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나의 철학 그리고 내가 사랑한 철학자)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나의 철학 그리고 내가 사랑한 철학자)

$18.50
Description
아렌트·리쾨르·아도르노·사르트르에서 들뢰즈·푸코·주디스 버틀러·로지 브라이도티까지,
국내 여성철학자 8인이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나의 철학’과
그들이 사랑해 온 사상가를 함께 만나는 특별한 철학-에세이!
“개인적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는다.”_한나 아렌트

여덟 명의 ‘여성철학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과 자신이 사랑하는(그리하여 전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철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신진, 중진 여성철학자들은 이 책에 각각 두 편씩 글을 실었다. 한편은 그가 철학(혹은 전공한 철학자)과 만난 이야기 또는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고, 또 다른 한편은 그가 파고든 철학자의 사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소개하는 입문격의 글이다. 사유가 사라져 가는 만큼 사유가 절실해져 가는 지금 여기에서, ‘철학’이 우리 삶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철학함’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여덟 명의 여성철학자들이 각자의 구체적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와 함께 펼쳐 낸다. 철학을 삶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이 책은, 철학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는 가장 믿을 만한 문턱이 되고, 이미 철학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시 사유하게 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기획의 말
“각 선생님께는 두 편의 글을 요청드렸습니다. 한 편은 자신이 철학(혹은 전공한 철학자)과 만난 이야기, 또는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개인적인 사유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다른 한 편은 선생님이 깊이 파고들어 온 철학자의 사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입문서에 가까운 글입니다(한 분의 선생님은 특별히 이 두 가지 요구를 한 편의 글에 직조하여 보여 주십니다). 이 두 편의 글은 철학자의 삶과 사유가 분리될 수 없음을, 또 철학이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줍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여성철학자들의 목소리를 한 자리에 모아 보여 주는 일은 단순한 소개를 넘어, 철학의 장을 다시 구성하는 하나의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얼굴이 대개 남성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철학 자체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유가 기록되고 전승되며 제도화되어 왔는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철학함에 성별의 구분은 당연히 없지만, 철학자의 이름이 호명되는 방식에는 분명 성별의 정치학이 작동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그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온 기준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여성철학자’라는 명명을 사용합니다. 이 명명은 특정한 맥락에서 필요하며, 언젠가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질 이름이지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모인 여성철학(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삶을 다시 사유하게 만들고, 당연하게 여겨 온 경계에 질문을 던지며, 이질적인 존재들과의 연결을 사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절실한 이 작업들을 철학자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주는 이 책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자신의 삶을 더 사유하는 쪽으로, 우리에게 그어진 경계를 의심하는 쪽으로, ‘우리 공동체’ 바깥의 존재를 상상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면, 기획자로서 더 이상의 바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자

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들뢰즈와 칸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40회 영평상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하여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비평가 들뢰즈』(공저), 『들뢰즈와 칸트: 차이와 이념의 철학』, 『자크 데리다』, 『철학극장: 철학과 영화의 마주침』 등이 있다.

목차

기획의 말

아렌트와 바깥을 향한 사유 _ 양창아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를 만난 시간
기억의 조각 | 대학에 갈까 말까 | 대학의 안팎에서 | 사유의 과제

한나 아렌트와 파리아 개념
경험과 사유 | 파리아, 접촉할 수 없는 | 자각한 파리아의 관점 | 사유의 조건


리쾨르, 삶은 이야기다 _ 김애령 × 폴 리쾨르

맺음을 거부하는 끝없는 과정
폴 리쾨르와의 만남 | 이해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 “삶은 이야기다”- 현장에서 | 여성으로, 경계에서 그리고 경계를 넘나들며 철학하기

폴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
소박하고 성실한 철학자 | 리쾨르의 미메시스론 | 서사 정체성 이론의 가능성과 한계


아도르노, 고통에 대한 변증법적 성찰_노성숙 × 테오도어 아도르노 64

내가 만난 철학, 철학상담의 길
철학에 매료된 첫 계기 |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공으로 배운 철학 | 독일 박사과정 동안 철학공부의 심화 | 철학을 포기하려다 만난 만난 철학상담 | 철학상담을 통해 꾸는 꿈 -더불어 철학함

상처입은 개인의 삶과 사회적 고통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사상가 아도르노
철학상담의 관점에서 본 아도르노 | 이주와 탈주를 거듭하며 상처 입은 아도르노 개인의 삶 | 사회적 고통의 진원지를 탐구한 『계몽의 변증법』 | 철학적 뿌리로부터의 비동일적 사유 『부정 변증법』 | 사회적 고통으로부터 상처 입은 아도르노의 자기 치유


사르트르, 자유로서의 주체 _ 이솔 × 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 자유로서의 주체
사르트르 철학은 어떤 것인가?
첫번째 답변 | 두번째 답변
왜 사르트르인가?
선택의 의미 | 문제의 전환


들뢰즈와 배움 _ 강선형 × 질 들뢰즈

들뢰즈와 배움
들뢰즈를 공부하며 배운 것 | 철학이란 무엇인가 | 철학을 한다는 것 | 글을 쓴다는 것 | 기호와 잃어버린 시간 | 기호와 배움

차이와 반복의 세계
배움과 수련의 철학 | 차이와 반복 | 반복이라는 조건 | 들뢰즈 철학으로 할 수 있는 것


푸코와 함께 현재를 사유하기 _ 김분선 × 미셸 푸코

멋진 인간이 되려는 분투, 철학과 함께 살기
철학을 소개할 준비 | 철학의 멋에 빠져들기 | 철학의 세계에 들어설 용기

함께 사유하는 친구, 미셸 푸코와 함께 걷기
철학계 슈퍼 아이돌, 미셸 푸코 | 우주 보편 철학에서 지구별 일상 철학으로 | 자기 배려와 쾌락의 윤리학 | 성실하고 진지한 철학자이자 나의 오랜 친구


버틀러와 관계성 _ 이선현 × 주디스 버틀러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다: 기독교인이 읽는 주디스 버틀러
What Is Love for You? | ‘이웃 사랑’의 함정 | 사랑의 양가성 |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주디스 버틀러, 몸 그리고 수행성: 경계로서의 몸을 넘어 몸들의 틈새로
경계로서의 몸과 젠더 수행성 | 슬픔이 가르쳐 준 박탈된 몸 | 몸들의 틈새와 복수적 수행성


브라이도티와 여성-되기 _김은주 × 로지 브라이도티

몰락과 우연이라는 철학하기의 여정
나의 몰락 | 우연의 길에 들어서, 여성주의 철학과의 만남 | 윤리,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 오래된 도시라는 ‘언어’로 철학의 세계에서 사유하기

로지 브라이도티, 여성-되기 그리고 포스트 휴먼
로지 브라이도티의 문제 의식 | 들뢰즈의 신체 개념과 브라이도티의 유목적 주체 | 여성-되기와 포스트휴먼적 주체성 |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의 페미니즘

출판사 서평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 ‘철학’(-함)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선형】 들뢰즈의 유명한 개념 가운데 ‘거짓의 역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들뢰즈가 니체로부터 가져온 ‘거짓의 역량’ 개념은 진실을 일깨우는 허구의 힘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서 참과 거짓의 판단체계 자체를 와해시키는 힘을 가리킵니다. 참과 거짓의 판단체계가 와해된다는 것은 철학이 더 이상 고정되어 있는 진리를 발견하거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답을 바라지 않는다면 철학에 관심이나 가질까요? 철학의 쓸모는 단지 개연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찾기에 있다는 믿음이 철학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들뢰즈를 공부하며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진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고 절망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답이 없는 철학에서만 끝나지 않는 질문들을 배우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늘 정답이나 결과를 바랍니다. 끝나지 않는 과정 속에 있다는 건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논의가 끝난 문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기피하기도 하고, 미디어에 나와서 가장 빠르고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사람들을 추앙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철학도 ‘쇼츠’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늘 과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무엇이’ 되었다고 하면, ‘무엇이’보다는 ‘이런저런’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은 정답을 동어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설명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발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철학과 함께 질문을 배우고, 질문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철학의 위대함은 철학이 없었다면 아주 큰 자리를 차지했을 아둔함을 줄여준다는 데에서 나온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아둔함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즐거움은 인생의 즐거움을 닮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의미한 반복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과정은 늘 새로운 배움의 과정인 것처럼, 무엇에 답하고자 했는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우리는 철학의 과정을 통해 그 즐거움을 배웁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에 끊임없는 발명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궁극적인 목적지를 가지지 않는 모험이라고 썼습니다.

【김분선】 저에게 철학함은 사유함입니다. 혼자 사유하기보다 함께 사유하기로 확장하여 나아가면 더 좋을 듯하여 연구와 교육을 하며 철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파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 따라가기 벅차서 버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철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철학을 지식으로 쌓는 것은 말 그대로 질문하면 답이 나올 수 있도록 기계적으로 학습하는 공부입니다. 그런데 철학 공부는 기계적으로 하여 같은 답이 도출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정확하게 그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지도 분별되지 않습니다. 또 철학자가 전달하는 바르게 의미를 이해했는지 아는 거부터가 어렵고 나를 시험대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나의 것으로 가져오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고행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조각난 퍼즐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맞춰지게 됩니다. 그 시간을 건너야 철학자의 사유 근처에서 맴돌 수 있고 책 속 철학자들의 사유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세계를 파악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철학적 사유의 근원에는 모두 인간인 철학자의 사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사유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하고, 자기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게 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맞출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저에게 철학은 오랜 친구와 함께 사유를 나누는 과정과 같습니다.

【김애령】 나에게 철학은 ‘깊은 사유의 길’ 같은 것입니다. 그 여정을 이끄는 것은 늘 물음들입니다. 매번의 물음에 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답은 또 새로운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대부분 (거의 언제나) 답은 조심스럽게 시도되지만, 부족합니다. 그것은 곧 다른 물음으로 열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물음들이 사유의 길을 계속 따라가게 합니다. 더러 ‘철학공부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철학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의 출발점은 ‘재미’였습니다. 구체적인 사건, 에피소드, 고민, 갈등, 불만, 분노 같은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에 대해서 어느 만큼은 거리를 두고 ‘거미줄을 짜듯’ 생각을 굴려가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사유의 힘’에서 느끼는 자유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공부를 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계속 밀고 나가게 하는 동력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사유가 주는 자유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만나는 복수의 구체적인 ‘텍스트들과 신체들’, 혹은 ‘텍스트의 신체들’, ‘신체라는 텍스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철학(함)은, 이 세계의 구체적인 문제상황들로부터 출발하는, 그치지 않는 물음으로 이끌리는, 아마도 끝이 없을, 깊고 복잡하게 얽힌 사유의 길 같은 것입니다.

【김은주】 삶과 사유를 근접하게 함의 기쁨이나 항구에 도달했다고 믿는 순간 바다 한가운데로 다시 뒤던지는 풍랑 그러나 위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나 효과로서 위로를 선사하는 효능감이 저에게 ‘철학’(-함)의 의미입니다.

【노성숙】 제게 철학은 단지 학문이기보다는 ‘철학함’의 활동으로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이웃들과 더불어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사유하기’와 ‘대화’를 통해서 ‘철학함’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철학함’에서의 사유하기는 단순히 떠오르는 상상들의 유희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래로 뿌리는 내리며 뻗어 가기도 하고, 위로 뻗어 나가며 그 방향성을 탐색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철학적 질문을 통한 사유는 ‘철학’ 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 떨어져 나오는 ‘놀라움’, ‘상실’, ‘회의’ 등의 계기를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사유한다’는 것이 곧 ‘영혼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철학함’에서 중요한 ‘사유하기’는 대화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와 이웃, 세계에 대해 사유하는 활동을 홀로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스스로 내적으로 대화하듯이 전개되며, 이러한 전개를 좀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타인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철학상담’의 분야에서 집단 프로그램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 ‘소크라테스 대화’는 대표적인 ‘철학함’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창아】 자기 세계의 한계를 감지하고 인식하며 허물어뜨리는 과정. 사람들이 종종 삶에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그 말은 한편으로 이미 배운 것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뜻하는데요. 철학도 그런 배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철학만이 그러한 배움 버리기로서의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 없이 철학함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질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세계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말이 혼잣말처럼 떠올랐는데요. 왜 이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을까를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학기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의 「정치적인 것의 기원: 한나 아렌트냐 시몬 베유냐」(The Origin of the Political: Hannah Arendt or Simone Weil?)(trans by Vincenzo Binetti and Gareth Williams, Fordham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7)를 학생들과 함께 읽었는데 그 영향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에스포지토는 그 책 서문에서 아렌트와 베유의 사유 개념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데요. 그는 두 사람의 사유 개념이 특히 ‘비주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들에게는 주관적 의식의 영역으로 환원할 수 없는 구체적 현실의 차원에 진리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얘기해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기 세계의 한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기의 능력 향상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타자와 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자기 안에 갇힌 상태로부터 벗어난다는 걸 의미합니다. 저는 철학함이, 어느새 견고해진 주관성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유 활동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선현】 올해 여름 어머니를 모시고 해운대에 있는 한 화랑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자연에 몰입한 시간을 다양한 기법들로 담아낸 전시였습니다. 어머니는 달맞이 길을 내려가시면서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이제 자연이 다르게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어머니의 말이 ‘철학’의 의미를 고민하는 저에게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농부이신 어머니에게 자연은 철저히 계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는 자연을 계산의 대상으로 볼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을 작품을 통해 경험한 것 같습니다. 자연이 자연으로 존재하는 순간을요.
‘철학’을 한다는 것도 이러한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의 현실에서 연구자는 대상을 앞에 세워 계산하고 따져보고 재현합니다. 세계는 재현하는 연구자에 의해 세워지는 한에서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물을 대상으로 재현하지 않을 때, 이러한 존재의 본질·구조·조건을 감각할 수 있게 됩니다. 철학은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