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황명자 시집)

당분간 (황명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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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황명자 시인의 이번 시집은 종전의 시집들보다 한층 더 진솔하고 담백해졌다. 진솔해도 담백하기가 쉬운 게 아닌데, 시인은 그 담백에서 오히려 마음의 활달과 깊이를 배어나게 하는 일종의 ‘아파테이아’에 다다른 듯 보인다. 그건 삶이 이슥해져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고 온몸으로 겪게 된 생활의 목록들, 가령 석양증후군을 맞닥뜨려 받아들이게 되고, 부모를 요양병원으로 무덤으로 떠나보내는 황망과 슬픔을 오롯이 통과해내며, 몹쓸 증후군들이 몸을 마구 괴롭히는 밤들의 블랙 아이스, 같은 것들을 질료와 거름 삼아 연소하고 발효된 것이어서 처연하지만 아름답다. 그 범박하지만 소소한 빛깔을 발하는 존재의 세목들은 거듭된 산책길에서 만나는 방치된 연못, 사람 대신 풀을 앉힌 나무 벤치, 어머니 무덤가 쑥, 악착보살, 동냥젖, 화본역 뒷길의 들꽃, 낡은 도심의 미로 속 월세방, 등을 두루 거치면서, 이즈막엔 생면부지 삶들과 공생 공존하는 무명(無名) 존재들의 하심(下心)에까지 가 닿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바꿔놓은 사회적 거리두기 풍조로 인해 한껏 위축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접촉과 희미해지고 있는 개인의 존속감 대신, 한층 더 되살아난 ‘사회적 존재감’의 회복을 통해 오히려 각자도생의 길을 벗어나 공생 공존의 ‘사회적인 나날’이 살아 있는 새 지평을 펼쳐보자는, 시인 특유의 힘 있는 역설이 돋보인다._엄원태(시인)

황명자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인식을 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생성에서 소멸까지 이어지는 생명체들의 눈물겨운 더불어 살기는 필연적으로 물의 순환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지평으로 확장된다.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순수한 물의 맛과 빛깔과 소리와 감촉과 대자연의 투명한 향기가 일렁이는 까닭이다. 물의 마음을 내재한 그의 시는 앎에서 모름을, 완성에서 미완성을, 슬픔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삶의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는 흐르는 물의 성질을 지녀서 어떤 삶의 깊은 연못으로 흘러든다. 끝내는 눈물 한 방울로 응축된다. 그 안에서 그는 그만의 시적 진경을 펼쳐 보인다. 그의 시가 세상과 공생하는 방식이다._안상학(시인)
저자

황명자

경북영양에서태어나1989년『문학정신』으로등단하였다.시집『귀단지』,『절대고수』,『자줏빛얼굴한쪽』,『아버지내몸들락거리시네』.산문집『마지막배웅』이있다.대구시인협회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05

제1부

미안했다·13
허물어진아버지·14
벚꽃보러갔는데·15
석양증후군·16
부록처럼·18
사랑은눈물의씨앗·19
우물·20
목어·22
불과한놀이·24
슈퍼문·26
백일홍과나비·28
첫눈·29
고질병·30
투명인간이고싶을때가있다·32

제2부

봄동백·37
벚꽃장례식·38
두근거리는연못·40
가문의역사·42
가남지입구·44
연못주변족속들·46
면상희이(面相喜怡)·47
밤의연못·48
정오의연못·50
답신·51
방치된연못·52
숨은연못·54
반곡지·56
연못가,카페·57
고요한연못·58

제3부

봄바람·61
어떤꽃·62
같이가자·64
삼일장(葬)·66
악착보살이야기·68
이유·70
목각기러기·71
발원지·72
산소·74
이름값·76
해기둥이강물에뿌리내리듯·78
늙은몸·79
저승길이그래좋은지·80
나무벤치·82
원하던그시간·84

제4부

명약·89
공생공존·90
분명·92
거짓말·93
화본역뒷길·94
참회·95
즐거운상상·96
식상한주문·98
희망사항·99
산책가잔말·100
가는봄·102
위로란그런것·104
뒷배·105
유효기간·106
블랙아이스처럼·107

해설│박진희·109

출판사 서평

생성에서소멸까지생명체들의눈물겨운더불어살기


황명자시인의다섯번째시집『당분간』이‘詩와에세이’에서출간되었다.
황명자시편들은대상에대한연민과화해,에로티시즘,가족,불교적색채가뚜렷하게드러나있다.그것은과거의시공간이나관념에얽매이지않고고립되어있지않으면서자유롭다.따라서그의시편들은시공간의경계를넘나들며‘지금여기’일상의구체적경험을통해사회적존재감을현실화한다.

아침에요양병원면회가서보니
두손발목이묶여있다
제발풀어달라고풀어만주면
천만원줄게요,간절한목소리가
병실밖까지울려온다장난스레
할매돈있나,
묻고는깔깔대는간병인따귀를갈기고싶은걸
겨우참고미운놈떡주듯잘봐달라
먹을거한보따리챙겨주곤
묶인손목발목얼른풀어주고
맘도풀어주려고
걱정마라내왔다,하니
니누꼬?
묻는데차마
엄마딸!
할수없어펑펑울었다딸이어떻게
엄마묶는걸보고만있냐고
죽어서도원망할거같았다
맘에바윗덩이안고살거같았다
집에가자,얼른집에가자,
도둑보쌈하듯데리고나왔더랬다

이래가실줄알았으면안그랬지
변명만가득한못된딸이라고
원망만큼봉분도시퍼렇게뜬눈처럼푸르다
-「산소」전문

황명자시인은생성에서소멸까지이어지는생명체들의눈물겨운더불어살기는필연적으로물의순환과궤를같이할수밖에없다는인식을확장한다.과거의기억에서멈춰있는엄마를받아들이게되고훗날부모를요양병원으로무덤으로떠나보내는황망과슬픔을오롯이견딘다.시인은세상에존재하는모든생명체들과함께살아가는것이삶이라는인식을시의출발점으로삼고있다.

숨이턱턱막힐때가있다어디숨었지?말들의거처가궁금하기도하고포기와단절감을동시에겪느라파김치가된몸을탓한다
건강이문제야,아프니까되는일이없잖아,
완성하려고할때마다몰려드는통증탓에미완성으로남는시편들,붙들고있어봤자머리만아파화분에물이나줘야겠다싶어물주기를검색하는데일조량과바람소통량에따라물주는시기가다르다는내용이눈에띈다그러고보니주기적으로꼬박꼬박물을먹은화분들은하나둘죽어나가고무관심에몸맡긴다육이는빳빳한몸을지탱하고있다
그렇구나,쓴다고다시가되는게아니듯이고통의순간들이흐르고흘러블랙아이스처럼복병으로숨었다가한편의시가완성되는거라믿어볼까
그렇게머리싸맬일은아니지
시도통증도내버려둬보는거야
-「블랙아이스」전문

몸을마구괴롭히는밤들의블랙아이스같은것들을이겨내며시로승화시킨다.진솔하고담백하다.진솔해도담백하기가쉬운게아닌데,시인은그담백에서오히려마음의활달과깊이를드러낸다그건삶이이슥해져서야비로소만나게되고온몸으로겪게된생활의목록들이처연하지만아름답다.
코로나팬데믹이바꿔놓은사회적거리두기풍조로인해한껏위축되고있는사람들사이의접촉과희미해지고있는개인의존속감대신,한층더되살아난‘사회적존재감’의회복을통해오히려각자도생의길을벗어나공생공존의‘사회적인나날’이살아있는새지평을펼쳐보자는,시인특유의힘있는역설은이번시집에서더욱농밀하게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