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 큐큐퀴어단편선 5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 큐큐퀴어단편선 5

$14.00
Description
큐큐퀴어단편선은 1년에 한 권 국내 작가들과 함께 엮어내는 퀴어문학 시리즈이다. 2018년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2019년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2020년 〈언니밖에 없네〉, 2021년 〈팔꿈치를 주세요〉를 출간했다. 2022년 출간되는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는 ‘큐큐퀴어단편선’의 다섯 번째 책으로 이유리, 아밀, 송경아, 이주란, 김유진, 이주혜, 성해나 작가가 참여했다.

팬데믹 이후 세상은 기후위기에 의한 전 지구적 재난과 우리의 일상과 생존을 위협하는 학살과 혐오의 사건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매일 열심히 살았지만 경력도 모은 돈도 없는 중년 레즈비언 커플의 생활 투쟁기 '보험과 야쿠르트', 유일한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미나가 런던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헤녀들의 지독한 우정(?)을 그린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퀴어 퍼레이드에 BDSM 깃발을 들고 온 같은 반 정인이를 알게 되면서 숨겨두었던 정체성을 깨닫는 '다가가지 못하는'.

긴 시간 소식이 없는 은영을 기다리는 나와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들과의 일상이 담긴 '여름 밤', 안개로 봉쇄된 도시에 갇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수리와 정원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수리와 안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랑을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겪는 '소금의 맛', 1970년대 명동으로 모여들었던 바지 씨와 치마 씨, 그들이 머물던 ’로즈다방’에서 만난 정희와 영휘의 이야기 '늦여름 매미 만선'이 수록되었다.

저자

이유리,아밀,송경아,이주란,김유진,이주혜,성해나

잘달리지못하지만달리기를좋아하는사람.2020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브로콜리펀치』『모든것들의세계』,연작소설『좋은곳에서만나요』가있다.

목차

보험과야쿠르트이유리
나의레즈비언뱀파이어친구아밀
다가가지못하는송경아
여름밤이주란
수리와안개김유진
소금의맛이주혜
늦여름매미晩蟬성해나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나의애인,혜원은오늘부로야쿠르트아줌마가되었다.”_이유리,〈보험과야쿠르트〉]

보험아줌마인‘나’와야쿠르트아줌마인‘혜원’은여름에는한강풀장에가고,가을에는도시락을싸서관악산에오르고,겨울에는목도리를두르고골목을걷고,봄에는냉이된장국을끓여먹으며평범하지만행복하게살아가는중년레즈비언커플이다.시트콤처럼슬프고도웃긴이들의사랑은끝까지무사할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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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우리는이제야쿠르트아줌마와보험아줌마커플.
둘다마흔이넘은이마당에아줌마라는단어에발끈하고싶지는않으나,우선직함앞에우리가파는물건의이름이아무렇지도않게들러붙은이모양새가멋지지않다.대개이런일을당하는직종은정해져있다.종사하는이는많지만그중대부분이하고싶어서하는일은아닌직업,어린이들의장래희망으로는절대언급되지않는그런직업.예를들어의사는절대‘병원아줌마’로,우주비행사는절대‘우주아줌마’로불리지않는다.

“가끔기영은자신에게미나같은친구가있다는것이믿기지않았다.”_아밀,〈나의레즈비언뱀파이어친구〉

‘미나’는‘기영’에게유일한레즈비언친구이자,유일한뱀파이어친구다.헤테로인‘기영’은가끔자신에게‘미나’같은친구가있다는것이믿기지않았지만,어쨌거나둘은20년동안이나친구였다.그러던어느날,남편에게거짓말을하고‘미나’의집에놀러온‘기영’에게‘미나’는런던으로이주하기로했다는고백을한다.둘의우정(?)은지켜질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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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정말친구야?”
미나가낮게속삭였다.기영의심장이빠르게뛰었다.
“아니면내가왜여기내발로오겠냐?”
미나가입꼬리만올려웃었다.
“그래?정말로?네가자꾸여기오는이유가그걸까?”
“무슨…….”
“너는이상한데서둔감해.그리고지독하게이기적이지.”
미나의입에서나온날선비난에기영은흠칫했다.미나가기영의턱을젖히더니목덜미에입을가져갔다.다른쪽팔은기영의허리를감았다.그다지힘이들어가지않은손길인데도기영은꼼짝할수없었다.
“잘생각해봐.너야말로나를이용하고있지는않은지.”

“내가너의섭이될게,너는내돔이되어줘.”_송경아,〈다가가지못하는〉

‘나’는두엄마와함께참석한퀴어퍼레이드에서삼태극과비슷한강렬한빨간색깃발을본다.곧그것이BDSM깃발이라는것과,깃발을든소녀가같은반의15번임정인이라는걸알게된다.그리고얼마뒤‘나’는‘임정인’과같이과외수업을받게되면서자신이정인이와비슷한사람이아닐까고민한다.‘나’와‘정인'이는둘만의세계를완성할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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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아이는쉬는시간에나한테와서그러더라.BDSM은아무나할수있으니까성정체성이아니래.난‘아무나’에대해서는몰라.나에대해서만알아.그리고나는여자를사랑하지만,그냥여자를사랑할수는없어.내사람이무릎을꿇고,내앞에항복하고,내게힘을넘겨주고내가부드럽게쓰다듬는것이상의강한자극을내게서바랐으면좋겠어.난내게그렇게해줄수있는단하나의사람을찾을테야.너희들눈에아무리내가이상해보여도,이건양보할수없는거야.이게성정체성이아니라면난성정체성이뭔지몰라.”
바로그순간,나는목마르게정인이의‘단하나의사람’이되고싶어졌다.

“우리건강하게오래살아요.”_이주란,〈여름밤〉

이른열대야가계속되던어느여름밤,‘은영씨’가조용히사라진다.‘나’는놀라지않는다.조만간좀떠나있어야할것같다고‘은영씨’가봄부터말했기때문이다.‘나’가은영을기다리며퀴어친구들과의우정어린일상을보내는사이해가바뀐다.친구석구씨어머니의백세잔치를다녀오던길에,‘나’는집에불이켜져있는걸본다.‘은영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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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창밖을바라보며소시지와파를썰었다.칼질을하는실력이는후에는또너무빨리썰지말라며손조심을하라는얘길들었다.은영씨,어쩌라는거예요.말하면은영씨는제가왜이러는걸까요,하면서멋쩍은표정을짓곤했다.역시깜찍하다……라는생각을하곤했고귀엽고깜찍한것엔도무지당해낼재간이없었다.(중략)나는은영씨와둘이원룸에서살던시절을떠올렸다.방한칸에빨래를말리는날에는텔레비전을못봤다.가려질수밖에,없었고아주작은테이블두개를반대로두고각자일을하곤했고식사시간이되면노트북을바닥에내려두고테이블을붙여같은음식을먹었다.오랜만에들으니좋다,하면서설거지를하고물을두잔마셨다.짜게먹으면건강에좋지않다고요.우리건강하게오래살아요.오래기다려왔으므로앞으로는건강하게오래살자고,은영씨가있었다면그렇게말했을거라고생각하면서.나는전보다자주휴대폰을들여다보게되었지만기다리는연락은없었다.

“정원은구경만해.이정원은내가알아서할테니까.”_김유진,〈수리와안개〉

‘수리’는‘나’의옛남자친구의딸로,여름방학을맞아놀러왔다가안개때문에도시가봉쇄되는바람에그대로함께살게된다.일주일에한번배급받는식량과생필품을아껴쓰며지내던어느날,아파트정원에비닐하우스를만든다는소식이들려온다.‘수리’와‘나’는이재난속에서소중한것들을지키며살아갈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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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가시작된이후,어쩌면아파트가세워진이후이렇게많은주민들이정원에모이는것은처음있는일같았다.수리는이렇게많은사람들이모였다는사실만으로도조금흥분한듯보였다.예전으로돌아간것같아.고개를숙여귓가에속삭이는수리의목소리끝이가늘게떨렸다.(중략)멀찍이있던한남자가도시는정치적인이유로봉쇄된것일뿐안개는존재하지않는다고말했다.그러니버티는것이중요하다고,봉쇄는언젠가는풀리게되어있다고,역사적으로도그렇다고했다.그럼강을뒤덮고있는저것은무엇이지?매일조금씩진군하며우리를위협하는저것이낯선무언가가아니라우리가알던바로그안개라면,우리는지금보다더두려움에떨어야하는것이아닐까,나는잠시생각했다.이김에고사한나무도모두베어버려야한다는사람들과알수없는이유로눈물을닦는노인들,이모든소란과무관하게벤치에앉아볕을쬐며환담을나누는입주민들,그런사람들주위를뛰어다니는아이들을천천히둘러보던수리가조용히삽을들고가장가까운땅을일구기시작했다.나는그런수리를뒤쫓아가목장갑을건네주었다.정원은구경만해.이정원은내가알아서할테니까.말장난을하며한쪽입꼬리를올려보이는수리를바라보며말했다.언제이렇게자랐지?수리가메마른땅에삽을박아넣으며대답했다.아직더클수있어.

“신들의언덕에서만나요.”_이주혜,〈소금의맛〉

어느날‘나’는아주오랜만에‘너’의메일한통을받는다.세번쯤읽었을때비로소그메일이영화〈캐롤〉의원작소설《소금의값》의도입부를번역한것이라는걸깨닫는다.그날부터‘나’는1년넘게‘너’와메일을주고받는다.서로다른언어로이어지는번역문에서테레즈는사랑에빠지고캐롤은고통받는다.마침내번역이모두끝난다.둘은처음그랬듯이다시만날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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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에서보낸일주일동안우리는연인이었다.너의도시에서도나의도시에서도할수없었던일이그도시에서는가능했다.(중략)걸핏하면서로의뺨을어루만졌다.로프웨이를타고하코다테산에올라가야경을보았다.불꽃놀이가펼쳐졌던날에는저멀리검은물위로주황색불꽃이밤의태양처럼쏘아올려질때마다입을맞추었다.그런우리를이상한시선으로흘끔거린사람들이있었는지모르지만,우리는오직상대방만보느라다른시선은알아볼수없었다.신들의언덕아래에서우리는인간끼리맘껏사랑했다.

“우리에겐다른결말이펼쳐질거야.”_성해나,〈늦여름매미晩蟬〉

‘정미’는어머니가운영하던명동의레즈비언업소였던로즈다방에서‘영휘’를처음만난다.‘정미’가결혼을해아이를낳고,‘영휘’가건설노동일을하며전국을도는근10년이나둘은만나지못한다.그러던1990년의어느날,로즈다방으로‘영휘’가다시찾아온다.몇십여년을외면해온둘의사랑은마침내이루어질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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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사랑을나누는두소녀가정미의머릿속에그려졌다.주위를의식하지않은채서로의몸을끌어안고밀어를속삭이는두소녀가.다른결말을기다리는두소녀가.달콤한침이입안가득고였다.
내가가장좋아하는시예요.
의뭉이나냉소가섞이지않은맑은얼굴로그녀는정미를향해웃어보였다.정미의심장이빠르게뛰었다.
(중략)
또래남자에게선한번도느껴보지못했던긴장감이나열띤흥분,기분좋은고양감이영휘와함께있을때는어렴풋이느껴졌다.어머니의눈총때문에원활히대화를나눌수없었지만,짧은말한마디에도마음을동하는상대가있다는것이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