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 PARAN IS 9

물끄러미 - PARAN I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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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먼 길 달려온 물의 걸음 천천히 가파르게 흘러간다
[물끄러미]는 김서희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물끄러미」 「그리운 맞춤법들」 「베이다」 등 60편이 실려 있다.

김서희 시인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월간순수문학], 2011년 [불교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허허로운 날엔 라면을 끓인다] [뜬금없이] [물끄러미]를 썼다. 2021년 불교문예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다.

소소한 이야기들은 시인의 손을 거쳐 친근한 시로 태어난다. 예컨대 다만 사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면 굳이 이 작품 「베이다」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무게를 지니고 가슴을 친다. “오래전/할머니도 엄마도 거쳐 갔을 이 순간/그들이 거쳐 온 핏방울의 과거사가/오늘 내게로 와서 겹쳐졌다”에서 짐작하듯이 할머니와 어머니는 나라를 잃고 칼에 피를 흘리는 ‘잔혹한 시대’를 거쳤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주방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손을 베이는 것은 대부분 칼을 쓰는 자의 몫이다. 칼은 양면성이 있어 잘 쓰면 이로운 도구가 되지만 잘못 쓰면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가 된다. 누군가 던진 칼날, 함부로 내뱉은 말 한마디에도 심장이 베이는 세상이다. 무 하나를 다듬는 일도 무를 천천히 돌려 가며 칼날을 살살 다독여야 한다. 감당하지 못한 칼날은 얼마나 위험한가. 슬쩍 비켜 간 칼날에 자꾸 피 맛이 난다고 한다. 일상을 통해 보여 주는 주변의 풍경에는 시인이 의도한 요소들이 하나둘 복선을 드러낸다. 대부분 화려하며, 자극적인 것들에 눈과 귀를 빼앗기는 현대인에게 차분한 목소리의 소박한 시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감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이상 마경덕 시인의 해설 중에서)

저자

김서희

저자:김서희
경상남도통영에서태어났다.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
2002년[월간순수문학],2011년[불교문예]를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허허로운날엔라면을끓인다][뜬금없이][물끄러미]를썼다.
2021년불교문예작가상을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회원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가지먹는여자11
반지하방볕뉘12
부재(不在),재(在)14
필사(筆寫)16
겨울목련17
하마를키우다18
바다로간다20
물끄러미22
어디로갔을까24
베이다26
흰나비28
순천만갈대30
그리운맞춤법들32
종착역에닿으면33
손톱꽃피다34

제2부
씨앗37
엇박자38
사과한알40
밥벌이42
기울어진각도44
먼길돌아서왔다46
동충하초(冬蟲夏草)48
엄마가우리를50
그들은모른다52
신문을보다가54
또봄은왔는데55
시체꽃(titanarum)56
지팡이가사라졌다58
하니공원스토리60
문제는바닥62

제3부
나이듦65
구십하나구십넷66
수구초심(首丘初心)68
설렘이앞서가다70
무너지는경계72
푸른편의점출입구옆에74
덜컥,터널지나기76
병원일기178
병원일기280
끌려가는길82
여름을관통하다84
시월의끝자락86
사람꽃88
부고장(訃告狀)90
요양병원에서91

제4부
목련95
석류96
모르고모르니모를일이다97
96년1월에98
구월을건너서100
어떤봄날102
BeforeAfter104
겨울바다105
멈춰버린시간106
접시에담긴저녁108
껍질은힘이세다110
산소가는길112
봄국을끓이다114
귀향116
새해첫날118

해설마경덕자신만의색채로만든보편적가치120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평면인하늘을덮고사는나는
평평한가

굴곡진대지에발을딛고사는나는
굴곡진가

직선으로뛰어내리는빗방울보면
언제나튀어오르고싶은데

무릎은언제부터인지낡아버렸다

세상와서배운건완벽한고독
돌아서면몰려오는몹쓸헛헛증

핸들을잡고흘러간다

어디로가고있는가,나여

끝은있는가,나여

책속에서

<물끄러미>

수도꼭지가흘리는소리를듣는다

똑.똑.똑,

늦지도빠르지도않은저간격

똑.똑.똑,

리듬이일정하다

아래로아래로
동그란물길을그러모으듯
동심원그리며빠져드는물방울에
먼길달려온물의걸음이보인다

잠깐푸른하늘빛이담기고
잠깐창을넘어온햇살이담기고
잠깐앞치마를두른엄마가보이고
호수에돌멩이를던지던어린날의내가보인다

눈에고이는물을그러모아
그리운모든것들을그러모아
바라보는
물.끄.러.미.

그느린속도로한방울한방울
하루한달한해가되어
천천히가파르게흘러가는것이다

<그리운맞춤법들>

양평오일장으로마실을갔다
장도보며사람구경도하며
이골목저골목돌다보면
마음에오롯이얹히는팻말들이
좌판에앉아있다

둥굴래홍악씨결맹자헉개나무열매
브로코리캐일치크리곰치클라비
두통빈열기침애조은구기자

그래도다알아먹는정겨운이름들

내할머니의국어였고
내엄마의맞춤법이었다

볶아서차로마시거나혹은
그씨앗을심는사람들로하여
황토밭어디쯤서다시움을틔울
보고싶은맞춤법들의얼굴들
엷은웃음끝에눈물도살짝얹히는봄이다

<베이다>

검지쪽손등,
푸른핏줄바로위로칼날이스쳤다
비명을지를뻔한찰나
나를안심시키듯살짝피만번졌다

허벅지만한무껍질을
감당하지못한칼날에
내가잠시위험했다
무와칼날사이그팽팽한탄력을
무시한나의실수였다

오래전
할머니도엄마도거쳐갔을이순간
그들이거쳐온핏방울의과거사가
오늘내게로와서겹쳐졌다

무를다시천천히돌려가며
칼날을살살다독이며
껍질을벗기는시간

어디선가자꾸피맛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