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로우리시대의기술을다시묻다
기술에휘둘릴것인가,기술을길들일것인가?
생각의문을여는기술철학입문서
기후위기와전쟁,생태계파괴와인공지능무한경쟁.우리는이위기의한가운데에서늘‘기술’과마주한다.그런데정말로기술은위기에서우리를구원할수있을까?마치불타는집앞에서미래의기술이언젠가그불을꺼주기를열렬히기다리고있는형국은아닐까?
『기술은우리를구원하지않는다』(부제:영화로읽는기술철학강의)는이물음에서출발한다.기술문화연구자박승일은기술을한낱중립적도구나수단으로여기는익숙한관점에서벗어나,기술자체를깊이사유하고현재의기술환경에질문을던질것을제안한다.기술이란,TV를켜고끄듯마음먹은대로처분할수있는대상이아니라,우리의존재와세계를바꾸는강력한힘이기때문이다.인공지능이라는새로운기술이삶한복판에들어선지금,우리는그어느때보다기술을성찰하는‘철학’이필요하다.
이책은난해한철학책에갇히지않고SF영화를통해오늘의기술을다시묻는다.SF영화는기술을낯설게바라보게하고철학적물음을생활세계로끌어내는사유의촉매제가된다.저자는세탁기에서인공지능까지,〈트루먼쇼〉에서〈아바타2〉까지다양한사례를넘나들며기술에대한무분별한열광이나막연한공포가아니라비판적개입과공존의가능성을조명한다.
‘기술최대주의’‘기술최소주의’‘기술개입주의’라는사회적담론을살펴보고,인공지능을둘러싼쟁점을기술철학과미디어이론,윤리학과정치경제학으로분석하며,스마트폰,플랫폼,알고리즘등일상에스며든기술과의관계를촘촘히들여다본다.이를통해기술을길들이고방향을설정하는실천적방안을제시한다.기술이우리를구원하지않는다면,우리를위기에서구원하는것은우리자신의부단한개입과실천일수밖에없기때문이다.
“기술은우리를구원하지않는다.
어떻게살아갈지를결정하는것은결국우리의몫이다.”
인공지능시대에가장필요한전문가는누구일까?기술이불러올윤리적,사회적파장앞에서,우리에게는기술을성찰하고방향을제시할‘기술철학자’가필요하다.기술문화연구자박승일의신작『기술은우리를구원하지않는다』는기술연구의새로운시각을제시했던『기계,권력,사회』이후4년만에쓴책이다.이번책은SF영화를통해기술철학을풀어낸교양서로,대중강연형식으로서술되어누구나쉽게읽을수있다.
왜하필SF영화일까?기술철학책을읽는것은어려운일이지만,SF영화를보고기술에대해질문을던지는쉬운접근법도가능하기때문이다.저자는〈터미네이터2〉와같은할리우드액션영화에서도얼마든지기술철학을배울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무엇보다저자는기술에대한질문을더이상전문가나기술자에게만맡기지않는다.어떻게기술과함께살아야할지를묻는것은우리모두의몫이다.
이책은기술에대한인간의개입과관여를주장하고이를정당화하는데초점을맞춘다.기술최대주의에대한치열한담론투쟁을통해(1부),인공지능개발과정에대한법적,제도적,사회적제어를통해(2부),일상의기술실천에대한지속적인비판을통해(3부),인간개입의여지를계속해서확보하여기술이인간의손을떠나폭주하지않도록해야한다는것이다.우리는기술을길들이고방향을설정할수있어야한다.이책은SF영화라는익숙한언어로건네는기술철학의초대장이자기술비평과사회비평을잇는징검다리로서,기술에대한절망도희망도아닌,기술에대한올바른개입의가능성을고민하는책이다.
기술을둘러싼사회적담론들-1부최대주의,최소주의,개입주의
1부는기술을둘러싼사회적‘담론들’에주목한다.기술은언제나특정한말들의집합,곧담론을통해우리에게도달한다.인공지능을떠올려보자.우리는기술자체보다도먼저,인공지능을둘러싼낙관과비관,유토피아와디스토피아의말들에노출된다.기술은그렇게‘담론’을통해우리에게도착하고,바로그지점에서담론들간의갈등과투쟁이시작된다.
저자는기술담론을세가지유형으로구분한다.‘기술최대주의’는기술의발전이지금의위기로부터우리를구원해줄것이기에기술발전을더욱극대화해야한다고주장한다.‘기술최소주의’는맹목적인기술발전과자본주의가위기를초래했기에그정도를최소화해야한다고본다.이에비해‘기술개입주의’는기술찬양도기술부정도아닌기술에대한개입과통제,곧기술길들이기를주장하며인간의개입가능성을모색한다.이세담론은단순한의견차이가아니라기술을둘러싼세계관의충돌이며,미래의지형을좌우하는싸움이다.
이책은세담론의요점과한계를함께살피면서,무엇이최선의선택지가될수있는지짚어본다.〈아바타2〉를통해서는최대주의의맹목성과최소주의의공허함을비판하고,〈엘리시움〉을통해서는기술적해법의가능성과더불어그불가능성에대한성찰을요구한다.나아가〈돈룩업〉을통해서는기술개입주의자체에대해서도비판을제기한다.여기서SF영화는기술담론의흐름을읽고이시대의기술적상상력을짚는이정표역할을한다.
인공지능에어떻게개입할것인가-2부인공지능과파스칼의내기
2부는오늘날가장현실적이고도논쟁적인기술,인공지능을본격적으로탐색한다.저자는고전적사고실험인‘파스칼의내기’를변형하여‘인공지능의식내기’라는새로운사고실험을제안한다.파스칼이신의존재여부가불확실하더라도신을믿는쪽이더합리적이라고주장했듯,저자는인공지능이의식을가질가능성역시불확실하더라도오히려지금부터대비하는것이더합리적인태도라고말한다.이는기술이사회에끼칠잠재적효과와위험에주목하자는실천적요청이다.
저자는인공지능연구의두거장,제프리힌턴과얀르쿤의상반된입장을비교한다.힌턴은인공지능이인간지능을초월할수있다고경고하며개발중단을주장하지만,르쿤은인공지능에대한공포는과장된환상일뿐이며개발을멈춰서는안된다고주장한다.그러나기대값의비대칭성,즉최악의위험에대한불확실성이야말로인간의개입이요구되는이유다.결국우리는인공지능이의식이가질가능성을믿기때문이아니라,오히려모르기때문에대비하고미리개입해야하는것이아닐까?(157쪽이하)
저자에따르면,인공지능은무엇보다‘기술에대한기술’또는‘기술을낳는기술’로특징지을수있다.인공지능은개별문제를해결하고특정작업을자동화하는등의표면적또는일차적기술을‘넘어서’,오히려기술자체의작동과발전을재구성하고촉진하는역할을수행하기때문이다.말그대로기술을가능케하는기술이고,기술너머의기술인셈이다.(279쪽)
따라서인공지능을둘러싼쟁점을이해하려면기술철학과미디어학은물론이고윤리학과정치경제학에이르는다양한관점이필요하다.저자는먼저현재의인공지능발전상황과미래의궤적을비판적으로조명하고(2부1장),인공지능이의식을가질수있는지,또인간의개입이가능한지를논의한다.(2장)그다음으로는인공지능이마치핵분열연쇄반응처럼앞으로의사회에거대한도미노효과를일으킬수있음을분석하고(3장),인공지능을‘지능’으로서만이아닌‘사회성’의측면에서분석하면서인간과의관계를질문한다(4장).마지막으로는인공지능을자본주의정치경제학이라는더큰맥락속에넣어기술과자본,국가,지구라는거시적차원과관련지어검토한다.(5장)
일상의기술을비판적으로다시보기-3부(비)인간,기술,사회
3부는다시‘지금여기’의일상으로되돌아온다.거대기술담론(1부)과인공지능문제(2부)를지나,우리가매일접속하고사용하는인터넷,스마트폰,플랫폼,유튜브같은미디어기술을정면에서다룬다.일상에깊숙이침투한이기술들은단순한도구가아니라,우리의감각과행동,판단과정치성까지구성하는권력장치로작동한다.특히2024년12월3일에벌어진한국의비상계엄사태에서대통령의유튜브중독이차지한몫은상징적이다.
저자는‘환경관리권력’과‘정신관리권력’이라는개념을도입하여이런문제를설명한다.(300쪽)환경관리권력은플랫폼환경을구성하고통제하는권력을,정신관리권력은알고리즘을통해감정과인지,정치적선택을조율하는정서적권력을가리킨다.이러한권력은강제적명령이아니라,자유롭게보이는환경을통해은밀히우리를지배한다는점에서부단한경계가필요하다.이렇듯3부는미래의위험뿐만아니라현재기술환경에대한무감각이야말로기술에대한성찰과개입을통해가장먼저응답해야할문제임을강조한다.결국저자는이렇게묻는다.우리가매일접속하고사용하는이기술적일상은누구를위한것인가?이기술적환경에서살아간다는것은무엇을의미하며,우리는거기에어떻게개입할수있을것인가?
희망도절망도아닌,‘이중의개입’의자리에서-끝날때까지는끝난게아니다
오늘날의기술적,생태적위기에대해사람들은두가지상반된반응으로대응한다.하나는‘기술이언젠가우리를구원하리라’는믿음,다른하나는‘아무리애써도늦었고소용없다’는냉소와절망이다.하지만저자는이둘사이의좁은틈,희망도절망도아닌사이의공간에서개입의윤리와정치를사유해야한다고말한다.그것이이책전체에걸쳐주장해온‘개입주의’의철학적핵심이다.
기술은문제다.하지만기술은또한우리가세계에개입할수있는접점이기도하다.중요한것은기술에의해구원받는것도,기술을전면부정하는것도아니다.바로기술과함께,그리고기술에대해비판적으로개입하는“이중의개입”(82쪽)이다.이책의마지막장,에필로그는책전체를관통하는하나의명확한메시지로귀결된다.“우리는우리가처한상황속에서다만우리가할수있는일을최선을다해야한다.”(423쪽)이는단순한교훈이아니라,위기와냉소,무기력과과잉신뢰사이에서방향을잃은지금여기의우리에게건네는실천적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