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 - 파란시선 129

스콜 - 파란시선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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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알 수 없는 말을 한다면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스콜]은 전호석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학림」, 「반투명」, 「행신」 등 6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전호석 시인은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19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스콜]을 썼다.

“전호석 시인이 표상하는 주체는 “불붙은 도화선처럼 해롱거렸고 끄트머리에 무엇이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채 “부글부글” 끓고 있다(「수류탄」). 언제 터질지 모를 내면의 “균열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지더라도(「앞선 일행」) 그것이 환멸을 예비하는 데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전호석 시인은 끓는점에 도달한 주체에게 “참을 수 없어지면” “침묵 비슷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선성(善性)」). 천성이 선한 시인은 세계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기보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택한다. “정면으로 마주치지 말 것/터진 마음을 추스를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아무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돌보고자 한다(「방울」).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것처럼 생명 없는 백색 표면들, 빛나는 검은 구멍들, 공허와 권태를 지닌 거대한 판으로서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실패를 무릅쓰고 세계가 요구하는 것에 저항하는, 잉여적 존재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 사람”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자 잉여적 존재이지만, 세계의 균열을 체현하며 틈새를 확장하는 부정태로서의 주체를 긍정하는 기제이다. 전호석 시인의 “아무 사람”이 왜소화된 주체의 비애나 환멸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흐르는 것들은 흐르고 내리는 것들은 내”린다. 그것은 현상일 따름이다. 현상을 응시하는 본질로서의 “나는 있다”. ‘나’는 침범되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다. “몸에 가득한 실금”이 “나를 괴롭히는 일”은 “이해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불안을 야기할지언정 주체를 붕괴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부정적 현상은 주체를 단단하게 하고 “온몸에서 열매가 맺히”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며 “다음 장면을 위”한 토대가 된다. 그럼으로써 전호석 시인의 ‘나’는 무엇에든 고착되지 않는 “아무 사람”이 되어 매 순간 유동하는 주체로 무한히 확장할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다.(「lecture」)
또한 확장 가능성은 주체의 내면에 한정되기보다는 타자를 향한 구체적 행위를 타진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모바일」) “다음 장면”을 생성하는 수행이야말로 전호석 시인이 희구하는 주체의 양태일 것이다. 비록 갈 곳 없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길 가장자리에서 얼룩 같은 구멍으로 존재하는 외롭고 쓸쓸한 ‘나’이더라도 “나는 당신을 책임지기로/당신은 나에게 책임져지기로 하”는 관계 맺음의 다짐은 ‘나’를 다른 위치, 다른 가능성의 자리에 서게 한다(「애연」). 그런 점에서 “아무 사람”,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주체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주체임이 분명하다. 그 가능성을 실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존재의 취약함을 버텨 내는 일일 것이다. 전호석 시인이 형상화한 주체의 왜소함이 그러한 버팀을 가능성으로 전유하기 위해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곤경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버텨 내어 그 응축된 힘으로 몸을 움직여 “공간과 풍경을 자”르며(「모바일」) 나아가려는 도약에의 의지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윤리인지도 모르겠다.” (이상 이병국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전호석

1989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9년[현대시]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스콜]을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학림-11
capital-14
팔판동-16
특수효과보고서-18
피사체-20
답신이없어서-22
잔다리로-24
낡고푸른-26
진찰-28
반투명-30
공장-32
셀룰러-34
소풍-38
선성(善性)-40

제2부
제웅-45
치아-46
회랑세계염탐-48
젖은회색주술-50
감시망각처벌-52
거짓정오액체-54
옷깃사건나비-56
파티션-58
가상물질운전-60

제3부
중앙도서관-65
동묘앞-68
역(力)-70
라이브러리-73
풍향계-76
cardhouse-78
조류학-80
유충-82
다음날아무도없는폭포-84
끓,-86
전체주의-88
발전기-90
쥐-92
뭐야?-94
책과동전-96
torso-98
몸의바다-100
라이브러리언-102
헤어진다음날-104
아나톨리아해안-106
또한왈츠-109

제4부
샤프심과콘크리트……-117
팔면영롱-124

제5부
수류탄-131
스콜-132
레터박스-134
앞선일행-136
필기체-138
직사광선-140
모바일-142
방울-144
긴터널-146
애연-148
소극-150
몸,몸뿐-151
행신-154
lecture-156
패턴-158
두드러기-160
커피믹스커피-162
antiaging-164
무기성(無記性)-166

해설이병국아무것도아닌사람의모든것-168

출판사 서평

추천사
전호석시의등장인물은대부분“아무사람”처럼나온다.“아무사람”은말그대로아무나될수있는사람이면서“아무것도아닌사람”이다.여기에는“아무것도아닌우리”도들어가는데,때로는시의화자조차‘아무(것도아닌)사람’이되어이세계를돌아다닌다.‘아무(것도아닌)사람’인화자에게발화자로서의권위가충분할리없다.미약한권위의발화자에게이세계는사실상구경꾼으로서의지위밖에허락하지않는다(“사실/구경이취미입니다제일이아닌/파국들”).혹은관망자나방관자의역할밖에주어지지않는세계에서“자신이아무래도대충만들어진인간이라는생각”이드는것은자연스럽다.자연스러운데이상하게아프게들린다.자신의삶에서한번도주인공인적이없었던이의고백이나한사람이나너한사람의고백일수없기때문이다.새삼“아무사람”의고백으로들리는그말이거창할리도유창할리도없지만,그럼에도“내리는형태로찍힌눈송이들”처럼정돈되지않은그말이이상하게반갑다.“사는일은어렵”고“지폐한장얻기가쉽지않은”세상에서많고많은달변가의말보다“쌓인무가지”처럼무용하게“펄럭”이는말이귀에와서콕콕박히는때가있을것이다.그때의그말은‘아무사람의말’이면서바로‘나의말’이기도할것이다.전호석의시가독자에게기대하는말도어쩌면그와같은말일것이다.
―김언(시인)

시인의말
사람이떠난하얀담장빛받아눈부시다
이미죽은사람들과유명무실한존재들
웅덩이가넓어지고덩굴이담장을덮어간다

나는한적한사관이고버섯이자라나는그늘에갇혀있다

-책속에서

시집속의시세편

학림

이거리에는동상이참많습니다
검은몸위에빗물자국이가득한데요
나무들이자라나는동안
동상은동상이고
낡는것과자라는것사이에서
나는고민하고있습니다의자에앉아서벤치
죽은나무로만든기호위에서
사람들이야기를훔쳐들었는데요
새지저귀는소리도듣고
우는사람의하소연같은것들에귀기울여보았습니다
분수앞에서고민하고
새파란잎이떨어져있습니다
구름이박힌하늘은
움직이고있을까요무엇이
낡아가는것일까요무엇이
우리를자라나게하나요
나는시간이많고
괘종시계와손목시계의일초는같아요
그런것들이
그런것들이오늘은잘보였고
하면할수록알수없는
기다리기
각질이떨어지고
마음한곳에사라지지않는겨울을두고
눈사람을만들고녹였습니다
눈사람과동상은만들어지고사라지는거
둘다찰나일까요
가르침같은것이필요하다고나는강박합니다
어깨에묻은새똥을모르고
그런것은신경쓰지도않고
시간이조금더있었으면
많이달라지지않았을까……
쉽게말하고
사는일은어렵네요
지폐한장얻기가쉽지않은데
세계는풍요롭고
동상은번들거려요
하늘에서내리는모든낱알들을눈이라고불러봅니다
내몸을조각하는
내몸
당신은혼돈이아닙니다
위태롭지도않습니다
음영은어디에나있고
입체를느끼게하고
나는특별하다고믿는정신이당신을뻔하게만들고
신기한이야기를찾을수없어서
가만히있어보려고■

반투명

집으로가기전마지막휴게소

마른세수
뽕짝음악
물때낀유리창
너머밥먹는사람들

나는강물흐르는것을본다

붉은하늘가장자리
덜붉은하늘

자꾸비켜서는

핸드폰에저장된이름을훑으면
한없이멀어진사람들
송사리를건져내는왜가리의눈

가죽가방과노트
선물하기좋은물건들을고르는동안

박각시나방이꽃들을배회하고■

행신

자꾸만연말이되고유명한사람들이모여서종을다시,다시치고저번에도왔던길인데,먹었던밥인데,만났던사람들과또만난다
우리참오래봤군,그렇군,그렇군,그렇군……
우리는행복해지려고만난다,실패해서만난다
내일당장뭐가필요할까
다마신술병을치우다보면
없으면죽는거,못참는게있지않아?

월계수잎……
고기와함께끓는

돌아가는길은많고달고귀찮다
뭔가내릴것같은날씨였지만
아무것도내리지않는다하늘이머리카락을쓰다듬는다

잎을따며생각해보면나는
포대가내용물도없이홀로서있는꼴이라고
풀썩쓰러지면,납작해지는
그리고눈같은것에뒤덮이면서
아무것도아닌것
그러나
아주멀리떠나도결국집으로다시돌아와야한다
사람은그렇지만
당신은아무것도아니니까나혼자숨차니까
당신앞에멈춰몰래운다

괴물들은하나같이예쁘고
내목을가지기위해내뒤에서언제나기다린다

눈을채워두면
얼마나버틸것같은데?
친구가술을따라주며묻는다쉼표와말줄임표가,낙엽이너무많다이런삶을……잎을태우며
나는인정하기로한다,한다,한다……모든혐의를

근원을
이를테면재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