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들은 무엇에 충성하였는가 (정치군벌 하나회의 살아있는 망령)

그 남자들은 무엇에 충성하였는가 (정치군벌 하나회의 살아있는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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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정희 친위대, 하나회의 대한민국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현대사는 곧 내란의 역사였고, 그 역사는 다시금 반복되었기에

하나회 척결 당시 군부의 심장을 파헤쳤던 기자 김재홍,
2024년 12월의 계엄과 내란 사태를 정면으로 조준하다
군인이 지배하는 세상은 끝난 줄 알았다. 30여 년에 걸친 군부 통치가 끝나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래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하나회를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해도 되는가? 아니다. 2024년 12월 3일 국회의사당에 들이닥친 특수부대의 무장병력은 우리에게 거대한 의문을 남겼다. 윤석열이 저지른 일은 대체 어떤 토양 위에서 가능했던 것인가? 그는 무엇에서 영감을 얻었는가? 대한민국은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던 것인가? 그가 헌법을 유린하고, 국회를 포위하며, 군대 내의 자기 친위세력과 함께 내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근원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답은, 하나회에 있다. 하나회는 역사 속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 동지’와 권력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충성했던 정치군인들을 이번에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정치군벌 하나회는 1951년 6·25 전쟁 중에 군대 징용을 면하고 입교한 4년제 정규 육사 11기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권복동, 손영길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다. 대통령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부터 키워온 ‘친위대’이자 지하 사조직인 하나회는 군부 내 실세 집단이었고, 이 나라의 군대의 요직을 차근차근 찬탈한 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살상, 진압의 내란을 감행했다.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자 하나회는 1980년대 정치체제를 실질적으로 조형하고 지배했다. 5공은 말 그대로 ‘하나회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재홍은 말한다.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운위하고 비상 입법 기구를 구상했던 것은 전두환이 이끌었던 하나회 내란의 모방 그대로였다고. 그가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수도방위사령부와 방첩사 병력을 한데 집결시킨 것 역시 특수부대를 거침없이 동원했던 12·12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윤석열은 2021년 대선 캠프를 통해 하나회의 전성기를 이끈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과 연결되고, 12·3 내란의 기획자였던 김용현, 노상원 등 그의 카르텔은 하나회의 주요 멤버들이 주도한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의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에 출연했다. 즉,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군벌 하나회 소속 고위 장성들은 이번 내란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래도 하나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을 것인가?

김재홍은 1993년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척결’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서 군부에 관한 수많은 특종을 쏟아내며 정부의 군대 개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이 나라의 정치체제 그 자체였던 군인들이 밟아 온 과거의 역사에 12·3 비상계엄 사태의 모든 것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 정치군벌이 어떤 식으로 나라를 지배해 왔는지를, 그 역사의 치명적인 지점들을 철저히 복기했다면 윤석열의 폭주를 시작부터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하나회에 관한 첫 심층적인 분석서, 『그 남자들은 무엇에 충성하였는가』를 읽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한국의 독재자들과 정치군인들이 수십년간 되풀이했던 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행위’를 면밀히 복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추악한 역사가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며, 진정 뼈아프게 대면하고 반성한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재홍

저자:김재홍
1950년전라북도익산에서태어나서울대학교정치학과에서학사·석사·박사학위를받고미국하버드대에서니만펠로십을수료했다.1971년10월15일박정희정권의위수령발동당시서울대문리대대의원회의장으로활동하다가캠퍼스에서불법체포됐으며,경찰과중앙정보부에서모진고문조사를받은뒤군에강제입영됐다.
동아일보기자로일하던1980년4월17일동아일보기자일동의이름으로발표한‘자유언론선언문’을작성했으며5·18광주민주화운동을보도하기위해보안사의기사검열거부등언론자유투쟁을벌이다강제해직을당했다.현재80년해직언론인협의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
1988년2월동아일보에복직해정치부차장과논설위원을지냈다.국회,정당,통일부,외교부,국방부와군의출입기자로일하면서‘정치군벌하나회’를파헤쳤다.군부와권력의유착관계에관한성역없는취재보도로1993년1월관훈언론상을수상했다.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교수,한양대특훈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총장,한국정치학회상임이사,한국정치평론학회초대회장과이사장등을역임했으며,노무현정부의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제17대국회의원(문체위간사겸법안심사소위원장),국회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회회장,방송통신위원회상임위원-부위원장등을역임했다.현재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석좌교수로재직하면서ESG실천국민연대상임의장,유신청산민주연대상임대표를맡고있다.
주요저서로는『한국정당과정치지도자론』,『한국정치와현대정치사상』,『군부와권력』,『군1:정치장교와폭탄주』,『군2:핵개발극비작전』,『박정희의후예들』,『박정희유전자』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

제1장그들의총구가향했던곳은

제2장정치장교비밀결사의시작

제3장사조직이나라를집어삼키다

제4장‘하나회공화국’의탄생

제5장동트기직전이가장어둡다

제6장‘부정’과‘비상사태’의뿌리를찾아

제7장과거는현재를구할수있는가

출판사 서평

유린된헌법,포위된국회,폭동과테러,권력자를둘러싼카르텔….

‘하나회’라는이름의욕망,대한민국정치를흔들다
정치군인들이대한민국에남긴상흔을되짚는치밀한기록

“역사는반복된다.그렇지만동시에조금씩나아간다.”

우리는지난2024년12월3일을여전히생생하게기억하고있다.밤은지나갔어도누군가는트라우마로,또다른누군가는형체가없는악몽으로그순간을머릿속에새겼다.윤석열전대통령의비상계엄선포와국회진압은순식간에이루어졌다.평온하던일상이독재체제의산물로뒤바뀌는데에는오랜시간이걸리지않았다.필요한것은“비상계엄령을선포한다.”라는말한마디뿐이었다.전국민의삶을어떻게그리도쉽게놀음판에올릴수있었을까.비민주적이고비상식적인판단이실현가능했던것은그에게‘권력’이라는통행증이있었기때문이다.그리고그날밤,비상계엄과권력의증표로‘군부’가우리앞에나타났다.

국민을지키고나라를수호해야할이들이시민을향해총을겨눴다.국회를부수고국회의원을체포하려했다.국민의뜻을대표하는국회가부서지고시민들이군인들과몸싸움을벌이다쓰러지는모습을실시간으로지켜보면서,많은사람들이공포와불안에시달렸다.어두운역사로남은1970년대의유신쿠데타가눈앞에서펼쳐지고있었다.비상계엄선포가어떤재앙과붕괴를불러오는지,무력(武力)이개개인의삶을어떻게진압하고억누르는지,지난시절을겪은사람도,겪지않았던사람도모두알았다.민주주의의역사가퇴보한다는호소가곳곳에서빗발쳤다.그러나야만의시대였던과거가억지로재현되었던것이아니다.그저정치적메커니즘을따라반복된현상이었을뿐이다.이거대한파동을본격적으로일으킨것은다름아닌정치세력‘하나회’다.지난2023년개봉한천만영화〈서울의봄〉을통해‘하나회’는국민앞에30여년만에새롭게호명되었다.그리고얼마지나지않아우리는하나회의또다른얼굴을목격했다.

저자김재홍은대한민국정치사의흐름을몸소겪어왔다.하나회를중심으로대한민국군의역사를누구보다촘촘하게파고들며군부내부조리와정치공작문제등을가감없이파헤쳤다.기자라는직업정신은민주주의의불씨를그의품에안겼다.1980년대말부터1994년까지취재한내용을바탕으로『군부와권력』,『군1:정치장교와폭탄주』,『군2:핵개발과극비작전』등을펴냈다.정권이바뀌었어도그직전까지이어져왔던군벌정치에대한국민의분노와관심은해소되지않은상태였을것이다.이를증명하듯『군』시리즈는1994년당시누적25만부를판매하며당대를휩쓸었다.『군부와권력』으로1993년관훈언론상을수상하기도했다.동시에그는5·18광주민주화운동을보도하기위해언론자유투쟁을벌이다강제해직을당했던독재와권력의산증인이기도하다.

김재홍은관훈언론상을수상하며“권력에의한언론인강제해직의쓰라린경험이언론계공유의자산이되고역사적교훈으로남기를기원한다.”라고말했다.그의바람이2025년에서야이루어질것이라고누가예상할수있었을까.군부독재시절의그림자가여전히우리사회에드리워있다는것을알게된이상,그는지나간줄알았던이야기를다시꺼낼수밖에없었다.그는자신이집필했던세권의책을2025년의시점에맞게새로펴냈다.기자이자한나라의시민으로서치밀하고집요하게군부의심장을두들겼고,군의어제와오늘을한권에총망라했다.

군인들은언제부터시민들에게존경이아닌공포의대상이되었는가?군인들은언제부터자신들의뜻대로권력을휘두를수있는집단이되었는가?군대는더이상국가를지키는울타리가아닌가?반세기에가까운시간동안군에대해고민하고성찰한김재홍의글은우리에게도같은무게의책임감을안긴다.군인이거나군인이아니든지간에,똑같은한나라의시민으로서대한민국의민주주의를어떻게지켜낼것인지에대하여.

권력은‘하나’의길로통한다
정치장교비밀결사‘하나회’의탄생

대한민국임시정부가수립된이래,군의기능과역할은국가세력을지지하고나타내는핵심적인집단으로표명되어왔다.휴전국이라는입장과징병제까지더해져군의역사는대한민국의역사라고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군은‘상명하복’체계에가장엄격한조직이기도하다.폐쇄적인조직일수록상명하복의질서를철저히따르게된다.전시와같이생명이오가는극단적인상황에서는명령에무조건복종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그런데실제로군이생사를넘나드는임무현장에뛰어드는경우가흔하지않은시대에‘체계’로만남은상명하복은군부내에기이하고수직적인문화를형성시켰다.

모든군이권력중심적이라고할수는없다.‘나라의간성(干城)’이라는말처럼,나라를지키는방패와성벽으로서직업적소명을위해자신의삶을국가에충성하는군인들도적지않을것이다.그럼에도군이부패했다는문제가끊임없이제기되는데에는국가안보가아닌다른요소들이그자리를채웠기때문이다.진급이나보직경쟁,수직적인위계질서등도간과할수없겠지만군내금기사항이던사조직을결성하며친위세력을키운‘하나회’가모든문제의중심에있었다.

하나회는북극성회라는모임에서5·16쿠데타이후가지를뻗었다.육사간의전우애를다지기위한총동창회성격으로만들어진북극성회는1972년박정희가군내세력에위협을느끼고해체를지시했으나,하나회는수면아래에서자신만의세력을길러가고있었다.육사11기영남출신서클인전두환,노태우,김복동,최성택등의인물이하나회의시작을알렸다.그들은5·16쿠데타의주체세력이던8기들에대한불만이있었다.8기중에박정희대통령과동향인영남출신인물이없었다는점까지거슬렸다.자신들의입지를높이는데방해가된다고여겼던것이다.이에7·6친위쿠데타를계획하고실행했으나미수에그치고만다.그러나이후에도후배들을영입하며지속적으로권력을향한욕심을저버리지않았다.이들의관심은오직진급과보직이라는현실적욕구충족에쏠려있었다.

우리는여기서다시한번익숙한그림을떠올린다.바로‘충암파’,‘윤석열사단’이라고불리는그인물들이다.조직내사적파벌을만들어권력을장악하고자했고,비상계엄을주도하기까지한이들을하나회와겹쳐보지않을수없다.카르텔을형성해권력을장악하고,무력으로체제를유지하려는흐름은마치평행이론처럼오늘날의사태를잇는다.시대가변해도권력을향한개인의욕망과군을동원하는방식은변하지않았다.저자는하나회의탄생과정과몰락의서사를‘예언’하듯기록하며미래의우리에게끊임없이외치고있었다.하나회의보스이자대통령이었던전두환이마침내국가권력을장악해‘하나회공화국’을이룬과정에어떤음모와희생이있었는지,화려하고눈부신계급장은또얼마나허무하게-민주주의라는심판대위에서-바래지는지말이다.

권력의별이지고민주주의의태양이떠오르다
5공청산과하나회의황혼,국가는무엇을잃고또얻었나

하나회는전두환과노태우두명의대통령을배출했으며이후집권당의사무총장,정부장·차관,국회의원,청와대의정무수석과사정수석,해외공관장대사,국영기업체사장등두루요직을차지했다.이시기의하나회는군부내사조직을넘어사회의각영역을지배하고군림했다.이들의배타적이고지배적인성격은박정희체제와도맞닿아있다.

박정희는5·16쿠데타로정권을잡은뒤대통령중심제로헌법을개정하면서모든국가권력을대통령한사람에게집중시켰다.그렇기에박정희의신임을얻는것이정치군인들사이에서는무엇보다중요했다.권력자와의학연이나지연,신임도에따라권력이분배됐다.반정부적인발언을하거나행태를보이면노골적으로폭행하거나강제로보직을빼앗았다.말그대로의‘공포정치’시대였다.하나회는일종의‘박정희친위대’로서박정희를보좌하고따랐고그의체제를고스란히흡수했다.박정희의신임아래하나회는정치군벌이라는입지를다지며지금우리가기억하는모습의원형을잡았다.

박정희대통령이살해된후,전두환보안사령관의주도로5공정권이세워지며하나회의독무대가펼쳐졌다.누구도하나회의위상과세력에반기를들수없었던‘하나회공화국’이세워진것이다.하지만하나회의위상은그들의어깨위에얹은별처럼영원히빛날수는없었다.국가권력을찬탈하겠다는목적으로뭉쳐원하는바를어느정도이뤄냈지만,피라미드의꼭대기에이름을올릴수있는사람은한사람뿐이다.직위가높아질수록자리경쟁은치열할수밖에없다.한때동지였던그들이서로를겨냥하고끌어내리기위해싸우는것은어쩌면예견된일이었다.

그들이황금기를누리는사이,기나긴독재체제를겪어야했던국민은강압적인통치와군에대한반감을차곡차곡쌓아가고있었다.1985년2·12총선거를통해창당한지채1개월도되지않은신민당이제1야당으로급부상한데에는군사정권의독주를멈추고자하는국민의바람이깃들어있었다.본격적으로직선제개헌운동이일어난것도이시기부터다.

때마침1986년어느예비역이5공체제에대한정신교육에야유를보냈다가폭행당해사망한‘안양예비군폭행치사사건’이일어났고,이사건을무마하기위해모인술자리에서군고위장성들과당시여야위원들이한바탕몸싸움을벌인‘국방위폭행사건’이일어나며5공정권의위세는속절없이흔들리기시작했다.이에정부는북한측의수공위협에대응할‘평화의댐’을건설하겠다고발표하며국민의관심사를돌리려했으나,6월민주항쟁의불꽃을끝끝내피하지는못했다.

6공정권이‘5공청산’에앞장서며하나회의끈을잘라내려했지만,군벌알력은여전했다.노태우역시육사생도시절부터전두환을뒤따랐던하나회출신인물로서,이미깊게자리한지배권력과부정부패의덫에서벗어날수는없었던것이다.1992년이지문중위의양심선언을시작으로무장군인이지켜보는가운데공개적으로투표를진행하거나,협박과무력으로표를조작한군내부정선거제보가쏟아졌던것이바로이시기다.이렇게군벌정치에대한반감과저항감은군내외적으로점점들끓다가1992년제14대대통령선거를통해터져나왔다.

학연과지연에기반한친목카르텔,군권력남용,부정선거와비상계엄….군벌정치라는이름의정치적폐단은과거의한페이지에그치지않았다.잠재되어있던권위주의는30여년만에다시고개를내밀었다.대한민국정치의민낯을실시간으로목도하면서,군사독재시절과의유사성에많은국민이공포와불안에떨었다.이러한사실은미래를절망적이고비관적으로바라보게만들기도한다.무력(武力)앞에무력(無力)감을느끼는것은당연한심리다.그러나저자의기록은정치군인들의어두운일면만을비추지않는다.우리는김재홍의시선이군부에서시작해어디에도달하는지다시한번살펴봐야한다.독재도,5공과6공도마침내지나갔으며윤석열전대통령은내란우두머리혐의로파면당했다.
군이라는막강한조직을등에업고권력을누리던그들조차끝끝내지배할수없었던것은바로민주주의를향한국민의‘의지’와‘희망’이다.

우리가우리를구할방법은이미정해져있다
“이기상과이맘으로”‘민주주의’와‘충성’의의미를되돌아보다

군사와검찰카르텔이만들어낸정권들을거치면서도민주주의는몇번이고고개를들었다.피와땀으로,횃불로,응원봉으로대한민국정치의심연을겨누고비췄다.우리가역사를통해배운것은쿠데타를모략하고권력을꾀하는방법이아니라민주주의는소수의힘에지배당해쉽게무너지거나퇴색되지않는다는것이다.아무리시간이걸려도기어이민주주의를회복하는이땅의생명력은정치군인의뿌리만큼이나깊고,질기다.

1992년에이지문중위가있었듯,2024년에는홍장원,곽종근,조성현이있었다.“싹다잡아들여”라거나“국회의원들을끌어내라”라는상사의명령에무조건따르지않고재검토를요청하거나대기하면서비상계엄사태를판단하고자했다.덕분에12월3일의밤이더큰불길로번지지않을수있었다.

그들은군수뇌부이면서도‘상명하복’이아닌‘나라에충성한다’는군인정신을따랐다.군인이국가에충성한다는것은“이나라의근본적인정의를믿고,헌법적인정신을믿으며,이나라의국민을믿는다는것을뜻한다.”요약하자면,한나라의군인이자국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