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의 진경
자연의 철학자 유승도 시인의 산문집 『세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서러워하지 마 화내지도 마』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산문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의 진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유승도 시인은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서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친자연적인 시와 산문을 써왔다. 이번 산문집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를 겪는 자연과 시인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지렁이가 빼빼 말라 죽어 있는 것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매미나방 애벌레나 사슴벌레가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깔려 뭉개져 있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그들에 비하면 커다란 동물인 쥐, 토끼, 고양이나 그보다 큰 너구리, 고라니가 죽어 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멧돼지가 차에 치이기도 하지만 그땐 자동차 주인이 가져가서 길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흔한 일」 중에서
사실 산속에 사는 게 낭만일 수만은 없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친화를 넘어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고된 삶이라 할 수 있다. “집 앞길을 걷자니 온통 매미나방 애벌레의 사체”(「매미나방 애벌레를 받아들이다」)가 있거나 “올해도 어김없이 멧돼지에게 바쳐진 고구마” 농사처럼 “매년 손해를 입으면서도”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살려고 하는 짓”(「미워하진 않는다」)이라는 걸 잘 알기에 “멧돼지야, 우리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말고 살자”(「멧돼지에게 줄 연민의 정은 없다」)고 혼잣말을 할 뿐이다.
아내가 준 우유를 받아먹으며 기운이 오른 새끼는 다른 놈들과 섞여 뛰기 시작했다. 흑염소 우리 안은 진정 봄다운 봄이 되었다. 얼음 바람이 본격적으로 밀려오고 있는 중에도 새끼 흑염소들은 자신들이 일으켜 세운 봄의 세상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새끼들에게 겨울은 이미 없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저놈들이 다 큰다면.
-「까만 봄」 중에서
“새끼들이 크면 장사꾼에게 팔거나 원하는 사람에게 탕을 끓여주거나 건강원에 넘겨야” 하는데 “우유를 주면서 키우며, 떨궈야 할 정을 오히려 더하고 있는” 새끼 염소를 보며 시인은 가슴이 아리다.
앞산의 등성이에 올라 마을을 본다 산의 가슴에 안긴 마을과 그 귀퉁이를 차지한 내 집은, 볼수록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알을 품고 있는 새의 마음이 이럴까/나보다 중요하거나 멋진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오막보다 따스한 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암을 일으킨다는 슬레이트가 얹힌 낡은 거처여서, 어서 헐고 새로 지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아내와 내가 웃고 울고 다투며 지내온 저 집이 좋다/나의 집을 품고 있으니 마을도 나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마을을 안고 있으니 산도 그렇다
위의 시에서 얘기하는 “나의 집”은 영서 지역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 있다. 1,000m를 살짝 넘는 산이어서 낮지도 높지도 않은 높이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덩치를 갖고 있다. “웃고 울고 다투며”라는 문구가 얘기하듯이 산속 삶도 도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탄광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마을에, 3년 정도 비어 있던 집을 대충 손보고 들어와 매년 조금씩 고치면서 살아왔다. 1998년에 갓 100일이 넘은 아이를 안은 아내를 내려주고 돌아가면서 처남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은 지 70년이 넘었다는 살짝 기울은 산속 오두막이 오죽 시원찮았을까? 그나마 집 옆 도랑에 물이 흐르고 있어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단다.
-「나의 집」 중에서
“안개가 온 산을 덮는다 해도 아내는 죽은 들깨가 있는 곳에 새 모종을 심”고 시인은 “비 오는 날을 맞아 모처럼 원두막에 올라 노래도 듣고 그동안 덮어두었던 시작 노트도 몇 자 적어”(「8월을 맞으며」)보는 것인데 TV 방송 「나는 자연인이다」와 「자연의 철학자들」에도 나온 것처럼 유승도 시인은 살면서 바쁠 게 없고 또 바쁜 일은 안 만든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더 거칠고 팍팍하다고 느낄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제각각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될 때.
내가 욕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별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자고 마음먹을 때」 전문
기후 위기의 시절이다. 원인을 파악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하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즉 자연은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에 유승도 시인은 자연 그대로의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위를 최대한 배척면서도 인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제각각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고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자고“ 한다.
유승도 시인은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서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친자연적인 시와 산문을 써왔다. 이번 산문집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기후 변화를 겪는 자연과 시인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지렁이가 빼빼 말라 죽어 있는 것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매미나방 애벌레나 사슴벌레가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깔려 뭉개져 있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그들에 비하면 커다란 동물인 쥐, 토끼, 고양이나 그보다 큰 너구리, 고라니가 죽어 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멧돼지가 차에 치이기도 하지만 그땐 자동차 주인이 가져가서 길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흔한 일」 중에서
사실 산속에 사는 게 낭만일 수만은 없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친화를 넘어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고된 삶이라 할 수 있다. “집 앞길을 걷자니 온통 매미나방 애벌레의 사체”(「매미나방 애벌레를 받아들이다」)가 있거나 “올해도 어김없이 멧돼지에게 바쳐진 고구마” 농사처럼 “매년 손해를 입으면서도”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살려고 하는 짓”(「미워하진 않는다」)이라는 걸 잘 알기에 “멧돼지야, 우리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말고 살자”(「멧돼지에게 줄 연민의 정은 없다」)고 혼잣말을 할 뿐이다.
아내가 준 우유를 받아먹으며 기운이 오른 새끼는 다른 놈들과 섞여 뛰기 시작했다. 흑염소 우리 안은 진정 봄다운 봄이 되었다. 얼음 바람이 본격적으로 밀려오고 있는 중에도 새끼 흑염소들은 자신들이 일으켜 세운 봄의 세상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새끼들에게 겨울은 이미 없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저놈들이 다 큰다면.
-「까만 봄」 중에서
“새끼들이 크면 장사꾼에게 팔거나 원하는 사람에게 탕을 끓여주거나 건강원에 넘겨야” 하는데 “우유를 주면서 키우며, 떨궈야 할 정을 오히려 더하고 있는” 새끼 염소를 보며 시인은 가슴이 아리다.
앞산의 등성이에 올라 마을을 본다 산의 가슴에 안긴 마을과 그 귀퉁이를 차지한 내 집은, 볼수록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알을 품고 있는 새의 마음이 이럴까/나보다 중요하거나 멋진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오막보다 따스한 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암을 일으킨다는 슬레이트가 얹힌 낡은 거처여서, 어서 헐고 새로 지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아내와 내가 웃고 울고 다투며 지내온 저 집이 좋다/나의 집을 품고 있으니 마을도 나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마을을 안고 있으니 산도 그렇다
위의 시에서 얘기하는 “나의 집”은 영서 지역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 있다. 1,000m를 살짝 넘는 산이어서 낮지도 높지도 않은 높이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덩치를 갖고 있다. “웃고 울고 다투며”라는 문구가 얘기하듯이 산속 삶도 도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탄광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마을에, 3년 정도 비어 있던 집을 대충 손보고 들어와 매년 조금씩 고치면서 살아왔다. 1998년에 갓 100일이 넘은 아이를 안은 아내를 내려주고 돌아가면서 처남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은 지 70년이 넘었다는 살짝 기울은 산속 오두막이 오죽 시원찮았을까? 그나마 집 옆 도랑에 물이 흐르고 있어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단다.
-「나의 집」 중에서
“안개가 온 산을 덮는다 해도 아내는 죽은 들깨가 있는 곳에 새 모종을 심”고 시인은 “비 오는 날을 맞아 모처럼 원두막에 올라 노래도 듣고 그동안 덮어두었던 시작 노트도 몇 자 적어”(「8월을 맞으며」)보는 것인데 TV 방송 「나는 자연인이다」와 「자연의 철학자들」에도 나온 것처럼 유승도 시인은 살면서 바쁠 게 없고 또 바쁜 일은 안 만든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더 거칠고 팍팍하다고 느낄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제각각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될 때.
내가 욕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별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자고 마음먹을 때」 전문
기후 위기의 시절이다. 원인을 파악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하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즉 자연은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에 유승도 시인은 자연 그대로의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위를 최대한 배척면서도 인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제각각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고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자고“ 한다.
세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서러워하지 마 화내지도 마 (유승도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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