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의생활 : 쿠바에서 만난 생활의 치유력

쿠바와 의생활 : 쿠바에서 만난 생활의 치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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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쿠바 의료에서 배운 치유와 일상의 관계!
생로병사를 함께 감당하는 일상 속 관계 구축을 위한 의생활 선언!
보통 양극단의 시각(공공의료로 보장된 건강 평등 vs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며 실상은 지옥)이 존재하는 쿠바의 의료. 쿠바의 아바나의과대학에서 공부하며 쿠바의 의생활을 체험한 저자는 이 양극단의 시각에서 벗어나 쿠바 의료의 진정한 강점은 ‘의(醫)생활’에 있음을 말한다.
저자가 직접 만든 조어 ‘의(醫)생활’은, 우리가 총체적인 건강(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닌)을 누리기 위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신체의 사건’이 일상에서 전면적으로 지지받고, 함께 감당해야 하는 관계임을 함축한 단어이다. “내 몸이 달라지더라도 여전히 내가 속할 수 있는 관계망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이 된다.
이 관계망이 주는 치유의 힘을 저자는 쿠바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였고, 그 이야기를 생활, 마을, 학교, 세상의 4개 부에 담아 실었다.
마을 진료소이자 사랑방인 콘술토리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쿠바의 ‘의’(醫)-이야기는 첨단 의료기기와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에서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일상에 노병사(老病死)를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저자

김해완

십대때남산강학원+감이당연구실에서인문학공부와공동체생활을시작했다.선배들및친구들과읽는법,쓰는법,같이사는법을익혔다.2014년,연구실MVQ프로그램을통해뉴욕에가서삼년동안세상공부를했다.그사이『돈키호테』에푹빠져서중남미문학에대한로망을품고2017년쿠바에갔는데,엉뚱하게도‘마음’이아닌‘몸’으로공부방향을틀게된다.쿠바의학에매료되어의학도가된것이다.

코로나19팬데믹이후돈키호테의마지막도시인스페인바르셀로나로근거지를옮겨의학공부를계속하고있다.앞으로몸과마음사이의다리를놓는공부,생명과치유에대한탐구를이어나갈예정이다.쓴책으로는『다른십대의탄생』,『리좀,나의삶나의글』,『뉴욕과지성』이있다.

목차

머리말.우연과필연

인트로.의(醫)생활선언

1부.생활
1.봉쇄된섬나라의인생교실
2.피로:피할수없는인생의문제들
3.활기:쿠바의‘매직리얼리즘’
4.결핍:주린배와주린마음사이에서
5.생존:생명의자부심
[덧달기1]쿠바혁명

2부.마을
1.마을사랑방에는의사가산다
2.의사:네트워크의촉매제
3.주민:모두가주인공이되는자리
4.세대:의생활의역동성
5.공동체:최고의의료자원
[덧달기2]세상의의료들

3부.학교
1.배움,최선의생명활동
2.학생:백인백색(百人百色)의미래
3.교수:낭만닥터의하루
4.의대:실용주의의참의미
5.의학:세계와연결되는길
[덧달기3]세상의의대들

4부.세상
1.의(醫)의이야기
2.설탕의이야기
3.전염병의이야기
4.배고픈이야기
5.끝이있는이야기
[덧달기4]세상의‘의-사’들

아우트로.결핍없는생명의시간

사진으로보는쿠바와의생활

부록.초상들
1.혁명과아내―하숙집주인G의이야기
2.낭만의의미―선생R의이야기
3.두집사이―청소부A의이야기
4.주변에서중심으로―교회청년C의이야기
5.기억의파도타기―환자Y의이야기
6.결핍을모르는생명―두여자B와P의이야기

출판사 서평

▶지은이의말

“이침묵속활기에감탄하여나는책을쓰게되었다.이책은내가직접보고겪은쿠바생활을스케치한것이다.생활전반이아니라생활속에서의醫를중심으로형성된네트워크에초점을맞추었다.의醫라고하면‘의료’나‘의학’처럼미리구획된영역을떠올리기마련이다.그러나제도와학문이전에,신체가기거하고또변해가는일상의네트워크가선재한다.이네트워크를능수능란하게활용하는쿠바인들은치유란수많은인연이얽히지않으면불가능한사건이라는것을내게가르쳐주었다.의료인의기술만큼이나환자들의주도성도중요하고,제도적인뒷받침도더해져야하며,치유된환자가되돌아갈수있는일상도보존되어야한다.이런요소들이경계없이섞이는곳이바로생활이다.생활속에녹아든이네트워크를지칭할말이달리없어서‘의생활’이라는표현을만들게되었다.”

『쿠바와의생활』지은이김해완선생님인터뷰

1.단도직입으로묻습니다.^^생전처음듣는말인데요,‘의醫생활’이무엇인가요?

‘의생활’은말그대로일상생활속의‘의’(醫)를뜻합니다.‘의’(醫)라는한자는병을고치다,치료하다,치유하다라는뜻을가지고있습니다.이글자는단독으로쓰이기보다는병을고치는데필요한분야들을가리키는데사용됩니다.예를들면병을치료하는학문을‘의학’이라고부르고,치료의기술은‘의술’이라고합니다.또치료를위한관계및물자를총괄하는제도를일컬어‘의료’라고합니다.
한데어느날그런의문이들었습니다.정말이거면충분할까요?의학,의술,의료만있으면우리몸은치유되는걸까요?사실그렇지않습니다.병은근본적으로신체의사건입니다.병의최종적인운명은환자의몸이이병과조우하는방식(싸우거나,달래거나,동행하거나)에달려있습니다.
어떻게해야환자들의회복력을키울수있을까요?생활이건강해야합니다.한데이때‘건강하다’는말의의미를곱씹어봐야합니다.병을제거하고죽음을기피하는것은애초에불가능한일입니다.그래서세계보건기구또한건강을‘병의부재’가아닌생물학적,사회적,심리적차원이맞물리는총체적인안녕(wellbeing)으로정의한겁니다.각기다른생활조건에서살아가는사람들이‘총체적인건강’을누리기위해서는최소한다음세가지조건이공통으로충족되어야합니다.첫째,의술,의학,의료가만인이접근할수있는자원으로활용될것.둘째,병과죽음이불가피한생명활동임을인정하고,병자의일상유지를지원하는데까지치료범위를넓힐것.셋째,몸이변화를겪을때마다도움을주고받을수있고공감과조언을나눌수있는인간관계가일상생활에존재할것.
세번째조건이가장중요합니다.우리가몸이아플때가장간절히바라는것은일상을회복하는것입니다.그런데이말을뒤집어볼수도있습니다.아픈순간일상이송두리째없어지는게당연한걸까요?‘어른,비장애인,노동인구’로대표되는‘정상인’만이‘정상적인일상’을꾸릴수있다고전제한다면,그런삶은이미아픈삶입니다.누구든지장애인으로정의될수있고,노동할수없는순간을언젠가맞닥뜨릴테니까요.
총체적인건강을누리기위해서는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신체의사건이일상의테두리안에서전면적으로지지받아야합니다.새생명의탄생,아이들의성장,장애와비장애사이의신체스펙트럼,병구완과돌봄노동,죽음이후의상실감.이런현장은‘비정상’이나‘예외상황’이아니라우리삶의본질인신체가보여주는여러얼굴들입니다.따라서몸이새로운국면으로넘어갈때마다이를기준으로일상도새롭게재구성되어야행복할수있습니다.이는일상에서관계맺는사람들이촘촘하게협동하지않으면불가능한행복입니다.
요약하자면의생활이란생로병사를함께감당하는일상속관계의총체입니다.내몸이달라지더라도여전히내가속할수있는관계망이존재한다는안도감은그자체로치유의힘이됩니다.이처럼치유과정에서생활이갖는중요성을강조하기위해‘의’(醫)라는글자를붙여‘의생활’이라는말을만들게되었습니다.

2.쿠바의의료현실에대해서는,이책에서도언급하셨지만,양극단의시각(공공의료로보장된건강평등對프로파간다에불과하다)이존재합니다.선생님은쿠바의의대를다니며그현실을직접경험하셨는데요,선생님께서쿠바의의대에서가장크게배운것은무엇인가요?

제가쿠바의료에서가장크게배운것을꼽자면치유와일상의상관관계입니다.한마디로의생활이가진파워를경험해본것이죠.국제적으로고립된가난한나라가어떻게자국민들의의생활을튼튼하게보호하는지,그렇게함양된의생활이치료과정에서얼마나값진자원이되는지를직접현장에서목격했습니다.
바깥의시선으로보면쿠바의료는최신기술을뒤따라가지못하는투박한의료입니다.그러나쿠바의료의목표는주민들생활에최대한밀착하여실용적인의술을실천하는것입니다.덕분에저는최신기술만큼이나중요한‘기본기술’이있다는것을알게되었습니다.의사와환자가관계맺는기술이자,주민들끼리관계를맺어주는기술입니다.쿠바가족주치의는의사로서환자를밀착하여돌볼뿐만아니라,같은동네주민이라는동등한위치에서환자에게자기삶을돌볼것을요구합니다.또한환자가처한상황을구체적으로묻고,문제를해결할수있는아이디어를함께모색합니다.일상의관계가의료적맥락에서의논될수있는무대가열리는거죠.의료와일상이섞이는‘사이공간’을주민들이자율적으로꾸려갈수있도록지원하는겁니다.이네트워크가두터워질수록어려운상황이닥쳤을때스스로건강을지켜내는주민들의역량도커집니다.
의사와환자사이의라포를강조하는것은전세계의료현장의추세입니다.그러나쿠바처럼의료가주민들의일상깊숙이파고든경우는찾아보기어렵습니다.물론저는쿠바의학이완벽하다고주장하려는게아닙니다.쿠바의료에대한평가는양극단으로나뉘는데,제가보기에양쪽다설득력이있습니다.쿠바혁명을통해공공의료가제도적으로정비되지않았다면쿠바의생활이이만큼성장하는것은불가능했겠지요.동시에현재쿠바사회가처해있는여러문제들(경제봉쇄,의약품부족,관료주의등)은의생활을근간부터위협하고있습니다.세상어디나그렇듯이이상과현실사이에는간극이있고,쿠바의생활도이사이에서불안하게흔들립니다.그럼에도쿠바가의료선진국으로서명성을잃지않고어떻게든자국민의건강을유지할수있었던데에는개개인이생활에서실천하는공생의지혜가큰몫을했다고생각합니다.
의생활은쿠바뿐만아니라세상어디에나존재합니다.하지만의생활의중요성이얼마나뚜렷하게인식되는지,또얼마나튼튼하게관리되는지는각공동체마다다릅니다.만약아이를낳고기르는데도움을주는네트워크가부재하다면청년들은부모가되기를망설일겁니다.아이를낳는순간사회에서고립된다는두려움때문에요.병환과사망의경우두려움의정도가훨씬더크겠지요.그렇다면조금더행복한생로병사에한발다가가기위해서는어떤실천이필요할까요?쿠바의케이스가우리에게의미있다면이런질문을던져주기때문일겁니다.

3.‘쿠바에서만난생활의치유력’이이책의부제인데요,책내용을보면현대화되기이전사회,그러니까마을공동체의모습이많이남아있는것이쿠바치유력의중요한배경이아닌가싶습니다.이미제1세계에속하며기술발달의앞자리에위치한한국에사는우리가이런치유력을가질수있을까요?1세계의‘생활의치유력’은어떻게가져갈수있을까요?

쿠바마을공동체가가진힘을‘현대화되기이전사회’의저력이라고이해하는시각은맞기도하고,틀리기도합니다.오늘날쿠바마을공동체가보여주는연대는교육과의료이라는제도가뒷받침하지않으면불가능한힘입니다.이제도는쿠바의현대화를꾀한쿠바혁명이남긴유산입니다.혁명이전의쿠바사회는극심한빈부격차로파편화되어있었고,식민지시대부터이어져온불평등한사회관계가청산되어야했죠.
그렇다고해서쿠바의현대식제도가공동체를완성했다고결론짓기도어렵습니다.쿠바의사회주의실험은그간수많은실패를겪었습니다.그과정에서주민들의일상에는제도의공백이생겨났고,공백을주민들이자발적으로채우는과정에서연대의힘이두드러지는경향이나타납니다.이런점은현대화되지않은사회의면모로이해할수있겠습니다.
제도와비(非)-제도의기묘한협력.쿠바의독특한배경속에는제1세계에서도베낄수있는생활의치유력의힌트가숨어있습니다.생활의치유력은생로병사를함께감당하는관계가만들어냅니다.피상적인관계나규격화된관계로는불가능한일입니다.어떻게해야이‘깊은관계’가가능할까요?국가제도나교환경제보다한발먼저작동하는자율적인관계여야합니다.이런관계는이념으로만들수없습니다.생활로서체득되는구체적인관계여야합니다.관계를맺고사는게일상유지에도움이되어야하고,이를통해문제들을해결할수있어야하고,이안에서삶이더안전하고재미있다는확신이있어야합니다.
이런관계를함양하려면안정적인공간확보가중요합니다.문제는제1세계에서이동이보편적인라이프스타일이되었고,그여파로마을이해체된다는것입니다.이때제도의역할이필요합니다.누구든지쉽게정착할수있는마을후보지를여럿확보해두어야합니다.정착은지속가능한생활조건이준비될때만이루어집니다.지속가능성의조건은거주,일자리,의료,교육입니다.감당할수있는집세와양질의일자리가준비되지않으면청년들은찾아오지않습니다.또한마을에머무는시간이긴편인노인과아이가살기좋은마을을만들어야합니다.노인들이쉽게찾아갈수있는병원인프라와,아이들이굳이수도권을찾아갈필요가없는교육인프라가준비되어야합니다.제1세계에는이런조건을마련할만한자금력이있습니다.
생로병사에대한정보및지혜를순환시키는네트워크를구축하는과제도잊어서는안됩니다.쿠바에서가족주치의들은의학지식의메신저역할을하고,마을진료소는주민들이생로병사에대한고민과감정을격의없이나눌수있는사랑방구실을합니다.쿠바의가족주치의제도를그대로베껴올수없다하더라도이와대등한역할을할수있는지성의네트워크는꼭필요합니다.이네트워크를활발하게움직이는‘촉매제’를누가맡을지는창의적으로고민해볼수있습니다.생사의지혜를전하는철학자,사람들사이의대화를유도하는상담사,건강한일상프로젝트를조직하는활동가,혹은이모두가함께움직일수도있겠지요.

4.쿠바에서의대를다니셨는데,어째서지금은스페인바르셀로나로의대를옮겨서다니게되셨는지궁금합니다.

스페인바르셀로나로학업의근거지를옮기게된것은저도생각지도못한일입니다.제가아바나의과대학에서2학년을다니던시기,코로나발팬데믹이벌어졌습니다.팬데믹의여파로저희학교는8개월동안수업을중지했습니다.쿠바에서는인터넷이아직상용화되지않았기때문에온라인수업을한다는것은꿈도꿀수없었죠.의대생들은공부를하는대신길거리로나가방역활동을시작했습니다.(‘페스키사’라고불리는쿠바식방역은책에설명되어있습니다.)
진짜문제는따로있었습니다.관광업수입이크게줄자쿠바안에서물자가떨어지기시작했습니다.쿠바상황이정상적인궤도로돌아오기까지많은시간이걸릴것같았고,의대가다시시작된다고해도학업을안정적으로이어갈수있을지확신이없었습니다.결국저는학업을마치는데우선순위를두기로하고,스페인바르셀로나에있는의대로편입을했습니다.스페인은쿠바와같은언어를사용하는데다가의료계사이의교류도활발해서가장용이한선택지였습니다.
저는쿠바에오기전까지의학공부에대해전혀뜻을두지않았던사람입니다.그만큼쿠바의학은제게매력적인탐험지였습니다.쿠바가아닌다른곳에서의학을공부한다면많은것이변하리라는예감이들었고,실제로도그랬습니다.바르셀로나에서경험한사제관계나의사-환자관계는제가쿠바에서배웠던것과는너무나달랐거든요.처음부터다시공부하는기분으로학업을이어가고있지만,한편으로는전화위복이라고도생각합니다.시야가넓어지고쿠바의료를객관적으로판단할수있는기준도생기게되었어요.
현재제가경험하는의료가유럽을비롯하여제1세계에서통용되는‘표준의료’라면,쿠바의료는철저하게쿠바가처한현실의맥락에맞춰구성된‘맞춤형의료’입니다.그럼에도쿠바의생활의주인공들인주민들의저력은지금도제게영감을줍니다.건강할때나아플때나,태어날때나죽어갈때나사람들사이에서고립되지않고행복하고싶다는인간의욕망은국경을넘어도동일하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