략하고68세의도안을장안으로데려간것이379년,부견왕은377년에이미구마라집스님과도안스님의존재를알고있었다.도안스님의건의가없었더라도언젠가는구마라집스님을장안으로초치招致할생각이었던것이다.
그러나안타깝게도383년8월안휘성비수淝水부근에서벌어진동진과의전투에서부견왕의87만대군이대패하고말았다.불행은여기서끝나지않았다.비수대전이끝난후2년만인385년8월부하였던강족羌族요장姚苌이부견을살해하고그의나라마저위협했다.결국저족氐族부홍(苻洪,285-350-350)이350년장안에건립한전진은394년역사에서사라진반면부견왕의신하였던선비족鮮卑族모용수慕容垂는지금의하북성정현定縣에서후연(後燕,384-407)을,요장은장안에서후진(後秦,384-417)을각각세웠다.
서역을떠나장안으로향하던여광(呂光,338-386-399)은감숙성양주凉州에서이소식을들었다.그곳에서자립해후량(後凉,386-403)을세우고장안으로돌아가지않았다.구마라집스님이장안에들어갈수있는길은여광이죽은후서자庶子여찬(呂纂.?-399-401)이형제여소呂紹를죽이고왕위를찬탈·계승했어도열리지않았다.후진의2대왕요흥(姚興,366-394-416)이여찬을격퇴하기까지무려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