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의 세계』 지은이 인터뷰
1. 주디스 버틀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계기를 머리말에서 ‘낯선 세계로부터 받은 초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처음 버틀러를 전공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리고 오랫동안 버틀러를 읽으며 처음의 생각과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낯선 세계로부터 받은 초대’라는 말처럼, 처음 버틀러를 전공하게 되었을 때 낯섦이 주는 묘한 긴장과 초대받았을 때의 설렘이 공존했습니다.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를 압도할 만큼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버틀러로 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이 결정이 맞는지 1년 가까이 고민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두려움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버틀러를 공부하게 되면 제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관이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오염된다는 생각은 무결함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사고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제가 속한 기독교적 세계를 어떠한 균열과 침범도 허용될 수 없는 견고한 성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오염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저의 무능을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읽든 어떤 비판적 사고도 하지 못한 채 그것에 영향받고 말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버틀러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제가 가진 버틀러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편협하고 지엽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텍스트 자체를 직접 읽기도 전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들로 한 학자의 이론과 삶을 평가했구나 싶었습니다. ‘버틀러의 이론은 너무 어려워’ 혹은 ‘버틀러의 이론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와 같은 처음의 막연한 판단은 버틀러의 사유가 매우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자 현실과 정치에 기반한 실천적 개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 이런 이론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공부하고 나니,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저서들이 연결되기 시작했고, 이론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이 보였습니다. 버틀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제서야 제대로 봐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제가 속한 세계에 관한 질문과 숙고로 이어졌습니다. 나의 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고 그 세계가 오염될까 봐 두려워했던 데서 벗어나, 다른 세계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즉 내가 사는 곳이 단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를 마주함으로써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죠.
2. 한국에서 주디스 버틀러라고 하면 여전히 『젠더 트러블』과 ‘젠더 수행성’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젠더에서 출발해 인종과 타자, 보편성, 전쟁, 프레카리티와 연대의 문제까지 나아갑니다. 선생님이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젠더 이후의 버틀러’는 어떤 모습인가요?
책에서는 버틀러의 이론과 그 이론이 출현한 맥락을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놓았지만, 사실 한 사상가의 이론적 흐름을 명확히 가르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젠더 트러블에 반영된 문제의식이 후기의 것과 이어지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하죠. 다만,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론적 변화가 상아탑이나 이론적 장 안에서만 이루어진, 다른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고 수용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개입하기 위한 시도와 그에 따른 결과라는 점입니다. 역사적 사건들과의 조우 속에서 그에 대한 해석과 개입이 버틀러의 이론적 변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틀러는 2001년 9·11 사건 이후로 확실한 변화를 보입니다. 초기의 버틀러가 젠더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굉장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의식을 당시 미국의 신보수주의라는 정치적 상황과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적 장 안에서 풀어냈다면, 9·11 이후의 버틀러는 미국 밖의 타자들과 인종적 문제를 사유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버틀러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런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전 지구적 전쟁과 폭력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으로, 즉 신자유주의라는 권력의 작동을 문제 삼고 이에 저항하는 몸들의 연대로까지 그 사유와 실천을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젠더에 국한된 문제의식이 후기에는 젠더에 대한 배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차별적으로 할당하고 분배하는 더 큰 시대적 문제들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젠더 트러블』에서 보여준 촘촘하고 치밀하던 이론이 후기에 이르러 약간은 느슨해지고 성긴 이론으로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후기 텍스트는 초기만큼 개념적으로 밀도 있지 않으며, 때로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철학자를 평가할 때, 이론의 세밀함과 엄밀성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젠더 이후의 버틀러’는 이론의 촘촘함이 다소 희석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자리는 불확실한 삶을 사는 몸들과 연대할 수 있는 실천적 언어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입하기 위한 버틀러의 시도는 훨씬 더 실천적이고 열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3. 책 제목이 『주디스 버틀러의 세계』입니다. ‘버틀러의 철학’이나 ‘버틀러의 사상’이 아니라 굳이 ‘세계’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버틀러의 이론을 소개하는 책은 이미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목표가 버틀러의 개념들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면, 철학이나 사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작업은 버틀러의 이론과 철학이 어떤 배경 속에서, 어떤 문제와 마주하며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즉 버틀러가 자신과 세계가 처한 형편을 설명하고,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어떤 이론을 구성해 왔는지를 따라가 보는 작업입니다. 이론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특정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변화합니다. ‘세계’라는 제목은 버틀러라는 한 사람의 사유와 그가 마주한 시대적 조건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하나의 총체를 가리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론을 따로 떼어내어 살펴보는 대신, 그 이론들이 구성된 지형과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런 관점을 담아내기에 ‘세계’라는 단어가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세계’라는 단어에는 초대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저 자신이 그러했듯, 이 책의 독자들 역시 버틀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그 안을 걷기를 바랐습니다. 국내에서 버틀러만큼 많은 반발과 오해를 산 철학자도 없죠. 버틀러에 대한 섣부른 판단에 앞서 그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경험이 독자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버틀러라는 철학자의 이론적 흐름과 그 맥락을 살펴보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자를 버틀러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이 낯선 세계로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기를 바랍니다.
4. 버틀러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에서 점차 ‘우리는 타자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변화에서 버틀러 사유의 가장 중요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버틀러가 보인 사유의 변화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층위를 묻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먼저 버틀러에게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동인, 변화를 일으킨 가장 중요한 힘을 묻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역동성의 근거는 사회와 담론의 차원에 국한된 것에서부터 이미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한 사유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규범적 권력에 의해 구성되고 수행성을 통해 저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버틀러가 초기부터 후기까지 일관되게 가져가는 수행성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후기의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 앞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호의존성’이라는 특성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출발은 개인주의적이고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애초부터 타자와 세계에 서로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버틀러 사유의 변화를 추동한 가장 중요한 힘은, ‘우리는 애초부터 함께 의존하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전환된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질문은 버틀러의 이론적 변화를 현재적 시점에서 평가하고 해석하여 그 사유의 강점을 묻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비슷하게 이러한 변화가 지닌 미래의 잠재적 능력을 묻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자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큰 질문 속에서 발휘되는 가장 큰 강점이자 잠재적 힘은 현재의 현실이 권위적이고 폭군적인 통치 아래 있다 하더라도 현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폭력적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버틀러의 말처럼, 그것은 지각의 변화를 필요로 하며, 이 상상계 안에서 공격과 슬픔은 곧바로 폭력으로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적 없는 사회적 유대의 어려움과 적대감을 감당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적 사고의 지평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버틀러의 사유에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중요한 힘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5.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버틀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디스 버틀러의 세계』를 읽은 독자가 자신의 삶이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전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졌으면 하나요?
1990년 버틀러의 첫 저작 젠더 트러블이 출간된 이후로 36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젠더의 문제는 여전히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아직도 정체성 정치에 사로잡혀 있으며, 반젠더 이데올로기는 젠더가 주는 두려움을 이용하여 공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젠더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겠다는 보수화된 기획과 백래시는 아직도 우리에게 버틀러의 ‘젠더’ 논의가 유의미함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버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