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군사사 속 뿌리 깊은 가부장적 서술에 맞서는 ‘출정의 나팔소리’ 같은 책.”
―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
“공성전과 반란, 내전이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여성 전사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여성사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 《퍼블리셔스 위클리》
“범위 면에서 놀라울 만큼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에 기반한 책이다. 모든 군사 도서관에 반드시 비치해야 할 책.”
― 《뉴욕 저널 오브 북스》
1. 남성 중심의 군사사가 지워버린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전쟁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역사교양서
스웨덴 비에르셰섬의 바이킹 유적지 비르카에서 발견된 전사 무덤 Bj.581의 주인과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카지미에시 푸와스키 장군.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남성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의 유골 유전자 분석 결과 Bj.581의 주인은 여성으로 밝혀졌고, 푸와스키 역시 유골의 형태학적 분석을 통해 여성 혹은 간성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전쟁의 역사는 왜 이들을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했을까?
역사가들은 여성의 군사적 활약을 설명할 때 종종 특별한 이유를 찾아냈다. 서기 1세기 로마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오늘날의 런던까지 진군한 켈트족의 왕비 부디카가 거둔 승리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가 발휘한 뛰어난 군사적 역량과 지휘력은 신의 은총 덕분이며, 은동고(오늘날의 앙골라 일대)의 여왕 은징가가 수십 년 동안 포르투갈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여자”였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행운이나 신의 은총, 잔혹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여성 전사들의 활약이 무수히 많다. 바이킹의 여전사, 공성전에서 싸운 여성들, 남장 여군들, 서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오늘날의 베냉)의 여성 정예 부대 아고지에, 제1차 세계대전의 러시아 여성 결사대대, 제2차 세계대전의 소련 여성 저격수와 영국 특수작전국(SOE) 요원들, 그리고 현대의 여성 군인들까지 수많은 여성이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전쟁에 참여했고, 때로는 군대를 지휘하고 전투의 향방을 바꾸었다. 그들이 무기를 든 이유도 애국심과 생계,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정치적 신념, 모험심 등으로 제각각이었다.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전쟁을 남성의 영역으로, 싸우는 여성을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해 왔을까?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활약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까? 이 책은 수백 년의 역사에서 잊히거나 지워진 여성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되살리며, 여성은 언제나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2. “과거의 전장은 여성의 노동에 의존했고,
이 노동은 여성 장군들의 무공만큼이나 무시되었다”
정규군과 야전 중심에서 공성전, 전쟁 공동체,
비정규전으로 시야를 넓혀 다시 쓰는 전쟁의 역사
저자 세라 퍼시는 여성 전투원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전투’로 규정하고, 누구를 ‘군인’으로 인정해왔는가를 묻는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근대 초기 유럽의 ‘전쟁 공동체’와 ‘공성전’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군대에는 여성들이 필수적인 존재였다. 특히 1500~1650년 유럽의 군대는 전투 병력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이동하며 군대의 유지와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전쟁 공동체’였다. 여성들은 군대를 따라다니며 세탁, 간호, 식량 공급, 약탈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고, 때로는 전투에 뛰어들어 남편을 대신해 대포를 쏘기도 했다. 당시 군대는 하나의 ‘이동하는 도시’(91쪽)였으며,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공성전 역시 여성의 전투 참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다. 1495~1715년 유럽에서 공성전은 가장 지배적인 군사 행동이었으며, 특히 1550~1714년에는 야전보다 열 배나 더 자주 벌어졌다(119쪽). 성벽 안에서는 수비대뿐 아니라 여성들 역시 돌을 던지고 대포를 쏘거나 무기를 들고 적에 맞섰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군사적 활동보다는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한 방어 행위로 해석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여성들의 활동은 왜 전쟁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전쟁을 정의하고 서술해온 방식에서 찾는다. 전통적인 군사사는 조직된 군대끼리 벌이는 야전과 지휘관의 전략, 전투의 승패에 주목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규군에 속하지 않은 여성들의 활동이 전쟁 수행의 일부로 인정받기 어렵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노동도, 성벽 위에서 적과 맞서 싸운 행위도 군사사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군대를 따라 이동한 여성들, 공성전에 참여한 주민들, 남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입대한 여성들, 비정규전과 저항운동에 뛰어든 여성들까지 시야에 넣으면 전쟁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성은 언제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참여했지만, 그들의 역할이 기존 군사사의 틀 안에서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다.
3. 여성은 언제부터 전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을까?
여성의 전투 배제 자체를 역사적 탐구 대상으로 삼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여성의 ‘전투 배제’ 자체를 역사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성을 군대 밖으로 밀어낸 과정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군대의 전문화와 병참체계의 변화,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관념(연약하고 부드럽고 가정에 대한 헌신을 우선시하는 여성 모델)이 맞물리면서 여성의 역할과 활동 범위가 점차 축소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군대의 보급·의료 체계가 전문화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이었다. 이전까지 군대는 식량 공급과 세탁, 간호 등 여성들이 제공하는 노동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국가가 이러한 업무를 직접 조직하고 전문 인력을 배치하면서 군인 가족과 민간 종군자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었다. 크림 전쟁(1853~1856)이 그 전환을 잘 보여준다. 1854년은 영국군 병사의 아내가 공식적으로 남편을 따라 전쟁터에 갈 수 있었던 마지막 해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에 간호사들을 이끌고 참여했다. 그동안 군인의 아내들이 비공식적으로 수행하던 돌봄 노동이 점차 전문 인력의 공식 업무로 바뀌어간 것이다.(113~114쪽)
여성을 군대에서 밀어낸 것은 제도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1860년대 이후에는 종군 여성을 매춘부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영국의 전염병법(Contagious Diseases Acts)은 군인들 사이의 성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지만, 군대 주변의 여성을 성병과 군 기강 문란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했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군대의 식량 공급과 세탁, 간호를 책임져왔지만, 이제 그들의 다양한 활동은 ‘매춘’이라는 낙인에 가려졌다. 군대에 동행하는 여성들은 이제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존재로 취급되기 시작했다.(114쪽)
4. 여성들은 전쟁에서 능력을 입증했는데도 왜 계속 배제되었을까?
전시 동원과 전후 배제의 역설, 그 이면에 숨은 시민권과 권력의 문제
두 차례 세계대전은 여성의 전투 배제 정책이 안고 있던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총력전 시대에 여성들은 군수품 생산과 간호를 넘어 대공 방어와 군용기 조종 등 위험한 임무까지 수행했지만, 정작 전투원이나 군인으로서 정당한 지위를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육군보조부대(ATS) 대원들은 적기를 추적하고 대공포 운용을 지원하면서도 직접 발포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보초를 설 때도 소총 대신 곡괭이 자루와 호루라기를 지급받았다.(323쪽) 반면 소련에서는 약 백만 명의 여성이 군대에 동원되었고, 그중 약 12만 명이 저격병과 포병, 조종사 등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해(260~261쪽) 무공을 세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 곧바로 군대에서 밀려났고, 이들의 영웅적 이야기도 은폐되거나 축소되었다.(286-287쪽)
여성들은 전쟁에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감수하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지만, 전후에 전장에서 쌓은 경험과 공적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각국은 여성의 군 복무와 전투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유지하거나 강화했다. 미국은 1948년 여군통합법으로 여성의 전투 참여와 병력 규모를 제한했고, 서독은 헌법으로 여성의 무기 사용을 금지했다. 호주에서는 1969년까지 기혼 여성이 방위군에서 복무하려면 남편의 서면 동의와 군이 인정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했다.(365~367쪽)
여성들이 실제로 전투 능력을 입증했는데도 군대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여성을 전투에서 배제해 왔을까? 저자 세라 퍼시는 그 이유가 단순히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의심에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군 복무는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215~216쪽)였으며, 전투 경험은 군대 내 지위와 권력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여성을 전투에서 배제하는 것은 군대 안의 역할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권리와 권력을 요구할 기회까지 좁히는 일이었다.
1970년대 이후 군대의 여러 보직이 여성에게 개방되었지만, 지상 전투병과는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남았다. 이러한 제한은 여성들이 고위직 진급에 필요한 전투 경험을 쌓지 못하게 하는 ‘놋쇠 천장(brass ceiling)’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걸프전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비전투 보직의 여성들조차 실제 교전에 참여하면서 전투와 비전투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드러났다. 여성의 전투 배제 정책은 전장의 위험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공적을 인정받고 경력을 발전시킬 기회만 제한한 것이다. 결국 여성의 전투 배제는 단순히 군 복무의 문제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