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기억이다 : 오늘의 서울을 만든 시공간의 역사

서울은 기억이다 : 오늘의 서울을 만든 시공간의 역사

$27.00
Description
도시는 도시인의 삶과 서사를 담아내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다!
공간에 깃든 삶의 흔적과 기억에서 욕망이 투영된 공간의 운명까지,
대도시 서울이 품은 시공간의 역사를 들추다!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은 다양한 이력의 약 1000만 인구를 감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영위되는 텅 빈 무대로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이 도시와 인연을 맺은 도시인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고, 도시는 그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도시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개개인의 각별한 경험은 무색의 공간을 다채로운 삶이 녹아든 애착의 ‘장소’로 바꾸어 주며, 도시를 매개로 하여 다음 세대로 계승된 기억은 시간의 무게와 함께 특정의 공간들에 ‘장소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장소성’을 획득한 공간은 이제 공간 자체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서슴지 않는다. 동네에 흔히 위치한 학교, 우체국이나 경찰서 등의 관공서가 비록 건물은 새롭게 바뀌었을지라도 용도만은 수십 년 이상 유지하고 있음을 종종 목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장소성’의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서울 사람들보다는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이 품어 온 오랜 기억을 모은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도시사학회가 기획해서 출간한 《도시는 기억이다》(2017), 그리고 도시사학회와 연구모임 공간담화가 함께 기획하고 펴낸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2022)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장소의 기억’, ‘장소성’이 깃든 공간들에 관한 이야기
1부에서는 한양도성 내부에 초점을 맞췄다. 〈서대문, 언덕 위 모던라이프의 명과 암〉에서는 도성 사대문 중 주로 일제강점기 서대문 밖의 변화가 그려진다. 그 변화는 한편으로는 ‘금화장’이라는 문화주택이나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도요타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모던라이프’를 구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에서 밀려난 이들을 수렴하듯 토막촌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일제강점기 서대문 밖 서쪽과 북쪽으로 나뉜 도시 풍경은 지금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동대문, DDP 아래에 묻힌 이야기들〉은 동대문 일대의 역사 지층을 시간순으로 복원했다. 동대문디자인파크(DDP) 자리는 본래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고 하도감(下都監)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항일 기운을 스포츠로 돌리려 경성운동장이 건설되고, 해방 후에도 서울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기능을 상실한 서울운동장의 재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유적은 개발의 방향을 ‘다목적 시민공원’에서 ‘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광화문, 한국 현대사의 현재진행형 공간〉은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일대의 역사성을 둘러싼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한다. 수도 서울의 역사가 오랜 만큼 광화문 일대의 역사 지층도 몇 겹을 이루지만,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전근대 복원’과 ‘현대적인 고층 도시로의 탈바꿈’이라는 상반된 꿈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또한 ‘복원’이 사실은 ‘새로운 창조’임을 깨달아 역사의 이름을 빌려 파괴를 반복하는 과정에 이제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청계천, 복개된 삶의 공간〉에서는 도심 한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청계천의 역사를 오물 처리 기능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맑은 시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청계천은 조선시대부터 ‘오물이 소통하는 곳’으로 규정되었으며 수많은 빈민이 그 천변에 몰려들었다. 행정 당국은 청계천 복개와 복원을 통해 정비를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천변의 풍경은 말끔히 변했으나 그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 또한 함께 정리되고 말았다. 청계천 북쪽 종로 일대를 다룬 〈종로, 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거리의 상징이기도 했던 종로가 일찍이 만민공동회와 3·1운동을 거치면서 인민이 주인인 공간이었음을 일깨운다. 이후 전차나 자동차에 그 자리를 내주고 일상의 무게가 삶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이 거리가 품고 있는 기억은 언제든 다시 우리를 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을지로,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풍경〉에는 청계천 남쪽 풍경이 담겼다. 원구단 자리의 조선호텔에 이어 1930년대 을지로에는 당시 동양에서 네 번째로 큰 반도호텔이 들어섰다. 철저히 외국인과 한국인 특권층을 위해 존재했던 그곳은 일반에 문호를 개방한 후에도 여전히 ‘이방지대’로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반도호텔은 더 높은 조망을 제공하는 호텔들에 처음에는 명성을, 다음에는 부지 자체를 내주고 말았다. 〈정동, 근대 서울의 문턱 ‘공사관 구역’〉은 서대문 밖 이야기의 전사(前事) 격에 해당한다. 서대문 안 정동에는 미국과 영국의 외교공관이 들어선 후 미국인 선교사들이 선교 기지를 조성했다. 서울 진입로에 위치하고 궁궐과 인접할 뿐만 아니라 구릉지라서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이후에도 프랑스, 독일 공관 등이 새로 들어서면서 ‘공사관 구역’을 형성했다. 아관파천 이후로는 경운궁으로 상징되는 대한제국의 중심 영역으로 재편되었으나, 1900년대 동아시아 정세 변화 속에서 정동은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현장의 삶’, 사람들에게 삶의 현장이자 터전을 제공하는 동네 이야기
2부에서는 도성 밖 공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양도성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 밖 이야기는 〈황학동, 가난 속에서 버텨 낸 삶, 공동묘지에서 만물시장으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광희문이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렸던 것처럼 일찍이 공동묘지가 형성되었던 광희문 밖 일대는 남쪽에 일본인을 위한 문화주택이 건설되는 동안 북쪽에는 조선인 영세 상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해방 후 ‘황학동’이 된 후자는 도심과 외곽의 결절지라는 지역적 이점을 기반으로 서울 도심에 대한 지원과 재활용을 담당하면서 지금까지도 만물시장, 도깨비시장 등의 모습으로 격변의 시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혜화동, 일제강점기 신흥 계층의 거주지〉에서는 도성 내에 위치하면서도 조선시대 내내 대부분 유휴지로 남아 있던 혜화동 일대를 다루었다. 이곳에는 1900년대 후반부터 대한의원을 비롯한 대형 기반 시설이 자리 잡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는 경성제대가 들어서면서 ‘학교촌’을 형성했다. 그와 함께 이루어진 교통의 정비는 고급주택지 ‘문화촌’ 건설로 이어져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한 ‘대학로’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장위동, 못다 한 교외 주택지의 꿈은 현재진행형〉은 도성 밖 한성부 경계에 있던 장위동 이야기다. 농촌 지역이던 이곳에 1937년 부설된 경춘선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서울로 기차 통근이 가능한 ‘교외 주택지’를 꿈꾸며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해방 후에야 재건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단지가 차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이미 주택전시장이 된 이곳 한편에서 1960년대에 조성된 동방주택지가 신흥부촌의 기억을 담고 2000년대에는 뉴타운사업이 그 뒤를 이으면서 ‘경성 동부의 교외 주택지’라는 장위동의 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용산, 우리 동네와 ‘작은 미국’ 사이〉는 지금의 서울 한가운데 땅을 정조준한다. 용산구 전체 면적의 10퍼센트, 전체 인구의 1퍼센트가 주요 생활공간으로 삼았던 미군 용산기지는 일부 반환되었음에도 아직 한국과 다른 별도의 우편번호를 사용하는 ‘작은 미국’이다. 현재 주한미군의 ‘평택 시대’가 열리기는 했지만, 향후 한·미 간 군사·외교적 관계 변화가 군과 지역사회 간 상호 영향 위에 형성된 용산 미군기지의 공간적 성격을 다시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여의도, 도시개발의 시범이자 반면교사〉에서는 한강의 ‘섬’ 여의도가 강으로 둘러싸인 자연적 경계보다는 목동, 광장동과 유사한 도시개발의 역사로 주변 지역과 구분되었다고 설명한다. 고층 건물과 획일적 가로(街路), 주민의 계급적 동질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그것은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폐쇄적 지역사회를 등장하게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또 다른 여의도를 양산하기보다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개방적 지역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의도식 도시개발은 강남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는데, 〈강남, 서울 사람 아니고 강남 사람〉에서 그러한 개발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1960년대 후반 정치적·안보적 선택에서 출발하여 권위주의 정부의 행정력 남용을 통해 집중 지원을 받은 강남 개발은 이제 자체 브랜드화하여 전국적으로 제2, 제3의 강남을 낳고 있다. 강남 개발이 담고 있는 시대성을 고려할 때, 그것이 향후 도시개발에서도 진정한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구로, 미싱은 아직도 돌아가는가〉는 강남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개발 이야기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수출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꾀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한 ‘구로공단’에는 지방에서 갓 상경한 저학력·저연령의 여공이 모여들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IT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미싱을 컴퓨터로 대체했을 뿐이다.

‘공간의 명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의 운명
집은 일상 유지를 위한 최소 조건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욕구 충족의 한도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사람 간 격차가 컸다. 〈집, 개발과 빈곤의 연대기〉는 최소한의 욕구도 충족하기 어려웠던 ‘빈곤’한 사람들의 집에 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서울에는 원시 주택인 토막집이 생겨났는데, 해방 후 전쟁을 거치면서 무허가 불량주택은 더욱 늘었다. 이에 다양한 형태의 주택 공급과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이루어졌으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개발’이든 ‘부유’한 자들만을 위한 공간 창출이 아니었는지를 묻는다. 〈백화점, 동경과 허영의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을 전시하는 백화점을 다루었다.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에게 허영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백화점은 해방 후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점차 도시민의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할인점이나 온라인쇼핑몰의 등장은 백화점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면서 백화점을 과거의 유물로 남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지하공간, 땅 밑에 펼쳐진 또 하나의 일상〉에서는 과밀 상태의 지상을 피해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 유류나 가스 비축시설부터 쇼핑·공연 공간, 음식점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지하공간의 활용 형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다양해졌다. 그렇다면 도시의 미래를 지하공간에 걸어 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지상의 대체보다는 지상과 연결된 활동 영역의 확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수도, 지하 세계의 거물〉은 일제강점기 지하공간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지하에 관을 묻는 암거 하수도는 수해 대비나 도시 위생을 위해 중요했다. 그러나 식민 통치 기간 내내 지속된 예산 부족 상황은 그러한 ‘신식’ 시설을 어느 지역부터 공사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인 주거지를 우선시함에 따라 민족 간 차별 문제로 부각했다. 〈깡패, 도시의 이면에 자리한 자들〉은 도시공간과 깡패의 친화성을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도시에는 사람과 물자가 집중하는 만큼 다양한 이익이 발생하고, 깡패들은 그 현장에서 이익을 갈취하는 동시에 도시의 익명성 뒤에 숨는다. 깡패들은 이익을 좇아 도시 재개발 현장에도 흘러들었고 행정 당국의 방조에 힘입어 폭력적 강제 철거에 앞장섰다. 그런데 교통·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 깡패들은 도시공간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유곽, 금기와 욕망의 경계〉는 도시공간의 어둠을 좀 더 직접적으로 조명한다.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유곽은 개항 후 일본인이 들어오면서 함께 한반도에 이식되었다. 서울에서는 지금의 묵정동과 도원동 일대에 각각 신정유곽과 도산유곽이 들어섰는데, 외부와의 격리성, 군대와의 근접성 등이 입지를 결정했다. 이후에는 조선인 유곽도 만들어졌으며, 해방 후 비록 유곽은 사라졌지만 그 기능은 형태를 바꾸어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도축장, 유혈의 증거를 남기지 마라〉는 유곽과는 반대로 누구도 욕망하지 않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고기를 즐겨 소비하면서도 고기를 생산하는 현장은 멀리하려 한다. 따라서 도축장 부지는 주거지와 이격이 중요했으며, 시가지 확장은 도축장 이전을 요구했다. 신설동과 아현동에 신설된 도축장은 현저동, 숭인동, 마장동으로 이전을 거듭했다. 마장동을 비롯한 독산동과 가락동의 도축장까지 모두 사라진 현재 축산물시장만이 남아 그 연원을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크게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다루는 서울의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다. 각각의 이야기에 묻어난 저자들의 개성은 그 이야기들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며, 또한 글과 함께 제공되는 풍부한 시각 자료(사진, 지도, 그림 등)가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내고 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저자

금보운,김윤미,김은진,박준형,박현외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연구교수.한국현대사의군사적·사회적이해와공간적연계에관심이있다.분단구조가한국사회미시적요소에반영된양상과그역사적맥락을연구하고자한다.지은책으로《서울내외국인집단활동지의역사》(공저),《우리역사속의디아스포라와경계인》(공저)등이있고,주요논문으로〈군사도시의지역사회관계형성-주한미군의근린정책과‘기지생활권’을중심으로(1957~1971년)〉,〈1960~1970년대주한미군및가족의한국사회경험과민군관계〉등이있다.

목차

서문

1장소의기억
서대문,언덕위모던라이프의명과암
20세기초서대문밖의변화|금화장과도요타아파트,그리고독신자아파트:죽첨정3정목에피어난모던라이프|서대문밖의또다른풍경:토막촌과빈민주택

광화문,한국현대사의현재진행형공간
광화문또는세종로라는장소의중층성|역사를복원하는동시에지우는역설의공간|도심고층화의꿈이실현되는공간|전근대의복원이라는환상과정치적상징동원

정동,근대서울의문턱‘공사관구역’
통상외교의근거지잡기|미국과영국의공관부지선택|미국개신교의선교근거지|외교의중심,공사관구역|새로운건축과도로의정비,순환과호흡의근대도시계획|공사관구역에서대한제국의중심으로|의화단운동과동아시아정세

청계천,복개된삶의공간
오물이소통하는곳|복개논의의시작|본격적인복개사업|청계고가도로의건설|지지부진한하수처리장건설|‘서울이아닌서울’

을지로,호텔스카이라운지의풍경
식민지배의상징,조선호텔|오피스텔형태의상업호텔,반도호텔|발밑엔도시의야경,실내엔달콤한밀어

종로,거리의주인은누구인가?
서양식거리를거니는백의의조선인들|‘기계문명의단말마’전차의등장|3·1운동,‘전국인민’의각성|일상이된러시아워,그리고유실물센터

동대문,DDP아래에묻힌이야기들
서울한복판에출현한UFO,DDP의탄생|해방이전의역사지층|해방이후의역사지층|DDP주변의또다른역사,동대문시장|공간의고고학

2현장의삶
황학동,가난속에버텨낸삶,공동묘지에서만물시장으로
동교의성저십리에서가장낮고쓸모없던지역,이름없는묘지로뒤덮이다|신당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제외된묘산동토막촌|가난속에서도끈질긴삶,해방과함께맞이한자유로운시장|포화가비켜난자리에제각기들어선시장,그리고부흥주택의건설|고물에서금맥캐는황학동시장의탄생

혜화동,일제강점기신흥계층의거주지
근대적시설물의등장|교통의정비와‘학교촌’의형성|주거지의확대|고급주택지‘문화촌’의건설

여의도,도시개발의시범이자반면교사
도시의이질적인섬,여의도|비행장을없애고택지를만들어낸윤중제공사|고층건물과블록들을오가는가로사이의기억|또다른여의도만들기에대한의문

강남,서울사람아니고강남사람
강남은‘어디’일까,‘무엇’일까|안보와정치,강남으로눈을돌리다|강남의탄생,행정적지원과교육의결정타|모여드는곳,강남

장위동,못다한교외주택지의꿈은현재진행형
기찻길을따라펼쳐진교외주택지의꿈|재건주택,부흥주택,국민주택:해방후의주택공급실험실|언덕위의하얀집,아니언덕위의거북이집·독수리집|또한번새로운주택지를꿈꾸는장위뉴타운

용산,우리동네와‘작은미국’사이
서울특별시용산구미군기지동?|‘작은미국’의흔적|군사도시,용산|우리동네,용산

구로,미싱은아직도돌아가는가
수출산업기지‘구로공단’의탄생|사계절반복되는여공의애환|시대의변화,구로공단의쇠퇴|IT산업단지로바뀐구로공단,계속돌아가는미싱

3공간의명암
집,개발과빈곤의연대기
서울시의인구집중과무허가정착촌의확산|도심내무허가건축에대한서울시의정책|주민은돌아올수없는도시(재)개발|도시재생사업과주거권

백화점,동경과허영의사이
백화점의등장|동경과허영,백화점의이중적모습|해방이후백화점의변화|도시민의일상공간,백화점

지하공간,땅밑에펼쳐진또하나의일상
오늘도나는지하공간을경험한다|‘지하공간’이라는개념에대해|서울의지하공간개발현황|과거의지하공간방공호|1960년대서울의도시개발과지하공간건설|지하공간은지상의도시를대체할수있을까?

하수도,지하세계의거물
지하의거물,조선에서제일큰하수도|전통적‘열린’하수도와근대의변화|일제강점기경성하수도사업의전개와한계|식민지권력의하수도개선은왜실패했나?

도축장,유혈의증거를남기지마라
관영도축장의등장,동대문밖과서대문밖‘대한도수장’|현저동에서숭인동으로,‘경성부립도축장’의통합과이전|마장동서울시립도축장의등장과시카고모델|마장동축산물시장의탄생과확산|사라진도축장,남은축산물시장

유곽,금기와욕망의경계
유곽의조선유입|서울의유곽조성|서울의유곽입지조건|유곽의성행과조선인유곽건설|해방이후유곽폐지와그후

깡패,도시의이면에자리한자들
이익을좇아떠도는도시의부나방|종로에서강남까지,도시개발을따라흘러들어간깡패|도시건설의숨은역군|새로운이익의창출을위하여

참고문헌
지은이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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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장소의기억’,‘장소성’이깃든공간들에관한이야기

1부에서는한양도성내부에초점을맞췄다.〈서대문,언덕위모던라이프의명과암〉에서는도성사대문중주로일제강점기서대문밖의변화가그려진다.그변화는한편으로는‘금화장’이라는문화주택이나철근콘크리트구조의도요타아파트가건설되면서‘모던라이프’를구현하기도했지만,다른한편으로는개발에서밀려난이들을수렴하듯토막촌을형성하기도했는데,이처럼일제강점기서대문밖서쪽과북쪽으로나뉜도시풍경은지금도그흔적을남기고있다.〈동대문,DDP아래에묻힌이야기들〉은동대문일대의역사지층을시간순으로복원했다.동대문디자인파크(DDP)자리는본래한양도성성곽이지나고하도감(下都監)이있던곳이다.일제강점기조선인의항일기운을스포츠로돌리려경성운동장이건설되고,해방후에도서울운동장이라는이름으로그명맥을유지했다.그러나기능을상실한서울운동장의재개발과정에서발굴된조선시대유적은개발의방향을‘다목적시민공원’에서‘역사문화공원’으로바꾸는역할을하기도했다.〈광화문,한국현대사의현재진행형공간〉은서울의중심인광화문일대의역사성을둘러싼논란이현재진행형이라고지적한다.수도서울의역사가오랜만큼광화문일대의역사지층도몇겹을이루지만,정치적의도에따라‘전근대복원’과‘현대적인고층도시로의탈바꿈’이라는상반된꿈이같은공간에서동시에펼쳐졌다는것이다.또한‘복원’이사실은‘새로운창조’임을깨달아역사의이름을빌려파괴를반복하는과정에이제는제동을걸어야한다고제언한다.〈청계천,복개된삶의공간〉에서는도심한가운데를가르며흐르는청계천의역사를오물처리기능을중심으로재구성했다.‘맑은시내’라는이름과어울리지않게청계천은조선시대부터‘오물이소통하는곳’으로규정되었으며수많은빈민이그천변에몰려들었다.행정당국은청계천복개와복원을통해정비를시도했는데,그과정에서천변의풍경은말끔히변했으나그일대를삶의터전으로삼았던사람들또한함께정리되고말았다.청계천북쪽종로일대를다룬〈종로,거리의주인은누구인가?〉는일제강점기조선인거리의상징이기도했던종로가일찍이만민공동회와3·1운동을거치면서인민이주인인공간이었음을일깨운다.이후전차나자동차에그자리를내주고일상의무게가삶을지배하게되었지만,이거리가품고있는기억은언제든다시우리를주인으로만들어줄것이라고말한다.〈을지로,호텔스카이라운지의풍경〉에는청계천남쪽풍경이담겼다.원구단자리의조선호텔에이어1930년대을지로에는당시동양에서네번째로큰반도호텔이들어섰다.철저히외국인과한국인특권층을위해존재했던그곳은일반에문호를개방한후에도여전히‘이방지대’로서소비되었다.그러나반도호텔은더높은조망을제공하는호텔들에처음에는명성을,다음에는부지자체를내주고말았다.〈정동,근대서울의문턱‘공사관구역’〉은서대문밖이야기의전사(前事)격에해당한다.서대문안정동에는미국과영국의외교공관이들어선후미국인선교사들이선교기지를조성했다.서울진입로에위치하고궁궐과인접할뿐만아니라구릉지라서전망이좋았기때문에,이후에도프랑스,독일공관등이새로들어서면서‘공사관구역’을형성했다.아관파천이후로는경운궁으로상징되는대한제국의중심영역으로재편되었으나,1900년대동아시아정세변화속에서정동은또다른변화를맞았다.

‘현장의삶’,사람들에게삶의현장이자터전을제공하는동네이야기

2부에서는도성밖공간으로시선을옮겼다.한양도성사소문중하나인광희문밖이야기는〈황학동,가난속에서버텨낸삶,공동묘지에서만물시장으로〉에서확인할수있다.광희문이‘시구문(屍軀門)’이라불렸던것처럼일찍이공동묘지가형성되었던광희문밖일대는남쪽에일본인을위한문화주택이건설되는동안북쪽에는조선인영세상인들이자리를잡았다.해방후‘황학동’이된후자는도심과외곽의결절지라는지역적이점을기반으로서울도심에대한지원과재활용을담당하면서지금까지도만물시장,도깨비시장등의모습으로격변의시대에적응하는모습을보여주고있다.〈혜화동,일제강점기신흥계층의거주지〉에서는도성내에위치하면서도조선시대내내대부분유휴지로남아있던혜화동일대를다루었다.이곳에는1900년대후반부터대한의원을비롯한대형기반시설이자리잡기시작하여1920년대에는경성제대가들어서면서‘학교촌’을형성했다.그와함께이루어진교통의정비는고급주택지‘문화촌’건설로이어져현재문화예술공간으로변한‘대학로’곳곳에그흔적을남기고있다.〈장위동,못다한교외주택지의꿈은현재진행형〉은도성밖한성부경계에있던장위동이야기다.농촌지역이던이곳에1937년부설된경춘선은변화의바람을일으켰다.서울로기차통근이가능한‘교외주택지’를꿈꾸며개발이시작되었으나해방후에야재건주택,부흥주택,국민주택단지가차례로들어설수있었다.그뒤로도이미주택전시장이된이곳한편에서1960년대에조성된동방주택지가신흥부촌의기억을담고2000년대에는뉴타운사업이그뒤를이으면서‘경성동부의교외주택지’라는장위동의꿈은지금도이어지고있다.〈용산,우리동네와‘작은미국’사이〉는지금의서울한가운데땅을정조준한다.용산구전체면적의10퍼센트,전체인구의1퍼센트가주요생활공간으로삼았던미군용산기지는일부반환되었음에도아직한국과다른별도의우편번호를사용하는‘작은미국’이다.현재주한미군의‘평택시대’가열리기는했지만,향후한·미간군사·외교적관계변화가군과지역사회간상호영향위에형성된용산미군기지의공간적성격을다시바꾸게될것이라고예측한다.〈여의도,도시개발의시범이자반면교사〉에서는한강의‘섬’여의도가강으로둘러싸인자연적경계보다는목동,광장동과유사한도시개발의역사로주변지역과구분되었다고설명한다.고층건물과획일적가로(街路),주민의계급적동질성등을특징으로하는그것은외부에서쉽게접근할수없는폐쇄적지역사회를등장하게했다.그러나계속해서또다른여의도를양산하기보다는다양성을포용하는개방적지역사회를건설하는것이거리에활력을불어넣어줄것이라고강조한다.여의도식도시개발은강남에서더욱광범위하게추진되었는데,〈강남,서울사람아니고강남사람〉에서그러한개발의역사를되돌아본다.1960년대후반정치적·안보적선택에서출발하여권위주의정부의행정력남용을통해집중지원을받은강남개발은이제자체브랜드화하여전국적으로제2,제3의강남을낳고있다.강남개발이담고있는시대성을고려할때,그것이향후도시개발에서도진정한본보기가될수있을지의문을제기한다.〈구로,미싱은아직도돌아가는가〉는강남과는전혀다른방식의개발이야기다.1960년대경제개발계획에따라수출산업의획기적발전을꾀하려는목적에서탄생한‘구로공단’에는지방에서갓상경한저학력·저연령의여공이모여들었다.1990년대이후대한민국의경제성장과그에따른산업구조변화와함께‘구로공단’은‘디지털단지’로이름을바꾸었으나,IT노동자들의노동환경은미싱을컴퓨터로대체했을뿐이다.

‘공간의명암’,사람들의욕망이투영된공간의운명

집은일상유지를위한최소조건이다.그러나그에대한욕구충족의한도는사회적환경에따라사람간격차가컸다.〈집,개발과빈곤의연대기〉는최소한의욕구도충족하기어려웠던‘빈곤’한사람들의집에관한이야기다.일제강점기때부터서울에는원시주택인토막집이생겨났는데,해방후전쟁을거치면서무허가불량주택은더욱늘었다.이에다양한형태의주택공급과주거환경개선사업이이루어졌으나,결과적으로는어떤‘개발’이든‘부유’한자들만을위한공간창출이아니었는지를묻는다.〈백화점,동경과허영의사이〉에서는사람들의욕망을전시하는백화점을다루었다.일제강점기많은사람에게허영의대상일수밖에없었던백화점은해방후경제성장을배경으로점차도시민의일상에자리를잡았다.그러나할인점이나온라인쇼핑몰의등장은백화점의존재자체를위협하면서백화점을과거의유물로남길가능성을열어놓고있다.〈지하공간,땅밑에펼쳐진또하나의일상〉에서는과밀상태의지상을피해지하세계로들어간다.유류나가스비축시설부터쇼핑·공연공간,음식점등을갖춘복합문화시설에이르기까지지하공간의활용형태는시간이지날수록더욱다양해졌다.그렇다면도시의미래를지하공간에걸어볼수도있지만,현실적으로그것은지상의대체보다는지상과연결된활동영역의확장이될것이라고전망한다.〈하수도,지하세계의거물〉은일제강점기지하공간의한단면을보여준다.지하에관을묻는암거하수도는수해대비나도시위생을위해중요했다.그러나식민통치기간내내지속된예산부족상황은그러한‘신식’시설을어느지역부터공사할것인가하는선택의문제를낳았고,결과적으로일본인주거지를우선시함에따라민족간차별문제로부각했다.〈깡패,도시의이면에자리한자들〉은도시공간과깡패의친화성을묻는것에서시작한다.도시에는사람과물자가집중하는만큼다양한이익이발생하고,깡패들은그현장에서이익을갈취하는동시에도시의익명성뒤에숨는다.깡패들은이익을좇아도시재개발현장에도흘러들었고행정당국의방조에힘입어폭력적강제철거에앞장섰다.그런데교통·통신기술이발달함에따라이제깡패들은도시공간에갇혀있기를거부한다.〈유곽,금기와욕망의경계〉는도시공간의어둠을좀더직접적으로조명한다.성매매업소집결지인유곽은개항후일본인이들어오면서함께한반도에이식되었다.서울에서는지금의묵정동과도원동일대에각각신정유곽과도산유곽이들어섰는데,외부와의격리성,군대와의근접성등이입지를결정했다.이후에는조선인유곽도만들어졌으며,해방후비록유곽은사라졌지만그기능은형태를바꾸어끈질기게존속하고있다.〈도축장,유혈의증거를남기지마라〉는유곽과는반대로누구도욕망하지않는공간에관한이야기다.사람들은고기를즐겨소비하면서도고기를생산하는현장은멀리하려한다.따라서도축장부지는주거지와이격이중요했으며,시가지확장은도축장이전을요구했다.신설동과아현동에신설된도축장은현저동,숭인동,마장동으로이전을거듭했다.마장동을비롯한독산동과가락동의도축장까지모두사라진현재축산물시장만이남아그연원을기억하고있다.

이처럼크게3부로이루어진이책에서다루는서울의이야기는매우다양하다.각각의이야기에묻어난저자들의개성은그이야기들을더욱다채롭게만들어주며,또한글과함께제공되는풍부한시각자료(사진,지도,그림등)가독자들의흥미를끌어내고글에대한이해를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