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숨을 곳이 없다 (장세현 시집)

부끄럽지만 숨을 곳이 없다 (장세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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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여기와 저기, 수면 위에 새긴 무늬 같은 시편들
장세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부끄럽지만 숨을 곳이 없다』가 1991년 첫 시집 출간 이후 만 32년 만의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고백하듯 “시보다 중한 게 밥이고 목숨이었”기에 시는 “나중의 일이 되”었다. 따라서 비록 삶은 ‘오선지 위에서 추는 춤처럼 아슬아슬했’지만 시편들은 정제되고 갈무리되어 여기와 저기, 수면 위에 새긴 무늬같이 애잔하면서도 깊다.
저자

장세현

충북영동에서태어나1991년시집『거리에서부르는사랑노래』로등단하였다.창작그림책『엉터리집배원』,『호랑이를죽이는방법』,『엄마도처음』등이있다.

목차

제1부
불멍·11
11과12사이·12
초승달·14
구렁이불알맛·16
오줌이울었다·18
호호웃음깔깔웃음·20
까마귀네아저씨·22
아버지의이름표·24
모나리자·26
물의마음·28
그여자의거식증·29
독·30
나를그린나·33
연애불량자·34
그날골목에·36

제2부
1회용·41
비오는밤의크로키·42
맑은물에도물때가낀다·43
심장정원·44
다빈·46
엄마의바다·48
까치두마리·50
비멍·52
말로그린마음스케치·54
헤어질결심·57
독서하는잠·58
틈·60
파도,치다·62
도형이기억의연대기·64

제3부
압력밥솥·69
무의도,섬사이에·70
홀로영화관에서·72
불임일기·74
변신도마뱀·75
빗살무늬토기의추억·76
요술쟁이말의집·78
전교1등의신화·80
초난도선장박씨·83
고장난라디오·84
소의뿔·86
형용모순의시대·88
자동식센서·90
흐린밤의일기·92
모래시계·93
거울보는여자·94

제4부
로망스·99
슬픈머리핀·100
엄마의손·101
고독에대하여·102
멍든날·103
나도예쁜똥을누고싶다·104
손톱을깎다가·106
목구멍에떨어진포도알·108
손가락편지·110
토마토를먹는순간·112
뻥튀기에대한명상·114
회상·115
시당(詩堂)에시주(詩主)를모셔라·116
서점산책·119
협재포구에서·120

발문│김주대·123
시인의말·135

출판사 서평

나는12월로갑니다//마음을앓기에는/사랑만한게없습니다//아무래도/우리사이는11월//그대는가을같고/나는겨울같습니다//봄이고여름이던시절은/함께설레었으나/이삿짐꾸리듯/낙엽은이미졌습니다//12월이된나는/홀로추울예정입니다/겨울에도자라는나무처럼/꿋꿋해야겠습니다//옹이를새기며/단단해지기에는/이별만한게없습니다
-「11과12사이」전문

“마음을앓기에는/사랑만한게없”다면서사랑의아픔을긍정할줄알게된세월,“옹이를새기며/단단해지기에는/이별만한게없”(「11과12사이」)다고아픔을수용할줄알게된세월이지나갔다.그사이“죄를사해줄엄마같은여자를만나고싶었”지만“그런여자는엄마밖에없다는걸”알게되었고,“부끄럽지만숨을곳이없”(「나를그린나」)는자신을고백할용기도가지게되었다.마침내는“고요히합장이나”하면서“내속에젖은/눅눅한것들꾸덕꾸덕말리”(「불멍」)는담담함에이르고있다.“글썽이는웃음”과“흐느끼는웃음”(「호호웃음깔깔웃음」)이라는아픈역설은그가이른어떤지경에서자연스러운일일지도모르겠다.

새가들어간호리병속을세상은결혼이라불렀다주둥이가좁은병속은질식하기좋았다호흡곤란으로위독해진순간결단코병을깼다

탈출한새는남겨둔알에날개가묶였다부화된알은새병아리가되어자랐다사금파리에먹이를물어다놓고멀찍이지켜보는새가아버지인줄알았으나아버지라부르진않았다

아픈손가락이되어무심히가슴을톡톡쪼아구멍을냈다황소바람이새어들어와시리고아팠다쪼는부리의힘은갈수록세졌다차라리프로메테우스처럼바위산에올라벌이라도달게받아야했다
-「다빈」부분

시인의결혼생활은여의치못했다.“좁은병속”같은생활이었고,“호흡곤란으로위독해진순간”들이었다.그러다가좁은호리병을탈출하지만“탈출한새는남겨둔알에날개가묶였다”.“남겨둔알”,남겨둔자식이“아픈손가락이되어”자주“무심히가슴을톡톡쪼아구멍을”낸다.그구멍으로“황소바람이새어들어와시리고아팠”을것이다.

말라야상품이다
누가일부러말한적없는말을
몸이안다
삶을연기하는무대위를걷자면
그래야한다
외로움만살이쪄서뚱뚱하다
-「그여자의거식증」전문

고향에서와달리“삶을연기하는무대위를”걷는도시적삶에대한회의가그를자꾸고향쪽으로이끌었을것이다.연로한어머니와아버지가계시고아픈동생이있는고향을잠시도잊을수없었으리라.“멸시를받아도부지런하니살았고/구박을받아도인정이많으니살았고/천대를받아도골목할멈들의환대”(「오줌이울었다」)가있어척박한삶을살아내신어머니,“몸속에노란피나파란피가흐를지모르는/그것은집안에서기르는짐승이나매한가지였습니다/스스로를가둔우리속에서꾸무럭거리다/가끔우리밖으로뛰쳐나와집안을분탕질했고/흉한짐승의말을토하는살덩어리로늙어”(「아버지의이름표」)가신아버지,그리고어린나이에죽어상여도없이떠나간고향친구의무덤이있는곳,그곳이시인의고향이다.
“세월을아무리건너도열여섯의나는여전히우울한얼굴을목에매달고골목을서성이고있”(「그날골목에」)으니귀향하지못하는날마다“나는내가가여워나를품고잠들었지/뱀이된내가꿈꿀수있도록/꿈에서다시꿈을꾸고환생할수있도록”(「독」)자신을채찍질하였으리라.또한“가짜미소에홀린아수라판의세상/모나리자는실성한사람처럼헤매며예수의십자가유언을거리마다게워냈다”(「모나리자」)거나“고장난세상의소식을전하는고장난라디오/세상이보내는신호를잡는안테나가망가진라디오를버려야겠”(「고장난라디오」)다고하는것처럼부조리한현실사회와인간정신에대한날카로운비판과풍자를놓치지않는다.마음의고향을잃은자본주의사회,인간의몸마저상품화된현실에대해통쾌한주먹질을날리는것이다.

틈이있어야숨을쉰다/틈이있어야움이튼다//틈은곧생명
-「틈」부분

“틈은곧생명”이다.틈은“수만리걸어온바람과/수만리걸어갈바람을/안아주고배웅하는문앞이”고“씨앗”이다.삶의오선지는여전히위태롭지만시인은그동안중심을잡아줄잔근육이늘었다.시농사32년만에수확을하는이번시집은시인이살아온삶의고백이자또살아갈숨통인셈이다.그래서막막함속에서도틈을발견하고틈을만들어스스로도숨을쉬게한다.“잉태를꿈꾸”고,“모든것들포옹”하는“숨구멍”은시를읽는독자들의숨통까지도틔워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