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언어의 사원 한 채를 얻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
김영애 시인의 첫 시집 『바람, 바다와 만날 때』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 실린 시인의 작품은 일상의 변화무쌍함과 희로애락의 측면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화려하거나 현학적이진 않지만,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다가온다. 삶의 바람과 바다가 때론 사람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여 일순간에 일어났다 소멸하는 만다라처럼 펼쳐진다.
소리 내 전하지 못했던
마음
애리게 한 죄
살아서나 죽어서나
여자로 천 년을 묶어버렸던
생은, 뜨거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어
입안은 헐어 쓰라려도
천불천탑(千佛千塔) 쌓아
세상이 다시 열린다면
오늘 밤
나, 기어이 와불을 깨워 볼라요
-「미라」 전문
“소리 내 전하지 못했던/마음/애리게 한 죄”을 토로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에서 봉인된 긴 세월의 무게만큼 시적 발화를 꿈꾸는 화자의 마음이 간절히 느껴진다. “여자로” “묶어버렸던/생”은 한 가정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한 일하는 여성으로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늘 마음속에서 주저해야 했던 긴 세월을 상징한다. 여기서 “세상이 다시 열린다면”은 다시 한 번 시의 화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 그이가 좋아하는 생선을 굽는다
도착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구운 생선하고 사랑은 닮았다, 식어버리면 쓸모가 없죠
카톡을 보내고
산책 삼아 산에 올라 절집 종루에 섰더니
매양 염불인 양 노래인 양
산전수전 다 겪은 물고기 한 마리 가락에 젖어
화엄에 들어 있어 여쭈었다
구운 생선하고 당신은 닮았나요
-「목어」 전문
시인의 작품집에서는 거창한 삶을 꿈꾸거나 지고한 삶의 절정을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구운 생선을 닮은 목어를 노래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시의 후반이 촌철살인 같은 속도로 반전을 이룬다. ‘화엄에 든 목어는 구운 생선일까?’ 구운 생선은 식으면 쓸모가 없으니 존재 의미를 찾으려면 항상 따뜻함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과 삶을 관조하는 시인의 언어가 그렇다. 화엄은 한순간의 방심이나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다.
도편수가 나무를 깎아 만든 벌거벗은 여인의 추한 형상은
꿈에서도 자주 어른거리는, 그 여자
오늘도 겁보다 무거운 대웅전 처마 귀퉁이를 온몸으로 받치고 있다네
전등사 옛사랑의 상처 아래엔 가슴의 금이 배 쪽까지 이어져서
사람들이 가끔 와서
제 안의 마음도 들여다보며
누구는 도편수더러 너무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나부상더러 업장이라고 떠든다네
전등사 처마 아래 서서 한참을 치켜다 보았네
일구월심(日久月深), 누군가의 애증의 흔적
처마처럼 공중에 떠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었네
-「전등사에서 보다」 부분
시인은 신성한 절집에도 인간의 이야기가 한 모퉁이에 배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주막집에서 만난 여인을 못 잊어 하는 도편수, 그가 만든 나부(裸婦) 형상은 목어처럼 절집 처마 공중에 떠서 지금까지 그 애증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고 노래한다. 성(聖)과 속(俗)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필부필부의 생애가 옛이야기처럼 슬프고도 정겹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영애 시인은 ‘언어의 사원’ 한 채를 얻기 위해 무던히 긴 세월을 에돌아 온 사람이다. 주어진 자기 삶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긴 시간을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 심정으로 자기 삶을 오롯이 성실하게 엮어온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시인의 언어는 오랫동안 심안에서 곰삭아지고 다독거려졌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바람이 일으키는 변화처럼 인식하고 바다라는 삶의 결을 따라 바람이 펼쳐 놓는 삶의 교향곡을 때론 빠른 속도로 때론 잔잔하게 언어의 선율로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짜냈다. 그 올에 새겨진 촘촘한 시상이 한 땀 한 땀 자수가 되어 시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언어가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메아리친다.
소리 내 전하지 못했던
마음
애리게 한 죄
살아서나 죽어서나
여자로 천 년을 묶어버렸던
생은, 뜨거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어
입안은 헐어 쓰라려도
천불천탑(千佛千塔) 쌓아
세상이 다시 열린다면
오늘 밤
나, 기어이 와불을 깨워 볼라요
-「미라」 전문
“소리 내 전하지 못했던/마음/애리게 한 죄”을 토로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에서 봉인된 긴 세월의 무게만큼 시적 발화를 꿈꾸는 화자의 마음이 간절히 느껴진다. “여자로” “묶어버렸던/생”은 한 가정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한 일하는 여성으로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늘 마음속에서 주저해야 했던 긴 세월을 상징한다. 여기서 “세상이 다시 열린다면”은 다시 한 번 시의 화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 그이가 좋아하는 생선을 굽는다
도착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구운 생선하고 사랑은 닮았다, 식어버리면 쓸모가 없죠
카톡을 보내고
산책 삼아 산에 올라 절집 종루에 섰더니
매양 염불인 양 노래인 양
산전수전 다 겪은 물고기 한 마리 가락에 젖어
화엄에 들어 있어 여쭈었다
구운 생선하고 당신은 닮았나요
-「목어」 전문
시인의 작품집에서는 거창한 삶을 꿈꾸거나 지고한 삶의 절정을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구운 생선을 닮은 목어를 노래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시의 후반이 촌철살인 같은 속도로 반전을 이룬다. ‘화엄에 든 목어는 구운 생선일까?’ 구운 생선은 식으면 쓸모가 없으니 존재 의미를 찾으려면 항상 따뜻함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과 삶을 관조하는 시인의 언어가 그렇다. 화엄은 한순간의 방심이나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다.
도편수가 나무를 깎아 만든 벌거벗은 여인의 추한 형상은
꿈에서도 자주 어른거리는, 그 여자
오늘도 겁보다 무거운 대웅전 처마 귀퉁이를 온몸으로 받치고 있다네
전등사 옛사랑의 상처 아래엔 가슴의 금이 배 쪽까지 이어져서
사람들이 가끔 와서
제 안의 마음도 들여다보며
누구는 도편수더러 너무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나부상더러 업장이라고 떠든다네
전등사 처마 아래 서서 한참을 치켜다 보았네
일구월심(日久月深), 누군가의 애증의 흔적
처마처럼 공중에 떠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었네
-「전등사에서 보다」 부분
시인은 신성한 절집에도 인간의 이야기가 한 모퉁이에 배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주막집에서 만난 여인을 못 잊어 하는 도편수, 그가 만든 나부(裸婦) 형상은 목어처럼 절집 처마 공중에 떠서 지금까지 그 애증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고 노래한다. 성(聖)과 속(俗)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필부필부의 생애가 옛이야기처럼 슬프고도 정겹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영애 시인은 ‘언어의 사원’ 한 채를 얻기 위해 무던히 긴 세월을 에돌아 온 사람이다. 주어진 자기 삶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긴 시간을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 심정으로 자기 삶을 오롯이 성실하게 엮어온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시인의 언어는 오랫동안 심안에서 곰삭아지고 다독거려졌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바람이 일으키는 변화처럼 인식하고 바다라는 삶의 결을 따라 바람이 펼쳐 놓는 삶의 교향곡을 때론 빠른 속도로 때론 잔잔하게 언어의 선율로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짜냈다. 그 올에 새겨진 촘촘한 시상이 한 땀 한 땀 자수가 되어 시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언어가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메아리친다.
바람, 바다와 만날 때 (김영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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