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별서 (지리산문예학교 4인방 시집)

반아별서 (지리산문예학교 4인방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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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리산 ‘반아별서’에서 ‘북두칠성’까지 달려가는 삶의 시편들



지리산문예학교 4인방의 시집 『반아별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서 나이와 성별 등에 상관없이 시를 통해 만나고 소통하던 4인방이 의기투합하여 시를 묶은 것이다. 그동안 4인방 곁에서 지켜봐온 박남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반벙어리처럼 시문을 갈고 닦아 퇴고, 조탁한 반아자들의 시집을 펼치면 거기 네 사람이 걸어온 시향의 길이 강을 따라 흐”른다고 한다. 또 이원규 시인은 “삶이 앞서가고 시가 그 뒤를 발자국처럼 따라온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이남희-안순자-서만임-구칠효, 지리산 4인방 시인은 ‘시 쓰기’를 넘어 ‘시를 살아온 것’이니 더 기쁘고, 소중하고, 눈물겹다”며 4인방 곁에서 함께해온 소회를 적고 있다.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이남희의 시는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유학을 좋아하시던 아버님 품성”과 “이타행이 절로 몸에 밴 어머님의 심성”이 만나서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난 자양분”(「이상희」)으로 이루어졌으니 귀족적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같이 공부하는 안순자 시인이 이남희 시인을 두고 “로얄 알버트 커피잔”(안순자, 「지리산은 보름달이었다」) 같다고 했을까.

내 이름은 두 개였다/상희로 불리는 날과 남희로 불리는 날이 있었다/이상희는 이남희를 부르고/이남희는 이상희를 불렀다//먼 동이 어둠을 헤치며 온누리 밝힐 때/은하계 떠돌던 불씨 하나 새 생명 꿈꾸며/진성 이씨 아버지, 고령 신씨 어머니 태에 불을 지폈다/이슬에 맺힌 풀들은 새로운 성장을 하고/꽃들은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며/태중 생명은 사랑의 힘으로 사대육신을 키웠다//유학을 좋아하시던 아버님 품성/이타행이 절로 몸에 밴 어머님의 심성/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난 자양분//삶이란 먹을수록 입에 달라붙는 당기는 매운맛,/맛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 망설임의 쓴맛,/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체험하는 두근두근 설레는 단맛,/수없이 만나는 교차점에 경륜과 지혜를 얻었다//기쁨과 슬픔 다 지나간 시간/어제는 삶 속에 꿈틀대는 오늘로 이어지고/오지 않은 내일은 희망의 비상구/아직 남은 나의 여정은 옹이 박힌 매화나무
-「이상희」 전문

안순자의 시는 무한긍정의 힘으로 당당하다. 그의 시는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만큼 매사에 거리낌 없이 당당해 보인다. 그런데 그 당당함이 오히려 눈물겹다. 비단 그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여서만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깊고 어둡고 무섭고 고통스러웠을 세월은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나이 든 지금이 더 좋다”고, “조용히 미소”짓고 싶다고 말할 때 읽는 사람은 울컥하는 가슴과 시큰하는 코끝 때문에 잠시 시선을 먼 곳으로 보내야 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땅을 밟고 같은 하늘을 보며/나란히 걷고 싶다//맨발로 걸으며, 지구를 느끼며/말간 눈물 속에 비친/내 그림자 보며 걷고 싶다//짝 맞지 않는 신발 던져 버리고/푸른 신호등 켜지는 황혼길/성큼성큼 걸어보고 싶다//내 자식 등에 업고, 고생했다 아가야/마음고생 시켜 미안했다 아가야/조아리며 걷고 싶다//단 한 번도 내 눈을 바로 보지 못하던/늙으신 엄마를 업고/고달픈 노랫가락 늘어지던 들녘을/한없이 한없이 걷고 싶다//흰 속살 보이도록 짧은 미니스커트 입고/뭇 남자의 시선 받으며 당당하게 걷고 싶다
-「걷고 싶다」 전문

서만임의 시는 따뜻하고 넉넉하고 푸짐하다. 시인의 천성이 마을 부녀회장처럼 오지랖이 넓고, 마음 씀씀이가 살뜰하다. 마치 작은 시골초등학교 총동창회 총무 같다. 그의 시는 이런 시인의 천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서만임의 시는 곧 서만임이다. 그의 시를 읽을 때에 오는 감동과 재미는 구수한 입담과 더불어 진정성에서 기인하는 박진감을 준다.

비너스 대리점 가게 문을 열자/공중그네를 타고 있는 거미/아침 거미는 재수가 있다는데/은근히 하루 매출을 점쳐 본다//여름 신상품 매시 쿨 브라 앞에서/만지작 만지작 입질만 하더니/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점점 멀어지고/허걱, 거미 똥이다/이놈의 거미를 화악 그냥!//밤새 켜둔 할로겐 등 아래 하루살이들/거미의 손놀림이 분주하다/저 거미,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 있을지 모른다/보증 잘 서주는 마음씨 좋은 남편과 늙은 노모/먹성 좋은 아이들 두셋은 있을지도//종이 깍대기 위에 거미를 올려/슬그머니 문밖으로 내보낸다
-「거미」 전문

구칠효 시인의 시를 읽으며 확인한다. 그의 시는 낫낫하고 싹싹하다. 재불재불 떠드는 사내아이처럼 밉상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체로 말이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의 시답게 한다.

어머니, 당신만 믿고 나도 주체적으로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봤습니다 별 하나에 윤동주와 별 하나에 김환기와 별 하나에 고흐와 별 하나에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이름을 불러본들 여전히 역사 교과서에 한 줄 나오지 않는 국내 인구 262순위 창원구씨 부사공파 24대 손일 뿐! 지어내 붙여줄 법도 한 태몽 하나 없이 여섯 번의 유경험 산모가 고무신 점방 열려고 갑바 걷다가 쑥 세상에 나온 나, 나를 찾는 별과 눈빛을 맞추려 고개를 들어도 북반구의 밤하늘은 전부 자기 임자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황후장상의 씨도 민란의 선봉자도 아닌 건빵 봉지 별사탕의 배경에 붙다가 만 설탕가루 같은 미물인가 천억 개 은하 안의 별들 속 성간의 티끌 속조차에도 없을 것 같은 나의 존재감, 인정이 두려워 찾아 헤맨 피란민의 눈빛을 거둔다 진정 내 별은 없는가!
-「별과 설탕가루」 부분

일단 초창기 ‘지리산학교’ 시절부터 지금의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시를 놓쳤다 붙잡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시라는 허망한 밧줄로 스스로를 묶으려고 안간힘을 쓴 개개인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눈물겹다. 그리고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0에 이르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다그쳐가며 꺼져드는 시의 불씨를 되살리는 이들의 시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건강함을 본다. 그들이 시를 좇는 이유가, ‘시를 쓰면서 만난 오랜 인연으로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이남희), ‘시를 쓰면 막다른 길이 끝나고 새로운 길이 보여서’(안순자), ‘인터넷에 댓글 한번 폼나게 달고 싶어서’(서만임), ‘인생의 고갯길마다 시가 함께 넘어주어서’(구칠효)라고 한다. 물론 핑계일 것이다. 그냥 시가 좋아서일 것이다.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가. 시라는 허망한 밧줄로 서로를 묶어서 기차놀이하듯이 칙칙폭폭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놀다보니, ‘은하철도999’처럼 어느새 ‘반아별서’에서 ‘북두칠성’까지 달려온 것이리라. 그래, 그러면 됐다. 시로써 한세상 잘 놀면 되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저자

이남희

서울출생.홍익대학교미술대학졸업.이화여대꽃예술전문과정수료.WRAPPING과압화전시회(서울인터컨티넨탈,광양금호전시장).순천시운동산아래전원생활12년차.

목차

이남희
도돌이표사랑

봄·11
매화석·12
봄치마·13
반아별서(半啞別墅)·14
비금도미루나무·16
사과론·18
어머니밥상·20
운동산산책길·22
지구는여전히돌고있네·24
이상희·26
종이별·28
프리즘으로바라본인생·30
겸상·32
무풍(巫風)·34
도돌이표사랑·36
2548·37
비꽃·38
청매·39

안순자
철자도모르면서시를쓴다고

지리산은보름달이었다·43
두바퀴는멈추지않았다·44
저혼자피어도꽃은꽃이다·45
나이든지금이더좋다고·46
자랑질도급이있다·48
너는아프니나는기쁘다·49
걷고싶다·50
마네킹과의이별·52
울엄마·54
요양원울엄마·55
내그림자·56
속비운대나무처럼·57
당신의아픈손가락·58
급함과느긋함의동행·60
철자도모르면서시를쓴다고·62
인생은마라톤이다·64
손님떠난나룻배·65
바람의언덕·66

서만임
굳은살이더아프다

동창회·69
MADEINKOREA·72
가위마을·74
거미·76
굳은살이더아프다·78
날잊지말아요·80
똘감나무·82
마지막제복·84
매화예찬·86
서재·88
아이고,얄궂어라·90
어느무면허의사의처방전·92
언택트생일·94
유일무이·96
주진순여사의뽕브라·98
치매5등급의장미·100
퀼트장지갑·102
킹콩이라불리는사내·104


구칠효
윤활(潤滑),조금은섭섭하게

양변기·109
속을비운둥구나무·110
신빈교행(貧交行)·112
별과설탕가루·114
일상·117
오월·118
나물처럼·120
마이산탑사·122
함수인생·124
볼펜스프링·126
블랙아웃(BlackOut)·128
스티브잡스·130
벤처의외인구단·132
윤활(潤滑),조금은섭섭하게·134
흔적의멋·136
삼재부적·138
유행가한곡·140
진실과사실사이·143
해설│김남호·147

출판사 서평

어느날수녀님과함께찾아온사람은마음이다죽어버렸는데시를배우고싶다고했다.또누구는아무글이든지글한편써오라고했더니울그락불그락고개를푹숙이며인터넷에댓글한번폼나게달아보려고왔는데그런것못하겠다는첫만남이불쑥떠오른다.벌써십여년이훌쩍흘러갔다.그동안여태껏시를놓지않고있었구나.그시의향기가가을처럼풍요롭고서늘해졌구나.인생의또다른동반자,시를만나기위해연애처럼두근거리고설레는시의길에들어선네사람이모여펴내는4인시집『반아별서』,반벙어리처럼시문을갈고닦아퇴고,조탁한반아자들의시집을펼치면거기네사람이걸어온시향의길이강을따라흐르다굽이굽이사유깊은산색의산길로가닿아있음을만나게되리라._박남준(시인)

가히‘지리산4인방시집’이다.10여년이넘는세월동안지리산과시의이름으로만났으니그동안첫인연의지리산학교는지리산문화예술학교등으로분화발전했으며,누군가는떠나고다시뭉치기도했다.마침내이렇게오붓한동무,나이와성별등의차이를극복한한솥밥이되었다.시를앞세워따라가는이는자주불행하고,시와어깨동무하는이는행복하겠지만,삶이앞서가고시가그뒤를발자국처럼따라온다면이보다더좋을수는없으리라.이남희-안순자-서만임-구칠효,지리산4인방시인은‘시쓰기’를넘어‘시를살아온것’이니더기쁘고,소중하고,눈물겹다._이원규(시인)

그냥시가좋아서일것이다.좋아하는데무슨이유가꼭있어야하는가.시라는허망한밧줄로서로를묶어서기차놀이하듯이칙칙폭폭발바닥에굳은살이박이도록놀다보니,‘은하철도999’처럼어느새‘반아별서’에서‘북두칠성’까지달려온것이리라.그래,그러면됐다.시로써한세상잘놀면되지더이상무엇이필요하겠는가!
_김남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