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시계

부부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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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자연 그대로의 성찰로 삶의 희망을 노래하다

김종관 시인의 첫 시집 『부부 시계』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 『시에』로 등단하고 펴낸 이번 시집에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과 일상에서 끌어올리는 의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새벽바람이 목포행 첫차에 올라타 하품을 한다 밤새 종이 봉지를 붙이던 가난처럼

밥 한술에 쉽게 뭉개지던 시절 풀칠을 한 봉지들은 쌀이 되어 돌아와도 형편은 여며지지 않았다 두레상의 빈자리는 뒤란 장독대에 쪼그려 앉아 사발에 출렁출렁 달을 말아 마셨다

큰 봉지 작은 봉지 그때 우린 무엇이든 담고 싶었다 얘들아, 잠이라도 실컷 담아라 어머니 잠은 달지 않아요 웃풍이 잠속으로 드나들어요

점방으로 달려간 봉지는 파래향이 묻은 부채과자와 붕어빵과 코 묻은 동전 몇 닢으로 배를 채웠지만 홀쭉한 봉지에 어머니는 무엇을 담고 있었을까

붕어빵 봉지가 따뜻하다 그때 어머니의 종이 봉지 속에서 우리는 쌀붕어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쌀붕어」 전문

시 속에는 또 하나의 생명이 공존해서 삶과 죽음은 시인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발에 밟힌 눈만 감으면 떠오른 얼굴, 시간과 장소와 공간을 통하여 김종관 시인은 ‘꼭 한 분’ 어머니의 영상을 절절하게 읊고 있다.
또한 “태초부터/부부는 맞지 않았다//남편은 아내 보고 맞추라 하고/아내는 남편에게 맞추라 한다//큰 바늘 작은 바늘이/똑딱똑딱 초침을 낳고 살다/늙은 시계가 된다”「부부 시계」는 것처럼 시인의 생활은 곧 시 작품과 함께 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 세계를 파고들면 영롱한 자기 마음의 구슬을 만지며 다툼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좋다는데 첫 시집의 진주를 아내의 하얀 목에 걸어주고 싶다고 고백한다.


봄비가 내리는 날//쌀을 씻어 압력솥에 붓고//가스 불에 올렸습니다//솥은 밑바닥이 뜨거워//떨리는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세상은 온통//압력을 가한 사람들뿐입니다//순한 보리쌀 같은 사람들은//그들의 밥입니다
-「압력밥솥」 전문

시인에게는 금강석 펜이 있다. 오관 작용에 의하여 직감의 조화에 의하여, 석벽도 철문도 역사도 밀고 뚫고 갈 수 있는 펜,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반항하기도 하고 투옥되기도 한다. 「시인의 산문」에서 말하듯 그는 시대의 반항이든, 사회의 반항이든, 사물의 반항이든, 인간과 인간의 반항이든 간에 시간성은 압력솥에서 부글부글 끓지만 결국은 따뜻한 밥이 되어간다. 이 공존은 인간 사회의 윤리적, 정신적, 형이상학적인 기존 질서에 대한 재현 재생을 의미한다. 시인은 반항의 원형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아름다운 미래의 형성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다.
저자

김종관

전남강진에서태어나서울신학대학교,동대학교육대,LifeUniversity,총회신학대학원,성결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였다.2018년『시에』로등단하였다.

목차

시인의말·05

제1부
봄화살표·13
봄의전원·14
외출에서돌아온나비·16
가을엽서·18
구겨진돌·19
감나무·20
글의가을이지다·21
돌에눌린꽃·22
나무의길·23
여름풍경·24
나무목수·25
새가물고온아침·26
무덤·28
네손·29
밑줄·30
청혼의방식·31
풀의힘·32

제2부
수학길·37
전동차가문제를푼다·38
백미러·40
압력밥솥·42
여자축구·43
미세먼지·44
선풍기·45
나의청진기·46
떨어져있는시간·47
문이열렸습니다·48
수세미·50
문어의유전자·51
제네시스·52
햇살빨랫줄·54
내가하고싶은것을만났다·55
보이지않는다리·56
손자·58
혼기를놓치다·60

제3부
실밥·63
부부시계·64
아내·65
아내의얼굴책·66
대나무아내·67
주전자와찻잔·68
컵걸이·69
곰국·70
만성중이염·72
두모습·73
퇴고·74
욕책·76
화해·77
기도빵·78
모이기를힘쓰라·80
송구영신·82
통일운동회·84

제4부
쌀붕어·87
물만두입·88
가난·89
작대기·90
막신·92
아버지는돼지였다·94
이혼·95
감기·96
피·98
송충이·99
알면서속았다·100
비닐봉지·102
산옷과죽은옷·103
둥근길·104
끈의공식·106
시의맛·108
퇴직역·110

시인의산문·111

출판사 서평

김종관시인의시전체를분별해보면몇가지특성을눈치챌수있다.평이한진술을통한쉽게읽혀지는시,자연을관조하며얻어진어휘의선택,전원적이고우주적인상상력,끊임없는삶의성찰등다양한대상에대한관조와비유가독자들의시선을잡아끈다.하지만시인의시에서가장지배적인표현방법은자연과조응하는화자의내면세계와의교감이라하겠다.「봄의전원」이라는시의발상은곧시인의반짝이는상상력과내통한다.겨우내움츠렸던식물들이봄이되면파릇파릇새순을피우는모습을보며시인은능청스럽게도‘전원’이란매개체를동원해“삽시간에점화된들판/초록의피가들끓”는다고인식한다.시인이눈에비치는봄은생성의기운을토해내는‘밝음’의시작이다.김종관시인의내면의소리는「퇴고」를통해낱낱이고백된다.「퇴고」는글을쓰는사람이면누구나겪어야할자신과의갈등을주제로다룬작품이다.시적대상을‘호랑이’로표현하고있는그의상상력에독자들은박수를보내고싶을터다.호랑이란동물은육식동물가운데가장용감하고사나운동물아니던가.시인자신이혈전을펼쳐야할만큼상대는강인하다는은유적표현이새삼신선하다.사납고용맹한호랑이가시라할때,시인이넘어야할고비는너무많다.특히시적표현이눈에띄는이미지는‘예민한호랑이’와‘지루한호랑이’이다.시인의호기심은발톱이날카로운호랑이를사실상겁내하지않는재치를보여준다.혼자즐기며호랑이와대적하는여유를부린다.호랑이의급소를펜으로찔러놓고“상처를입은것/호랑이일까나일까”하며해학적넋두리를쏟아놓기도한다.“불을켜서생각을읽어보”는그는진정한시인으로의발돋움에한치오차가없다.그러기에그의시가네모혹은세모꼴로찌그러져있어도앞으로나갈길은밝기만하다.
_이명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