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 (지하련 작품집 | 양장본 Hardcover)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 (지하련 작품집 | 양장본 Hardcover)

$16.80
Description
20세기 여성문학의 독보적 존재
지하련이 펼치는 퀴어의 또 다른 지평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1940년 지하련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문장이다. 이 편지는 2014년 다수의 언론에서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애편지로 소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편지가 “남자가 여자한테 보낸 연서"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착시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시 지하련과 최정희가 나누었던 감정의 실체를 오롯이 파악하지 못하게 가록막는 원인이 이성애규범적 독해의 관습이라면 이러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지하련의 소설을 ‘다시’ 읽을 때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앎에 도달할 수 있을까.
_옮긴이의 글 중에서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에서 지하련 작품집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가 출간되었다. 지하련 작가는 1940~1947년의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심리묘사로 당대 촉망받는 작가였으며 뛰어난 역량이 뒤늦게 다시 조명되고 있는 작가다. 현재 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의 흐름 안에서 지하련을 다시 읽기 위한 시도가 여럿 있었으나,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가 독자에게 보여주는 시각은 다르다. 우리가 지금껏 지나쳤던 지하련의 소설 속 ‘퀴어성’을 발견하고 탐독할 수 있도록 다섯 작품을 선별해 실은 까닭이다.

작품집에는 지하련 작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지하련 작가가 최정희 작가에게 보낸 육필 편지와 박서련 작가의 추천의 글 미니픽션 〈욱에게〉도 함께 수록되었다. 지하련에게 작가되기를 처음으로 청했던 최정희가 보낸 답신의 형태로 쓰인 〈욱에게〉는 이들의 감추어진 욕망과 외로움, 불행과 행복을 한껏 펼쳐낸다. 〈욱에게〉는 실제 최정희가 지하련을 애칭으로 불렀던 ‘욱’이라는 이름을 가져와 작품집을 읽는 남다른 즐거움을 더한다.

당대의 저명한 작가 임화의 아내라는 스포트라이트와 그늘을 동시에 견뎌야 했던 지하련의 작품에서 시대적 불화에 대응하는 여성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서 결코 감춰지지 않는 퀴어성은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묘사와 관계 안에서 드러나며 지하련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또 다른 글쓰기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소설가 박서련은 “이 작품들을 지금까지 퀴어 문학으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라고도 전했다.

지하련의 소설은 1940년대에 쓰여 지금의 독자들이 읽기에 다소 어려웠으나, 이번 작품집에서 현대어로 번역한 덕분에 매끄러운 독해가 가능해졌다. 역자 백종륜은 지하련 소설이 동시대와 호흡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퀴어한 삶의 방식을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을 다섯 편을 추리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사어와 오랜 표현들을 세심히 살폈다. 작가의 문체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지하련 작품집으로 유일하다. 젠더를 탐색하는 데서 나아가 퀴어의 세계로까지 확장해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지하련의 소설을 바라볼 때 그의 소설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특별해진다.
저자

지하련

1912년경남거창에서태어나마산에서자랐다.도쿄쇼와고녀와도쿄여자경제전문학교에서수학한지하련은일본유학시절부터사회주의여성해방단체에서활동한혁명적지식인이었다.1936년사회주의시인이자평론가인임화와결혼한후이현욱이라는이름으로문예지에산문을발표하기도했던지하련은1940년『문장』에소설「결별」을발표하며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인간의심리를섬세한필치로묘파하는지하련의문학활동은절친한동무이자퀴어한감정을나누었던상대인작가최정희의독려에힘입은바가컸다.1946년발표한「도정」으로문단의큰주목을받았지만1947년임화를따라월북한뒤지하련의삶이어떠했는지에대해서는알려진바가거의없다.1953년임화가숙청된후1960년평북회천의한교화소에서병사했다는설이전해질따름이다.지하련의월북이후인1948년에출간된『도정』은그의유일한작품집으로남아있다.

목차

육필편지-지하련이최정희에게·7
추천의글-미니픽션〈욱에게〉박서련·15

결별·27
가을·67
산길·99
종매(從妹):지루한날의이야기·127
양(羊)·197

옮긴이의글-야릇하고쓸쓸한세계백종륜·229

출판사 서평

지하련소설이라는문학적암호

대중에지하련소설이다시관심받게된데에는바로작가최정희에게보낸서신의영향이크다.애틋한감정이묻어나는편지의발신인이지하련이고수신인이최정희였다는사실은지금껏취해온지하련소설의독법을돌아보는계기를마련해준다.실제로최정희의독려로소설을쓰기시작한지하련이편지에서“남은세월을정희야너를위해네가다시오기위해저밤하늘의별을바라보듯잠잠이살아가련다”라고서술한바,우정과는다른퀴어한감정의교류가있었으리라짐작된다.
이는작품집에실린다섯편의작품「결별」「가을」「산길」「종매」「양」을퀴어의시선으로다시바라보게되는이유이기도하다.이소설들에서는모두부부와신여성,남매와지식인남성이라는삼각형의인물구도가그려지는데,그동안이를남녀간의관계로읽었다면『이따금난네가몰라져서쓸쓸탄다』에서는퀴어성을열어둔새로운독법으로지하련소설의암호같은관계를풀어나간다.

<결별>
“학교를마치던해에정희와도망갈약속을어겼던일,별로맘이내키지도않는것을어머니가몇번타이른다고그냥시집갈궁리를하던일,생각하면아무리제가한일이래도모두지랄같다.”

정희의혼인축하연에초대된형예가겪는마음의변화를그린다.여학교시절함께도망할것을약속했던정희와오랜만에다정하지만어쩐지점점마음이편치않는시간을보낸다.집으로돌아온아내의이야기에무시로일관하는남편의모습에형예는외로움과모욕을느낀다.비로소지난날과결별할때가왔음을느끼며,자신의정체성을자각해가는모습이소설전반에그려진다.

<가을>
“쓸쓸하니말이죠…….사랑하기만하면백년천년보지않아도된다는건거짓말이었어요.”

주인공석재가아픈아내를떠나보낸뒤,아내와각별했던친구정예를다시만나게되는이야기다.아내가살아있을때에도정예와얽히는일이편하지않았던석재는죽은아내소식을듣고찾아온정예의눈물앞에서‘단지벗을잃은슬픔만이’아님을느낀다.

<산길>
“연희의뒷모양이눈앞에떠오른다.
역시총명하고,아름다웠다.누구보다성실하고정직했다.”

남편이자신의친구연희와연애를했다는사실을알게된순재가연희로부터만나자는편지를받고약속장소로나간다.사랑앞에서자신의감정에솔직했던연희와,한갓실수이니용서하면될일이아니냐는남편앞에서오히려예쁜연희의마음을더헤아리게되는순재의내면을그린다.

<종매>
“이젠형도옆에계시고,또열도차차좋아지고하니까,어떻게든꼭낫게하겠습니다”
석재역시조금전철재의웃는얼굴에서와같은이상한것을마음으로느끼며“그래,얼른낫게합시다”하고말을받으면서,일변좀더다정한말이있을것도같아서잠깐머뭇거리고있는참인데,별안간어색하였다.그래서별생각도없이,그저얼결에옆에놓인철재의손을잡아보았다.

석희가사촌여동생정원의부탁으로몸이아픈청년철재를간호하게된다.사찰에서함께기거하게된이들틈에석희의절친한친구태식이방문하게되고,철재를의식한듯태식과마냥편하지만은않은석희의모습에서묘한기류가생긴다.

<양>
‘내가뭐하러이것을샀을까?
사천육백평이나되는울창한삼림을아무짝에도소용이없이그저좋아서샀다는것은말이안되고,
설사말이된대도이건결코그리떳떳지못한이유임에틀림이없다.
‘왜이렇게모든것이도무지떳떳지가못한것일까?’그는못내서글픈생각이들기도한다.

성재는정래와함께벽지산골에서짐승과화초를함께가꾸며살고있다.어느날성재가가족의성화에못이겨선을보고집으로돌아온날,정래의여동생정인이찾아온다.정인의혼인이야기를나누던정래와성재는그동안자신을괴롭히는고독이란괴물이서로에대한감정을억누르던마음이었음을깨닫는다.

정체성을찾아나선이들의자기서사
관습에서벗어난‘지하련다시읽기’

남성작가중심의연구관행에서벗어나여성작가들에게도주목하게되면서지하련의작품들이다시빛을보게되었다.그의살아있는내면서사는페미니즘과심리소설등의측면에서남녀의심리를감각적이고섬세하게추적한다는평을받아왔다.그런데여기서더나아가『이따금난네가몰라져서쓸쓸탄다』는여성문학의프레임을벗고새로운앎을향한즐거운탐색을펼치려한다.
지하련이사회주의자오빠들의영향을받아자신역시같은이념을지향했던까닭에「종매」와「양」을비롯한몇몇작품은사회주의이념과제국주의사이에좌절된정체성들을그려낸소설로읽혀왔다.반면「결별」과「가을」,「산길」은근대신여성의여성성변화를보여주는작품으로구분되어왔으며,그중에서도「결별」은최정희소설「인맥」의소재였던남편의외도를지하련이여성주체적관점으로바꾸어서술한것으로알려져있다.
하지만이들다섯작품에서공통적으로볼수있는동성간의미묘한감정을놓치지않는다면,전혀색다른‘다시읽기’를경험하게된다.“오직이성애만을자연스러운것으로규정하는,그리하여모든형태의낭만적감정을단하나이성애적인것으로귀속하고환원하는”오류에서벗어나본다면,지하련소설은남녀모두가자신의젠더정체성을파악해나가는자기서사로우리를이끈다.이로써지하련소설이담고있는퀴어성이여성문학에서한걸음더나아가젠더서사를읽고쓰는데에새로운지표가되어줄수있으리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