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매력의 글쓰기를 넘어 - 아케이드 Arcade 18 (양장)

폭력과 매력의 글쓰기를 넘어 - 아케이드 Arcade 18 (양장)

$27.00
Description
시에서 시작해 시를 거쳐 오롯이 시로 마무리되는 비평, 문장의 마디마디를 시에서 길어 올리는 비평, 시를 앞질러 말하지 않는 비평, 시 너머를 먼저 달려가지 않는 비평, 시를 쪼개고 나누지 않는 비평, 시에 덧칠하지 않는 비평, 시가 아닌 다른 데에 어깨를 기대지 않는 비평, 시가 아닌 다른 곳을 곁눈질하지 않는 비평, 오로지 시와 연대하는 비평, 기필코 시를 맞바라보는 비평, 시와 더불어 시에 깃든 세계를 그리고 사람을 끌어안고 보듬는 비평, 그러나 일부러 슬퍼하고 함부로 경탄하지 않는 비평, 그보다 시인의 밤을 함께하는 비평, 백지의 공포 그 아득함을 기록하는 비평, 시로 쓰이지 않은 침묵을 경청하는 비평, 시가 들릴 때까지 서성이는 비평, 한없이 겸허한 비평, 한없이 시를 기다리는 비평, 그래서 행간마다 시가 탄생한 그 매 순간들을 그 출처들을 빠짐없이 적어 둘 수 있었던 비평, 그러나 또한 글자의 매혹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경험하는 비평, “비참하게, 아름다운” 비평, 자신의 영혼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주저 없이 고백하는 비평, “매일 새롭게 사물을 익히고 매일 새롭게 사고하고 상상”하는 비평, 문장 하나하나가 온몸인 비평, 그야말로 온몸으로 통째 밀고 나가는 비평, 그래서 모든 문장이 시의 현장이 되는 비평.
요컨대 시인이니까 쓸 수 있는 비평,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로 시를 읽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비평. 그리하여 마침내 기어코 비평으로도 시를 쓰고야 마는 시인 김언의 비평.

저자

김언

저자:김언
1973년부산에서태어났다.1998년[시와사상]을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시집[숨쉬는무덤][거인][소설을쓰자][모두가움직인다][한문장][너의알다가도모를마음][백지에게],시론집[시는이별에대해서말하지않는다],평론집[폭력과매력의글쓰기를넘어],비평연구서[끝없이투명해지는언어―오규원의현재성과현대성](공저),산문집[누구나가슴에문장이있다]등을썼다.미당문학상,박인환문학상,김현문학패,대산문학상등을받았다.현재추계예술대학교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005책머리에

제1부
013왜다시빛인가?빛이어야했는가?―빛의걸음걸음과지난십년의시
035나는왜‘좋은곳’을믿을수없었나?
044우리는언제시인이되는것일까?―비등단시인들의시집출간에대한몇가지생각
055낭독이든슬램이든일단은들려야한다
066‘기술창작시대’의문학과인공지능
079서울시감상기

제2부
089전쟁터에서놀이터로이행하는시의아이들―김승일시집[에듀케이션],박성준시집[몰아쓴일기]
098‘한사람’의시와‘아직’의시간―유희경시집[오늘아침단어]
103폭력과매력의글쓰기를넘어―임솔아시집[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들]
108부자연이자연이될때까지―한인준시집[아름다운그런데]
112환멸의페이크와소실점의마음―장현시집[22:ChaeMiHee],양안다시집[숲의소실점을향해]
123말할수없는슬픔에서말할수밖에없는슬픔으로―정현우시집[나는천사에게말을배웠지]
137하지않은상태로하는말의심연―최호일시집[바나나의웃음]
156‘기린없는그림’은어떻게‘기린그린그림’이되었나?―송기영시집[.zip]
174융기하는뿔과함몰하는구멍의언어―신성희시집[당신은오늘도커다랗게입을찢으며웃고있습니까]

제3부
193당나귀로서의문학,소리로서의시―심보선시집[오늘은잘모르겠어]
198끝의언어에서속의언어로―최규승시집[속]
208너혼자가아니야,단어야―오은시집[우리는분위기를사랑해]
234비참하게,아름다운,모자이크화―박판식시집[나는나와어울리지않는다]
250생의반환점과시의전환점에서다시불러내는말―김현시집[다먹을때쯤영원의머리가든매운탕이나온다]
257행진하라,기억이여―신해욱의근작시
266최소의이미지와심연의리듬―이원의근작시
280끝없는흐름과멈춤의양가감정―안태운의근작시
285내가모르는내얼굴이짓는표정―이현승의근작시
290삶의온갖엇갈림을풀어내는시―정재학의근작시
294이세계가조금흔들리는소리―유계영의근작시

298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책머리에]
만25년간시인으로활동하면서처음으로평론집을낸다.공식적으로평론가라는타이틀을내세워본적이없는처지에평론집이라는말은여전히낯설게다가온다.평론가라면마땅히갖춰야할자의식이희박한상태로평론집을낸다는것이조심스럽기도하다.다만한가지는힘주어말할수있겠다.주어진텍스트에대해독창적인시각은갖추지못했을지라도성실하게읽으려는노력은게을리하지않았다고.그래서작품에대해손쉬운평가의잣대를들이대기보다그작품이들려주는얘기를열심히듣는일부터수행했다고.어쩌면이것이평론이라는글쓰기로시를읽어나가고세계를읽어나가는자로서갖춰야할최소한의도리가아닐까,이런생각에기대어글을썼고책을내는지경에이르렀다고고백한다.
여기실린글은모두2010년대이후에작성되었다.그중3분의2가량이2020년이후에작성된글이다.작성된시기만놓고보면우리시단이엄청난격랑의시기를통과한후에나온글이대부분인셈이다.격랑의시기는폭력과혐오로점철된과거의문학사에격렬하게안녕을고하던시기와맞물린다.시단을둘러싸고온갖추문이터져나오던그시기를지나면서맨먼저축출된것이매력과폭력을한몸에장착한어떤문학들이었다.매력적인스타일이폭력적인(줄도모르고유전되어온)감수성과한뿌리를이루면서터져나오는어떤시들이었다.
아름다움에대한인식이비대하여윤리적인감수성을짓누르고나온시편들이추방되고남은자리엔당연히그와정반대의감수성을강조하는시편들이들어찼다.아름다움만큼이나중하게여겨야하는것이윤리적으로옳은것과좋은것이었다.진선미(眞善美)중에서미(美)에대한인식만큼이나선(善)에대한인식이중요해진시기가2010년대후반기였으며,이러한흐름은2020년대초반에들어선현재까지도유효하게이어진다.책의제목으로‘폭력과매력의글쓰기를넘어’를채택하게된이유도시단의흐름과무관할수없었던한사람의고민에서찾아진다.그것이무엇이든‘너머’의것은손쉽게발견되지않는다는점에서,폭력과매력의글쓰기너머에대한고민은이책의출간과상관없이현재진행형이라는점도함께밝혀둔다.
부단위로간략하게설명을붙이자면,먼저제1부에서는2020년대에접어든시점에서지나온2010년대를진단하는글과다가올근미래를예감하는글로채웠다.‘빛’혹은‘좋은곳’을열쇠어로삼아2010년대젊은시인들의시세계를살펴보는글,최근들어부쩍늘어난비등단시인들의시집발간이갖는의의를짚어보는글,SNS환경과결합한시의양식을논의하는글이우리시의지난면면을들여다본사례라면,포에트리슬램과시,인공지능과문학을엮어서논의한글은가까운시기에당면할문제를앞당겨서고민해본사례에해당한다.이어지는제2부에서는한편을제외하고모두2010년대이후로첫시집을낸시인들의시세계를다루고있으며,마지막으로제3부에서는2010년대이후에도지속적으로시적성취를이루어온시인들의시세계를다루고있다.
2010년대이후에작성된원고에서만추리다보니자연히그전에쓴비평형식의글은책에서모두빠졌다.차후에기회가된다면다른틀에담아서묶어내고싶은바람이있음을붙이면서,우선은이책으로그동안읽어왔던시와시인에대한애정을표하고싶다.더밝은눈으로그분들의시를읽어내지못한아쉬움이없지않으나‘시’라는업을공유하며동시대를건너가고있는분들을향한애정은누구못지않게진하다는말을전하고싶다.시라는정체는곱씹을수록모르겠는무엇이지만,그걸둘러싼현장의목소리는아직도생생하고앞으로도창창하기를바라는마음으로첫평론집을세상에내보낸다.

김선오의시에서짚었던‘색색의귀환’에이어이제재의시에서는‘파편의아름다움’이눈에띈다고할때,어쩐지시단의시계를십수년전미래파시절로되돌리는듯한저수사(修辭)에서불필요한오해를덜기위해한마디덧붙일것이있다.시대에따라미학적인감각과윤리적인감각의양극단을시계추처럼왔다갔다하는것이시의역사라지만,철지난과거의시가그저세월이지났다고해서그대로되돌아오지는않는다는사실이다.철지난과거가철지난과거로떠밀릴수밖에없었던지점을고통스럽게통과하면서미래의시는온다.그런점에서새로운미래의시는언제나새로운과거의시다.새로운과거의시는단순히과거를복원하는시가아니라뼈아픈성찰과눈밝은통찰의시간을거듭통과한후에야다시만날수있는미래의시일것이다.(「왜다시빛인가?빛이어야했는가?-빛의걸음걸음과지난십년의시」,p.33.)

“나는좋은곳을믿는다”라는(황인찬,「순례」)문장이집약적으로보여주듯이,‘좋음’에대한순정한믿음은윤리적인감각이강조되던2010년대시의중요한축(어쩌면가장중요한축)을이룬다.“좋은곳에가본적이없었다좋은곳을상상하지못했다”처럼(송승언,「담장을넘지못하고」)회의적인시선도없지는않으나,‘좋음’에대한믿음이얼마나굳건한가와상관없이‘좋음’이이시기시의주요한화두인것만은분명해보인다.그래서일까,‘좋음’의의미와직?간접적으로연결되는‘빛’의이미지가2010년대시에서는이상하게많이보인다.일일이거론하는것이버거울정도로많은시에서지배종처럼등장했던시어가‘빛’이었던셈이다.그런점에서‘좋음’이2010년대시의든든한토양을이룬다면,‘빛’은이시기시의눈부신아이콘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겠다.(「나는왜‘좋은곳’을믿을수없었나?」,p.40.)

돌이켜보면시단에새로운호흡을불어넣는시는,나아가시단의판도를흔드는시는우리가익히알고있는곳에서익히아는방식으로등장하는경우보다예기치않은곳에서예기치않은모양새로튀어나오는경우가더많았던것같다.우리가익숙하게여겨왔던등단절차를뛰어넘어서갑작스러운시집의형태로등장하는시인들역시그자체예기치않은사례에해당한다.그들중일부는예기치않은화법으로예기치않은얘기를들려주면서뜻밖의시세계를보여줄수도있다.또그들중일부는미래의시를앞당기면서현재의시단을바닥까지뒤흔드는당사자가될수도있다.꼭그렇게되리라는보장이없는것과마찬가지로그렇게되지못하리라는장담역시할수없는곳에서미래의시인들은계속태어난다.새로운시인도계속태어난다.새로운시가‘시란무엇인가?’라는시적정의를새삼문제삼으며등장한다면,이시대의새로운시인은‘시인이란무엇인가?’혹은‘시인이된다는것은무엇인가?’라는질문을내장한채등장하는시인이지않을까.아니면‘우리는언제시인이되는가?’라는질문을내장한시인일지도모른다.(「우리는언제시인이되는것일까?-비등단시인들의시집출간에대한몇가지생각」,pp.51-52.)

인간의창의적인영역까지잠식하면서날로발전해가는인공지능기술을감안할때,기성의시에준하는혹은기성의시를뛰어넘는시창작을하는인공지능이탄생하지말라는법도없을것이다.그러나아무리날고기는창작기술을장착한인공지능이나오더라도거기서유일하게빠져있는것이바로몸이다.시인의몸이자독자의몸이며,낭독자의몸이자청중의몸이다.이러한몸과몸이만나소리와제스처와땀과웃음과눈물로공유되는현장성은아직까지인간의몸만이감당할수있는영역이다.(「낭독이든슬램이든일단은들려야한다」,p.64.)

지금까지의창작자는시대와장소에따라전혀다른성격을지닌다할지라도모두인간이었다.문학의정의가아무리많이바뀌어도마지막까지변치않는조건으로남았던것이‘창작자=인간’이라는말이다.따라서‘창작자≠인간’혹은‘창작자=인간+인공지능’으로의조건변화는그자체엄청난파장을예고한다.문학장안팎에걸쳐중대한지각변동을일으킬것으로예상되는창작자개념의변화는,기존의창작자와독자를전혀다른문학,어쩌면문학이아닐수도있는문학을각오해야하는지경으로내몰수있다.
문학이아닐지도모를새로운창작장르의탄생을어떻게바라보고어떻게대처해야하는지에대해선현재로선마땅한답변을내놓기힘들다.아직오지않았으니까.막연히올것으로만짐작되는,올수도있고안올수도있지만온다면의외로가까운미래에들이닥칠수도있는전인미답의문학환경은,그동안문학이라는‘오래된집’에거주해온이들의생각을어떻게바꿔놓을까?(「‘기술창작시대’의문학과인공지능」,pp.77-78.)

당연한얘기지만,시는앞으로변해갈것을전제로변하지않는상태를유지한다.변해가는것을전제로변하지않는무언가를틀어쥐고있는시가앞으로또무엇을쥐고서움직여갈지는아무도모른다.다만자기기질과정서에충실한시를써대는시인들이있을뿐이다.어떤기질은운좋게미래의시로이어질것이고어떤정서는안타깝게도과거의시로묻힐것이다.장차어떤운명을맞이하든시인이할수있는일은사실상한가지다.자기기질과정서를극단으로밀고나가는것.극단으로밀고나가는어떤‘쓰기’를수행하는것.그렇다면하상욱의짧은글쓰기는자신의기질과정서에충실하다는점에서일면시의자격을갖춘다고할수있다.다만그것이극단으로까지밀고나가서또하나의장르로서의시가되는지에대해서는판단을보류한다.극단은그렇게쉽게오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극단은반드시무언가희생을치르면서온다.그것이무얼까?대중일까,아니면자기자신일까?(「서울시감상기」,p.85.)

직전세대미래파의시가의식박약의상상력을선보이면서도단한가지포기할수없었던지점이시적자의식이었다면,김승일과박성준을포함한2010년대초반의젊은시인들은시적자의식마저휘발된공간에서시를쓴다.아니시를논다.미래파에겐제도권시단에안착하기이전에소외의역사가존재했고,따라서시적으로자기영역을확보하기위한의식적인투쟁의과정이어쩔수없이존재했다면,2010년대의젊은시인들은등단하자마자제도권시단으로부터승인된공간을물려받는과정을거치면서자연스럽게시적영역을확보하기위한투쟁이불필요해졌다.덕분에미래파의시가의식박약의상상력가운데서도시를‘살아내기’위한고투의과정에서탄생했다면,미래파이후의시는그러한고투의과정을거칠필요없이이미주어진시적공간을잘‘놀아내는’데치중한다.또한미래파의시가자기영역을확보하기위한전쟁에서전선을형성하는데집중했다면,이후의시는이미확보된자기세대의시적영역을놀이터처럼사용하는데열중한다.결과적으로한국시의전선을넓힌데서미래파시의의의를찾을수있다면,이후의시는그러한전쟁터를놀이터로탈바꿈시켰다는데서직전세대와변별되는의의를찾을수있다.(「전쟁터에서놀이터로이행하는시의아이들-김승일시집[에듀케이션],박성준시집[몰아쓴일기]」,pp.90-91.)

[오늘아침단어]는시적대상을둘러싸고명멸해가는수많은단어들의기록이자보고서라고할수있다.보기에따라서는성큼성큼활달한보폭을보여주지않는과정을답답해할수도있겠지만,불가능에가까운대상과언어사이의거리를차근차근더듬고두드리고회의하면서시로다져가는그방식에신뢰를보내는독자도적지않을것이다.나는후자편이다.왜냐하면주체와대상과언어를포함하여세계는그렇게단숨에읽히는것이아니므로.섣부른선언이나잠언으로나아가기전에세계를손끝과혀끝으로섬세하게더듬는방식으로세계의“신비혹은공포”를(시집뒤표지글)한겹씩한겹씩들추고쓰다듬는과정의시.그것이유희경시의현재지점이며다음시를담보하는밑천이며든든한버팀목이라고할수있다.(「‘한사람’의시와‘아직’의시간-유희경시집[오늘아침단어]」,p.100.)

자칫폭력의현장이될수도있는문장의규모를최소화하는방식의말하기는이세계의폭력을고발하는지점에서도조심스러운행보를보인다.“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을분명하게대립시켜놓지않은것과마찬가지로,폭력의현장에서한발짝떨어진채로,아니한발더다가선채로시선을풀어놓는다.가까이서들여다보면세계를이루는폭력은‘나’를이루는폭력이기도하다.폭력의현장을짚어내는‘나’는관찰자나증언자로만그치지않는다.한편으로그러한폭력의내부를이루는일원일수도있다는시선이임솔아시의곳곳에숨어있다.가령「아홉살」,「티브이」,「살의를느꼈나요?」등의시에서확인되는세계의폭력은그대로‘나’의폭력이되는현장이기도하다.세계에서자유롭지못한‘나’는폭력에서도자유롭지못하다.‘나’는언제든피해자일수있고가해자일수있으며증언자인동시에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