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속에는 나무가 산다 - 파란시선 150

그늘 속에는 나무가 산다 - 파란시선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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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길에서 희망을 가졌던 사람은 위험하다
[그늘 속에는 나무가 산다]는 이필선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김치에게 들키고 싶은 날」 「상어는 움직이지 않으면 물에 가라앉는다」 「그늘 속에는 나무가 산다」 등 57편이 실려 있다.

이필선 시인은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났으며, 2010년 [시인정신]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늘 속에는 나무가 산다]를 썼다.

이필선의 시들은 누구에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 시절의 편지 같다. 그것은 그의 시가 산문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적 감성과 감수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시는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늘 속에 조용히 숨긴다. 이러한 시인의 성품을 ‘그늘로서의 에토스’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데, 시인이 품고 있는 고유한 성품인 에토스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 그의 삶 속에 내밀히 새기는 나이테와 같은 것이다. 이필선의 시가 전반적으로 울림이 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의 최대 강점은 관념적이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불우한 타자에 대한 연민과 척박한 삶에의 리얼리티는 그의 섬세한 감수성과 만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그의 시는 현실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시이면서도 건조하거나 경직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그의 시가 어긋나거나 부조리한 현실에 걸맞은 풍부한 상상력과 비유, 언어 표현을 균질감 있게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 박남희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이필선

저자:이필선
충청북도보은에서태어났다.
2010년[시인정신]을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그늘속에는나무가산다]를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서시―흉터11
양수리에서12
아이를찾습니다14
소문16
비거스렁이17
뒷골목18
노점상20
김치에게들키고싶은날22
부음24
사라진여인26
와이어브래지어28
홋줄30
행주대교31
무거운기다림32
물수제비뜨다34

제2부
개심사가는길37
유월38
화정역39
주차장40
우울한갈증41
이력42
상어는움직이지않으면물에가라앉는다―배송기사의죽음44
이별46
장마47
여름의끝48
송년회50
허공에는길이있다52
삶은공백을허용하지않는다54

제3부
정적57
안부가궁금해지는계절58
개기월식60
하품62
환상통63
무지외반증64
아버지66
고백―큰딸한솔에게70
고백―작은딸민솔에게72
오래된사진75
CCTV76
돌아가다78
꽃다발79
기억의어두운부분80

제4부
폐역83
쇼펜하우어가궁금해지는밤84
쇼펜하우어가떨어진길85
쇼펜하우어가떨어진저녁―마네킹86
오후세시87
그늘속에는나무가산다88
유리창90
입동즈음91
침대에서깨다92
오래된기억에는윤곽이없다93
뱀94
겨울풍경96
자화상97
정암사주목나무98

해설박남희그늘로서의에토스와사랑의파토스,혹은윤리적앙가주망의시학99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죽음을앞서보지못한삶이
지쳐헤매는저길들속에꽃이지는날
머리에꽃을꽂고꽃이되어버린봄날
길.었.다.

허공에뿌려진햇살사이로
못견디게설레고있는바람이불고
강에부딪힌햇살이아프게찔러올때
투명한공기의무게가출렁였다.

한번도사용하지않은계절속
허기진풍경이나를어떻게진화시켰는지안다.

절반이바람으로채워져매달려있는공간
무엇을건드리며살았을까.

봉인된걸어온길들을
이제야조심스레풀어본다.

책속에서

<김치에게들키고싶은날>

1
첫돌지날무렵
딸애가여린관절로스스로서려했다
이윽고힘이드는지엉덩이를빼고앉는다
걸음마시킨다고발등위에올려놓는다
내가앞으로가면딸들은뒷걸음질을배우고
내가뒤로가면딸들은앞걸음을배웠다
그때부터뒷걸음질하는인생이생겼다
봄이느린속도로지나가고있다

2
내가운전하는동안뒷좌석셋은마냥즐겁다
항상귀는그들을향해열려있으면서
끼어들기힘든차선처럼번번이놓쳐버리는대화
열리는것도문이고닫히는것도문이었다
백미러로보이는딸을아내를발등에서내려놓는연습을한다
틈사이로바람이자유롭게드나들었다
밤비내리는정거장에내린적이있다
전화를하고싶어도정거장까지거리가멀어
홀로길을끌고집에걸어간적이있었다
적막은꼭산속에만있는것은아니었다
제자리에있으면서흘러가는풍경이있다
휘어진시간속에
파스냄새가나는어머니김치가먹고싶은날이고
혼자인것을그김치에게들키고싶은날이다

<상어는움직이지않으면물에가라앉는다>
―배송기사의죽음

1
돌아갈길이너무나굽어기억이나지않는다
녹슨시간속에나사못이
헐거워지고있었다
공원벤치틈새로흘러가는뿌리에
누군가구토를해놓았고
비둘기가쪼아먹고자면서울고있다
가시같이까매서너무나까매서
어디다두어야할지모르는그녀의삶이있었다
차에실린시간으로까만김밥을먹다가
그믐달처럼누워천천히가라앉았다
어둠은무게가없었다

2
사람이필요해서사랑한여인이
어둠속흰빛속에누워
심전도기계음으로살아있다
그녀의이름은상처였으므로그들은밤마다헤어졌고
채찍처럼살아있는심전도그래프는그를밤마다때렸다
심장에서사라진기다림이
청구서종이로되살아나는밤
감은눈속으로캄캄한소금물이밀려왔다
그믐달같던그래프가비명과함께펴지고
그녀의몸이해저에닿았다

<그늘속에는나무가산다>

풍경은채워진것이없으면헐겁다

태양이만들어낸풍경은그늘을가지기마련
아무도그리워하지않는
빛은그림자를보지못한다

드러난것은언제나시간이지나간모습이다
항상그늘은생각을품고있다

생각은빛에말리는것보다그늘에말려야한다
그림자는낮은곳에있고슬픔은그림자곁에있어당당하다
꽃들이자기씨앗을만드는계절이다

나팔꽃과분꽃이서로곁을주지않는것은
노을이저렇게낮은자세로풍경을가득채우기때문

낮과밤이포옹하는것은서로겹치지않기때문이다

술병들이취해쓰러지는저녁
아직골목길에는떠난사람이없고
저녁이그늘을지우며어둠이되어발바닥에닿았다

보이지않는것에안도한다
익숙해지지않아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