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두알

복숭아 두알

$13.00
Description
황미경 시인의 시집 『복숭아 두 알』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구성 안에 여성의 삶, 자연의 생명성, 시간의 흐름 그리고 상처의 치유와 행복을 위한 비움의 미학을 정교하게 배치한 서정 시집이다. 시인은 자연의 리듬을 따라 인간 존재를 비추고, 특히 여성의 감각과 기억, 몸의 언어를 통해 우주의 운행과 내면의 고요한 진실을 함께 포착한다. 시집 제1부에서는 봄의 생명력과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삶의 상처를 보여주고, 제2부에서는 여름의 충만함과 욕망 그리고 생의 본능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제3부에서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떠올려 주는 성찰과 비움의 미학을 제4부는 겨울 이미지가 주는 소멸의 투명함과 생명의 유한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시집은 단지 계절을 다룬 시적 묘사에 머물지 않고, 여성의 존재론적 자각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통찰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녹여낸 점에서 두드러진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 슬픔 그리고 억압을 계절의 리듬 속에 섬세하게 배열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꿈꾸고 사랑하고 소망하는 여성적 존재의 생명력을 기어이 길어 올리는 시들이 이 시집에는 가득하다. 이 시집에서 여성은 피해자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도 감각과 윤리, 사랑과 생명, 비움과 자각을 통해 자기 삶을 재서술하는 주체로 나타난다.
자연은 이 시에서 풍경이 아니라 언어이며, 여성은 서사나 서정의 중심만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다. 시인은 자연의 리듬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언어로 세계의 균열을 봉합하려는 윤리적 감각을 보여준다. 『복숭아 두 알』은 여성적 삶의 상처와 기쁨, 고요와 환희를 사계절이라는 보편적 틀 안에 담아낸 시집으로, 섬세하고 밀도 높은 사유와 감각의 결정체다._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저자

황미경

충남공주에서태어났다.중앙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으며2021년시집『배롱나무아래서』로등단했다.시집으로『납작가슴에팔뚝이굵은여자』가있다.

목차

시인의말·05

제1부

어제거기·13
봄날오후·14
먼산을보며걸레질하는여자·16
꽃구경·17
봄은왔건만·18
두고간목련·19
춘설·20
봄날의의자·21
보리수나무아래색에물들다·22
나는자꾸만과거의나에게로가서·24
작약과파랑새·27
여자의아랫배에선무슨일이일어나는가·28
떡집여자·30
소나무와철쭉·33
당신이조금만꾀를부렸더라면·34
5월에·35


제2부

칸나·39
어제먹은복숭아두알·40
참나리·42
능소화·43
감자가세상에나온날·44
행주를꼭짜지않아죽을뻔한여자이야기·46
덩굴식물·49
시스투스·50
미모사·52
백일홍·53
잠도오지않는밤에·54
당신은 추하고 난 악랄해졌어·56
깃발을든여자·58
달콤한사랑·60
장마·62
8월에·63


제3부

가을밤·67
목성·68
밤개구리·70
우리몸은1초에380만개의세포를교체한다·71
호접지몽·72
또다른세상·74
수건·75
날파리를잡다·76
다인병실하모니·78
한여자가누워서·80
달밤에소쩍·82
간판·84
철이있는것과철이없는것·85
어느날밤나는·86
치통·88
새벽달·90
철없는철쭉·91



제4부

첫사랑·95
파묘·96
에이아이(AI)·98
폭설주의보·99
당신이오시는길·100
극강시대·101
겨울날·102
너와나·104
눈온아침·105
당신은여우같이·106
가난한여자·108
눈이비가되면일어나는일들·110
거울보는여자·112
흔적을지우다사라진여자·114
순한마음들이모여·116

시인의산문·119

출판사 서평

여성은서사나서정의중심만이아니라존재의중심!

황미경시인의세번째시집『복숭아두알』은‘봄·여름·가을·겨울’사계절의구성속에여성의삶,자연의생명성,시간의흐름,상처와치유,그리고행복을위한비움의미학을정교하게그려낸다.
『복숭아두알』에서여성은고통과억압의피해자가아니라,감각과기억,몸의언어를통해삶을재서술하는주체로등장한다.이밖에도꿈꾸고사랑하며소망하는존재의생명력을계절의리듬속에길어올린시들이가득하다.

눈을뜨면언제나
어제거기

나는이생만기억하는것인가

이생만을기억하는것이나인가
-「어제거기」전문

나라는존재가어쩌다가지금이시간,이공간에서이삶을이어나가고있는것일까?나의동일한자아는나의기억에의해서만유지되는것일까?내가기억하지못하는또다른세상은없는것일까?우리가알고있는우주너머또다른우주는없을까?터무니없는상상일수도있지만사실지구를중심으로세상이돌아간다고확신하던시절도그리먼옛날의일은아니다.우리는날마다새로운우주의모습을찾아내며우주의신비를풀려애쓰고있고,새로운이론들은현재의세계관을부정하고수정하며계속해서정립되어나간다.

그곳은
내가너이고
네가나여서
그곳은
내가어디에나있고
네가어디에나있어서
너와나는동시에존재하고
거리와상관없이
한몸으로얽혀있는
그곳은
누군가들여다보기전까지는
동시에아무데나존재하는
나의일부이면서내가아닌
그곳은
시간이흐르지않는곳
-「또다른세상」전문

나의몸을구성하고있는것들,나를둘러싼세계의모든것들을쪼개고쪼개어들여다보면우리가상식적으로알고있는거시세계와는전혀다른세상이펼쳐진다.중첩되고얽혀있고동시에파동함수로존재하고있다가관측과동시에붕괴되는세상.그곳은명확한경계가없고이분법적구분도통하지않는다.나와너의구분조차모호해지는세계,이양자적시선으로바라보면우리의존재는고정된실체가아니라관계속에서끊임없이변화하는파동일지모른다.

나는날마다새롭게태어나고
날마다죽는다
나와내가아닌것을구별하려고
날마다거울을보지만
나의눈은
어제의나와오늘의나를구분하지못한다
경계안에서살아남은것들은
나인척하고
당신도여전히나로알고있다
-「우리몸은1초에380만개의세포를교체한다」부분

아침에눈을뜨면나는어제와완전히같지않은모습이지만여전히나로살아가기위해일어난다.나의몸을이루는세포들과내몸안에존재하는수십조개의미생물들,그들의공생관계가이어질때까지나는나라는자의식을가지고내몸의질서를잡아가려는노력을계속할것이다.그공생관계가끝나고나면우리는각자의방식으로흩어져또무언가가되겠지.자연의방식에따를일이다.
생명이란엔트로피를거스르는노력,무질서로흩어지고붕괴되는것들을되돌려질서를유지하는일이다.
황미경시인은섬세하고밀도높은사유와감각으로,세계의균열을언어로봉합하려는윤리적감각을보여준다.이번시집『복숭아두알』은여성적삶의상처와기쁨,고요와환희를아우르는서정시집이자,사계절의보편성속에서빚어진시적·철학적사유가밀도있게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