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산문

전쟁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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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전쟁 글쓰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전쟁 산문』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플라토노프의 소설이 아닌 산문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쟁 산문』은 2차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한 작가가 가족에게 쓴 편지, 단편, 오체르크(실화 기반의 짧은 이야기), 르포 등을 엮은 ‘플라토노프의 전쟁 글쓰기’이다. “소비에트의 조지 오웰”,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로 칭송받는 소설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이지만, 작가가 “소비에트 최고의 산문작가”라는 것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 산문』은 작가의 ‘전쟁 산문’ 9편과 아내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전쟁과 문학’을 고민하고, 당시 전쟁터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편지를 실었다. 플라토노프가 전쟁에 자원하여 이 작품들을 쓴 1942년-1945년은 작가가 장인과 아들의 죽음을 겪은 비극적인 시기와 겹친다. 특히 대숙청의 시기에 시베리아 유형에 끌려갔다가 이때 얻은 폐병으로 하나뿐인 아들이 사망한 사건은 작가에게 너무나도 큰 불행이었다. 이 일은 ‘전쟁 산문’의 글쓰기에서 보여준 ‘전쟁’과 ‘적’, ‘악’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에 이어 작가를 삶의 영속성, 영혼의 부활이라는 오랜 주제로 돌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전쟁 산문』은 2022년 2월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인 ‘러-우 전쟁’을 환기시킨다. 2차세계대전에서 피해자였던 러시아의 입장은, 이제 뒤바뀌어 러시아를 침략하고 유린했던 나치 독일과 다를 게 없어졌다. 이런 까닭에 반세기가 넘게 지났음에도 이 기록은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산이 아님을, 지치고 병든 현 인류에게 어떤 지표가 되어줄 것인지를, 『전쟁 산문』에서 방황하고 있는 러시아의 아버지를 잃은 아이, 자식을 잃은 어머니, 불구가 된 청년들을 통해 우리는 보게 된다. 책 끝에는 상세한 작가 소개와 옮긴이 해설을 실었다. 각 작품의 첫머리에 실린 플라토노프 연구자인 옮긴이의 ‘작품 소개글’은 철학성이 짙게 배어 있는 작가의 작품 읽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안드레이플라토노프

안드레이플라토노비치플라토노프(АндрейПлатоновичПлатонов,1899-1951)는1899년러시아남부의도시보로네슈근교의역참마을에서태어났다.가난한철도노동자의맏이로태어난작가는어린나이에노동현장에뛰어들어야했다.그는철도대학에서엔지니어교육을받았고,시와산문을쓰면서문학에몰두했다.
스탈린체제가견고히자리를잡아가던1920년대후반플라토노프는더욱적극적으로자기시대의초상을그려냈다.『체벤구르(Чевенгур)』,『코틀로반(Котлован)』등의대표작들도이시기에집필되었다.하지만동시대유토피아의허상을겨냥한날카로운풍자는문단안과밖권력자들의눈에거슬렸고,작가는스탈린의직접적비난까지도감내해야했다.1930년대플라토노프는창작을계속했지만,문단의주류로부터는점점멀어졌다.
2차세계대전이일어나고종군기자로참전했던플라토노프는최전선에서전쟁을목격하고증언했다.이때의작품들은전쟁이라는현상자체보다는전쟁을추동하는힘에주목하고있다.전후발표된중편소설「귀향(Возвращение)」에서플라토노프가그려낸귀향을망설이는이바노프대위의모습이사회주의전사의긍정적전형에적합하지않다며작가는다시엄청난비난을받았다.제대로지면조차얻지못한채타격을입은작가는1951년쓸쓸히생을마감했다.
플라토노프에대한평가는사후점차로바뀌었는데,초기단편작품들과‘전쟁산문’작품들을중심으로1960년대부터주목받기시작했다.그의‘전쟁산문’은인류사가장비극적인전쟁인2차세계대전에대한중요한증언이자악과증오의본질에대한심오한관찰로,역사적,철학적관점에서도큰의의를지닌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플라토노프는완벽히복권되었으며,20세기소비에트문학을대표하는작가로평가받고있다.

목차

아내와아들에게보내는편지

영혼이없는적
작은병사
죽은자들의요청
철갑
할아버지병사
텅빈영혼
로자아가씨
니키타
바람의농부

옮긴이의말
작가소개
편집후기

출판사 서평

“플라토노프는진실로전쟁을이해한몇안되는작가이다.”
-빅토르베르스타코프·러시아시인,저널리스트

“20세기러시아문학에서안드레이플라토노프는가장독창적이고예민하며,모든사건에가장민감하게반응하는작가중한명이다.그는위대한작가의반열에줄서지않고홀로우뚝서있다.그의별은반짝이지않고슬프게타오르는데,그런별들은어떤일이있더라도오랫동안타오르면서선량한빛을내뿜는다.”
-발렌틴라스푸틴·러시아작가

“갈등과증오,폭력과전쟁이라는위기상황을반복적으로맞고있는21세기의인류에게20세기의역사는과연아무런해답을줄수없었는가,우리는왜익숙한과거를반복하는가,라는질문에대한대답으로서플라토노프의‘전쟁산문’은여전히유효할수밖에없다.”
-옮긴이

“생각해보시오,포격소리를들으며수천의사람들이지하에숨어있고,수천의눈이앞을내다보고수천의심장이뛰고있소.그러면울컥하는감정의물결이가슴에밀어닥치고나도모르는사이에이상한감동과분노의눈물이턱을따라흘러내리오.”
-「아내와아들에게보내는편지」에서

“한번은내게도사건이일어났소.독일군들이기차역한곳을폭격한거요.우리는모두열차에서뛰쳐나왔다오.나도역시.모두바닥에엎드렸지.나는늦어서선채로번쩍이는로켓을목격했다오.폭격을피해엎드릴틈이없어서나무에머리를부딪쳤는데,다행히머리는멀쩡하오.하지만한번도아픈적이없었던머리가이틀동안아팠고,코피가쏟아지면서이사건은마무리가되었다오.”
-「아내와아들에게보내는편지」에서


나치와파시즘,언어없음,영혼없음,사유없음

플라토노프가전시에여러지면에발표하기도했고,출판도되었던‘전쟁산문’들은작가의전쟁을바라보는시각을투명하게담고있다.하지만그의‘전쟁산문’은승리의환희와숭고한희생으로수렴되는소비에트전쟁문학의보편적흐름과는구별된다.플라토노프의‘전쟁산문’에서찾을수있는것은러시아의위대한승리와그에따른영웅담이아니라죽음으로내몰린병사들,전쟁으로가족을잃은사람들이겪는고통과절망,‘출구없는’비극이다.
「죽은자의요청」은성모이콘을의미하는제목으로,“아들을낳아생명을부여한”어머니가죽은아들을되살릴힘을주는유일한존재임을,죽은자의불멸과부활에대한열망이플라토노프에게여전히유효함을보여주는작품이다.죽은어머니는그렇게보편의어머니가되고,작품말미홀로살아남아그녀의죽음을맞는러시아병사는불멸의기적을누릴존재로여겨진다.
「텅빈영혼」에서독일군에게아버지를잃은소년은파시스트가누군지엄마에게묻는다.‘나’는이들의대화를듣게되고,독일장교포스를포로로잡은‘나’는그가소년의아버지를죽이도록명령한장교일수도있다고추측한다.이작품에서포스의대답은파시즘의확산과대량학살이가능했던이유를보여준다.포스의대답에는학살자와평범한관료가같은얼굴을가지며,평범한시민이파시스트가될수있었던과정이드러나있다.이는한나아렌트가‘악의평범성’이라는개념을통해언급한것으로,‘텅빈영혼’의포스는한나아렌트의눈에비친아이히만의모습과도일치한다.
말과사유,영혼의유무에대한이와같은이분법은『전쟁산문』에서계속된다.「영혼이없는적」에서작가는각자부대에서이탈하여적과일대일로만난두병사의대결이라는상황을제시한다.주인공은독일병사와목숨을걸고싸우면서도끊임없이대화를시도하고,그가왜남의땅,러시아로쳐들어왔는지를묻는다.하지만대화가거듭될수록주인공은독일병사루돌프의대답이암기된것이며,자신의사유와는아무런상관이없다는사실을알아차린다.이는‘흡사녹음기라도틀어놓은듯’타자의말을반복하는사유하지않는등장인물들의전형적유형으로제시된다.루돌프의형상에서역시한나아렌트가제시한예루살렘의법정에선아이히만의모습을찾아볼수있다.

“그녀는말없는자기아들들에게더가까이가기위해무덤의부드러운흙에다시금웅크렸다.그들의침묵은그들을죽인악랄한세상전체에대한비난이었으며,그들의어린몸의냄새와그살아있던눈동자의색깔을기억하는어머니들을위한슬픔이었다.”
-「죽은자들의요청」

“포로가되는것,죽는것,또는짧은기간살려두어노예가되는것.이것이우리를위한독일인의세가지유훈이었다.이세가지는결국죽음이라는하나의결론으로귀결될수있었다.”
-「텅빈영혼」에서


“힘보다악만큼이나견고한사랑이필요하다”

2차세계대전의전쟁터에서작가는또하나의거대한이념,파시즘을마주한다.유토피아에대한기대감으로마주했던혁명과달리파시즘은처음부터파멸을전제로,‘메마른영혼’이아니라아예‘영혼이없는’적의얼굴로다가왔다.작가의고찰처럼‘영혼이없는적’들의행위를가능케하는것은말과사유의부재였다.사유와언어는인간이살아있다는증거이지만,『전쟁산문』이담아내고있듯이파시즘은인간에게서언어를빼앗음으로써사유의가능성을제거했다.그리하여나치독일의침략과대량학살은범죄가아니라일종의자연스러운‘행정과정’으로행해질수있었고,그렇게‘영혼이없는’적들은러시아땅으로침략해들어왔으며,그들은필연적으로패배하고또파멸할수밖에없는존재였다.
플라토노프는『전쟁산문』에서스탈린이아니라러시아병사를,소비에트국가가아니라러시아와러시아대지에대한근원적사랑을이야기한다.플라토노프의‘전쟁산문’에서는평범한병사와어머니,노인과아이등이독특한생명력을지닌형상으로묘사되면서,적의손에파괴되지만동시에불멸의가능성을지닌존재로그려진다.젊은혁명가플라토노프에게‘불가능을가능하게하는’힘이사랑이었던것처럼,전쟁터에서평범한기계공을,농부를,노동자를불멸의전사로만드는것,그들이적을‘극복하게’하는것도역시힘이아니라결단력이며사랑이었던것이다.

“작가는전쟁을그저관찰한것이아니라전쟁속으로뛰어들었다.플라토노프는전쟁에서희생된사람들과그가족들의치유될수없는내적고통에주목했으며,사건을전달하기보다전쟁과악의본질에대한철학적고찰을시도했다.”
-옮긴이

“‘전쟁산문’에서히틀러와파시즘의얼굴로나타나는적을특정하기란어렵지않다.에피소드처럼보이는단편들에서작가는전쟁을추동하는원인에대한근원적질문을던지고있다.(…)플라토노프는파시즘이가능했던이유를사유의부재,스스로말할능력을잃어버린인간들에게서보고있다.‘텅빈영혼’이전쟁을가능하게한다는작가의고찰은아이히만의재판참관후‘악의평범성’이라는개념을통해사유와말의부재로악을정의했던한나아렌트의결론과도유사하다.”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