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쉰 아재가 전하는 엄마의 인생 이야기
*
“≪그러니까, 엄마라니까≫는 사모곡이 아니다. 나의 엄마였던 한 ‘인간’에 대한 회고다. 내가 본 것이 그 삶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이렇게나마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대변하고 싶었다.”(조항록)
*
비록 삶이 근사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는 있다. 이곳에 한때 그런 사람이 살았다.
엄마.
*
그가 이생에서 66년을 살다 갔다. 정확히 따지면 65년 4개월 29일이다. 그 세월 동안 그의 삶은 여기저기 허방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도 없게 처음부터 삶이 망망대해의 나무토막처럼 표류했다. 부모 없는 유년은 외로웠고, 나중에는 남편과 자식들이 곁에 있었으나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다.
시대는 굽이졌고 세상은 모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맥없이 스러지지 않았다. 번번이 흔들려 주저앉을 뻔했으나 안간힘을 다해 자기 몫의 생애를 부끄럼 없이 살아냈다. 마지막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때까지도 그의 삶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는 나의 엄마다. 엄마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을 좋아했다. 당신의 신산한 인생에 자식들이 위안을 준다고 믿었다. 엄마는 순진했다. 나 같은 자식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한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해줄 만큼 해주고도 해줄 것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자식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미안해했다. 그런 모습은 당신의 죽음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삶의 벼랑에서도 제 앞가림에 바쁜 자식들을 염려했다. 그렇게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
“어느 날 어머니가 지워졌다. 육십 평생 갱지에 일대기를 적던 그녀가 지우개로 박박 문지른 듯 깨끗이 지워졌다. 여기 빈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지우개똥 같은 가련한 기억의 부스러기들.”
__〈부고를 받다〉 중에서
내가 쓴 시에 엄마를 영영 잃어버렸을 때의 나의 마음이 박제되어 있다. 그랬다. 누런 갱지 위의 삶을 살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졌다. 엄마가 지워졌는데, 엄마가 지워졌을 뿐 세상은 그대로였다. 엄청나게 두꺼운 만물백과에서 나의 엄마 ‘김경숙’만 삭제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막 서러워 눈물 흘렸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지우개똥 같은 가련한 추억밖에 없었다.
*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0월 25일 마망을 잃었다. 그리고 2010년 9월 10일 나는 이 땅에서 엄마를 잃었다. 바르트는 마망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슬픔’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에게도 엄마의 죽음은 ‘완전히 처음인 슬픔’이어서 그 질량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저 붉은 눈물을 흘렸고,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리움을 가질 뿐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이라고 할까. 삶이 가져다주는 어떤 화학적 변화에도 나는 엄마를 잊지 못했다. 그 마음이, 마망의 상실이 낳은 ≪애도일기≫에 견줄 것은 아니지만, 나의 미욱한 문장 속에 엄마를 간직하게 했다. 이 책 ≪그러니까, 엄마라니까≫를 세상에 내놓게 했다.
“≪그러니까, 엄마라니까≫는 사모곡이 아니다. 나의 엄마였던 한 ‘인간’에 대한 회고다. 내가 본 것이 그 삶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이렇게나마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대변하고 싶었다.”(조항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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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삶이 근사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는 있다. 이곳에 한때 그런 사람이 살았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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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생에서 66년을 살다 갔다. 정확히 따지면 65년 4개월 29일이다. 그 세월 동안 그의 삶은 여기저기 허방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도 없게 처음부터 삶이 망망대해의 나무토막처럼 표류했다. 부모 없는 유년은 외로웠고, 나중에는 남편과 자식들이 곁에 있었으나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다.
시대는 굽이졌고 세상은 모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맥없이 스러지지 않았다. 번번이 흔들려 주저앉을 뻔했으나 안간힘을 다해 자기 몫의 생애를 부끄럼 없이 살아냈다. 마지막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때까지도 그의 삶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는 나의 엄마다. 엄마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을 좋아했다. 당신의 신산한 인생에 자식들이 위안을 준다고 믿었다. 엄마는 순진했다. 나 같은 자식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한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해줄 만큼 해주고도 해줄 것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자식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미안해했다. 그런 모습은 당신의 죽음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삶의 벼랑에서도 제 앞가림에 바쁜 자식들을 염려했다. 그렇게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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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가 지워졌다. 육십 평생 갱지에 일대기를 적던 그녀가 지우개로 박박 문지른 듯 깨끗이 지워졌다. 여기 빈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지우개똥 같은 가련한 기억의 부스러기들.”
__〈부고를 받다〉 중에서
내가 쓴 시에 엄마를 영영 잃어버렸을 때의 나의 마음이 박제되어 있다. 그랬다. 누런 갱지 위의 삶을 살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졌다. 엄마가 지워졌는데, 엄마가 지워졌을 뿐 세상은 그대로였다. 엄청나게 두꺼운 만물백과에서 나의 엄마 ‘김경숙’만 삭제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막 서러워 눈물 흘렸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지우개똥 같은 가련한 추억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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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0월 25일 마망을 잃었다. 그리고 2010년 9월 10일 나는 이 땅에서 엄마를 잃었다. 바르트는 마망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슬픔’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에게도 엄마의 죽음은 ‘완전히 처음인 슬픔’이어서 그 질량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저 붉은 눈물을 흘렸고,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리움을 가질 뿐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이라고 할까. 삶이 가져다주는 어떤 화학적 변화에도 나는 엄마를 잊지 못했다. 그 마음이, 마망의 상실이 낳은 ≪애도일기≫에 견줄 것은 아니지만, 나의 미욱한 문장 속에 엄마를 간직하게 했다. 이 책 ≪그러니까, 엄마라니까≫를 세상에 내놓게 했다.
그러니까, 엄마라니까 (쉰 아재의 엄마 생각 | 조항록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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