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 수우당 시인선 10

당신은 누구십니까 - 수우당 시인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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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표성배

저자:표성배

경남의령에서태어나1995년제6회<마창노련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아침햇살이그립다』,『저겨울산너머에는』,『개나리꽃눈』,『공장은안녕하다』,『기찬날』,『기계라도따뜻하게』,『은근히즐거운』,『내일은희망이아니다』,『자갈자갈』등이있고,시산문집으로『미안하다』가있다.2014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으며,2021년제7회경남작가상을받았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봄이면
동굴은끝이없다
물어볼데가없다
하늘은누구의하늘이아니다
공장을사랑하고부터
알수없어요
휘이―휘파람을불어요
참멀리왔다
첫출근하던날
희망퇴직을한선배가쓰던기계앞에서
종쳤다
쓰러지면표적이아니다
말매미
고철통에버려지는근육질의시간
당신은누구십니까1
당신은누구십니까2
봄여름가을겨울
꽃무덤
삼년고개

제2부

사랑한다는말1
하늘고드름
애들이어찌자랐는지몰라요
초인종은눌러야소리가납니다
시간이뚝부러졌다
당산나무
노동과자본
시와자본주의
생각의끝은
이어처구니
눈물냄새
당신은무슨빛깔입니까
아버지
심부
제기도를누가들어나줄까요
밥은평등하다
밥은가혹하다
이슬떨어지는소리에
빼앗긴내일
사랑한다는말2

제3부

감자꽃이피었다
이런가을조차
늘하던대로가신통찮을때
이런날이면
작심삼일
신의탄생
전보
길이끝나는곳에서산은시작된다
새가날수있는것은별때문이다
별을보며꿈꾸던시절은없다
그냥그리워하자
바람의길
어떤시절에는당신의손이필요하다
담쟁이
마찌꼬바거리
나도혁명을꿈꾼적있다
난청
평화

제4부

평화시장
아―대한민국
원초적인말
별은모래별바람은모래바람
일제히일어서는저삐삐꽃들
시소
사월지리산
휘리릭
한세기의끝에서1
한세기의끝에서2
빛고을순례길
마산
사쿠라
참이상도하지
장복산
마산수출자유지역
꿈은슬프다

일곱시인의일곱이야기

출판사 서평

표성배시인은첫공장생활을시작한1979년,열다섯살적부터정년을바라보는지금까지공장을떠나지않고있다.공장에서의하루하루가쌓이고쌓여그의삶이되었다.그는그런삶의틀속에서시를쓰고,불합리한노동현실을바꿔내고자머리띠를묶기도하고,시인으로서시를써서사회에경종을울리고자노력해왔다.지금까지그가쓴시를읽다보면노동현장에서함께부대끼는동료들애틋한모습이눈에선하다.이는시를읽는대부분의독자역시노동자이거나가족중누군가는노동자로살고있기때문에굳이설명하지않아도그의시가친근하게다가서는것이지않나한다.

표성배시인은이번시집『당신은누구십니까』에서예전에볼수없었던형식을선보이는데이는짧은산문형식이지만,지문(괄호)을통해독자에게질문을하거나하고싶은이야기를직접건네기도한다.특히시집제목인〈당신은누구십니까〉라는시를읽으면이땅모든노동자에게노동자의정체성이무엇인지묻고있다.심지어천만이넘는노동자이지만,노동자를대변해주는시장이나도지사국회의원조차선출해내지못하는현실을에둘러비판하고있다.이시를곰곰이읽고깊이생각해보면이런현실이끔찍하지않을수없다.

나아가‘왜’라는물음을이땅노동자에게던지고있다.이는표성배시인이열권이라는시집을내면서줄곧노동자곁을떠나지않고지켜온소회인지도모른다.시를읽지않는시대라고들한다.휴대전화기에하루종일얼굴을묻고사는작금에종이로만든시집을읽는다는것이얼마나불편하고거추장스러운일이라는것을알지만,노동자가시를읽고시속에서내일을점칠수있다면,바위가굴러내릴것이라고예정되어있지만하루종일바위를밀어올리는시시포스의하루가왜비참한지를알수있지않을까한다.

내일다시바위를밀어올리기위해터벅터벅산을걸어내려오는당신의모습을상상해보자.이게내일이라는희망이결여된노동자의모습이라면,이또한너무나끔찍한현실이지않겠는가.하지만이끔찍한현실을노동자가노동자의눈으로똑바로볼수만있다면,내일은바로나의내일이될것을의심하지않는다.표성배시인은이번시집을통해감히이땅노동자에게묻고있다.당신은누구냐고.

시집을내며

하늘은
누구의하늘이아닙니다.
바로당신하늘입니다.
그런데당신은누구십니까
한번도하늘을탐내지않으신당신
평생성실하게일만한당신
착하고착한당신
그래서묻습니다.
정말,
당신은누구십니까

2023년봄마산에서
표성배

책속에서

내가그를처음만났을때그는알몸이었다그푸른가슴에안겼을때도그는알몸이었다내가그의품속에서내일을꿈꾸는동안에도그는여전히알몸이었다수십년이지나도변함없이알몸인(그럼,그동안,내가꾼꿈은어디로갔나)그는여전히알몸인데나는그의손아귀에서벗어날수가없다
---「공장을사랑하고부터」중에서

픽─쓰러지듯누워서는무슨꿈꿀까(무슨꿈이라도꾸고있을까)나무그늘이짧아발목을내놓고잠들어있는,아니,아니언제라도박차고일어나망치를들고수출탑을더높이높이쌓겠다는듯꿈틀거리는(저푸른힘줄좀봐)점심시간이면나무그늘에종이상자를깔고누워습관처럼내일을꿈꾸기에바쁜,바쁜당신은누구십니까
---「당신은누구십니까1」중에서

사실한두려움이끝나면다른두려움앞에서있었다봄햇살마저지나치는가난한골목이전부였던시간,내마음에는무슨간절함으로꽉차있었나(해고자를복직시켜주세요고용안정을바랍니다비정규직없는일터를만들고싶습니다일하다죽는노동자가없게해주세요노동자가가슴뿌듯한그런사회를만들고싶습니다)지금도노동자는눈앞에낚싯바늘을둔물고기처럼위태위태한시간입니다
---「제기도를누가들어나줄까요」중에서

세월은왜가기만하고다시오지않는가사람의역사와함께진리가되어버린말들이부초처럼떠돌고있다집밖에나와개처럼긴하품을하는동안에도전화기는쉴새없이복음을뱉어내느라바쁘다(대문밖은위험합니다가족도조심하세요)기쁨을기쁨이게하는말씀은이제없다천당도지옥도말한마디로거침없이만들고지웠지만,예수도부처도전염병은어쩌지못한다니과학을신봉하라또,하나의신이탄생하고있다
---「신의탄생」중에서

한아이가그네를타고있다,왔다갔다얼마나더있어야엄마가올까나는엄마처럼기다리게하지않을거야(다짐하는사이)어둠이완전히내려앉은세기의끝,한아이가그네를타고있다
---「한세기의끝에서1」중에서

표성배의시집에는손짓과교감의장치로설치해놓은괄호()에눈이걸리거나생각이맴돌도록화두대신기호로독자들에게덫을던져놓았다.수학풀이에서괄호안의수부터먼저계산하는공식을생각해본다면,괄호안에담은단어와문장이시한편의초점이고골자가될수도있고,시인의속내일수도있겠다는생각을해본다.

노동자가없는자본주의는있을수없지만,이사회의주춧돌이라고할노동자의삶은갈수록나락이다.이런노동자곁을지키는몇안되는시인중한명이표성배시인이다.그런시인이묻고있다.일년짜리계약서에서명하고도일자리를얻었다는것에만족하고살아가는계약직노동자에게도,안정적인고용이보장된정규직노동자에게도,특수고용직노동자에게도당신은누구냐고.정말,당신은누구냐고,이시집을읽다보면화두같은이질문앞에숨이턱막힌다.정말나는누구인가
---「일곱시인의일곱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