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반도체 전쟁 (반양장)

이건희 반도체 전쟁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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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두뇌, 반도체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이건희 회장 2주기(10월 25일)를 맞아 나온 반도체 리더십 책

-호암과 이건희가 초대한 반도체 세상
-결정적 선택, 결정적 순간들로 본 이건희 리더십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반도체 산업
-삼성의 초격차, 1등주의, 위기의식의 배경
-사람 냄새 나는 반도체 기술 이야기
-이윤우·진대제·임형규·황창규·권오현 반도체 대표 CEO들이 말하는 이건희 리더십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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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문명

저자:허문명
1990년동아일보사에입사해사회부,경제부,문화부등에서기자로일했고오피니언팀장,국제부장,논설위원을역임했다.현재동아일보사출판국부국장으로일하고있다.언론사상최초로여성시경캡(사회부사건기자팀장)을맡아일했으며한국기자협회부회장을지냈다.참언론인대상(한국언론인연합회),한국기자상,삼성언론상,서재필언론상,일한교류기금상,양성평등미디어상을수상했다.저서로는《김지하와그의시대》,숭산큰스님평전《삶의나침반》등이있으며,2021년《경제사상가이건희》를출간했다.

목차

저자의말이시대‘삼성정신’은무엇이어야하는가
추천의말청년들이이책을읽고눈에불이켜졌으면

<제1부호암과이건희가초대한반도체세상>

PART1반도체,세상을바꾸다
문화인류학적통찰,반도체신화를만들다
“나라가잘돼야기업이잘된다”
TV도못만들면서무슨반도체냐
삼성전자가아오지탄광으로불렸던이유

PART2미래를내다본호암의반도체리더십
반도체이전에알아야할전자산업진출사
아무도걷지않은길에도전하다
독자개발한반도체로세계를제패하라
세계최대첨단반도체공장,기흥밸리의탄생
6개월만에세계세번째64KD램을만들다
D램대폭락사태에도공장지었던호암
반전을이룬또하나의선택“웨이퍼를키워라”

PART3세계최고로이끈이건희리더십
결정적선택두가지
오너십,‘세계최고의집’을짓다
자율경영,그리고위임의리더십
호암과이건희,두거인의리더십차이

<제2부반도체CEO들로부터듣는이건희리더십>

PART4이윤우“이건희회장은진정한게임체인저였다”
반도체전쟁을이끈기술총사령관
삼성이잘되는것이애국하는길
일본의몰락을예감하다
독특한논리의이건희복합화
“대만의경쟁상대는일본이아니라한국”

PART5진대제“회장과의대화는모든게배움이었다”
D램의기술프레임을만들다
남들은보지못하는새로운상상력을경험하다
앞서가는리더에게서생각하는법을배우다
믿고맡기는리더의힘

PART6임형규“회장의키워드는깡,응집력,고집,용기,겁없음”
D램신화에이은플래시메모리신화
반도체설계와플래시메모리개발의산증인
마침내일본에기술을전수하다
링에서죽도록얻어맞다KO를시키다
“삼성전자는세번망할뻔했다”

PART7황창규“체어맨리때문에모든것이가능했다”
애플부활에는삼성반도체기술이있었다
세계최초256MD램개발,그래도“갈길이멀다”
안전한길을버리고택한‘마이웨이’의대성공
세계최고원천기술을가진회사가되다

PART8권오현“생각의모든축을미래로집중한월드클래스경영자”
‘반도체인의신조’는내삶의구호였다
신경영선언은반도체1등이준자신감
“미래,미래에대한이야기를하라

출판사 서평

호암과이건희가초대한반도체세상

1부‘호암과이건희가초대한반도체세상’편에서는한국사람들은물론삼성직원들조차반도체의‘반’자도모르던시절호암이어떻게이사업에관심을갖게되었는지를소개한다.그리고이과정에서이건희회장의역할은무엇이었는지,1970년대앞이보이지않던암울한상황에서대한민국최초반도체회사였던한국반도체를인수하면서시작된호암의반도체사업구상이흥미진진하게펼쳐진다.
내년2023년은1983년호암이최첨단메모리반도체(VLSI)진출을선언한지꼭40년이되는해이며이건희회장이신경영선언(1993년)을한지30년이되는해다.
호암과이건희회장은반도체사업을통해한국사회가‘패스트팔로어FastFollower(빠른추격자)’에서‘퍼스트무버FirstMover(선도자)’로가야한다고앞서서주창했으며이를행동으로보여주고결과로말한세계적인경영자들이다.
남의것을뒤에서쫓는추격자에서벗어나맨앞으로나아가려면기존의조직문화·교육방식·상상력을모두바꿔야한다.호암과이건희회장은‘반도체처럼리스크가큰사업에투자하다삼성이한순간에망할수있다’는소리를수없이들었다.하지만모든사람이주저하고반대할때고독한결단의순간과수없이마주하며초인적인힘으로사업을밀고나갔고결국큰성과를일구었다.
그것은단지돈때문이아니었다.두사람은개발기간이얼마나걸리고예산은얼마나투입되며손익분기점은어느수준인지등의문제보다반도체가만들세상에대한비전·가치·철학에집중했다.

한국인의라이프스타일에맞는반도체산업

삼성반도체의전신은1974년1월경기도부천에세워진한국반도체다.칩설계에서부터당시로서는최첨단인3인치(75㎜)웨이퍼(반도체칩원재료가되는동그란실리콘기판)생산라인까지전공정을갖춘그야말로제대로된최초의반도체공장이었다.한국반도체는시간을숫자로표시하는(그전에는모두아날로그바늘이었다)디지털손목시계용칩생산을목표로출발한회사였는데,자금난에처한것을알게된호암이절반의지분을샀고이후이건희회장이사재를털어완전인수하면서삼성반도체역사가시작된다.
한국반도체를인수했던1970년대말은삼성이TV도제대로만들지못하던시절이었는데호암은반도체가전자산업의미래가될것이라는이건희당시부사장의의견을받아들여인수를결정하게되었다는증언들이펼쳐진다.
무엇보다호암이나이건희회장모두반도체사업이국가의미래를위해꼭필요한사업이라는확신을가졌다.호암에게끊임없이사업에대한필요성과영감을불어넣은것으로알려진이건희회장은1970년한국사회가미증유의오일쇼크로경제사회적직격탄을맞은상황에서무엇을해서먹고살것인가를심각하게고민한다.
그러면서그때부터미국의실리콘밸리를드나들면서막PC여명기를맞고있던미국의정보통신혁명에주목하게된다.그리고생전에평소임직원들에게‘당신이하고있는일의본질이무엇이냐’는이른바‘업(業)의개념’에천착한경영인답게한국인의젓가락문화,밥상문화,실내에서신발을벗는문화에기반해한국에서반도체사업의가능성을보았다는대목도신선하게다가온다.

다시보는호암의리더십

호암은당시만해도세계최고산업국가였던일본을드나들며사업구상을많이했는데일본이이미차세대먹거리로중후장대가아닌‘경박단소’사업에주목하고있다는점을눈여겨보면서반도체관련학자와전문가집단과깊게교류한다.
이과정에서일본의반도체사업의가능성을보았고한국도못할것없다는자신감을얻게된다.책에는반도체신화를만든초기반도체조직을만들고공정을지휘한김광호전부회장등대표적전문경영인들의인터뷰가등장한다.
이건희회장도생전에“일본,미국을직접다니면서반도체기술자들을만나기술을전수해달라고사정하는‘기술보따리장사’를했다”는말을직접하기도했었다.
무엇보다반도체사업을시작할호암은73세라는당시로서는고령의나이였다.당시제당,모직등전통제조업에서전자산업이라는전인미답의길을택해대성공을거둔대한민국최고갑부로서이미이룩한부富를누리고살아도충분한때에호암은이전과는완전히다른새로운사업을시작한것이다.
그것은또목숨을건일대결단이기도했다.그는반도체사업진출을결심하기수년전위암수술을하면서생과사의기로에서서언제재발할지도모르는상황이었다.새로운일을벌이기보다마무리를생각할시점임에도아무도걷지않은길에도전한것이다.당시그의고민은호암자전에잘나와있다.

“수많은미국과일본전문가를비롯하여국내전문가들의의견을거의다들었다.관계자료는손닿는대로섭렵했고,반도체와컴퓨터에관한최고의자료를얻고자무한히애를썼다.그결과전혀가능성이없지않다는점을알았다.정부의적극적인뒷받침만있으면성공의가능성이있다는결론을얻었다.내나이73세,비록인생의만기晩期이지만이나라의백년대계를위해서어렵더라도전력투구를해야할때가왔다.이처럼반도체개발의결의를굳히면서나는스스로다짐했다.”(호암자전)

공장건설에서부터기술추격까지이룬기적의연속

1983년2월도쿄선언을통해메모리반도체라는최첨단반도체사업진출을공식선언한뒤6개월만에공장을완공하라고지시하는데현재세계최대메모리반도체공장이라할만한기흥부지가땅매입에서부터용도변경까지직원들의헌신적인노력의결과라는초창기이야기가소개된다.그리고공장을짓는과정에서휴일도없이아침부터밤까지전직원들이매달려당시로서는한국에서없던클린룸을만들어내는과정도이어진다.
삼성은64K,256K개발성공의여세를몰아1986년7월13일에는마침내1MD램개발에까지성공한다.개발에착수(1985년9월)한지10개월만의일이다.1MD램은꿈의반도체‘킬로비트에서메가비트단위로넘어가는분수령’이되는슈퍼칩이었다.
하지만속으로는곪고있었다.삼성이야심차게64KD램양산을시작한1984년은불행히도D램시장이대폭락기로접어든초입이었다.
그해말부터세계반도체업계에는최악의D램대폭락사태라는쓰나미가덮친다.미국과일본의설비투자경쟁이이뤄지면서64K,256K공급과잉이시작되자일본은덤핑공세를펴기시작했다.이른바미일치킨게임이시작된것이다.
미·일고래싸움에서삼성은새우는커녕피라미신세에불과했다.삼성직원들에겐하루하루가지옥이었다.자칫하면그룹전체가와해되지않을까하는불안감이엄습했다.하지만호암은엄청난반도체의경영손실을안고서도천문학적개발투자를멈추지않았다.

지옥의터널을통과하면서도외친‘돌진하라’

호암의기업가정신에서놀라운사실은끝이보이지않는암흑상황에서도반도체개발을독려하고막대한돈을들여2공장(1984년8월),3공장(1987년3월)을계속지었다는것이다.다들이대로가면망한다고아우성을쳤지만호암은‘올인하라’고했다.생전에적자만보고눈을감은호암이었건만별세이듬해인1988년부터기적적으로반도체호황이닥치면서삼성은기사회생한다.
호암특유의공격적경영이있었기에가능한성과였다.반도체업계에서웨이퍼크기늘리기경쟁은지속적으로이루어져왔다.3인치,4인치,5인치는미국이선도했지만6인치는일본이먼저치고나갔다.하지만호암이6인치도입을결정할당시엔일본에서도제대로만드는회사조차없던상황이었다.호암은주변의반대를무릅쓰고6인치결정을내렸고이는3공장증설과함께또다른신의한수였다.1988년삼성반도체대반전의역사는256K가불티나게팔리면서가능했는데이는256K양산라인이던2공장의6인치웨이퍼가결정적으로효자노릇을했기때문이었다.이런극적인반전을보지못하고호암은눈을감았다.
웨이퍼크기늘리기로대표되는공격적인설비투자는이건희회장때에도이어지는데삼성반도체가1993년메모리부문매출세계1위로뛰어오르는신화창조의분수령이된계기는8인치를적용한16MD램양산라인(5공장)이었다.
삼성전자가8인치에뛰어든1990년과1991년,세계D램시장에는또다시불황이닥쳤고6인치로앞서달리며세계선두를주도하던일본업체들도투자규모를줄이고신규투자를주저했다.
하지만이건희회장은신경영이한창이던1993년6월D램업계최초로8인치양산라인인5공장을준공한다.그리고이승부수는1990년과1991년극심한불황을겪던시장이인터넷확산으로PC열풍이불면서다시호황사이클로급반전되던때라대성공을거둔다.삼성전자는1994년1조6,800억원,1995년3조5,400억원이라는‘단군이래최대’이익을낸다.1995년의경우메모리반도체이익만2조7,000억원에달했다.이건희회장의공격경영은8인치에서끝나지않고세계최초12인치공장준공으로이어진다.

삼성의초격차,1등주의,위기의식의배경

생전의이건희회장은반도체사업의본질로‘타이밍’을강조했는데이는반도체업의본질에정확히닿아있는말이다.반도체제조업체들은조금이라도더나은최첨단칩을제품에넣기원하는완제품업체들을대상으로하기때문에그야말로피말리는스피드경쟁을벌인다.분초단위시간싸움이벌어지는전쟁에서하루나일주일단위로결정이늦어지면몇년뒤몇십조원의손해를볼수도있다.
반도체사업은또전형적인승자독식구조다.이회장이생전에초일류정신,1등주의를강조했던것도2등이나이류를무시하는엘리트의식의표현이아니라반도체라는업의정체성자체가1등아니면언제죽을지모르는불안한구조였기때문에한말이다.
‘앞으로5년뒤,10년뒤를생각하면등에서식은땀이난다’거나‘지금삼성을대표하는사업과제품들은10년만지나도사라질것’이라며끊임없이‘위기,위기’를말했던것도이때문이었다.

결정적선택,결정적순간들로본이건희리더십

반도체산업사史를보면어떤기술을선택했는지가기업의성패를결정짓는경우가있다.스택과트렌치도그경우다.
1989년이되면서D램크기가4M를넘자저장소형태가문제가되기시작했다.이전까지는전부하나의평면위에트랜지스터와저장소를함께늘어놓는방식이었다.
1M까지는큰문제가없었다.그런데4M부터는집적도가갑자기올라가다보니손톱만한칩평면위에모두늘어놓는게물리적으로불가능해졌다.밀도를높이려면저장소를복층으로해야했다.여기서나온게스택방식이냐,트렌치방식이냐하는것이었다.
건축도그렇지만칩도복층으로만들려면위로세울수도있고지하를팔수도있다.스택은위로쌓는것이고트렌치는지하로파내려가는방식이다.각각장단점이있었다.트렌치가안전하기는했지만공정이까다로워경제성이떨어졌고무엇보다회로가보이지않았다.스택은작업하기쉽고경제적이었지만품질이불안정했다.
장단점이엇갈리다보니선발업체들의선택도나라별,회사별로갈렸다.미국회사들은대부분트렌치를택했다.일본의경우는도시바와NEC는트렌치를,히타치,미쓰비시,마쓰시다,후지쓰는스택을택했다.
고민이깊었던삼성도실리콘밸리에있는미국팀이트렌치,한국의기흥팀이스택으로연구를진행하다‘위로쌓는게더쉽지않겠는가’라는이건희회장의결정에따라스택방식으로결정을내렸고이를통해트렌치를선택했던일본회사들을앞서는결정적계기를만든다.
호암이마련한반도체라는초석위에30년만에‘세계최고의집’을지은이건희회장은과감한투자결정이라는경영감각을갖췄고미래기술추세를예측하는시야가넓었으며좋은기술에대한안목도있었다.이점에서탁월한기술경영자였다고할수있다.
스택과트렌치일화는직원들이갑론을박할때최고경영자의빠른의사결정이얼마나중요한요소인지보여주는상징적사건이다.
이건희회장과함께일했던전직삼성맨들은이회장의경영스타일에대해‘자율’과‘위임’이라고한목소리로말한다.실제로이회장은생전에도경영자의리더십에대해이렇게강조했다.이건희회장은‘책임은내가진다.실수를두려워하지말고저질러보라’고말하고행동했던리더였다.
권오현전부회장은“호황과불황이반복되고호황과불황사이의진폭이말도못하게큰반도체사업에서사이클에흔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