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네가 있기에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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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온정의 시학
정세훈 시인의 시집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정세훈 시인의 이번 시집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는 기교나 현란한 수사 없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정세훈 시인은 오랜 시간 노동 현장에 몸담았으며 세상에 진솔한 목소리를 내온 실천적 문학가로서 이번 시집 또한 세상에 대한 애틋한 시선을 담고 있다.

그 생김새가 아주 작고
볼품이 없는 것이어서
금방 어떻게 될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뿌리 깊은 돌멩이는

쉽게, 뽑힘을 당하지 않는다
쉽게, 굴림을 당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세찬 빗줄기라 해도
제아무리 거센 바람이라 해도
-「뿌리 깊은 돌멩이」 전문

풀과의 전쟁이 따로 없다. 낫과 칼로 그들의 잎을 베고 잘랐다. 그러나 그들은 며칠이 지나자 보란 듯이 잘린 곳에서 새싹을 다시 냈다. 경사지에서 그들의 존재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을 소쿠리에 고이 담는다. 그들의 모습에 민중의 삶이 한없이 클로즈업 오버랩되어 앞으로 그들과 대결하지 않기로 한다. 또 어느 풀의 뿌리가 머리를 빠지지 않게 하고 굵게 한다는데 말려서 끓인 물로 감으면 좋다는 아내의 말에 공감까지 하는 것이다.

화분에 심겨졌지만,

대지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화초

화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라고 자라

화분에 금이 가게 하고 있네
-「화초」 전문

“어머니와 아들이 우리 교회 교인이에요. 두 분 다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었어요. 증세가 더 심한 아들이 상담에서 말하기를, 시집간 누나가 찾아와서 관리를 잘해 주겠다며 통장을 자신에게 맡기라 했대요. 이번이 두 번째라며 누나의 구속을 받기 싫다고 하소연했어요. 이번엔 정말 화가 나 죽고 싶다고 했었는데, 글쎄 홧김에 어머니 몰래 저녁에 가스레인지 줄을 가위로 끊어 놓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그걸 깜빡 잊고 라면을 끓이려고 점화했대요. 아들은 큰 병원으로 이송 중 사고 5시간 만에 사망하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있대요.” 「시인의 산문」에서 밝히고 있듯 사랑과 구속에 대한 생각을 깊이 새겨 보게 하는 시이다.

만들어진 사냥터엔
사육된 사냥감들이 살아간다
몰이꾼을 위해서
언제든 포위되고
사냥꾼을 위해서
언제든 죽어주는
사육된 사냥감들이 살아간다

사냥감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냥감들이

그저,
피둥피둥 살찌며 살아간다
-「만들어진 사냥터」 전문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

나는
추울 때
춥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네가 있기에」 전문

오랜 시간 시인의 내면에 쌓여 있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 공감과 연대가 이번 시집에서는 다양한 사유와 진솔한 언어로 그려져 세상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희망의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천지간 만물에 대한 사랑법’인 것이다.
저자

정세훈

충남홍성에서태어나1989년『노동해방문학』과1990년『창작과비평』으로작품활동을시작하였다.시집으로『손하나로아름다운당신』,『부평4공단여공』,『몸의중심』,『동면』,『당신은내시가되어』,『고요한노동』등과,동시집『공단마을아이들』,『살고싶은우리집』,장편소설『훈이엉아』,장편동화『세상밖으로나온꼬마송사리큰눈이』,그림책동화『훈이와아기제비들』등이있다.제32회기독교문화대상과제1회충청남도올해의예술인상,제1회효봉윤기정문학상,제3회분중문화상등을수상했다.현재인천작가회의자문위원,동북아시아문화허브센터대한민국충청남도지회장,노동문학관관장,인천비상시국회의고문등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05

제1부

천적·13
목구멍으로우는눈물·14
삶·16
내유골뼛가루뿌려지듯·17
구름낀하늘을보면·18
엉킨맘·19
풍선불기·20
알몸으로·22
만들어진사냥터·24
야생화·25
밤풍경이보이네·26
배추더미·28

제2부

세상이안쓰러운먼산처럼·31
모자(母子)저녁겸상·32
나의동네골목어귀·34
새로운혁명의시를쓴다·36
이제,나는불평등과맞서싸운다·38
몸의무늬·40
조용한날·41
빈터·42
삭정이·44
어떻게돌아가는세상이길래·46
아무것도아닌것·47
야생화가말하네·48

제3부

그봄을살펴보았더니·53
때이른봄날·54
뿌리깊은돌멩이·56
저산지대·57
별들이비에젖어있구나·58
그녀는감정노동자·59
병든꽃늙은꽃·60
낙엽·62
화초·63
오월찔레꽃·64
내영혼에낙엽지는데·66
그대에게로가는길·68

제4부

저하늘만큼가난하자·73
사랑하는네가있기에·74
밖·75
겨울암자로가는길·76
별빛을바라보는그대에게·78
하루·79
입추지나말복무렵·80
오월·83
섣달그믐밤·84
하찮은이슬비·86
헛간·88
칠십년·89

시인의산문·91

출판사 서평

정세훈시인은노동현장에대한경험을바탕으로,오랜시간성실하고도진솔한목소리를내온실천적문학가다.시뿐만아니라동시,동화,소설,산문등장르의경계를넘나들며활발하게작품집을발간해온것에서알수있는것처럼삶과문학에대한열정또한대단하다.
정세훈시인의시는대체로쉽게잘읽힌다.특별한기교나현란한수사도없다.이는‘목적이분명한시’,‘시류에영합하지않는시’를쓰겠다는시인의창작철학과도관련이있을것이다.이런까닭에그의시는의미와정서가보다직접적으로노출,전달된다.그러나그의시는단순할지언정단조롭지는않다.익숙한듯하지만어김없이그익숙함에균열을일으키기때문이다.오랜시간시인의내면에적층되어왔던슬픔과분노,공감과연대,그리고대상에대한애틋한시선이이균열의정체일것이다.이다양한정서와사유는결국‘세상에대한사랑’으로수렴된다.‘하늘의고독’과‘대지의고난’이시인자신을살게했고,그것으로삶이행복하였다는시인의언표는사랑이아니면설명될수없는역설인까닭이다.
_박진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