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작가의 말 】
타로의 門과 問, 동양의 길道과 동행한다
책을 쓰는 동안 수없이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걸었다.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말하려 했던 것들을 비로소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타로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하게 점술의 도구로만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로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낸 작은 우주, 인생의 변화와 순환을 비유한 철학적 상징으로 느껴졌다.
동양철학을 나름 공부해온 나에게 타로 일흔여덟 장은 마치 주역의 괘, 노자의 구절, 장자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문을 품고 있었다. 오랜 기간 질문했다.
“삶을 설명하는 언어는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 끝에서 동양철학과 타로는 마치 서로를 오래 기다려온 두 친구처럼 한 지점에서 만나 있었다. 처음에는 카드의 그림과 상징을 읽었다. 카드마다 담긴 의미를 배우고,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며, 그 안에서 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 타로가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드는 정말 답을 주는 것일까? 어쩌면 카드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나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78장의 카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78장 카드는 일흔여덟 개 門, 일흔여덟 가지 이상의 問이었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한다. 카드 한 장을 펼치는 순간, 그 문 앞에 선다. 그 문을 열기 전에 잠시 멈춰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또 하나의 '문'을 발견했다. 門이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라면, 問은 나 자신을 향해 열리는 문이었다.
타로를 오래 공부할수록 좋은 질문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질문이 달라지면, 같은 카드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질문이 깊어지면 결국 우리는 삶의 방향을 묻게 된다. 그때 자연스럽게 동양의 길道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양에서 길道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만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고, 마음의 방향이며,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가는 과정이다.
타로는 서양의 상징체계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탄생과 성장, 욕망과 사랑, 갈등과 상실, 죽음과 변화, 다시 시작하는 삶이 들어 있다. 동양의 철학 역시 오랜 시간 인간의 마음과 삶의 길을 물어왔다.
동양은 마음의 움직임을 통해 운을 읽고, 타로는 상징을 통해 길의 방향을 비춘다. 하나는 기氣를 통해 흐름을 해석하고, 다른 하나는 상징의 문양 속에서 인간의 무늬를 드러낸다. 이 두 세계를 이어보는 일은 내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통로가 되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나는 타로의 상징을 동양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동양의 지혜를 타로라는 또 하나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고 그 여정을 기록하고자 했다. 78장의 타로는 나에게 일흔여덟 개의 문이었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되었으며 고백이 되었다.
이 책은 타로의 의미를 정답처럼 설명하기 위한 책보다는 78장의 카드가 열어주는 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책이다.
門을 열고, 問을 만나고, 道와 동행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타로의 새로운 모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을 만난다. 열어야 할 문도 있고, 닫아야 할 문도 있다. 때로는 문을 열었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그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물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가 다음 길을 만들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정답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정답은 언제나 각자의 삶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 책이 자신의 문을 열어보는 작은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그 문은 누구도 대신 열어줄 수 없고, 어떤 지혜도 그 문을 넘어설 수 없다. 나는 ‘길을 찾는다’라는 말보다 ‘길과 동행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길은 우리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우리 안에서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닿는 문 하나씩 열어가다 보면 일흔여덟 개의 문이고 길이다. 어떤 문에서는 자신을 만나고, 어떤 문에서는 지나간 시간을 만나며, 어떤 문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자기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문 앞에서 각자의 질문을 만나기 바란다. 정답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이 책이 그 질문을 시작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타로의 門을 열고, 人生의 問을 만나, 동양의 길道과 함께 걷는 것.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 역시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는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 길도 우리를 걷게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길이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신 앞에 하나의 문이 조용히 서 있을 것이다. 당신이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의 길은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이 글들은 나에게 보내고 싶었던 편지이자 긴 사유의 시간 동안 말없이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공감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이 길을 동행할 독자에게 작은 등불이길 바라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6년 10월
문도재門道齋에서
예명옥
타로의 門과 問, 동양의 길道과 동행한다
책을 쓰는 동안 수없이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걸었다.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말하려 했던 것들을 비로소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타로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하게 점술의 도구로만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로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낸 작은 우주, 인생의 변화와 순환을 비유한 철학적 상징으로 느껴졌다.
동양철학을 나름 공부해온 나에게 타로 일흔여덟 장은 마치 주역의 괘, 노자의 구절, 장자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문을 품고 있었다. 오랜 기간 질문했다.
“삶을 설명하는 언어는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 끝에서 동양철학과 타로는 마치 서로를 오래 기다려온 두 친구처럼 한 지점에서 만나 있었다. 처음에는 카드의 그림과 상징을 읽었다. 카드마다 담긴 의미를 배우고,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며, 그 안에서 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 타로가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드는 정말 답을 주는 것일까? 어쩌면 카드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나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78장의 카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78장 카드는 일흔여덟 개 門, 일흔여덟 가지 이상의 問이었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한다. 카드 한 장을 펼치는 순간, 그 문 앞에 선다. 그 문을 열기 전에 잠시 멈춰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또 하나의 '문'을 발견했다. 門이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라면, 問은 나 자신을 향해 열리는 문이었다.
타로를 오래 공부할수록 좋은 질문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질문이 달라지면, 같은 카드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질문이 깊어지면 결국 우리는 삶의 방향을 묻게 된다. 그때 자연스럽게 동양의 길道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양에서 길道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만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고, 마음의 방향이며,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가는 과정이다.
타로는 서양의 상징체계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탄생과 성장, 욕망과 사랑, 갈등과 상실, 죽음과 변화, 다시 시작하는 삶이 들어 있다. 동양의 철학 역시 오랜 시간 인간의 마음과 삶의 길을 물어왔다.
동양은 마음의 움직임을 통해 운을 읽고, 타로는 상징을 통해 길의 방향을 비춘다. 하나는 기氣를 통해 흐름을 해석하고, 다른 하나는 상징의 문양 속에서 인간의 무늬를 드러낸다. 이 두 세계를 이어보는 일은 내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통로가 되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나는 타로의 상징을 동양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동양의 지혜를 타로라는 또 하나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고 그 여정을 기록하고자 했다. 78장의 타로는 나에게 일흔여덟 개의 문이었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되었으며 고백이 되었다.
이 책은 타로의 의미를 정답처럼 설명하기 위한 책보다는 78장의 카드가 열어주는 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책이다.
門을 열고, 問을 만나고, 道와 동행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타로의 새로운 모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을 만난다. 열어야 할 문도 있고, 닫아야 할 문도 있다. 때로는 문을 열었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그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물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가 다음 길을 만들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정답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정답은 언제나 각자의 삶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 책이 자신의 문을 열어보는 작은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그 문은 누구도 대신 열어줄 수 없고, 어떤 지혜도 그 문을 넘어설 수 없다. 나는 ‘길을 찾는다’라는 말보다 ‘길과 동행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길은 우리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우리 안에서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닿는 문 하나씩 열어가다 보면 일흔여덟 개의 문이고 길이다. 어떤 문에서는 자신을 만나고, 어떤 문에서는 지나간 시간을 만나며, 어떤 문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자기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문 앞에서 각자의 질문을 만나기 바란다. 정답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이 책이 그 질문을 시작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타로의 門을 열고, 人生의 問을 만나, 동양의 길道과 함께 걷는 것.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 역시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는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 길도 우리를 걷게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길이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신 앞에 하나의 문이 조용히 서 있을 것이다. 당신이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의 길은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이 글들은 나에게 보내고 싶었던 편지이자 긴 사유의 시간 동안 말없이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공감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이 길을 동행할 독자에게 작은 등불이길 바라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6년 10월
문도재門道齋에서
예명옥
타로의 문과 문 (동양의 길과 동행)
$2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