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쇠증후군 (박원희 시집)

방아쇠증후군 (박원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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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현대문명의 폐허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시편들
박원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방아쇠증후군』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박원희 시인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 속에서 오히려 피폐해지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문명이 발전하고 각종 삶의 이기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이 편리해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폐허가 된다. 우리의 욕망은 더욱 커지고 욕망이 채워야 할 결핍은 더 늘어나고 그만큼 없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먹을수록 더 허기가 지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문명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런 허기가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폐허로 만든다. 하지만 박원희 시인은 이 폐허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빈 길에서 나를 생각한다/이미 없어져버린/시간의 흐름은/내가 안고 온 모든 과거/개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남아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이 지배하지 않는 빈 길//아무것도 없이 바람만 지나가는 언덕/시선이 머물다 갈 뿐/아무것도 가지지 못한/길에서 있을 뿐//빈 길에서/기다림은/시간 아니면/공간//말없이 바라보는/언덕을 넘어오는 바람/빈 길
-「빈 길」 전문
저자

박원희

충북청주에서태어나1995년『한민족문학』으로등단하였다.시집『나를떠나면그대가보인다』,『아버지의귀』,『몸짓』이있다.

목차

제1부
나는그놈이있는곳을안다·11
신의비밀·12
무궁화호열차를기다리며·14
나,겨울고양이·16
밤바다·17
배닿는항구·18
방아쇠증후군·20
송곳니가빠질무렵·22
손톱과발톱·23
우산을잃어버린날·24
언젠가,나는·26
새벽에·27
옷·30
퇴로·31
임원항에서·32
겸손·34
바람·35

제2부
슬픔의·39
역병·40
코끼리땃쥐의생활난(難)·41
문패없는집·44
명암지에앉아·45
망초·46
옷한벌·48
장모낙상하다·50
비1·51
겨울귀가·54
어부의딸·55
세심정,아버지의죽음·56
천태산은행나무·59
돼지·60
봄·61
초파일준비·62

제3부
시의문장·67
잊어달라고·68
로드킬·69
조용수·70
일상·71
뱀·72
태백역단상·74
부활·76
헌책방에서시집을보다·79
지동설을위하여·80
가을전어·82
가경천,누구에게는·83
이원규시집·84
민어(民魚)·86
신판선죽음에부쳐·87
비2·88
천동설·90

제4부
이름·95
거울속의망각·96
그림자·98
독거·100
말·101
실직·102
동지에내리는비·103
돌아가는길·104
고양이의새벽기도·106
폐허의꽃·108
하지가지나는계절·110
두렵다·112
빈길·114
중심(中心)·116
바라보다·118
둥지·119

해설·121
시인의말·135

출판사 서평

시인은자신이지금살고있는현실그리고자신이살아온과거의삶모두를텅빈“빈길”이라는이미지로표현하고있다.길에는아무것도없고바람만이그곳을채우고있다.그런데시인은왜자신이살아온길,지금자기앞에놓인길이“빈길”이라고느끼고있을까?그것은자신이진정바라는것이없기때문일것이다.우리는무엇인가를채우기위해일을하며돈을벌며무엇인가를만들며살고있다.그채우기위한무엇을흔히욕망이라고말한다.하지만이욕망은채워지지않는다.아무리뭔가를해서채우더라도항상뭔가더부족하다는결핍감을메꿀수없다.그리고이욕망이라는것도따지고보면내것이아니다.남들이또는사회가나에게강요하는욕망일뿐이다.시인은이모든가짜의욕망을지우고세상을보고있다.그럴때세상은시간과공간을기다림만이채우고있는“빈길”이된다.기다림은없는것을인식하는행위이다.결국,이“빈길”은없는것들이차지하는공간이다.시인을포함한우리모두는이채워지지않는욕망의빈공간,즉“빈길”위에서있다.

이름은생각나는데/성은기억이안나//성은기억나는데/이름이기억이안나//이름성모두가기억나는데/얼굴이//푸른것은풀이고/노란건모두애기똥풀이된//뉴런이뒤엉켜/나의미도콘드리아가유전을멈추기를/디엔에이가뭉쳐다니면서/퍼트리고싶은욕구/사랑해//나는울고있는데/웃고있네//사랑하고있는데/어느새증오하고//이름이기억이안나/성이얼굴이/나를가만히있게내버려둬//그런데/불투명하게바라보는/너는누구냐
-「거울속의망각」전문

시인은끊임없이자신의정체성을의심한다.성과이름과얼굴이따로놀고“울고있는데/웃고있”다.나를부정해서유전을멈추기를바라지만또한편으로나를퍼뜨리고싶은욕망이나를지배하고있다.자신이누구인지를모르는시인은결국“너는누구냐”고묻고있다.우리가보는것은거울속의나이다.내가누구인지사실은알수없고거울에비추어야만자신을볼수있다.이거울은도처에있다.거울은사회적요구가되어나를비추고타인의욕망이되어나를몰고간다.그러는과정에서나는나를잃고나마저도사라져거울속에비치는허상으로만나는존재한다.나를볼수록나를지키려할수록진정한내가사라져버리는아이러니를시인은확인하고있다.

이사를하면영혼은어이할까/집없이떠돌이로살다간/영혼은찾아올수있을까/한때는누군가의무남독녀로애지중지/커다란집에부러울것없이/살던영혼/이삿짐을싸면서/생각난다/아버지,어머니/산다면살고있다면/영혼이살고있다면/이사는어이하는것일까/찾아올수있을까/바람을일으키며가는길에서/문패도없는집
-「문패없는집」전문

시인은영혼마저찾아올수없이떠돌이로살고자이삿짐을싼다.“문패도없는집”은내가살고있으면서도내영토가아닌집이다.돌아가신아버지,어머니의“영혼이살고있다면”“찾아올수있을까”하고시인이걱정하는것은사실아무런영혼도머물수없는완전한노마드의삶을꿈꾸고있다는것을반증해주고있다.
박원희시인의시에서현실은폐허이고사막이다.하지만세상이없는것들만존재하는사막이라는인식은그안에없는것들을소망하고꿈꾸는희망을내포하고있다.없다는것은있어야할것의결핍을말하는것이고그것을인식하는순간우리는그것의존재를더욱갈망하게된다.이갈망이우리를기대와희망으로이끈다.

나를포기한밤이지나야새벽은온다//폐플라스틱사이에서/폐플라스틱을가르며/물고기의배를가르면배속가득담고있었던/폐플라스틱//할머니,할아버지가/하나둘고물상으로들어와꿈을꾼다/새것이되는꿈//(중략)//폐지를잔뜩안고/폐플라스틱처럼구부정한삶이/들어와//폐플라스틱처럼/꿈꾼다/허망하지않은꿈/새롭게태어나는꿈/한번은뒤집혀야새롭게일어나는꿈/맞고,부서지고,분해되고/한번은죽어야다시사는꿈/나눠지고,흩어지고/다시뭉쳐일어서는꿈//어디선가다시/분해되고모여/잘게부셔져/뜨거운곳에서다시부활하는몸//다시/무엇이되는
-「부활」부분

시인은“나를포기한밤이지나야새벽은온다”고첫연에서부터분명하게주제를말하고있다.하지만이주제가중요한것이아니라우리가이시를통해생각해봐야할것은이주제에도달하는시인의성찰과정이다.폐플라스틱이라는사물을통해시인은이성찰을보여준다.폐지를줍는할아버지,할머니처럼우리모두는늙어간다.그런데고물처럼이렇게늙어가는것이결코죽음과소멸로가는과정이아니라새로운꿈을꾸는것이라고시인은생각한다.폐플라스틱이잘게“부서지고,분해되고”결국“다시부활하는몸”이되듯이우리가겪게될우리의늙은몸도우리를분해하여새로운희망으로전환시키는과정의일부라고시인은생각하고있다.결국,늙어죽어가는것은그냥소멸하는것이아니라“다시뭉쳐일어서는꿈”을꾸는행위인것이다.폐허가생명으로,없음이있음을위한희망의힘으로전화하는마술을경험한다.이것이바로시의힘이고,박원희시인의시적성과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