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 문학하는 마음으로 영화 읽기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 문학하는 마음으로 영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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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허희 문학평론가의 두 번째 산문집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개봉한 국내외 주목할 만한 다양성 영화들을 텍스트로 삼는다. 테크니컬한 영화학적 시각이 아닌 영상 언어의 특질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함으로써 작품 수용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그럼으로써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양질의 추천작을 엄선하는 이유를 거론하는 큐레이션 기능을 겸한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시를 읽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시적 자아로 영상 언어를 탐식했다.”라며 124편에 가까운 영화를 어떻게 읽어 내려갔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스크린 속의 세상과 스크린 밖의 세상을 연결시키려는 작업은 두 세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쪽과 저쪽의 슬픔이 다르지 않고 저쪽과 이쪽의 고독이 다르지 않기에 영화는 여러 예술 장르처럼 우리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에 가깝다. 고독과 슬픔을 주제로 하여 두 영화를 교차시키며 우리 세계의 이면을 바라보는 허희 문학평론가의 이번 산문집에는 독자적인 것은 배척하는 게 아니라 높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담아 이 책의 제목을 지었다. 여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에는 허희 문학평론가의 고독과 더불어,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한다는 메시지가 스며 있다.
저자

허희

2012년『세계의문학』신인상평론부문에당선되어문학평론가로활동을시작했다.삶의진실을더자세히들여다보고싶어문학을중심에두고여러가지일을하고있다.비평집『시차의영도』와산문집『희미한희망의나날들』을냈다.

목차

작가의말
예술에기습당한인생…004

1부오늘과의작별의식
섬세하게이해받고싶다는마음…018
얼굴과가면…023
부서지기쉬운삶이라는장소…028
오늘과의작별의식…033
순간순간그자리에머무르세요…038
낯선뭔가로되어가는나날…043
나도모르는나를찾아줘…048
살아냄으로써다시배우기…053
죄책감이라는동인…058
꿈이현실에패배할지라도…063
당신의독자적인슬픔을존중해…068
여름은고독하고찬란한청춘…074
보이(지않)는것과보이고싶(지않)은것…079

2부어떻게사는것이맞을까
그렇게어른,가족이된다…086
딸과아들그리고엄마에대하여…091
커플이부모가되는일…096
우정과사랑,그사이를헤엄치는영법…101
시간에그을린흔적들…106
안녕,열등감콤플렉스…111
어떻게사는것이맞을까…116
살벌한이웃과달콤한외계인…121
브레이크없는질주…126
척하는삶…131
파스텔톤필터없는생활…136
소수적인,인간적인…141
끈기에대하여…146

3부몰락함으로써,몰락하지않기
통과세계의아포리아…154
선언의격…159
날씨의아이로환생한오멜라스의아이…164
죽으라는명령을거부하기…169
우리가당신을놓쳤네요…174
달빛에맞설수는없어…180
몰락함으로써,몰락하지않기…185
절망의세계에서행복한청춘…190
지뢰밭의소년들과서스펜스의윤리…195
쌍욕과몸싸움의도덕…200
강한자는살아남는다?…205
출발점으로돌아가재시작하기…210
오늘의지바고와장발장…215

4부내가얼마나복잡한영혼을가졌는지
나는작가다:콜레트와헬렌…224
추하고아름다운재즈…229
그녀의언어는노래…235
건축의풍경들1:안도타다오와이타미준…240
건축의풍경들2:얼굴과모더니즘…245
예술을테러하는예술…250
단하나의소리를향한긴여정…255
여성들의페다고지…260
내가얼마나복잡한영혼을가졌는지…265
마음이라는물결의무늬…270
프랑켄슈타인과하이드…275
예술이여,인생이되어라…280
당신의달콤쌉싸름한변화…285

5부마음과마음을연결하는길
재난한가운데…292
마음과마음을연결하는길…297
회개하라,신이아닌사람에게…302
너를사랑하면서,그를사랑하기…307
보이지않는사랑의정치신학…312
절대고독,절대사랑…317
지옥에서함께불행한사랑의권력…322
지극한연애의전말…327
서툴러서,예쁜…322
춤으로싸우고,화석으로보존하기…337
법앞에서고독한사건들…342
폭력에대한(비)폭력…347
혐오사회에서의자기배려…352

6부있는그대로받아들이기위하여
공감연습…360
의리없는세상의의리녀…365
비밀이깨진다음드러나는것…370
복수하는인간―동물들…374
애썼노라,이겼노라,거듭하노라…379
폭력의예감에서부터시작되는폭력…384
믿고나서배신당할것인가,의심하고고통받을것인가…389
환대의필요충분조건…394
말할수있는믿음의온기…399
그렇게걸어가는게우리매일의삶…404
있는그대로받아들이기위하여…409
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는복이많다…414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예술에기습당한인생

남들은취미로감상하는예술을전문적으로비평하는일을업으로삼았다.어쩌다이런선택을했나자책할때가없지않다.그러나어차피나는이렇게살수밖에없는인간이아니었을까.그런체념인지긍정인지모를생각을자주한다.예술에관해말하거나쓰는일말고,다른일을평생하라고한다면(다른일도좀해본적있다)그시간을계속버텨낼자신이없다.의심많은성격탓이겠지.한가지진리를확신하는타입이었다면종교인이됐을테다.천성이회의적인나의안테나에는명확한답을전하는신학보다는,복잡한질문을던지는예술주파수가또렷하게잡혔다.
예술은명확한답이아니라복잡한질문을던진다고썼다.그도그럴것이아무리예술을많이접해도실용지식은쌓기어렵다.예컨대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을탐독해봤자자격증따는데는전혀도움이안된다.랭보의『지옥에서보낸한철』을독해하는실력은주식이나부동산투자를잘하는능력과하등상관이없다.많은사람에게감화를준자기계발서『성공하는사람들의7가지습관』에적힌간명한가르침에대해서도예술에빠진사람은의문을품는다.성공의정의부터애매하잖아!그걸측정할수나있는거야?이같은삐딱한성향을가진사람일수록예술과친해지기쉽다.
데카르트는모든것을의심한끝에사유하는주체를발견했으나,나는아직아무것도결론내린게없다.영영결론내리지못할거라는예감만든다.그런데뒤집어보면바로그렇기때문에일생을예술과동행할수있을거라는묘한위안을얻는다.출구없는미로에엔딩은없을테니.예술계중심부(?)에서활약하는영향력있는인물이되지못한채,그언저리만맴돌다잊히게될확률이훨씬크다는사실정도는안다.그렇지만어떡하나.세상에인정받지못하고잊히든말든그것은내소관이아니다.그러거나말거나나는예술에관해말하거나쓰는일을포기할마음이없다.
말할기회가없다면개인채널을만들고,쓸지면이없다면블로그에올려야지.각오라고표현하기에는거창하지만그렇게되뇐다.유명인이되지못해도,안정된삶을누리지못해도,예술에관해말하거나쓰는일이내삶의거의전부라서그렇다.과장하거나폄하할것도없다.그저이를내삶과일치시키고자했을뿐이다.스스로삶을놓아버리지않는한,이대로어떻게든살아가는수밖에없다.혼자만의결심은아닐것이다.대부분의예술가혹은예술가지망생들이그럴테지.부디부귀영화를누리려고이길로뛰어든어리석은자가없기를!
여타분야도마찬가지겠지만,자기이름을알릴수있는예술가는백명중한둘에지나지않는다.예술가지망생이라면더말할것도없다.부귀영화를성공기준으로잡는다면극소수를제외한나머지는처참한실패를예약하고있다.나는예술가지망생에게,실은나에게,다음과같은전언을들려주고싶다.‘당신은(나는)세속적성공을성취하는데실패했을지언정인생전체를실패한게아니다.오히려당신은(나는)누구보다성공한인생을살았는지도모른다.’궤변?글쎄,나는여기에근거를두고있다.영문학사에족적을남긴작가E.M.포스터가장편소설『하워즈엔드』에쓴구절이다.
“우리는엄청난노력과용기를기울여서오지도않을위기에대비한다.가장성공한인생은산이라도옮길만한힘을낭비한인생일것이다.그리고가장성공하지못한인생은준비없이기습당하는인생이아니라,준비하고있는데기습이닥치지않는인생이다.”예술가로살기란달리보면“산이라도옮길만한힘을낭비한인생일것이다.”E.M.포스터는이편이열심히“준비하고있는데기습이닥치지않는인생”보다낫다고평한다.반박하는사람이있겠으나나는그의통찰에동의한다.준비없이예술에기습당해서다.허송세월한다고세간으로부터비난받는,준비없이예술에기습당한이들역시그럴것이다.
영화도준비없이나를기습한예술이다.영화는시간과윤리를성찰하는방식에대해서,문학과는또다른형태의고민으로이끌었다.그럼에도늘문학하는마음으로영화를보았다.문학하는마음이란특정한사건과마주한등장인물,그리고그들을바라보며일어나는독자의감정을아울러살피려는태도를뜻한다.거기에바탕을두고‘당신의독자적인슬픔을존중해’를표제로삼았다.슬픔이라는단어를썼지만이것을기쁨으로바꿔도무방하다.슬픔과기쁨을포함한우리가느끼는모든정서는그자체로독자적이고존중받아마땅하다.다름을같음으로환원하려는폭력이만연한시대일수록그가치는빛난다.
그러한입장에서예술은보는것이아니다.읽는것이아니다.탐식하는것이다.근사한언어를꼭꼭씹어삼킨다.거기에담긴창작자의사유로다시생각을공글린다.그럴때나는나의깜냥보다넓고깊으며집요한사고를할수있다.이것을내삶과연결된언어로풀어내지않으면안된다고느낀다.소설가보후밀흐라발의말마따나‘너무시끄러운고독’때문일것이다.타인으로인해생겨나는외로움과달리,자기자신으로인해발생하는고독은결코조용한법이없다.누군가고독에서고요를떠올린다면,그는고독의한가운데에아직들어가본적없는사람임에틀림없다.
고독의한가운데는소란스럽다.나의그곳에는그동안쌓인언어들이웅성댄다.고독을탐색한결과물이므로이글은감독과영화를설명하는데목적을두지않는다.그러나혼자만의공상으로그치지도않는다.이를테면이는당신이느끼는고유한서정에가닿을것이다.언어행위는무언가가지금여기에없음을자각함으로써,그것이존재했고혹은여전히존재함을증언하는일이기에그렇다.어떤가하면나는문학하는마음,그중에서도시를읽는마음으로영화를보았다.시적자아로영상언어를탐식했다.일상적자아는일상을의심없이적응하도록하는데비해,시적자아는일상의균열을발견하고주변인으로남도록한다.
그렇게이세상에서딴세상을살기가녹록하지는않다.하지만이쪽영화와저쪽영화를왕래하는움직임속에서마치나는두개의세계를동시에사는듯한기분이들었다.덕분에양쪽의현실을전부긍정하지는못해도존중할수있게되었다.나의수선스러운고독에서출발하여당신의심연에도착하려는쓰기의모험역시그러지않을까.책을쓰는사이영화같은일이나에게실제로일어났다.짝을만나가정을이뤄아이를낳아기르는생활은스크린에서만보아오던낯선장면이었는데,이제는일상이된것이다.2022년여름평생의반려가되기를약속한도연,2023년봄우리의딸로와준시율로인해,영화같지않던나의세상은어느새영화가되어있었다.언젠가세상은영화가될것이라던철학자의선언이나에게는이렇게실현된셈이다.언제나예술은인생을기습한다.

2023년여름의끝자락을지나며
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