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미셸세르는연약함이시간을만든다고썼다.연약함이시를만든다.더불어티머시모튼은“존재하기위해서는취약하고섬세해야만한다”고썼다.“취약함과섬세함으로존재한다는것은결국붕괴하고마는상태로존재함을뜻”한다,“세계는부서지는가운데존재”한다는것이다.그렇다면시는세계가작금처럼부서지는가운데가장단단한존재의의를얻는건아닐까.이때의시는시대적저항을위한역동성이라기보다,타자와세계와미래에대한어두운전망속에서체념과절망의외피를두른희미함으로현재의시간을만든다.한없이희미한시들은희미하지만확실하게있다.희미하지만그것의있음이이어짐을만들고,그연약함이무언가를함께있게한다.시는‘함께있음’마저도모조리깨어질때의마지막파열음으로도작성된다.(?흘러내리는불안과한없는연약함들?,p.20.)
연약함은“서로에대해,서로와함께위태로운관계”에있음을,또한어떤존재도다른존재및환경과상호의존적인얽힘의네트워크안에있음을말한다.동시에연악함은감수성의다른말이다.감수성,즉상처받기쉬움은상처받을수있는능력이고,다른모든존재들과의얽힘속에서,상처속에서이전과는다른무엇으로변할수있는능력이다.예컨대,이전의인간이아니거나,인간자체가아니거나,혹은그어떤(비)무엇(들)으로변이하기위한최소한인것이다.
상처로부터회피하기위한방어가인간-정체성을호두알보다작은세계안에고립시키고그속에서달그락거리게할뿐이라면,연약함의얽힘은최저낙원을만든다.연약함은결코혼자가아닌방식으로,함께얽혀있는다른연약한것들과함께,위태로움으로얽혀있는다른모든것과함께될수있는잠재태의지대를구성한다.파기된세계,‘곤죽이된세계’는물론높은확률로‘지금의인간’을위한것은아닐것이다.‘작고꾸물거리는벌레’같은무언가탄생하는우주,그때성취되는우주가무엇이될지는아직알지못한다.(?연약과희박의최저낙원에서소멸을성취하기?,pp.42-43.)
바우만(ZygmuntBauman)은현재의불안과미래의불확실성속에내쳐진현대의특질을‘유동하는액체성’으로정의한바있다.발디딜곳이흔들리는지반의위태로움으로말미암은유동성불안이한시대를정의하는정체성이되었다면,(“과포화상태의액체가특정한원료,에너지,정보조건이맞으면고체화”되듯)유동성위에서과포화된불안은일종의유리-파편적실존을초래한듯하다.불안은깨어질듯위태로운유리파편이되어‘나’를지탱하는유일한발판이된다.타인이들어설곳없는좁디좁은자신만의파편에웅크린채,‘나’의동질화만반복게하는액정스크린속알고리즘만붙든채,부서질일만남은불안들이웅크리고있다.(?시(詩)-공간형성실패의사례들?,pp.47-48.)
이글을쓰는내내,어떤전쟁의현장앞에서이런글은무슨소용인가,이글은실재하는폭력에서얼마나멀어져있는가하는거칠한불편감이“동백꽃잎”처럼등을찔렀다.존버거의문장을빌려본다.이글은“부끄러운밤의한가운데서”쓴것이다.“전쟁중이라면,밤은그누구의편에도서지않는다.사랑하고있다면,그밤은우리모두가함께임을확인해준다.”부끄러운밤은여전한데함께인지는알수없어,“가자시티,다시전쟁의최전선”이라는제목의기사를읽는다.모든전쟁을개개인각자의것으로돌리는때가전쟁이기어코승리하는순간이아닌가.(?우리가꽃잎처럼포개져차가운땅속을떠돌동안?,p.81.)
‘연인’이란바탕없는세계,속도로인해무감각해진세계에서서로에게감각과발디딜곳이되어주는존재이다.연인은어떤대상에대한감각?지각을확인시켜줄수있는타자이면서동시에정서적연대자이기때문이다.그래서“낡은항구가돼서영원히너의이불에서나오지않을생각”이었고,바깥에초인종이울려도“이불을뒤집어”쓴채집에없는척할수있었다.(?오직사랑하는이들만이‘잠시’살아남는다?,p.93.)
“온전한것은환상이다.”사라아메드는‘오멜라스’의예에서“행복의약속이얼마나고통의국지화에의존하는지알수있다”고말한다.누군가의고통과상처를모른채,혹은알고도방치한채,그‘고통의국지화’에기대어온전한척하고있는것은아닌가.시인은방치된것들,어느“건물아래”에묻힌고통과상처들에게로돌아간다.방치된것들의안부를묻는다.시는그러한감각과감수성의기록이다.‘천천히죽어가는소녀’를,방치된어느곳에서죽어버린이들을감각하고,공명한다.‘우리’를구성하고있는둔감함의벽을두드린다.뒤에갇혀있는건,기필코‘너’의상처이기도하다고.(?방치된것들이넘쳐우리의전부가되는것,그것이우리의미래이고?,pp.103-104.)
사랑을믿지않으면사랑이존재한다는사실을결코알지못한다.되풀이하자면,불가능해보였던것들도반복해쓰다보면실재하게된다.계속된언어의영향은실재한다.믿을만한것들이현실을구성하고있는것이아니라믿고싶은것들이현실을만들어내듯,시작도전에시작하고끝이후에도되풀이하는사랑처럼,“하나의과거와하나의현재로서가아니라,지속의흐름전체에의해분리된양립할수없는여러순간들을어떤감각적인동시성속에서공존하게하는어떤동일한현전”이있다.미래는(아직)오지않는가.그렇다면끝없이오류를되풀이하면미래에갈수있지않을까.미래가오기까지,“가능성을위해서스스로의불가능성을껴안는”용기속에서‘버티기(Standhalten)’하면되지않을까.아니,어쩌면,미래는오고가는게아니라,지금-여기와서로를헤매면서함께있는게아닐까.(?함께있기불가능했던것들이함께있을수있는것이미래다?,p.114.)
빛은장소를특정하기위한스포트라이트가아니다.빛이지금내린다는것은그때에도내렸고앞으로도내린다는의미이다.시인의시점이과거나미래를오갈때에도시인이지금-여기를감각하는것은빛이아주먼곳으로부터아직(그리고나중의어딘가에도)오고있기때문이다.빛의동시적편재에가까운이어짐이시공의경계를지운다.같은빛을공유하며시간들은동시(同時)의장소에도달한다.포옹안에서‘우리’는같은곳에묻혀있다.
그“지나치고원시적인사랑이”“거실풍경과미래를하나로꿰어방치시킨다.”‘나’는“가끔내게없는삶을기억해내”지만,이젠“빛”이“내게없는삶을기억해”낸다.빛이기억의주어가된다.마치재속을발굴하면,시인혹은다른누군가가웅크려있는것이아니라사랑만이오롯이홀로눈뜨고있을것이라고말하듯.발굴해야할것은그뿐이라는듯.(?재와사랑의고고연대학?,pp.122-123.)
데이비드페리어는시가시간의매듭이며,물질과감각과기억의복합체라고썼다.그에따르면,시는인식의순간을확장하고압축하여‘우리’를감싸는장구한시간(deeptime)의스케일을드러낸다.즉,시는우리의미래에남겨진것들을상상하게한다.물론,우리가잃을것들에대해서도마찬가지이다.시는우리가미래에잃을모든것을미래에남겨둔다.
아마도미래는지금의‘인간’을위한건아닐것이다.그러니거기에남은인간의슬픔은무슨소용일까.그럼에도시인이슬픔을이야기하는것은‘인간’을고수하거나지금우리의슬픔을위해서가아니라,‘지금’의힘에대한신뢰와,여전히다음을살아갈세대에대한예의에가까울것이다.미래의비전은없어도이어짐은있다.(?세상은이렇게끝나네,쾅하고가아니라울먹이며?,pp.129-130.)
울프의문장을변용하자면,평범한날의평범한마음속에는하찮은것,놀라운것,덧없는것들이모든방향에서무수한원자의소나기로내리고,그것들에대한인상이우리의삶을구성할때,예전과는다른곳에강조점이떨어진다.그런것들과접촉하는‘시인’은“발끝부터새로워지려고이름을지우고시를”쓴다.여기임지은의‘시인’은예술적자각이나자의식의발로가아니라,쓸모없는것의곁을오래지켜서같이쓸모없어진,실은쓸모와무관하게편재해있는(보풀과다르지않는)무엇일뿐이다.
그러므로임지은은어떤의미부여나명명에서가아니라,부사처럼‘쉽게버려지는’것들,잔해들로부터시작하는것이다.“죽은단어를핀셋으로건져”올리며,그것들이붕괴되어가는시간을,그것들이사라지고있음을드러내는것이다.이노출은무감각에대한저항이다.물론어떤노출도그것이유효한유통기한이있다.감각이무뎌지는것역시모든와해만큼필연적이다.그러니시인은시작(詩作/始作)한다.그것들과같이서로의어깨를붙들고‘다시’사라지기위해서.이사소하고하찮은것으로부터시작하여,‘다시’끝내기위해서.(?우리가서로의어깨를붙들고사소하게붕괴되는동안?,pp.141-142.)
어떤고통은생명일반의보편적문제에서기인할것이고,어떤고통은지극히사적인이유에서연유할것이다.하지만각각의모든고통이온전히개인의몫일까.그것에대한우리의납득과체념은자연스러운일일까.고통의개인화는고통에대한다른물음들,예컨대고통에관한제도적이고사회구조적인연관성에대한물음을소거시키지는않을까.
이런질문은시인이되찾으려고했던“새로운답이아닌/진부한질문”중하나가될수있을것이다.세계는여전히엉망진창인데,모두아무렇지않은척‘페이크’를쓰고있지않나.엉망과진창을숨기고그속의고통은그저각자의몫인양시야를막고있지않나.(?엉망이라는비질서와진창이라는바닥에서우리함께?,pp.144-145.)
꽃은앞에서반짝인다.꽃이전경(前景)을차지할때,꽃의뒤는앞을지지하고지탱한다.그런데꽃의끝,꽃이낙상할때드러나는꽃의뒤란,우리가지금-여기까지오느라잃은것들,떨어진꽃과시간의잔해만있는것이아니라,그와동시에지금우리에게남아있는것들을감각하게한다.한식물의첨단이자끝인꽃은그나무의시간을품고있다.꽃을밀어내는힘은그것이지금까지품고온나무의시간에있는것이다.시간은순간의잔여로흩어지지않는다.매순간들의축적인나무가꽃을기억하며남아있다.(?꽃의뒤,여남은분홍들의시간?,p.160.)
지구의생태적위험을알리는숱한지표들과우리가당장목도하고있는기후위기속에서,마크피셔(MarkFisher)는‘미래는없다(NoFuture)’고말한다.피셔의표현은중의적인데,우선이대로세계가지속된다면‘미래는없’을것이라는전망이며,동시에지금당장행동하지않으면‘다음’의기회같은건없다라는위급한요청이다.이러한전망속에서,미래인지감수성을지닌누군가들은‘가능한모두’의미래를위해당장무엇을할수있을까사유하면서,모든‘지금’이미래를붙들수있는마지막순간이라는시급함에쫓긴다.(?애도와태도:죽어가는이들과함께지금-여기?,p.168.)
실패는“자본주의와이성애적규범모두에대한비판을시작하기에나쁜출발점이아닌”것이다.‘모든나’와같이,부정과결여의존재들이모여있는실패의지대,비존재의세계로나아간다.위계와억압을조성하는사회에서유령이된다는것은체제가재단하는“이분법의몸”과의관계를끝내는것을의미한다.‘유령’이실제적죽음이든혹은사회적비존재에대한은유이든간에,실패에대한판정을체제에맡기지않는다.“우리를실패로보는사회의규범속에서제대로작동하는데실패한다는것”은우리의실패를세계나사회체제에맡기지않는능동적오류가되는것이다.(?재실패화를향한헛스윙,헛스윙?,p.182.)
슬픔의기원을,예컨대,‘너’의상실이라고한다면,여기서‘너’는지금어디서실존한다고하더라도물리적실체가아니라시간-현전의좌표일따름이다.상실이모든‘있던’것에뒤따르는필연성이라면,슬픔은,최초의상실에서기원했다할지라도,기원이시간속에서소진된이후시간그자체에서반복된다.어떤슬픔은하나의과거의결절점에속하는게아니라,견딤의시간을반복하는삶자체에가까워진다.시는슬픔을반복하는것이아니라,슬픔이반복되도록감수한다.(?어긋난늑골과함께견디는것?,p.189.)
우리의‘현실’이란어떤실재를가린얇은가림막일지도모른다.덧붙여그‘현실’이란우리가가진인지한계내에서삶을편하게영위하기위해“고도로선택적인스크린(차단막)에의해”맞춰조정된것일지도모른다.‘현실’이완고한필연성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