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 예서의시 28

돌이킬 수 없는 - 예서의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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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을 덮을 즈음이면 위로를 받은 사람이 되어 있다
“하느님도 모르는 마음자리를 주체할 수 없을 때, 일기로도, 편지로도, 산문으로도 양에 차지 않을 때 시를 썼다. 내가 바라는 것은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소소한 것들이 부족하고 그리웠다. 세상에는 무수한 시가 있지만, 어딘가가 헐겁거나 빡빡하고 더러는 이가 빠져 있었다. 아귀가 꼭 맞는 시 한 편 써놓고 오래 위안 받곤 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시를 썼다.”(김영선)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내가 있는 남자들에게
남편이 있는 여자들에게
그리고 자유를 찾은 여자에게 남자에게
그리고 내 세상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1부는 대체로 ‘밥’을 벌고, ‘밥’을 하고, ‘밥’을 먹는 이야기들이다. ‘밥’은 벌기도 힘들고, ‘짓기’도 힘들고, 사는 게 녹록치 않을 때는 입안이 까슬해서 ‘먹기’도 힘들다. ‘밥’은 언제나 과제이고 명제이고 답이었다. 거간꾼인 남편을 도와 밥을 버는 시인은, 대체로 전 재산을 들고 와 각자의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시를 발견하기도 한다. ‘부동산과 시’가 동질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한정된 땅덩어리를 밟고 살아야 하는 거의 모든 유동의 인간들에게 ‘집’만큼 크고 중대한 일도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부동산일 뿐만 아니라 한 생애의 희노애락 결과물이도 해서 집을 사고 팔고, 세를 얻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급매로 집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대로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2부는 가족 이야기다. 어려서 집 나간 엄마를 찾아가는 아버지 따라 길을 나섰다가 하필이면 굴비두릅처럼 포승줄에 엮이어 어슬렁거리며 걷는 죄수 무리를 만났던 것을 복선으로 깔았다. 그날, 금의환향하는 어떤 무리를 만났더라면 시인의 생애는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전 우주를 다 털어도 ‘핏줄’을 잘라낼 수 있는 연장은 없다. 하나님도 그것이 되지 않아 천국을 만들고, 부처도 인연설을 설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핏줄로 엮인 사람들 간의 이야기는 마냥 슬프기만 하고 마냥 아프기만 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해가 되어 버려져 화가 나기도 하는 사람들이라서 드디어 시가 되기도 한다. 시인에게 가족은 시어이다.
3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를 말하려고 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우주도 언젠가는 소멸하여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한갓 100년도 다 못살고 갈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왜 그 후의 일이 궁금하고, 내가 없는 우주가 부모 잃은 고아처럼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왜 하는 것일까. 뽀글파마에 몸뻬 바지 차림으로 동네를 누비는 아줌마에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랑’ 같은 것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아직도 만나지 못한 ‘사랑’하는 그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버스가 하루 두 차례 들어오는 외딴 동네, 뒤로 깊은 산을 숨겨두고 있는 유물 같은 구멍가게에서는 유통기한 지난 과자나 음료수 말고 사랑을 팔았으면 좋겠다”라고 노래한다. 이렇게 작고 의기소침한 나도 누군가에게 유통기한 10만년도 더 남은 사랑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먼먼 우주의 시간도 기꺼이 기다려 외로움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4부는 근원 이야기다. 어디에나 신은 있다. 그리고 신은 아무 곳에도 없다. 신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면 서운하다. 그래서 시인은 “한때 나는 나를 삼세의 바다를 흘러가는 조각배라 여기던 적 있었”지만 이제는 “세수대야 냉면 사발보다 너른 우주 어디에 하다못해, 이슬방울만한 내세 하나 따로 없다”고 여기면서도, “맹,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저 좀 더 긴 이별일 뿐인 것도 같”다고 자조한다. 그리고 최첨단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는 세상사 일은 얼마든지 있어서 가끔, 먼저 가버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부러도 한다. 그리움은 고장이 나지 않는 천연 점등이기 때문이다. 한때 “근시안의 내 안에 삼세가 폭설처럼 내리 쌓이던 곳 그 질로 걷잡을 수 없이 길을 잃기 시작했던 곳”도 있는 시인의 영혼은 아직은 “멀리 날아와 죽은 나뭇가지에 오래 앉아 있는 새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우주와 소우주 사이를, 은하의 세계를 가만가만 더듬어가고 있다.
저자

김영선

저자:김영
시를만난지20여년이되었지만,따로문학모임이나,문학행사같은곳에적을두고살지못했다.정말로시를사랑하는사람들이한달에한번씩모여시를읽는‘시몰이’동인이기는하지마는,지방에살고있고,생업에매여자주참석하지도못한다.아직문단에소속되지도못했고문인들과의교류도드물다.늘시를생각하고,시를읽고,시를궁금해하지만,스스로시인이라는말을써보지않았다.어줍다.시집이나오면누군가나에게시인이라고불러도좀덜어줍을것같다.

목차

쓰레빠예찬

제1부
깡으로버티다/타워팰리스유감/대동천변에서/맹렬한목숨/오래된습성/염천/슬픈속도/가난해도싸다/파시/후조/나도먹고싶지않은밥이있다/주홍글씨/놀라운일/아내,내안의사람/날맹이집/버거킹/수인(囚人)의노래

제2부
어떤죗값/사랑밖에몰라/가족의맛/금강변에서/성주/연어/물컹한침묵/단대목특수/치우는일/이제와하는반성/옥분이오빠네집/참무던하신양반/장마/그늘/무게/모과/내가이래도되나하고/남대천

제3부
순장/가로등불빛이창으로걸어들어와달빛행세를하는밤에/서울아리랑/임계에서/해질녘/소곡/오후/메아리는절망이다/나도겁쟁이다/대화의정석/긴것은징그럽다/순록의눈물/흰똥/바구미들/엄숙한보행

제4부
이웃/천년은행나무의말씀/영산/없어도있는/밑천/물은전부다용왕님소관/오도재를넘어/극치/개구신지기다/쑥이지천이다/문자를받다/돌이킬수없는/무덤/부드러운단면/시절인연

[인터뷰]시에대한일관된열정과자긍심

출판사 서평

이시집을덮을즈음이면위로를받은사람이되어있다

“하느님도모르는마음자리를주체할수없을때,일기로도,편지로도,산문으로도양에차지않을때시를썼다.내가바라는것은화려하거나거창한것이아니었다.소소한것들이부족하고그리웠다.세상에는무수한시가있지만,어딘가가헐겁거나빡빡하고더러는이가빠져있었다.아귀가꼭맞는시한편써놓고오래위안받곤했다.위로가필요할때시를썼다.”(김영선)

위로받고싶은사람들을위하여
아내가있는남자들에게
남편이있는여자들에게
그리고자유를찾은여자에게남자에게
그리고내세상이궁금한사람들에게전합니다.

1부는대체로‘밥’을벌고,‘밥’을하고,‘밥’을먹는이야기들이다.‘밥’은벌기도힘들고,‘짓기’도힘들고,사는게녹록치않을때는입안이까슬해서‘먹기’도힘들다.‘밥’은언제나과제이고명제이고답이었다.거간꾼인남편을도와밥을버는시인은,대체로전재산을들고와각자의형편에맞는집을구하는사람들에게서시를발견하기도한다.‘부동산과시’가동질감이떨어지는것처럼여겨질수도있지만,한정된땅덩어리를밟고살아야하는거의모든유동의인간들에게‘집’만큼크고중대한일도드물고,대부분의사람들에게집은단순히물리적인부동산일뿐만아니라한생애의희노애락결과물이도해서집을사고팔고,세를얻기위해부동산중개업소를찾는사람들의이야기나,급매로집을처분하지않을수없는위기에몰린사람들의이야기는그대로가한편의시가되기도한다.
2부는가족이야기다.어려서집나간엄마를찾아가는아버지따라길을나섰다가하필이면굴비두릅처럼포승줄에엮이어어슬렁거리며걷는죄수무리를만났던것을복선으로깔았다.그날,금의환향하는어떤무리를만났더라면시인의생애는달라졌을까궁금하다.전우주를다털어도‘핏줄’을잘라낼수있는연장은없다.하나님도그것이되지않아천국을만들고,부처도인연설을설파하지않을수없었을것이다.핏줄로엮인사람들간의이야기는마냥슬프기만하고마냥아프기만하고마냥행복하기만하지도않다.이해하려애쓰지않아도이해가되어버려져화가나기도하는사람들이라서드디어시가되기도한다.시인에게가족은시어이다.
3부는지극히인간적인이야기를말하려고했다.천체물리학자들은우주도언젠가는소멸하여사라질것이라고하는데,한갓100년도다못살고갈운명을타고난인간이왜그후의일이궁금하고,내가없는우주가부모잃은고아처럼외로울지도모르겠다는생각은왜하는것일까.뽀글파마에몸뻬바지차림으로동네를누비는아줌마에게도아직만나지못한‘사랑’같은것이있을까?우리모두는누구에게아직도만나지못한‘사랑’하는그사람일수있다.그리고시인은“버스가하루두차례들어오는외딴동네,뒤로깊은산을숨겨두고있는유물같은구멍가게에서는유통기한지난과자나음료수말고사랑을팔았으면좋겠다”라고노래한다.이렇게작고의기소침한나도누군가에게유통기한10만년도더남은사랑일수도있다는말을들으면,먼먼우주의시간도기꺼이기다려외로움같은건아무렇지도않게견뎌낼수있을것같다.
4부는근원이야기다.어디에나신은있다.그리고신은아무곳에도없다.신이따로없다고생각하면서운하다.그래서시인은“한때나는나를삼세의바다를흘러가는조각배라여기던적있었”지만이제는“세수대야냉면사발보다너른우주어디에하다못해,이슬방울만한내세하나따로없다”고여기면서도,“맹,죽음은끝이아니라그저좀더긴이별일뿐인것도같”다고자조한다.그리고최첨단과학으로도밝혀지지않는세상사일은얼마든지있어서가끔,먼저가버린사람들이모여사는또다른세상이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부러도한다.그리움은고장이나지않는천연점등이기때문이다.한때“근시안의내안에삼세가폭설처럼내리쌓이던곳그질로걷잡을수없이길을잃기시작했던곳”도있는시인의영혼은아직은“멀리날아와죽은나뭇가지에오래앉아있는새처럼무표정한얼굴”을하고있다.그러나소우주와소우주사이를,은하의세계를가만가만더듬어가고있다.

시가어렵지않을수도있다는것을증명이라도하려는듯,일상을일상어로받아적었다.그래도시가된다는사실이경이롭다.시인은시는어렵고지루하고난해하다는선입견을불식시킨다.분명한사람의시인이쓴시인데,세대를아우르고있다.
가난은어느한시대에만집중되는현상이아니라는것을가만히짚어내고있다.무엇보다가족을바라보는시인의시선이담담하다.가족해체,핵가족시대라고해도가족은언제나끊어지지않는핏줄로서로에게연결되어있어서또하나의나처럼함께아프고함께슬프지만아내가남편에게,엄마가자식에게,자식이부모에게건너가는보폭에는너무들뜨지도너무소원하지도않은넌짓한크기의힘이필요하다는것을말하고있다.
시인이,길어야백년,길어도백년인인생을꽉찬듯이행복할수있는방법은단하나,‘사랑하며사는일’이라는것을알면서도정작다실천을하지못하고있음을고백하는부분에서가만히고개를끄덕이게된다.이시집은쉽다.그러나여운이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