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바깥

하루의 바깥

$15.80
Description
나는 날마다 익숙한 듯 낯선 관통을 느꼈다.
그리하여 드러난 속살의 온기를 믿기로 했다.
자주 장막을 걷어 홀연히 소스라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하염없이 멀어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닿기를 바란다.

저자

신대훈

99년출생
쓰는사람

모든생을세밀히사려하고연민하는인간이되려한다.
지은책으로에세이『결국모든날이괜찮지않았지만』이있다


인스타그램@eou_ns

목차

작가의말4

[순간의피사체들]

순간의피사체들14
불행해져서는안된다17
어떤빛20
오월23
행복26
행복227
옛사진30
살아온기억이살아낼기적으로33
그때그집35
밥40
초록빛깔사람들45
약을넘기며51
약을넘기며253
지하철1호선58
걸음들61
길가의항해65
태풍70
하루의바깥74
가을의모습77
강가에서80
할아버지85
불필요한간직90
일상적모험94
개100
엘리베이터안에서106
받아들이는삶110
기지개113
겨울밤117
나는쓰러간다122

[고통의정면으로]

허무에미어져도126
고요한슬픔128
통증130
건조기에서방금꺼낸수건132
고립된나날134
위로137
필요한마음139
아이140
아물어가며143
아침144
병든행복147
전혀괜찮지않다154
밥벌이159
여름빛아래161
새벽걸음165
다시사는기분169
계속해나가며172
계속해나가며2176
혼자먹는밥180
바람을맞대고있기로했다183
웃음소리를기억한다188
목감기192
둘레길의꽃처럼196
낭만한점200
멋204
못다핀꽃들의정원208
뜻밖의연대212
기침소리216
뛰는할머니219
새빛224

[잃어버린빛깔]

나230
청소년231
애늙은이232
급식실에서237
어른243
빛과눈249
얼음들252
시커먼천장255
시커먼천장2262
감수성267
나다운여정270
작가지망생273
이따금섬이된다279
작은불꽃286
외로움의끝자락291
노랗게해뜰날295
쓰레기통300
달303
바다305
모든우연307
펭귄과독수리311
박수갈채315
나는가끔혼자웃는다320
새삼스러운사랑323

마치는글326

출판사 서평

익숙한듯낯선하루,
그경계너머에서마주한삶의조각들에대하여.

면면히살펴보면우린매일다른하루를살고있습니다.오늘마주한사람들,그들과나눈이야기,스치듯들은음악,우연히읽은책속한페이지의문장?.그러고보면어느것하나어제와똑같은것이없습니다.마음을괴롭히던일도어제일이되면그색이조금은옅어지는것처럼요.그럴때면깨닫곤합니다.마음에도시간이필요하다는것을,환기가필요하다는것을요.

신대훈작가는자신이마주하는하루를가능한마음의바깥에서바라보려노력했습니다.그래서인지그가써내려간모든하루는적당한온도로데워져있습니다.읽는이에게너무뜨겁게다가가지도,차갑게멀어지지도않는,적당한거리에서작가는덤덤하게자신의이야기를풀어냅니다.

안에서보는풍경과밖에서보는풍경은결코같을수없기에신대훈작가는기꺼이마음의바깥에,하루의바깥에서있기로합니다.그만이할수있는조금다른방식의위로,『하루의바깥』.한문장,한문장깊게고민하고세심하게매만진작가의글을읽는것만으로도,어쩐지‘꽤괜찮은하루를보낸것같은’기분이들것입니다.

책속에서

옛사진(p.30)
그리운것들을떠올리는밤에는나에게조금더다정한사람이될수있었다.

잠깐이야기하려고했는데몇시간이훌쩍가버리는경험을종종한다.어느주제로시작해서전혀동떨어진과거로아슴아슴가있기까지.말이자꾸만용솟음치다가문득흘러버린시간을뒤늦게자각하는순간이있다.하염없는그시간은삶을통틀어귀중하다.그때마다내앞에있는사람은새롭게아름다웠다.

어쩌다옛사진을보았다.안방구석어딘가에사진첩이있었는데줄곧잊어버리고살았다.나는사진들을찬찬히훑어보자마자알수있었다.내마음에파고든정념은한점낭만이나아련함이아니라,이루말할수없는억눌림과고통,담을수없는생의우수가몰려왔다는것을.그것들은아프고아름다웠다.

대충다섯정도의내가동생과함께서있고,그뒤로엄마가배경이되어있는사진이었다.엄마의뒤쪽으로크지도작지도않은비행기가하나서있었다.날씨는따뜻해보였다.“엄마이날언젠지알아?”엄마는미간을모아사진을자세히들여다봤다.“글쎄?저코트가너세살때산건데,다섯살때까지입었거든.아마도이천사,오년정도?”더묻지않았는데엄마가말을이었다.“이때는정말아무것도없을때네….”엄마는말끝을떨어트렸다.

엄마의‘이때’나‘아무것도’에는젊은날의무질서와피로가쌓여있었고,그시절을어떻게든살아온자신에대한아련한다독임이담겨있었다.그것은추억이라기보다는좀처럼떠올리고싶지않은기억에가까울것이었는데,엄마는눈빛을올올이풀어한참사진을바라보다가이윽고알지못할미소를지었다.생의전반부를지난사람의얼굴은마침내미소였다.

나는문득엄마가추워보였다.엄마의미소는얼음에그어지는실금같았다.금방이라도허공에눈처럼,투명한보석처럼흩어질것같았다.대한민국중년의피부는너무얇다.“괜찮아잘살아왔어.살아냈어.엄마.”엄마는조용히울었던것같다.

이따금아늑한세계에서치유를받는다.조금전꾼꿈처럼조금있다가멀어지는것을본다.분명삶은가난했고지독했고처량했고힘겨웠지만,그날들이있기에다만오늘이아름답다는것을안다.그리운것들을떠올리는밤에는나에게조금더다정한사람이될수있었다.다정을건네야겠다.

고요한슬픔(p.128)
다정한것들이드문다녀간자리에는무늬가있었다.

가로등이드문저녁거리는적요하고어두웠다.길섶에심어진나목은사람의뼈마디같았다.저것에서어떻게초록잎이자라날까상상하면무서워졌다.나무에도심혈이있다면무엇으로양분을얻을까.따끔한빛과한방울의물이그것일진대,우연을기다리며수명을연명하는처지가무릇사람과다른게무엇일까.텅빈하늘은절망을쏟아내기에바빠보였다.
어떤마음은흘러가게해야한다.고여버리면그저무력한슬픔의존재를자각하게될뿐이라고,발밑으로진그늘은독촉하고있었다.슬픔을모아다가어디에쓰려고자꾸주워오는지.이런일에조금씩법석을떠는것이나의병이다.어쩌면도처에슬픔을그러모아잎을움트는것일지도모른다.

나의양분은손끝으로간다.하지만글자는말이없다.글자가전부가되어버린삶은어눌하고쓸쓸한법이다.나는글을씀으로존재하는듯했는데,글은자꾸만나를글에서멀어지라했다.시체처럼미동도없는글에서나는흐트러졌다.덧없는것들은행동으로옮겨지지않은모든것이라고,이내냉정한비수를꽂았다.늘그렇게외롭고새롭다.
진회색하늘에구름은없었고그러나다정한것들이드문다녀간자리에는무늬가있었다.사라지지않으려면그자리에가만히머물러야한다는것을,고꾸라지기직전에홀연히알아차렸다.맑게갠날에는어제의잘못을써내려야지.그토록비웃던현실에발을딛고서,서로의가슴팍에씨앗하나를묻어야지.꾸역꾸역버텨서서로의상실을나누는순간을사랑해야지.
슬픔은곧약속같은떨림이되어있다.무엇인가자꾸만요동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