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

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

$12.00
Description
인사는 끝이 없어 다시 만나도 잘 헤어질 수 있는데
[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은 황정현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모아이」 「청동겨울」 「골목 밖에서 붉은 눈이」 등 51편이 실려 있다.

황정현 시인은 202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을 썼다.

우리가 황정현 시인의 시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세상을 향하지는 않는다. 즉 참혹을 견디는 자를 위한 정의나 부당한 세계를 향한 심판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투쟁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니지 않은 취약한 존재, 자신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안한 존재를 형상화한다. “인사는 끝이 없어/다시 만나도//잘 헤어질 수 있는데”라는 시구처럼(「어제의 소질」) 누군가는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편으로 떠난 ‘당신’과 다시 해후하는 순간만을 꿈꿀지도 모른다. 이렇듯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주체, 다시 말해 현실을 살아갈 능력보다 “아득히 고요하네 산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 속에 껴 있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우울증적 주체가 [바람은 너를 세워 놓고 휘파람]에서 아름답게 간직하려는 사람의 모습이다(「여독」). 줄곧 이 시집이 비추는 것은 인간의 무너진 마음이다. 그러한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가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듯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는 듯이 다만 자신의 두 발로 자신의 마음을 걸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형상을 그릴 뿐이다. (이상 박동억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황정현

저자:황정현
2021년[경인일보]신춘문예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바람은너를세워놓고휘파람]을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모아이11
파랑13
열두명이스물네개의거짓말처럼15
의자고치는사람18
키오스크20
셀프주유소22
청동겨울24
골목밖에서붉은눈이26
열여덟28
밤강정30
핑고32
버드스파이크34
언니들의파노라마38

제2부
송곳니43
아이의이웃46
거절의미래48
삼십일51
코르크스크루54
육교56
정리58
신놓기60
육손이62
정오64
율리시스66
물뭍동물68
20년을줄게70

제3부
02:5575
휘파람76
난반사78
까마귀와나80
종이다리82
스무디84
스키니진86
대숲펜션88
숨바꼭질90
열대야92
섣달93
손등의밤94
나무요일96

제4부
모임101
입장102
익산104
아는동네106
아는공원108
한밤의트랙110
한밤의이사112
접골116
필사118
어제의소질120
겨울물결자나방은날갯짓을서두르고122
여독125

해설박동억형언할수없는타자를향한응답127

출판사 서평

추천사

‘우리’라는말은‘나’와‘당신’만으로분절되지않는다.‘우리’가되기이전과이후의시공간은다르게흐르기때문이다.‘당신’과이별하고‘나’는‘당신’의골목에남아있는‘나’의모습들을거두어갈것이다.‘내’가온전한‘나’로돌아오는동안,‘나’는여기저기부딪히고부풀고증발하거나스며든다.“흰그림자밟으며//빛속에서//서로를알아볼수없을때까지”(?까마귀와나?)‘나’는죽음의파노라마에갇힌다.죽음은‘나’와‘당신’을오가며삶을흔들어놓고달아난다.죽음이“두손으로병을감싸면/우린조금투명해지”지만(?코르크스크루?)‘나’는일상으로쉽게복귀되지않는다.황정현의시집에서죽음의이미지가연쇄되면서드러나는것은아이러니하게도산사람의목소리이다.시인은죽은이로부터건너온산사람의이야기를반투명하게,불가사의한것을환상적으로그린다.우리가이전에본적없던몽롱한구체물을경험할수있다.이를테면‘밤이오고뒤꿈치를들어올리면잠시하늘에가까워’진다거나(?모아이?)“입속을굴러다니는젤리맛바람”을느끼게된다(?휘파람?).‘당신’을생각하다가“손등이가려운건/날씨가슬퍼서”라거나(?20년을줄게?),“차오르는물소리에/목구멍은얼어”버리는감각의전이도발생한다(?아이의이웃?).이제‘우리’로부터이탈된‘나’와‘당신’이지니게될빛의색과분량은다를것이다.우리는예측할수없는날씨처럼‘나’의세계가시시각각으로변하는풍경을마주하게된다.아름다운이미지들은‘나’의회생장치이다.삶의엔진이다.내일의‘우리’를위한가능성이다.시인은“오래도록붓끝만바라보다겨우좁은골목하나를”다시그린다(?골목밖에서붉은눈이?).폭설속에서“붉은눈”을걸러낼때까지,“죽은대나무잎”이“나비”가될때까지(?대숲펜션?),그리하여결국,‘우리’가다시만날때까지숨죽여시를쓸것이다.
―정우신시인

시인의말

사과를
보냈데

상자속엔
감자가
가득

반씩
나눠먹을까?

어디
사니?

책속에서

<모아이>

바다를등지고서있는기분을아니
어둠이불어오면물결은밀려가고

조개들은서로를보듬어무덤을만드는데
우리는운명을안을수없는얼굴들

흔들리는언덕에목을얹고
퀭한눈으로서로를볼수없는우리는

바람을정수리에담아도
입술마저두근대지않아서

구름이내려앉으면언덕은부풀어오를까
귀를기울일수록이웃은멀어지고

불타는숲을보았어
아무도다가서지않았고

물속에잠기는아이를
누구도안아올리지못했어

젖은발가락은흙속에서꾸물거리는데
하나둘깨어나는손가락들

슬픔이고일때마다
온몸에꽃피는구멍들

밤이오면뒤꿈치를들어올린다
잠시하늘에가까워진다

너무나많은무덤이
얼굴을부르고있다

<청동겨울>

녹는거
틀림없나요

함께죽어간다는거요

잔무늬거울도세발까마귀의울음도거푸집속에서발버둥치고있다는거요불과볕이까닭이라면

안짱다리언니들은유별나지요달처럼도나처럼도기울지않아요어떻게든우아해지니까요

웃을지모르겠지만비극에대해서
청년들은정직하다는거

손님을들이고싶은데문을닫아요구경은미뤘어요표정도떼어먹어요청혼은언제하나요외롭지만혼자가아니라서요

어서와요
문을열면

반달돌칼을쥐고싶을지몰라
어쩐지손아귀가씩씩해질것같아서

할머니들이조금가엾기도하지만
엄마들이졸고있으니까

오늘밤나의동사들은
누울때도
설때도
침을다시는데

까막까치들이밤하늘을수놓을까요눈보라를몰고오네요사방에펼쳐진겨울이녹스나봐요쇳소리도들리지않아요

<골목밖에서붉은눈이>

오래도록붓끝만바라보다겨우좁은골목하나를그렸습니다

붉도록
검붉도록

이골목의어둠은
어떻게붓질할까요

어둠을들먹이다그만
먹물이말라버렸죠

누군가골목안으로손을내밀면힘껏잡을거예요나좀꺼내달라고요골목밖으로나가야하는데숙제도약속도있는데그림자없인한발자국도움직일수없는데숨소리도그림자도잃어버렸어요

내일은아무도날알아볼수없을테니까다짐도비밀도지킬일없을테니까언제올거냐고왜이리늦냐고야단치는잔소리도늦은밤막차타고꾸벅꾸벅조는일도이른새벽출근길도다가오는너의생일도기일도빗소리도눈사람도잊을테니까다시죽을일없을테니까

다음엔
그다음엔

골목밖으로
손을내밀어도

아무도잡아줄수없을거예요눈동자를쥐여줄게요차마당신의등을볼수없거든요골목밖으로그렁그렁한눈길만보내요

이골목에서영원히마른붓끝으로휘돌게요아무리써보아도내가쓴글자들은나를구할수없으니까숨소리도그림자도잊을테니까그러니누구라도울지말아요

골목밖에서
붉은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