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결핍과 상처의 존재에 대한 깊고 따듯한 서정
박순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차밍양장점』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2015년 『붉은디기』를 낸 이후 8년 만으로 고조된 시적 긴장과 더욱 섬세해진 감각으로 시적 대상의 결핍과 상처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깊고도 따듯하다.
한 번만이라도/나를 내게 맞추고 싶었다//얻어 입은 옷은 늘 결핍 덩어리여서/살갗에 대이기만 해도 통증이 왔다/온기가 다 빠져 얇아진 옷은/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아무리 다려도 줄이 서지 않았다/번질거리기만 할 뿐/한겨울 모래처럼 가슴에 소름이 돋았다//언니가 물려준 교복을 입고/이름표를 주머니에 넣으며/뒷골목으로만 다녔다
-「차밍양장점」 전문
서정적 자아의 결핍은 “얻어 입은 옷”, “언니가 물려준 교복”으로 표상된다. ‘양장점’은 몸에 맞게 옷을 지어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시집 제목이기도 한 「차밍양장점」은 서정적 자아 욕망의 표상이 되는 셈이다. 사실 예전에 형제·자매가 있는 가정에서 옷을 물려 입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위 시의 서정적 자아는 그것을 “결핍 덩어리”, “온기가 다 빠져 얇아진 옷”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살갗에 대이기만 해도 통증”을 느낄 만큼 예민하게 감각하고 있다. “나를 내게 맞추”는 것, 곧 자아 정체성, 자아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묵은 서랍 속에/어머니 생전 하시던 말씀 고스란히 누워 계신다//발달 장애를 가진 큰아이 걱정에/오늘은커녕 내일마저 삐쩍삐쩍 말라가던 때//아이를 닦달하다가/나를 들볶아대다가/숨이 멎을 것 같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몸만 성하면 산데이/걱정하지 말거래이/다 길이 있다 안카나/실패했다 생각 말거래이//터진 바지 꿰매려 반짇고리 찾다 본/무명실 감긴 어머니의 실패/구멍 난 마음까지 덧댄다//바람 한 점 들지 않는다
-「대한(大寒)」 전문
박순덕 시인의 시에서 ‘대한’은 맵디매운 현실을 암유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에 응전하는 ‘마음’임을 이 시는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생전 말씀이기도 한데 서정적 자아에게 그 말씀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삶 또한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들 때문에 “자신에게 이르는 길/스스로 막아 버리셨”던(「신신파스」) 어머니 또한 ‘몸만 성하면 산다’고 ‘다 길이 있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고단한 현실을 건너왔을 터다. 어머니로부터의 분리가 인간의 탄생과 성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머니’는 결핍의 근원이자 결핍을 메워주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서정적 자아는 어머니로서의 결핍을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메우고 또 그와 같이 단단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쉰하나,/혈관 터지고/왼편 생이 마비되었다//한때는 두려울 것 없던 세상살이/후줄근 어깨를 늘어뜨렸다//아무리 꼬집어도 꼬집어도/아프지 않은 생//더듬더듬 지팡이 짚으며 간다
-「봉강 아재」 부분
도대체 나는 어디에도 없어요/캄보디아에도 없어요//친정엄마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 만지며/잇자국 선명하도록/질겅질겅 슬픔을 씹는다//누렇게 낮달이 뜬다
-「앉은뱅이꽃」 부분
‘봉강 아재’의 삶과 그에게 닥친 비극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고생고생하다가 “아무리 꼬집어도 꼬집어도/아프지 않은 생”을 살게 된 ‘봉강 아재’의 삶이 그렇다. “아프지 않은 생”의 비극이라니, 탁월한 아이러니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또한 “친정엄마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 만지며/잇자국 선명하도록/질겅질겅 슬픔을 씹는” 이주 여성의 삶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누렇게 낮달이” 뜨는 아프고 슬픈 현실 앞에 우리는 또 얼마나 뼈아프고 가슴 시린가.
박순덕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부장제 구조에서 희생된 여성, 아이, 가장이자 비루한 현실에 놓여 있는 주변화된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들의 삶은 그저 모순적 사례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새끼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모닥불」) 등 ‘모닥불’을 이루는 무용한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백석처럼, 시인 역시 ‘정임이’(「정임이」), ‘레티’(「레티」), ‘봉강 아재’(「봉강 아재」), ‘별다방 아가씨’(「봄 마중」) 등 소외된 존재들을 불러낸다.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반향 없는 이들 삶의 이야기가 박순덕 시인의 호명으로 하여 서정적 주체의 더 깊은 슬픔과 절망을, 더 짙은 해학을, 더 뜨겁고 강한 의지를 만나게 된다.
한 번만이라도/나를 내게 맞추고 싶었다//얻어 입은 옷은 늘 결핍 덩어리여서/살갗에 대이기만 해도 통증이 왔다/온기가 다 빠져 얇아진 옷은/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아무리 다려도 줄이 서지 않았다/번질거리기만 할 뿐/한겨울 모래처럼 가슴에 소름이 돋았다//언니가 물려준 교복을 입고/이름표를 주머니에 넣으며/뒷골목으로만 다녔다
-「차밍양장점」 전문
서정적 자아의 결핍은 “얻어 입은 옷”, “언니가 물려준 교복”으로 표상된다. ‘양장점’은 몸에 맞게 옷을 지어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시집 제목이기도 한 「차밍양장점」은 서정적 자아 욕망의 표상이 되는 셈이다. 사실 예전에 형제·자매가 있는 가정에서 옷을 물려 입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위 시의 서정적 자아는 그것을 “결핍 덩어리”, “온기가 다 빠져 얇아진 옷”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살갗에 대이기만 해도 통증”을 느낄 만큼 예민하게 감각하고 있다. “나를 내게 맞추”는 것, 곧 자아 정체성, 자아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묵은 서랍 속에/어머니 생전 하시던 말씀 고스란히 누워 계신다//발달 장애를 가진 큰아이 걱정에/오늘은커녕 내일마저 삐쩍삐쩍 말라가던 때//아이를 닦달하다가/나를 들볶아대다가/숨이 멎을 것 같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몸만 성하면 산데이/걱정하지 말거래이/다 길이 있다 안카나/실패했다 생각 말거래이//터진 바지 꿰매려 반짇고리 찾다 본/무명실 감긴 어머니의 실패/구멍 난 마음까지 덧댄다//바람 한 점 들지 않는다
-「대한(大寒)」 전문
박순덕 시인의 시에서 ‘대한’은 맵디매운 현실을 암유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에 응전하는 ‘마음’임을 이 시는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생전 말씀이기도 한데 서정적 자아에게 그 말씀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삶 또한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들 때문에 “자신에게 이르는 길/스스로 막아 버리셨”던(「신신파스」) 어머니 또한 ‘몸만 성하면 산다’고 ‘다 길이 있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고단한 현실을 건너왔을 터다. 어머니로부터의 분리가 인간의 탄생과 성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머니’는 결핍의 근원이자 결핍을 메워주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서정적 자아는 어머니로서의 결핍을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메우고 또 그와 같이 단단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쉰하나,/혈관 터지고/왼편 생이 마비되었다//한때는 두려울 것 없던 세상살이/후줄근 어깨를 늘어뜨렸다//아무리 꼬집어도 꼬집어도/아프지 않은 생//더듬더듬 지팡이 짚으며 간다
-「봉강 아재」 부분
도대체 나는 어디에도 없어요/캄보디아에도 없어요//친정엄마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 만지며/잇자국 선명하도록/질겅질겅 슬픔을 씹는다//누렇게 낮달이 뜬다
-「앉은뱅이꽃」 부분
‘봉강 아재’의 삶과 그에게 닥친 비극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고생고생하다가 “아무리 꼬집어도 꼬집어도/아프지 않은 생”을 살게 된 ‘봉강 아재’의 삶이 그렇다. “아프지 않은 생”의 비극이라니, 탁월한 아이러니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또한 “친정엄마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 만지며/잇자국 선명하도록/질겅질겅 슬픔을 씹는” 이주 여성의 삶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누렇게 낮달이” 뜨는 아프고 슬픈 현실 앞에 우리는 또 얼마나 뼈아프고 가슴 시린가.
박순덕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부장제 구조에서 희생된 여성, 아이, 가장이자 비루한 현실에 놓여 있는 주변화된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들의 삶은 그저 모순적 사례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새끼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모닥불」) 등 ‘모닥불’을 이루는 무용한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백석처럼, 시인 역시 ‘정임이’(「정임이」), ‘레티’(「레티」), ‘봉강 아재’(「봉강 아재」), ‘별다방 아가씨’(「봄 마중」) 등 소외된 존재들을 불러낸다.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반향 없는 이들 삶의 이야기가 박순덕 시인의 호명으로 하여 서정적 주체의 더 깊은 슬픔과 절망을, 더 짙은 해학을, 더 뜨겁고 강한 의지를 만나게 된다.
차밍양장점 (박순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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