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찻물을 데운다(최은복 시집) (반양장)

다시 찻물을 데운다(최은복 시집)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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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시인의 말 】

뱉은 말은 사라지고
삼킨 말들이 남아
나중의 거기보다
지금 여기에 소망을 두고서

한 땀 한 땀
조각들을 그러모아
바느질하듯
나의 고백을 엮는다

2025년 유월
최은복
저자

최은복

蓮池 최은복 시인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15년 《문예시대》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현재 부산문인협회, 새부산시인협회, 부산문학인협회, 수영구문인회 회원 및 계간 《문심》 공동발행인으로 활동 중이다.
《수영문예》 작가상, 작품상. 《부산시단》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시집 『다시 찻물을 데운다』를 발간하였다.

목차

차 례

시인의 말 … 3

1부 … 가끔 문을 닫고

꽈리, 꽃등을 밝히다 … 11
해바라기꽃 … 12
꿈꾸는 참새 … 13
꽃말 … 14
어느 바다 … 15
순정 … 16
문득 빛나는 순간 … 17
가끔 문을 닫고 … 18
태풍, 그 후 … 20
골목 … 21
메밀꽃이 피면 … 22
다시 찻물을 데운다 … 24
12월의 아다지오 … 25


2부 … 당신의 바다

초항아리 … 29
장날 … 30
허기를 갈망하다 … 31
개똥쑥 … 32
장마 … 33
메주를 빚다 … 34
당신의 바다 … 35
솜사탕 같은 하루 … 36
위대한 순환 … 37
백일홍 이별 … 38
낮달 … 39
고구마의 기억 … 40
느티나무 … 42


3부 … 줄탁동시

줄탁동시 … 45
쉼의 소유 … 46
마른 꽃잎 … 47
쉼표의 위력 … 48
소금 … 49
8월 … 50
숲으로 초대하다 … 51
봄이 오는 풍경 … 52
꽃샘 … 53
현絃의 노래 … 54
사유의 시간 … 55
씨감자, 다시 처음 … 56
어디서든 꽃은 핀다 … 57
헌책 속에서 … 58


4부 … 수영로에는 강이 흐른다

축적의 시간 … 61
묵언수행 … 62
새벽 종소리 … 63
수영로에는 강이 흐른다 … 64
아우라지 별곡 … 65
간월암 … 66
꽃담 … 67
구두 수선공 … 68
요양병원 … 69
신문 … 70
못과 벽 … 71
두타연의 계절 … 72
능소화 연가 … 74
촛불집회를 보면서 … 75


5부 … 소리를 유영하다

각인되는 순간 … 79
가면 … 80
이름을 잃은 시간 … 81
숙명처럼 너에게 … 82
그 너머 … 83
소리를 유영하다 … 84
엘승타사르하이의 밤 … 86

해설 ⦁
상상적인 언어로 모색하는 비망록 … 87
- 차달숙 (시인, 수필가)

출판사 서평

【 해설 】


상상적인 언어로 모색하는 비망록
『다시 찻물을 데운다』를 읽고


차달숙 시인·수필가
(前 월간 《국보문학》 주간)

▣ 들어가면서

최은복 시인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15년 《문예시대》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부산문인협회, 새부산시인협회, 부산문학인협회, 수영구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문인협회 사무차장, 수영구문인회 이사, 부산문학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부회장으로, 계간 《문심》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다.
그는 수영구문인회에서 《수영문예》 작가상과 작품상, 새부산시인협회에서 《부산시단》 작품상, 부산문학인협회에서 동백시화전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근무 유공으로 한국문학신문 이사장상과 부산문인협회 회장상을 받는 등 성실성과 실력을 인정받은 시인이다. 이제 독자들은 최은복 시인의 책임성 있는 시 사랑과 역량을 그의 시를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최은복의 작품세계

1.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정신적 문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미 오랜 옛날부터 “시 삼백 일언이 폐지 왈 사무사”(詩 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며 우리가 시 삼백 편 정도를 익히고 읊으면 한마디로 마음의 삿됨을 없애준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시는 우리의 어지러운 마음을 위무해주고,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이처럼 시는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시를 가까이하고 시를 짓는다는 것은 창의적이며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로 확장하는 사고력에서 온다. 이렇게 시인이 자기 경험에서 오는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옮겨 놓으면 독자는 그 시를 읽고 공감을 더러 가지고 정서적 감응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눈을 뜨면 날마다 접하게 되는 세계를 새롭게 느끼게 한다. 보아도 느끼지 못한 것들이 들어도 감동으로 와 닿지 않던 소리가 새롭게 보이고, 새롭게 들리고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어 그만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따라서 최은복의 여러 시편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으로 시적 언어로 그려 내어 주위를 밝히고 있다. 먼저 여러 편의 시 중에서 몇 편을 골라 그의 창작 정신을 살펴본다.

최은복 시인의 첫 시집 『다시 찻물을 데운다』에는 6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제1부 「다시 찻물을 데운다」 외 12편은 삶의 의미를 새기는 소소한 일상, 아주 사소하지만, 재시작을 위한 여백의 시간, 새로이 출발한다는 마음의 의도를 담았다.
제2부 「당신의 바다」 외 12편은 부모님, 조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 보호받던 기억과 꿈의 힘, 마법 같은 상상과 희망, 무의식적 향수가, 그리고 시아버님의 이별에 대한 슬픔, 시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제3부 「현의 노래」 외 13편은 진정한 쉼의 의무와 가치를, 쉼표를 통해 여백 있는 예술과 사유의 깊이를 깨달음과 자연과의 교감하고 있다.
제4부 「아우라지 별곡」 외 13편은 관계 속에서의 상처와 책임, 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 전쟁의 상흔이 남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자연을 통해 회복과 평화를 희망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5부 「소리를 유영하다」 외 6편은 무심한 행동 속에 감춰진 본심을 비롯하여 표현하지 못한 감정, 과거 잔재, 시각장애인의 시 낭송 모습을 보고 반성한 일과 일상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느껴본 감정의 충만함 등이 아름다운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

2.
시는 문학의 어느 분야보다도 언어의 함축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최은복의 시 중에는 「장날」 「묵언 수행」 「해바라기꽃」 「태풍, 그 후」 등 7행 이내의 짧은 지 몇 편이 있다. 최은복의 짧은 시를 읽을 때 받는 강한 인상은 그의 작품이 갖는 청각 움직임에 따른 경쾌한 문장의 서술성이다. 짧은 시는 때로는 독자의 머릿속에 벼락을 치듯 전율을 안기는 힘이 있다.

파장 무렵
떨이로 유혹하는 난전에
버텨낸 하루가 웅크리고 있다

흑백 사진 속으로
울컥울컥
해는 넘어가고

- 「장날」 전문


심연을 향해 걸어가는 길

버려야 할 채움과 허기 속에
말의 고요를 심는다

가슴 짓누르던 천근 무게가
한 잎 풀잎처럼 덧없이 가벼워질 때

가장 맑은
내 목소리 듣는다

- 「묵언수행」 전문


한 생애를 머리에 이고 홀로서기 하는 동안
고고히 태양만을 사모하다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앓이

풀벌레 우는 시월 어느 날

알알이 맺힌 사연
미주알고주알 쏟아 놓는다

- 「해바라기꽃」 전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섬이 된 난파선 한 척

닻을 올리며 다시 바다에 기대어
망망대해 향해 불어올 바람을 기다린다

수평선 어디쯤
나를 기다리는 파도가 있을지도 몰라

- 「태풍, 그 후」 전문

위 인용 시 4편은 모두 6행, 7행의 짧은 시다. 그런데도 그녀의 시는 깨어 있는 의식과 언어 속도가 결합해 있다. 따라서 박진감과 입체감을 부여받고 있는 효과를 드러낸다. 감정이나 의식 속도와 경쾌한 서술 형식이 거의 일치하면서 시의 표현 효과를 기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작품의 밀도와 의식의 밀도가 괴리되지 않고 형상화를 이루기란 실제로 어려운 일이다.
6행 시 「장날」은 덧없이 사라진 하루. 버텨낸 하루의 고단함을, 7행 시 「묵언 수행」은 침묵으로 마주하는 수행이 깨달음의 시작이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6행 시 「해바라기꽃」은 오직 하나만 바라보고 헌신해 온 외로움. 품어온 슬픔을 토해내듯 해방감을 담아내는 데 손색이 없다. 6행 시 「태풍, 그 후」는 미래에 대한 시작의 기다림. 고난 후 새로운 기회를 향한 희망을 지향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았다.
시는 서사의 일종이긴 하지만 그 독특한 서술 양식이 갖는 수사적 전략으로 이야기의 결핍을 채워 넣은 장르이다. 이러한 결핍을 채우는 이야기는 비유, 함축, 생략, 압축 등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최은복의 짧은 시에는 속도감이 가세한 현실 의식이 반영된 함축성을 겸비한 시 창작 활동을 하는 점이 돋보인다.

3.
최은복 시인이 쓴 60여 편의 시를 살펴보면 먼저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리는 사모思母의 어조가 많은 부분을 관류하고 있음을 본다. 지극하고 애틋한 모녀 사이에 오가는 애정이 이 시집을 탄생케 한 계기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사모가思母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깊이 있게 다가오며, 모든 생명의 모태인 자연에 관한 관심과 사랑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최은복 시인이 사모가를 부르는 깊은 정한의 시는 「초항아리」 「장날」 「허기를 갈망하다」 「개똥쑥」 「메주를 빚다」 「당신의 바다」 「위대한 순환」 「고구마의 추억」 등이 있다. 먼저 「개똥쑥」과 「메주를 빚다」를 살펴 보기로 한다.

너를 만나면 어머니 향기가 난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의 아이
들꽃 같은 웃음이 아프게 스민다

혼절하듯 잠들던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 희미한 잔영을 떠올리면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당신의 치마폭 한약 냄새가 기억난다

강인한 향기 감춘 채 일렁이는
너를 만나면
다정하게 아가라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가을 들판에서 환청이 들린다

- 「개똥쑥」 전문
물항아리 채우는 소리로 어머니 행보가 시작된다

굵은 마디에 거친 나뭇결이 배인 손은
부뚜막 앞을 떠날 새 없이
무쇠솥단지 속 콩물이 흘리는 눈물 염원을 담아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모성의 절절함 빚는다

햇볕보다 먼저 익는 체온으로
한 덩이 겨울을 눌러 담고 바람 한 자락 얹는다

둥글어질 때까지
꾸덕꾸덕 굳어질 때까지
온몸에 푸른곰팡이 돋을 때까지
묵묵히 흐르는 시간
투박한 삶의 무게 내려놓지 못하는
처마 밑 풍경

저물어 가는 노을은
어머니의 세월을 삭히고 있다

- 「메주를 빚다」 전문

여자는 언젠가 어머니의 딸이 되었다가 성장하여 출가하면 자식을 낳아 기르면 누구의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여자는 약해도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는 저절로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모성적 보호 본능이 일어나면 그 어떤 위험과 고난 속에서도 자식을 지켜내는 힘이 생겨난다. 모든 생을 견디고 품어내고, 조용히 식어간다.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의 시간을,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모성의 향기에 뒤늦게 깨닫고 가슴에 새기는 시인의 마음에 많은 독자가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평자도 화자의 시를 보면서 부모님께 못다 한 불효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하였다.

꿈이 없는 엄마 모습을 본다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윤회같이
그렇게 싫었던 당신 모습
어느 순간 나도 엄마처럼 하고 있다

등짐이 묵직한 이름의 생
파란으로 남겨진 굴곡의 결
지나온 흔적이 바느질 무늬처럼 새겨진 삶의 천 위에
틈마다 길이 되는 발자국

청춘을 내어준 모정의 뜨거운 기적이다

잇고 푸는 인연 따라
겹겹이 접힌 무게에 하현달이 사위어가고
같은 길 밟지 않을 거란 오기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까맣게 타버린 당신 가슴을 이해하게 되고
언젠가는 이해받게 되리라며 당신처럼 변해가고
딸도 결국은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 「위대한 순환」 전문

위 인용 시는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모성의 헌신과 운명을 잘 나타내고 있다. 뒤늦게 깨닫는 엄마에 대한 이해와 닮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