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고요한 시, 미학적 풍경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존재이다. 인간이 가장 보배로운 미적 대상이며, 사랑이 듬뿍 담긴 최고 절정이 미학적 욕망의 대상이다. 일상의 삶속에서 언어의 자의적인 본질을 이용한 사물의 본질을 찾으려는 창의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문학 작품이다. 인간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서는 예술의 한 영역이 문학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행위인 동시에 책임 또한 적지 않다.”(인터뷰 중에서)
이 시집은 시인(이상규)의 사유의 벌판에 피어난 들풀이다. “아무 말 할 것 없는 상태의 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귀향지”라고 시인(이상규)은 말한다.
그리스어로 ‘정신’이라고 번역되는 ‘프네우마(pneuma)’는 ‘호흡 작용(숨을 쉼)’을 뜻하지만 어디까지나 질료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은 이 시집은 율려나 내면적인 율동의 미학을 강조한 작가의 시학적 바탕을 이룬다. 이 시집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질문과 답이다.
“이번 시집에서 유독 많은 시적 서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시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기존의 어떤 기표 속에서 이해하는 것보다 작가의 육성을 직접 듣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이 시를 관통하는 ‘바람’의 의미 혹은 ‘바람의 비밀’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 시에서 쓰인 일련번호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아님 단순한 형식적 기호일 뿐인지요?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100번까지 쓸 작정이었습니다. 의미를 부숴내는 백화작업, 언어적 질서를 깨면서도 상상하는 메시지를 포기하는 작업인데, 특히 바람이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도 세상을 휘젓고 다닙니다. 무색공(無色空)의 존재가 시색(是色)의 상상을 불러주지만 역시 시색공(是色空)일 뿐인 허무를 유한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인류가 멸망해도 이 우주에는 푸네우마의 바람이 가득 흘러다닐 것입니다.”(143쪽)
이 시집은 문학 주체에 대한 깊은 애정의 손길이 ‘평등에 대한 지향’으로 향하고 있는 현상이 일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시인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보편적 시각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인간 중심 문학사의 지향점이기는 하지만 계급의 평등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성취된 역사가 존재치 않는다. 결코 인간 세상엔 계급 평등이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문학사에서 종교와 샤먼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등이 지나쳐 도리어 평등하지 못한 사회로 치달을까 우려스럽다. 학자들의 말 한 구절만 따와서 평등을 위해 혁명으로 치닫는 사회치고 평등이 정착된 나라와 사회를 보기가 어렵다. 니체가 말한 인간 중심의 미학이 너무 왜곡되어 신이 마치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 중심으로 너무 쏠리고 있다. 하나의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 열매의 크기와 색각이 각각이듯 인간 결코 평등해질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일 뿐이다.
작가(이상규)는 “문학이 갖는 무한의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바친다.”며 이 시집 발간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이상규)의 사유의 벌판에 피어난 들풀이다. “아무 말 할 것 없는 상태의 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귀향지”라고 시인(이상규)은 말한다.
그리스어로 ‘정신’이라고 번역되는 ‘프네우마(pneuma)’는 ‘호흡 작용(숨을 쉼)’을 뜻하지만 어디까지나 질료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은 이 시집은 율려나 내면적인 율동의 미학을 강조한 작가의 시학적 바탕을 이룬다. 이 시집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질문과 답이다.
“이번 시집에서 유독 많은 시적 서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시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기존의 어떤 기표 속에서 이해하는 것보다 작가의 육성을 직접 듣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이 시를 관통하는 ‘바람’의 의미 혹은 ‘바람의 비밀’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 시에서 쓰인 일련번호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아님 단순한 형식적 기호일 뿐인지요?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100번까지 쓸 작정이었습니다. 의미를 부숴내는 백화작업, 언어적 질서를 깨면서도 상상하는 메시지를 포기하는 작업인데, 특히 바람이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도 세상을 휘젓고 다닙니다. 무색공(無色空)의 존재가 시색(是色)의 상상을 불러주지만 역시 시색공(是色空)일 뿐인 허무를 유한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인류가 멸망해도 이 우주에는 푸네우마의 바람이 가득 흘러다닐 것입니다.”(143쪽)
이 시집은 문학 주체에 대한 깊은 애정의 손길이 ‘평등에 대한 지향’으로 향하고 있는 현상이 일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시인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보편적 시각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인간 중심 문학사의 지향점이기는 하지만 계급의 평등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성취된 역사가 존재치 않는다. 결코 인간 세상엔 계급 평등이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문학사에서 종교와 샤먼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등이 지나쳐 도리어 평등하지 못한 사회로 치달을까 우려스럽다. 학자들의 말 한 구절만 따와서 평등을 위해 혁명으로 치닫는 사회치고 평등이 정착된 나라와 사회를 보기가 어렵다. 니체가 말한 인간 중심의 미학이 너무 왜곡되어 신이 마치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 중심으로 너무 쏠리고 있다. 하나의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 열매의 크기와 색각이 각각이듯 인간 결코 평등해질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일 뿐이다.
작가(이상규)는 “문학이 갖는 무한의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바친다.”며 이 시집 발간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프네우마 시편 - 예서의시 26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