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분해의 철학 :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23.00
Description
가장 위험한 세계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 세계
생산과 성장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분해의 세계를 만나다
악취가 나고 형체가 흐물흐물해지는 부패에 대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부패 없이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 발효란 부패의 일종이며, 어쩌다가 인간에게 유용하게 된 부패 현상을 ‘발효’라 부르는 데 불과하다. 또한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 쓰레기는 쌓여만 가고, 자연적 분해 능력을 넘어선 온실 가스에 의해 기후 위기는 눈앞에 닥쳐왔다.

이 책은 농업사학자 후지하라 다쓰시가 생태학 개념인 ‘분해’를 주제어로 삼아 철학, 생물학, 인류학, 문학 등 학문의 틀을 뛰어넘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분해 현상에 새롭게 빛을 비춘 책이다. ‘분해’는 자연 세계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낙엽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식물에게 양분을 제공하듯, 망가진 자동차는 폐차장에서 분해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만일 그런 분해 과정이 없다면, 폐차는 부패되지 않은 채 쓰레기로 지상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말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닫힌 순환에서 벗어나 ‘분해’의 관점으로 눈을 돌리면, 쓰레기를 수집하거나 부서진 물건을 고치는 노동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깨닫게 된다. 나아가 우리 자신도 자연 속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지금까지 그 역할을 자각하지 못했기에 기후 위기를 초래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활성화해야 할 것은 생산력이 아니라 ‘부패력’이라고 말한다. 가장 위험한 세계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독창적 논지로 일본 최고의 학술상인 제41회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

후지하라다쓰시

1976년홋카이도에서태어났다.교토대학대학원인간·환경학연구과박사과정졸업(인간·환경학박사).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조수,도쿄대학대학원농학·생명과학연구과강사를거쳐현재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준교수로재직중이다.전공은농업기술사,음식사상사,환경사,독일현대사.저서로《분해의철학:부패와발효를둘러싼사고》(산토리학예상),《급식의역사》,《순무의겨울》,《벼의대동아공영권》,《나치의주방》,《먹기생각하기》,《트랙터의세계사》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생겨나면서손상된다
1청소아저씨
2속성을상실한것들의필요성
3인간계와자연계의틈새에서
4파손된것의이념:나폴리의기술
5기능에서단절된기관

1장‘제국’의형태-네그리와하트의‘부패’개념에대하여
1숨겨지는부패
2토양쪽에서사유하기
3‘제국’을그리다
4부패를사유하다
5분해자로서의다중
6역사에서배우기

2장나무블럭의철학-프뢰벨의유치원에대하여
1무너뜨리는장난감
2프뢰벨의유치원
3프뢰벨의나무블럭철학
4나무블럭의무한성
5인간과식물은자라는존재
6노래와소리
7먹는분해자들

3장인류의임계-차페크의미래소설에대하여
1‘분해세계’와‘분해에저항하는세계’
2『마크로풀로스사건』
3더이상신의미숙아가아니라
4메치니코프의요구르트
5인류는언제까지지속할까
6인류의임계로:로봇의반란
7로봇과인류의혼교
8노동해방에의한인류의멸망:『도롱뇽과의전쟁』
9너무부서진다고하는문제:『압솔루트노공장』과『크라카티트』
10로봇의후예들
11아마추어원예가의생태학
12차페크의임계에서도약을

4장넝마주이의마리아-법과일상의틈새에서
1넝마주이,어떤분해자
2메이지의‘넝마주이’
3쓰레기세계의치안과위생
4양아치와룸펜프롤레타리아트
5폴란드에서개미촌으로
6만주에서개미촌으로
7‘개미촌’이라는무대에서
8부끄러움과유쾌함
9쓰레기를먹는다

5장떠들썩한장례식-생태학사속의‘분해자’
1생태계라는개념
2생산자와소비자와분해자
3‘분해자’란무엇인가
4‘분해자’개념의탄생
5장의사와재활용업체
6얼룩말과연어와고래의‘장례’
7인간의‘장례’
8똥속의보석
9파브르의소똥구리
10분해세계로서의번데기

6장수리의미학-수선한다,푼다,베푼다
1계획적진부화
2감축
3쟁기를유지보수한다
4유지보수와애착
5금수선
6그릇의‘경치’
7‘푼다/풀린다’와‘맺는다’
8‘푼다/풀린다’와‘때’

에필로그:분해의향연
1장치를발효시킨다
2식(食)현상의확장적고찰
3물어죽이는축제

후기를대신하여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생산력이아니라분해력을드높이자.”
가장위험한세계는아무것도썩지않는세계
생산과성장의관점에서는보이지않던분해의세계를만나다

악취가나고형체가흐물흐물해지는부패에대해우리는불편함을느낀다.음식물을유통하고소비하는과정에서부패는당연히피해야할것으로여겨진다.현대사회에서부패는언제나그늘속의존재다.그러나부패없이세상이돌아갈수있을까?예컨대발효란부패의일종이며,어쩌다가인간에게유용하게된부패현상을‘발효’라부르는데불과하다.또한썩지않는플라스틱으로인해해양쓰레기는쌓여만가고,자연적분해능력을넘어선온실가스에의해기후위기는눈앞에닥쳐왔다.부패와분해를고려하지않는근대적생산과성장의관점으로는이위기를풀어낼실마리조차찾을수없는상황이다.

이책『분해의철학』은농업사학자후지하라다쓰시(藤原辰史)가생태학개념인‘분해’를주제어로삼아철학,생물학,인류학,문학등학문의틀을뛰어넘어그간주목받지못했던분해현상에새롭게빛을비춘책이다.‘분해’는자연세계뿐아니라인간사회에서도흔히볼수있는현상이다.낙엽이미생물에의해분해되어식물에게양분을제공하듯,망가진자동차는폐차장에서분해되어새로운생명을얻는다.만일그런분해과정이없다면,폐차는부패되지않은채쓰레기로지상에산더미처럼쌓이고말것이다.

이렇듯생산과소비의닫힌순환에서벗어나‘분해’의관점으로눈을돌리면,쓰레기를수집하거나부서진물건을고치는노동이사회의지속가능성에얼마나필수적인지깨닫게된다.나아가우리자신도자연속에서분해자의역할을해야하며,지금까지그역할을자각하지못했기에기후위기를초래했음을인식하게된다.그래서저자는이위기의시대에우리가활성화해야할것은생산력이아니라‘부패력’이라고말한다.가장위험한세계는아무것도썩지않는세계이기때문이다.이책은이런독창적논지로일본최고의학술상인제41회‘산토리학예상’을수상하기도했다.

왜분해의철학인가-폐지줍기에서소똥구리까지

2022년KBS기획보도「GPS와리어카」에따르면,폐지수집노인들이우리나라단독주택지역에서배출되는폐지재활용중무려60%에해당하는양의폐지를수집하고있다고한다.형편없는벌이에도노인들은자부심을갖고있는데,본인의일이자원재활용에일조하고있다는이유에서다.가난한노인들은개인의생계를위해폐지를줍지만,이일은동시에사회적이고생태적인가치도지닌다.이런활동이바로이책에서말하는‘분해’활동이며,그담당자들은생산의사회에서탈락된주변자들이다.

“그들은‘분해’활동을영위하고있다.줍는다는작용은인류의근원적인작용이라고할만한것이다.경제사속에서는실로상업종사자이지만,지구역사속에서는분명히분해자다.인간과그인간들의서식처인지구가폐기물에매몰당하지않기위해필수불가결한존재이다.”(217쪽)

이처럼분해활동은자연계의물질순환에서만이아니라인간사회에서도기능한다.넝마주이부터소나말의사체처리,쓰레기수거등에이르기까지소재를재사용할수있도록가공하는존재인분해자는그간사회적으로금기시되어온역사적경위로인해경시당하고있을뿐이다.가축의분뇨를토양에돌려주는농업종사자도,낡은가구나가전제품등을파는재활용품판매업자도모두중요한분해작용을수행하고있다.

저자는자신이살던공공주택에서만난청소아저씨이야기로부터프롤로그를시작한다(이책은청소아저씨에게헌정되었다).청소아저씨는공용통로를청소하는역할에만머물지않고,쓰레기로배출된골판지나스티로폼을재사용하여공룡,자동차등의장난감을만들어아이들에게선물해주곤했는데,이로인해주민들에게애정어린존경의대상이되었다.그것은“마치부패해가는쌀에서알코올을산출하는미생물과같은,혹은부패를제어하여양질의술을빚어내는양조의장인과같은,그런발효의담당자들이하는일과같았다.”(21쪽)

저자는이경험에서통찰을얻어‘분해의철학’이라는관점에서세상을다시바라보기시작한다.청소아저씨의활동을통해신품문화에중독된소비자로서의자신을반성하고,우리모두가분해라는장대한사업에참가하고있음을깨달은것이다.먹는주체이자배설하는주체로서의인간은분해생태계의일부다.이책은청소아저씨와의만남에서시작하여유치원,과학소설,넝마주이,생태학,소똥구리,수리의세계등다종다양한영역을넘나들면서‘분해’라는가능성을고찰한다.이를통해그모든영역이각기다른방식으로분해의역할을담당하고있다는점에서자연계와인간계가다르지않음을알수있다.

청소아저씨가쓰레기로장난감을만들듯,분해는더이상필요없게된것을분해하고버리는걸촉진할뿐만아니라분해과정에서여러부산물을만들어내기도한다.이점에서분해는단순히해체나파괴가아니라“하나의전체를위한‘기능’을부여받고있던요소들을,잠재적으로모든존재들을위해미칠수있는‘작용’을가진요소들로변화시키는”(346쪽)창조적인과정이다.예컨대부패된동물의시체는한마리의개체성에서벗어남으로써수많은미생물들의먹이가되며,폐차된자동차한대는수많은자동차들의부품이된다.

이렇듯‘분해의철학’의시점에서바라보면,역사가일직선으로발전해왔다는근대자본주의세계관의한계가여실히드러난다.근대화는부패와발효로이루어진분해세계로부터멀어지는것을진보혹은발전이라고암묵적으로간주해왔으나,실제로그것은인간사회가지구에서일어나는분해생태계로부터이탈하는것에불과했다.이러한이탈로인해분해생태계의작동원리를간과함으로써현재의기후위기와환경위기를불러온셈이다.인간과자연의관계가급격히단순화되어버린현대사회의닫힌세계관을무너뜨리기위해서도분해개념은유효성을갖는다.

인간이외의존재를통해인간적인것을보다

저자는역사학자답게충실한사료에바탕을두고인문학과생태학을넘나드는참신한이야기를전하면서도철학자다운예리한비평적시각을놓치지않는다.저자는진중한문제의식의소유자이면서도경쾌한스텝을밟을줄아는사람이다.차례에서도드러나듯,지구전체의문제를친숙한아이템을선정해요리해내고있다.다종다양한식물들과아이들이함께성장해가는유치원,지렁이가기어다니고원예가가손가락으로들쑤시고소똥구리가제새끼들을위해똥침대를차려놓는토양세계,소유권을상실한쓰레기를보물로변모시키는넝마주이동네등다양한분해의장소를탐사하여그역동적인분해과정을생생하게그려낸다.이책을읽고나면생산,소비,분해같은기본개념들에대한생각이완전히달라질수밖에없다.분해를중심에놓으면,기존에우리가생각했던생산과소비는전혀다른의미를띠게되기때문이다.

차례를간략히살펴보자.우선1장「‘제국’의형태」에서는안토니오네그리와마이클하트의‘제국’논의를참조하면서신품문화에잠재해있는취약지점을탐사한다.네그리와하트는자본주의의새로운형태인‘제국’을그리기위해서는생산력만으로는불충분하다고생각하여부패개념을추가했다.요컨대이새로운세계질서는부패를미리예상하고있으며,그래서부패한부분을제대로이용하는시스템이라는것이다.그러나이러한자본의‘제국’은자연을상품화함으로써자연의부패기능을약화시켜왔고,세상은이현상을‘환경문제’라불러왔다.여기가전지구적‘제국’의아킬레스건이다.저자는생산력이아니라부패력에,구축력이아니라분해력에초점을맞출때‘제국’을와해시킬수있다고말한다.

이어서2장「나무블럭의철학」에서는분해론의기본모델로서나무블록놀이와유치원을이야기한다.유치원의창설자인프리드리히프뢰벨이고안한나무블럭놀이는조립과건축과결합의놀이임과동시에처음창안되었을때부터이미분해와붕괴의놀이였음이밝혀진다.나무블럭이라는메타포를통해저자는단순한환경및순환모델을넘어서분해과정속에들어있는파괴성과창조성의가능성을짚어낸다.

3장「인류의임계」에서는카렐차페크의과학소설들이주요하게다뤄진다.‘로봇’이란단어를처음쓰고소설『R.U.R.로봇』을지은작가차페크는제1차세계대전이라는파국적사건을겪으면서이지구상에서인류가어떤식으로소멸될수있는가하는인류사의임계를사고실험했던작가였다.저자는차페크의주요작품을거의전부다루면서그가얼마나깊숙이까지인간과지구의문제를파고들었는지알려준다.불로불사를꿈꾸는인간들과폐기될처지에있는로봇사이의긴장관계를통해분해가생명또는생산을앞서는역전의논리를캐낸다.

4장「넝마주이의마리아」에서는쓰레기줍는사람들의사회와역사를다룬다.특히부당할정도로역사속에서폄하당해온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복권및재평가가이루어진다.이런점에서이책은넝마주이를자연계의분해자들에비겨도결코뒤지지않을인류최고의분해자로격상시킨명예회복서이기도하다.저자는에도시대부터현대에이르는넝마주이들의역사와사회상을통해그들의삶과가치를복원해내고,그들이어떤점에서과잉생산의분해자들인지를감동적으로전해준다.

5장「떠들썩한장례식」에서는생태학의역사속에서‘분해자’가어떤모습으로등장했고변천되어왔는지이야기한다.나아가자연생태계에서연어,고래,소똥구리등이어떻게분해되고분해하는역할을담당하는지를상세히보여준다.생산과소비라는경제학적개념에오염된근대생물학적순환의관념을넘어‘분해’에주목함으로써,생태계가시장의교환체계가아닌떠들썩한분해의장례식장임을보여준다.분해는분해하는측과분해되는측의암묵적협력관계가전제된작업이다.이렇게분해작용의담당자가시시각각변화해감을보여주면서,저자는생태학적차원에서는생산자와소비자와분해자의구분이란위계적일수도없고완전히구분되지도않는다는것,그렇기에우리자신이분해자로서의역할을자각할필요가있음을이야기한다.

6장「수리의미학」에서는수리및수선세계의역동성을분해의관점에서사유해간다.배터리가열화된제품의동작속도를의도적으로떨어뜨리는‘계획적진부화’에대한비판에서시작하여‘수리의권리’와도연동되는논의로이어진다.특히‘금수선’이라는일본의전통도자기수리법도이야기하면서,오히려완벽한것보다는부서진것이본래적인자신에게가까워지는역설을발견한다.수리하고수선하는일도,농약과비료를절감하는농업도,그리고시간이드는요리와식사도그자체로인간의다양한관계를자연스레연결하는행위라는것이다.

결론적으로,저자가이토록다채로운분해영역을탐사하는까닭은인간이외의존재를통해인간의생태적역할을복원해보려고하기때문이다.저자는토양이나해양속에서미생물들에의해숙련된방식으로진행되는동식물시체의분해가얼마나우리의생활에밀착한것인지찾아내려한다.인간이외의존재에주목함으로써인간적인것을알수있다는것,바로그것이이책의주요테마중하나다.

이책은현대사회에대한생태학적비판인동시에생산-소비라는일방향적순환에맞서는분해운동의상상력을제시한다.이러한생각이중요한것은‘환경’과‘생태’라는말이거기에내포된위험성을일단해독시킨다음에는마치부적처럼온갖다양한토론이나문서의결론으로사용되기일쑤이기때문이다.“그런식이아니라,대체어떠한작용이순환의전제가되고있는지를짚지않으면안된다.원래순환이나지속가능성이라불리는현상은그런반들반들하고반짝거리는현상이아니라,거칠고누덕누덕하며껍질은벗겨지고알맹이는튀어나와대단히가혹하고마구북적이며악취가물씬풍기는현상이다.”(26쪽)

근대문명은이러한분해의단계를축소시켜버렸다.우리가쓰레기를버리거나오줌똥을눈다음,공장이나핵발전소에서폐기물들을버린다음그것이어떻게처리되는지깜깜한채로있는동안,쓰레기오물의분해단계를최소한으로줄여버린것이다.그극한이플라스틱이다.우리는지금생산과소비를줄이는것으로는이전으로돌아갈수없는단계까지와버렸다.따라서저자가말하듯지금“활성화시켜야할것은생산과정이아니라분해과정이다.”(72쪽)생산력이아니라부패력을,구축력이아니라분해력을드높이자.이것이새로운지구로향해가는출발점이라면정말이지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