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49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23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49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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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이 지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돌아왔다면,
하고 싶은 것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로 제10회 푸른문학상을,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팬이》, 《이계학교》 등 여러 장르에 걸쳐 꾸준히 청소년소설을 써온 김영리 작가 신작. 특히 두 소년 소녀 사이에 장애, 가정폭력, 가출 등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녹여내면서도 단단한 플롯과 빠르고 리듬감 있게 오가는 대사,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으로 2016년 청소년이 뽑은 청문상을 수상한 바 있는(《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김영리 작가가 이번에 선택한 키워드는 바로 ‘타임 슬립’이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뭘 할 거야?

눈을 떠보니 5년 전 고등학교다. 그것도 2학기 기말고사 시간.
물론 답안지를 들고 있거나 정답을 기억하는 채로 돌아온 건 아니다. 5년 전 시험지를 기억하기는커녕 학교에서 멀어지려고 애썼으니까. 학교는 지옥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데도, 대체, 왜!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기도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내 머리카락은 까맣게 변해버렸고, 문신은 어디로 사라졌고, 나는 교실에 앉아 있는 걸까? 심지어 전교 1등인 애한테 커닝 의혹을 뒤집어씌웠다는 어처구니없는 누명까지 덮어쓴 채로. 이게 진짜든 말도 안 되는 개꿈이든 어쨌든 간에 학교는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학교를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선생님한테 붙잡히고, 교문이 막아서고, 심지어 자동차에는 시동이 걸리지조차 않는다. 시간을 뛰어넘는 영화들에서는 주인공이 미래에서 가져온 지식과 기억으로 과거를 바로잡던데, 나한테는 수능 답안지도 로또 번호도 쥐뿔 아무것도 없다. 그런 것들이 있다 해도 학교를 나갈 수조차 없고, 몸에 새겨진 영문 모를 숫자는 계속 줄어들기만 한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학교에서 대체 뭘 하라고? 화단에 풀이라도 정성껏 심어주라는 거야, 뭐야? 미래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했던 기억들, 과거로 되돌아오자 더 선명하게 살아나는 기억들뿐이다.
그렇다고 괴롭기만 한 타임 슬립이냐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가 생겼다. 아니, 친구를 잃지 않았다.
“진짜 미래에서 왔냐고 물었지, 믿는다고는 안 했어.”
“너 이름 바꿔라. 비호감 어때?”
“그럼 너도 이름 바꿔. 싸가지. 아니다. 사기꾼.”
비호감이지만 순한 리트리버 같은 애, 공부를 죽이게 잘하는 똑똑한 애, 그런 면에서 나와 다르고 또 힙합을 좋아한다는 면에서 나와 같은 애, 그리고 내가 모른 척했던 애.

저자

김영리

고려대에서국어국문학을전공했다.『나는랄라랜드로간다』로제10회푸른문학상‘미래의작가상’을받으며데뷔했으며,『치타소녀와좀비소년』으로2016청소년이뽑은청문상을수상했다.제2회삼성리더스허브문학상을받은판타지소설『시간을담은여자』와청소년SF소설『팬이』,동화『표그가달린다』등을썼다.

출판사 서평

시간을돌이킬수있다면뭘할거야?

눈을떠보니5년전고등학교다.그것도2학기기말고사시간.
물론답안지를들고있거나정답을기억하는채로돌아온건아니다.5년전시험지를기억하기는커녕학교에서멀어지려고애썼으니까.학교는지옥이었다.적어도내게는.

그런데도,대체,왜!학창시절로돌아가고싶다고정화수를떠놓고간절히기도한것도아닌데,어째서내머리카락은까맣게변해버렸고,문신은어디로사라졌고,나는교실에앉아있는걸까?심지어전교1등인애한테커닝의혹을뒤집어씌웠다는어처구니없는누명까지덮어쓴채로.이게진짜든말도안되는개꿈이든어쨌든간에학교는벗어나야했다.

하지만학교를빠져나가려는시도는번번이실패한다.선생님한테붙잡히고,교문이막아서고,심지어자동차에는시동이걸리지조차않는다.시간을뛰어넘는영화들에서는주인공이미래에서가져온지식과기억으로과거를바로잡던데,나한테는수능답안지도로또번호도쥐뿔아무것도없다.그런것들이있다해도학교를나갈수조차없고,몸에새겨진영문모를숫자는계속줄어들기만한다.나한테왜이러는건데?학교에서대체뭘하라고?화단에풀이라도정성껏심어주라는거야,뭐야?미래에서가져온것이라고는잊고싶었던기억들,잊고싶었지만잊지못했던기억들,과거로되돌아오자더선명하게살아나는기억들뿐이다.그렇다고괴롭기만한타임슬립이냐면,그건또아니다.친구가생겼다.아니,친구를잃지않았다.

“진짜미래에서왔냐고물었지,믿는다고는안했어.”
“너이름바꿔라.비호감어때?”
“그럼너도이름바꿔.싸가지.아니다.사기꾼.”

비호감이지만순한리트리버같은애,공부를죽이게잘하는똑똑한애,그런면에서나와다르고또힙합을좋아한다는면에서나와같은애,그리고내가모른척했던애.

책속에서

P.168
“생각해봐.내가학교로다시돌아온건세상이뒤집어질만한큰사건인데,너무소소하잖아.아까기회가있었는데도박근이랑연세희죽어라패주지도못했고,그렇다고경찰서에끌려간것도아니고.지금이게영화였다면우리중에누구하나감옥가거나피흘리면서끝났을텐데.너나나나이렇게앉아서뭐하는건가싶어서.”
“나한텐이게기적이야.날이해해줄사람이랑밑도끝도없이얘기하는거.난이걸로됐어.”
“꿈좀크게가져라.그게뭐냐.”
“지는.”
“나야뭐이미망했고.”
“뭘망해.내가죽지않고살았으니까,너도바뀔텐데.”

P.89
“진짜미래에서왔냐고물었지,믿는다고는안했어.”
잘난척하는걸보니머리를한대쥐어박고싶었다.
“너이름바꿔라.비호감어때?”
고정우가잠시생각하더니입을열었다.
“그럼너도이름바꿔.싸가지.아니다.사기꾼.”

P.48
뒷문은잠겨있었다.호기롭게뒷문을넘어보려했지만,담장끝에손이닿지도않았다.학교를한바퀴빙돌며샅샅이확인해봐도어느곳하나뚫린데가없었다.나한테왜이러는건데?학교에서대체뭘하라고?화단에풀이라도정성껏심어주라는거야,뭐야.말도안되는생각이줄줄이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