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미르 - 파란시선 127

라디오미르 - 파란시선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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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류성훈

명지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
2012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보이저1호에게][라디오미르],산문집[사물들-TheThings][장소들-ThePlaces]를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리페르셰이의날-11
왕표연탄-12
아무것도되지말고-14
라디오미르-16
발등으로걷기-18
도로풍아래서-20
낙민동-22
좀비영화에서엑스트라의팔을자르는고무도끼제작자의심정으로-24
히에로니무스의올빼미-26
고통에대하여-28
8절지스케치북-30
아좀더적극적으로-32
마흔-34

제2부
도유리-37
알방법이전혀없는것처럼-38
지극히정상이었지만-40
글루코사민-42
쌔리삔이야기-43
당리동(堂里洞)-44
교룡의날-46
가장큰오점처럼-48
과도-49
삼촌사우루스-50
대박이-52
수박세일-54
냉암소의날-55
요절-56

제3부
땅강아지-61
기상특보-62
서로의좁은등을긁으며-64
축사를찾다-66
그런적없는데-68
건기-70
저서성-72
받아라,바다-73
오로라를보러가려던-74
좌부동자에게-76
산11-6-78
능-80
문향-82
긴숨은장마처럼-83

제4부
테디베어가웃는다-87
테네리페-88
겨울잠밖에서-90
뻐꾸기-92
암순응-94
시스템동바리-96
카우-98
잠수함-100
중력새총-101
Hardtimescomeagainnomore-102
저녁의창자들-104
남아있는볕-106
백목련-107
침대가비고도-108

해설박상수가능성의중간지대-110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진통제만찾던심해어들이
저인망에무더기로걸린다

추천사

류성훈의시는‘훗날의내’가소멸할시간의눈으로바라본,또는삶에서일어나는모든일을아무것도아닌것으로만드는광막한우주공간을걷는자의눈으로바라본,다없어질것들의‘환’이펼치는드라마이다.의식의파편을촘촘하게겹쳐붙인모자이크이다.거기서꿈같은현실과현실같은꿈의파편은슬픔과반복의무늬를그리며나타났다간사라지고다시나타난다.그래서시를읽는동안시적화자의“좀비영화에서엑스트라의팔을자르는고무도끼제작자의심정”이고스란히전해진다.“콘덴서가나가면콘덴서를갈고/사람이나가면사람을갈”듯이,아무리팔을잘라도죽었다는사실이바뀔리없는좀비를위해가짜도끼를만들듯이,삶의환,죽음의환을반복하는일의고통스러움.그것은“자전만있고공전은없는춤들”과같이죽음같은삶,삶같은죽음을헛되이반복하는일일뿐이다.(좀비영화에서엑스트라의팔을자르는고무도끼제작자의심정으로)또한그것은“가다가다/가던이가가고가던이에게가다/더는갈수없는그곳”으로가는일을반복하는일일뿐이다(아무것도되지말고).그래도신음하는화자의목소리는담담하고비명은무심하다.시집을읽는동안왜살지,왜숨쉬지,왜시쓰지,계속묻다가지치게된다.이지독한체험속에있을때,나는무엇인가,존재란무엇인가,묻는물음의호소력은더할나위없이강력해진다.
―김기택(시인)

―시집속의시세편

왕표연탄

당신없이오던곳에,당신과
훗날의내가옵니다별여유도없이
떠나온곳으로가끔도망치기도
도망쳐온곳으로가끔떠나오기도
거기아직도멀뚱히선절반의나도
살았던시간보다갑절오래된
지금의나도우수처럼녹아흘러나갈테지만
어려서오르지도못하던고개위에서
색깔만아름다워진옛피란민촌을보며
당신은이렇게예쁜마을이있던가했고
나는그들이새삶을꾸렸던연탄방도
여기어디쯤이란것만알고있었습니다
내가다녔던천주교유치원이있고
고개를넘어가면태어난집이있고
아직도빨래가벽화처럼널려있었습니다
왕표연탄이없어진지가언젠데
그때담벼락이름에그때소금기,나는
바람이사람보다오래산다고읽었지만
대규모철거에마을화장실과타일이
햇살에드러나반짝이는걸보곤
내말에아무런확신도못가졌습니다
어찌됐건지금이더나은삶,왜
아직도여기서있느냐고물어도
돌아가신외할머니손만붙드는아이
이십여년을가던중국집이
최고흥행영화의배경으로나온후론
면발이퉁퉁불어서나왔습니다
이젠떠나지않아도된다믿을때는
가장떠나야할때였습니다
아무도없는곳에서,순간은무슨
지나간건모두찰나지,라고말하며
나는아무런확신도못가졌습니다■

라디오미르

바늘에불빛을바르다천천히녹아버린몸들이있었다어리지도늙지도않은별,너의보이지도않는베어링위에서손과붓은같은이름으로칠해지는곳을향해크고텅빈가방을둘러메곤했다시침보다빠르고분침보다느린곳에서시간은몰래바그너의LP따위를걸었을것이다
연금술을배울거야,지구반대편에서부터황금시대든황금알이든본적도없는책들처럼우리는반짝이는어둠만그리워하며모래를치웠지,그건모래가아니라죽은기억의뼈들이었고알고난후를환,그이전도환이라고부르는우리의발음들이서로에게침냄새를묻혀갈때,밤이땅의반대편에서지울수있는것은밤뿐이라여겼다복족류처럼끈적한발을우주까지들이밀어봤다면우리가사랑한것은반짝이는것보다반짝인다는말을위한혀의원리였을거야우리는구개음화이전의해돋이앞에서스스로빛나는것하나와스스로빛나는방법열가지를읽었고너는고작한가지인나를열가지방법으로꺼뜨려도좋다고생각했었다
결코조용한적없는저밤은너머,라는이름의나라를그리워하도록우리의걸음들에기관처럼이름을붙였고이름과아름다움은구별되지않는세포였다우리를붓질하던발음은사실밤이아니라밤의기억이라는저주,서로라는말은왕복운동,각자라는말은회전운동이었던손바닥위에서우리는여행이전의심장을동력학적으로퍼올린다네가애초맞지않는잠옷의다리를자르려했을때밤은혀를잃었고나는맛을잃었지만말은얻었다고생각했었다이불속같은바다에빛을보러가기위해창틀에말려놓은해를나는끝까지못본척했었다
해치를열기위해선우선닫아야해,녹아버린몸들이너설을걸어오던선창안에서,물에빠져죽지는마,라고너는내게말했다■

좀비영화에서엑스트라의팔을자르는고무도끼제작자의심정으로

자전만있고공전은없는춤들
달을따라수없이떠돌려했지만
허리도무릎도가진적없는행성들은
그런춤을본적이없었다

가장큰신전에는상현도하현도있었고
우리는그것들을사랑하고
튼튼하게떠받쳤지만,재생되지는않았다
콘덴서가나가면콘덴서를갈고
사람이나가면사람을갈고

죽었던괴물들이살아돌아왔다
누구는달을,누구는괴물을사랑했고
달은누가괴물이건그들을사랑했지만
재생되지는않았다
그렇게도울고웃던영화제목을모르겠어
내가네게서갑자기떠날까두려울때

용서받지않아도되는나이
전구를갈아줄사람이필요해서
전구를갈았다

괜찮아,천천히멀어질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