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네우마 시편 - 예서의시 26

프네우마 시편 - 예서의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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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요한 시, 미학적 풍경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존재이다. 인간이 가장 보배로운 미적 대상이며, 사랑이 듬뿍 담긴 최고 절정이 미학적 욕망의 대상이다. 일상의 삶속에서 언어의 자의적인 본질을 이용한 사물의 본질을 찾으려는 창의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문학 작품이다. 인간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서는 예술의 한 영역이 문학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행위인 동시에 책임 또한 적지 않다.”(인터뷰 중에서)

이 시집은 시인(이상규)의 사유의 벌판에 피어난 들풀이다. “아무 말 할 것 없는 상태의 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귀향지”라고 시인(이상규)은 말한다.
그리스어로 ‘정신’이라고 번역되는 ‘프네우마(pneuma)’는 ‘호흡 작용(숨을 쉼)’을 뜻하지만 어디까지나 질료적 의미를 지닌다. 다음은 이 시집은 율려나 내면적인 율동의 미학을 강조한 작가의 시학적 바탕을 이룬다. 이 시집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질문과 답이다.

“이번 시집에서 유독 많은 시적 서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시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기존의 어떤 기표 속에서 이해하는 것보다 작가의 육성을 직접 듣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이 시를 관통하는 ‘바람’의 의미 혹은 ‘바람의 비밀’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 시에서 쓰인 일련번호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아님 단순한 형식적 기호일 뿐인지요?
‘프네우마(Pneuma) 시편’은 100번까지 쓸 작정이었습니다. 의미를 부숴내는 백화작업, 언어적 질서를 깨면서도 상상하는 메시지를 포기하는 작업인데, 특히 바람이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도 세상을 휘젓고 다닙니다. 무색공(無色空)의 존재가 시색(是色)의 상상을 불러주지만 역시 시색공(是色空)일 뿐인 허무를 유한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인류가 멸망해도 이 우주에는 푸네우마의 바람이 가득 흘러다닐 것입니다.”(143쪽)

이 시집은 문학 주체에 대한 깊은 애정의 손길이 ‘평등에 대한 지향’으로 향하고 있는 현상이 일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시인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보편적 시각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인간 중심 문학사의 지향점이기는 하지만 계급의 평등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성취된 역사가 존재치 않는다. 결코 인간 세상엔 계급 평등이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문학사에서 종교와 샤먼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등이 지나쳐 도리어 평등하지 못한 사회로 치달을까 우려스럽다. 학자들의 말 한 구절만 따와서 평등을 위해 혁명으로 치닫는 사회치고 평등이 정착된 나라와 사회를 보기가 어렵다. 니체가 말한 인간 중심의 미학이 너무 왜곡되어 신이 마치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 중심으로 너무 쏠리고 있다. 하나의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 열매의 크기와 색각이 각각이듯 인간 결코 평등해질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일 뿐이다.
작가(이상규)는 “문학이 갖는 무한의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바친다.”며 이 시집 발간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저자

이상규

시인이자작가로서글읽고또쓰는일과함께한옥대목수일을배우고있다.1978년≪현대시학≫추천완료로문단에데뷔한후≪종이나발≫,≪13월의시≫,≪외젠포티에의인터내셔널가변주≫등시집여러권과연구저술들을발표하였다.외솔학술대상(2000),봉운학술상(2001),대한민국한류전통문화대상(2014),한국문학예술상(2015),매천황현문학대상(2017)을수상하였고,≪13월의시≫는문화체육관광부우수문학도서로선정되었다.최근한국의전통미학의원류를찾아내는글을쓰고있다.

목차

살아서버티는일외에는

1부여우를예찬한다
그레이스M.조교수께/김선이농업샘/구지장터양지다방/바람개비는바람을피해누워서는돌지않는다/수박/나팔꽃/머리로부딪치고울기는몸으로운다/서로다른길로가는이들에게/여우를예찬한다/아름다움/꽃들의사랑싸움/대화/온마을가득찬꽃향기/출렁이는강물/폼페이/수성못에내려앉은하늘/나의작은소망/생과사/찾아준봄/발해사론눈이내린다/책과화면읽기/눈썹/이듕섭,나는너의바람이야/겨울매화/탐라국에서/화가김수영/꽃집에서/계절

2부월인천강지곡
안녕잘가/불타는월인천강/내기거하는공간은/천강월인/목수와시인/천개의강물에/자작나무/무의노래,판매중단/관음수월도/동화사화림당돌계단에서/오더/그대입에서내뿜는/오늘/성산포바다/텅빈주점첼리스트연주/풍경/개화보카렌더/나목/저녁무렵/일몰/정박한배들/존재의풍경/비에젖는봄의언어/봄에피는눈물꽃/북으로읍루,동남으로창오와창해/일요일아침

3부오피러스마녀들
디오니소스의축제/하늘로달려가는나팔꽃/장례행렬/요정의서정/오피러스마녀들/응시/길위에서있는풍경/백지/하바네라곡에출렁이는/유니워/민족서사극/박두을할머니우물/기하학적문양/균열하는언어의섬/남루한지식/어떤여인/이소/꽃이폈던자리/헤르메스의문장/산당화/순결/눈물/당신에게귀를기울여야할가을이다

4부프네우마(Pneuma)시편
프네우마(Pneuma)시편

[인터뷰]고요한시,미학적풍경
이상규의‘프네우마시편’서평(화가전완식)

출판사 서평

“화가로활동하고있는저는위대한그림을보게되면벅찬감동과동시에‘나도저런그림을그리고싶다.’는욕구가일어납니다.장엄하게떨어지는감동의폭포수를맞은저는그길로캔버스앞에다가가광활한대지위를달리는말처럼붓을타고시공간을아우르는예술가의특권을누리며행복에젖어들곤합니다.
이번에출판되는이상규시인의‘프네우마시편’을읽고대지를달리는말이아니라우주선을타고우주공간을나르는상상의희열감을맛봤습니다.질박한시골뚝배기같은텁텁함이쨍하는5성급호텔의샤베트처럼변모하고무문토기에담긴삶의애환이첨단공학의결과물과비견되며공존과초월을넘나드는시어의향연말입니다.
또한오랜시간함께해온명왕성이행성에서퇴출되는사건처럼사실이라믿던것까지도다시한번본질의근원적물음으로접근하여사람을‘人間’이라쓰는이유를알게합니다.
사람들사이에있어야비로소사람이라는인간,그사랑과포용의정신을일깨워줌에벅참이있었습니다.
인간이인간일수있는이유가곳곳에조각된이상규시인의시어는오벨리스크처럼당당히서서시대를아우르게될것같습니다.”
(화가전완식)

책속에서

<구지장터양지다방>

석양노을은갑자기밀어닥친다.
황홀한색상의혼합으로된바탕그위에는
미세한겨울나뭇가지나전선
지나가는바람의흔적까지
도드라지게드러낸다.
때로는그경계가일순다지워지고
보석같은별빛과
늘기다려지는출렁이는달빛이
파도처럼밀려온다.

달성군구지면장터양지다방
창문너머병풍처럼둘러싼
신도시아파트불빛이스러진
황혼녘서쪽하늘을둘러칠무렵
금속성별빛장석이총총달린
미니스커트에흰부츠를신은
예쁜청회색한마리노새닮은
양지다방여주인

등에짊어진무거운삶의짐보따리
내려놓을땐가끔눈물이섞여있다.
그녀가걸어온삶은굽고기울어진능선,그
가파른시간금방사라지는양지다방
지금황홀한저녁노을이다.

채소난전과대장간건너
창원에서올라온나전칠기
담양에서올라온대소쿠리
낙동강타고올라온소금기에삭은
비린내나는생선난전
얽음배기박서방,혀짜레기허서방
오일장파장길에들러
쌍화차한잔시켜놓고손목
슬쩍한번잡아주고훌쩍떠난
지난사람의그리움에

노을이눈물방울에
붉은보석같이박혀있는
양지다방미즈리
그녀는삶의답으로
도라지위스키한잔에눈물쏙
빼놓는여태걸어온능선가파른길을
쉬지않고달리고있다.

<불타는월인천강>

넓은네거리
하늘이좁아진높은빌딩
가득한어둠
점멸하는불빛이
시들해질무렵

교차로푸른신호등불빛
달빛이내려오고
별빛쏟아진
푸른강줄기
도심네거리를헤치며
저먼끝자락에닿는
고요와절멸

한낮동안붐비던차량과사람들
흩어놓은소음이
월인천강에
뜬무중력의네온사인

그불빛흐려지는끝자락에
이어진어둠이서서히잿빛
기지개를펼치고있다.

<프네우마시편>

6.
눈이참어리석다.
이땅에내린적설량과강수량을
눈으로헤아려내지만
잠자리날갯짓에서번지는
파동과내폐속의얼룩은
엑스레이를거쳐읽어낸다.
지난시간내귀를애무하던
여자의지워진잔상을
바람의파동으로는판독하지못한다.
없는세계를보게할수있는
활성화된시제와공간속
정물화같은소나무녹색바늘이
존재의눈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