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슴에 피어오르는 희망의 꽃’을 주제로
희망을 이야기하다
희망을 이야기하다
“나의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많은 전투들을 치르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과도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군사 전략과 함께 또 다른 비장의 무기로 희망을 선택했다.
1장에서는 ‘희망이 숨어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 도시 ‘더반(Durban)’에는 희망봉이 있다. 희망봉이 왜 더반에 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밑단에 위치해 있다. 왼쪽에는 대서양이 있고 오른쪽에는 인도양이 있다. 범선을 타고 인도양 바다를 건너 대서양으로 가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더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위치해 있는 지역을 잘 돌아서 지나가야 한다. 선원들은 바다 위에서 무조건 희망봉을 찾아 더반에 가야 한다. 더반에 가기만 하면 ‘이제는 아프리카 대륙 끝단까지 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더반은 그야말로 희망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더반에서 머물다가 대서양으로 바로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희망봉을 발견하고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2장에서는 ‘사막 어딘가에 희망의 오아시스가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막은 많이 더운 곳이다. 기온이 40℃가 넘는다. 기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모래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막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TV 방송에서 사막을 보았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면 모래 바람으로 발자국들이 지워진다. 사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물이 아닐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시원한 물은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는 희망이 샘솟는 곳이다. 오아시스는 흔하지 않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사막에는 때로는 햇빛에 반사되어서 나타나는 신기루가 보이기도 한다. 오아시스인 줄 알고 가보았는데 알고 보니 신기루인 것이다. 당신은 오아시스를 찾아보고 싶지 않은가? 사막에서 여행하다가 오아시스를 찾아낸 사람들은 가슴 벅찬 희열을 느낄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희망과 기쁨 그 자체다. 며칠 동안 물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의 물이 축복 그 자체다. 사막을 건너느라 물을 마시지 못한 낙타들에게는 오아시스가 쉼의 장소다.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향한 적극적인 생각이 필요성함을 이야기한다. 10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우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하지만 1957년에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가 세계 최초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1961년에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마침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으며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말했다. 소련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미국은 1961년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킬 것이다. 비록 이것은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이 길을 선택하고 해낼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유인 우주선으로 달 탐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세 명의 우주인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을 향해 떠났다.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도착해서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100년 전만 해도 밤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탐사선을 화성에까지 보내는 시대가 되었다. 머지않아서 사람도 화성에 갈 수 있지 않을까?
4장에서는 ‘변화가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일구려면 삶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보면 우화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두 마리 생쥐들과 햄과 허라는 두 꼬마 인간들이 살았다. 그들은 매일 미로 속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를 찾아서 뛰어다녔다. 어느 날 그들은 좋아하는 치즈가 잔뜩 쌓여 있는 치즈 창고 C를 찾았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치즈는 바닥이 나고 말았다. 생쥐들은 치즈의 재고량이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창고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꼬마 인간들은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믿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 불평만 했다. 그들은 상황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고 예전의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며 불평했다. 그러던 중 꼬마 인간 허는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채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미지의 세계인 미로를 향해 달려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꼬마 인간 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C 창고를 나가 새로운 치즈 찾기를 거부했고 홀로 C 창고에 남았다. 결국 꼬마 인간 허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인 치즈더미들로 가득한 N 창고를 찾았고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스니프와 스커리 생쥐들을 발견했다. 이 우화는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으므로 변화를 예상하고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며 자신도 변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5장에서는 ‘가슴에 희망을 채워야 한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오늘날 유럽 연합을 이끌며 신뢰를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반세기 동안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켰던 나라가 신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빌리 브란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수상이 되고 나서 1년이 지난 1970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모 묘역에 가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예정되지 않은 일이었다. 참회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수상이 되기 전에 오히려 반나치 활동을 했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를 가장 먼저 침공했었다. 수상이 국민을 대표해 할 수 있는 어떤 말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진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유럽의 분노와 의심을 거두어들였다. 서독 국내의 여론은 수상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도 있었지만 당시 한 외신은 “무릎 꿇은 건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건 독일 전체였다.”라고 전했다. 빌리 브란트의 수상 재임 기간은 2년으로 짧았지만 유럽에서는 이 시기를 ‘브란트 시대’로 부른다. 빌리 브란트가 아니었으면 서독은 희망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은 독일로부터 전쟁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전후 배상금을 물어주기는 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빌리 브란트의 현명하고도 용기 있는 모습 때문에 유럽은 감동을 받았고 독일을 향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슴을 파고드는 진심을 보여줄 수 있으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폴레옹은 많은 전투들을 치르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과도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군사 전략과 함께 또 다른 비장의 무기로 희망을 선택했다.
1장에서는 ‘희망이 숨어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 도시 ‘더반(Durban)’에는 희망봉이 있다. 희망봉이 왜 더반에 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밑단에 위치해 있다. 왼쪽에는 대서양이 있고 오른쪽에는 인도양이 있다. 범선을 타고 인도양 바다를 건너 대서양으로 가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더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위치해 있는 지역을 잘 돌아서 지나가야 한다. 선원들은 바다 위에서 무조건 희망봉을 찾아 더반에 가야 한다. 더반에 가기만 하면 ‘이제는 아프리카 대륙 끝단까지 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더반은 그야말로 희망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더반에서 머물다가 대서양으로 바로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희망봉을 발견하고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2장에서는 ‘사막 어딘가에 희망의 오아시스가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막은 많이 더운 곳이다. 기온이 40℃가 넘는다. 기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모래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막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TV 방송에서 사막을 보았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면 모래 바람으로 발자국들이 지워진다. 사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물이 아닐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시원한 물은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는 희망이 샘솟는 곳이다. 오아시스는 흔하지 않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사막에는 때로는 햇빛에 반사되어서 나타나는 신기루가 보이기도 한다. 오아시스인 줄 알고 가보았는데 알고 보니 신기루인 것이다. 당신은 오아시스를 찾아보고 싶지 않은가? 사막에서 여행하다가 오아시스를 찾아낸 사람들은 가슴 벅찬 희열을 느낄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희망과 기쁨 그 자체다. 며칠 동안 물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의 물이 축복 그 자체다. 사막을 건너느라 물을 마시지 못한 낙타들에게는 오아시스가 쉼의 장소다.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향한 적극적인 생각이 필요성함을 이야기한다. 10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우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하지만 1957년에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가 세계 최초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1961년에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마침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으며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말했다. 소련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미국은 1961년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킬 것이다. 비록 이것은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이 길을 선택하고 해낼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유인 우주선으로 달 탐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세 명의 우주인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을 향해 떠났다.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도착해서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100년 전만 해도 밤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탐사선을 화성에까지 보내는 시대가 되었다. 머지않아서 사람도 화성에 갈 수 있지 않을까?
4장에서는 ‘변화가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일구려면 삶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보면 우화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두 마리 생쥐들과 햄과 허라는 두 꼬마 인간들이 살았다. 그들은 매일 미로 속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를 찾아서 뛰어다녔다. 어느 날 그들은 좋아하는 치즈가 잔뜩 쌓여 있는 치즈 창고 C를 찾았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치즈는 바닥이 나고 말았다. 생쥐들은 치즈의 재고량이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창고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꼬마 인간들은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믿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 불평만 했다. 그들은 상황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고 예전의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며 불평했다. 그러던 중 꼬마 인간 허는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채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미지의 세계인 미로를 향해 달려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꼬마 인간 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C 창고를 나가 새로운 치즈 찾기를 거부했고 홀로 C 창고에 남았다. 결국 꼬마 인간 허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인 치즈더미들로 가득한 N 창고를 찾았고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스니프와 스커리 생쥐들을 발견했다. 이 우화는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으므로 변화를 예상하고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며 자신도 변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5장에서는 ‘가슴에 희망을 채워야 한다’라는 주제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오늘날 유럽 연합을 이끌며 신뢰를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반세기 동안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켰던 나라가 신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빌리 브란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수상이 되고 나서 1년이 지난 1970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모 묘역에 가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예정되지 않은 일이었다. 참회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수상이 되기 전에 오히려 반나치 활동을 했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를 가장 먼저 침공했었다. 수상이 국민을 대표해 할 수 있는 어떤 말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진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유럽의 분노와 의심을 거두어들였다. 서독 국내의 여론은 수상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도 있었지만 당시 한 외신은 “무릎 꿇은 건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건 독일 전체였다.”라고 전했다. 빌리 브란트의 수상 재임 기간은 2년으로 짧았지만 유럽에서는 이 시기를 ‘브란트 시대’로 부른다. 빌리 브란트가 아니었으면 서독은 희망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은 독일로부터 전쟁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전후 배상금을 물어주기는 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빌리 브란트의 현명하고도 용기 있는 모습 때문에 유럽은 감동을 받았고 독일을 향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슴을 파고드는 진심을 보여줄 수 있으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막과 희망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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