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정서를함축적언어로표현하는문학,바로시詩라는장르입니다.그저‘짧은말’이아닌,짧은문장안에깊고깊은뜻을안고있는그런언어.
우리는시를통해추억을,사랑을,그리고아픔을되돌아보고,기꺼이시인의언어에주파수를맞춥니다.
김새운,하현태,여휘운,황수영,그리고도승하시인은저마다의언어로우리삶을이야기합니다.깊고깊은그들의언어,지금우리곁에필요한것은‘시인을통한인간의교감’이아닐까싶습니다.어떤저녁,이름모를가로등은우리내면을비추고있습니다.지금여러분의마음은어디를비추고있나요?
책속에서
<보존의법칙>_김새운
무더운바람이불어와도
손부채질밖에할수없을때가끔
익숙한학교종소리를듣는다
소리를따라얌전히내자리에앉는다
과학선생님은오늘도
우리가몹시마음에들지않는눈치
나는곁눈질로칠판을바라보고
선생님은그무엇도사라지지않는다는말을했다
그럼수조에떨어뜨린한방울빨간물감은
어디로가는지
오늘은하필3일이어서선생님은내게물었다
떨어진물감이어디로갔는지
물분자사이로파고들어
붉은기를감추는방법을생각하다
나는잠시더멀리다녀온다
무엇도사라질수없다니
무엇으로도사라질수없다니
찬바람이부는걸보니냉방을시작했나보다
종소리가들리지않는곳에서
빨간물감한방울의나와커다란수조속
틈이허락되지않는세계에
물고기가등장하는것을상상했다
물속에서숨을쉬는것을상상했다
<대뜸느닷없이>_하현태
우리는대뜸연락해야한다
부지런히살다서로가궁금하단이유만으로
목소리를잊을것같다는이유로전화를걸고
안부가궁금하단이유로짧은인사말을보내야한다
꺾인목으로향을내는꽃처럼
쪼그라들고색이바랜꽃잎처럼
희미한과거에살며미미한미래를헤매며
결국녹아없어질얼음을기어코넣어마시며
우리는느닷없는연락을주고받아야한다
평범한일상에묻은서로를기억해내야한다
그저그런하루에서로를덧그려야한다
단지그런이유만으로
정성스레화병에담긴꽃처럼
까치발을들고세밀히보게되는꽃잎처럼
그렇게대뜸느닷없이
우리는이어져야한다
<구두쇠>_여휘운
마음주기꺼려졌다
마음은등가가아니었다
되돌아오는것은상처였다
점점인색해졌고나와만주고받았다
나에게상처받을리는없으니까
실들이끊어지며고치가되었다
아무도찾지않는헌책방이되었다
꿈을꾸지않는스크루지가되었다
마음은등가가아니었다
나와주고받는내마음도
못쓰게된마음들은
이름도없는돌이되었다
하루하루돌탑만쌓으며
소원조차빌수없는
혼자가되었다
<이별>_황수영
기별도주시지않고요,
이렇게가시렵니까?
살다보니맞는말이였소
마지막은웃는낯으로바랜사랑을보내주고싶다는말이,
마음이
당신은내가착하다그랬지만
나는나를위해웃었소
마지막까지한점쓸모없는희망으로어여쁘고싶었소
누가더아플지그뻔한것을셈하며그랬소
내가그렇게미련한것을
착하다고하셨소
그러니기별없이떠나셔도괜찮소
다시는만나지맙시다
그저꿈처럼당신이몰려올때는하늘도모르게울테니
가뿐히가시오
나없이행복하시오
오래오래사시오
아프고젖은것은나하나면되지않겠소
<내삶의이야기>_도승하
하루의마지막을기록하려
펜을들고무언가를써내려갔습니다
정신을차리고보니온통당신이야기더군요
여전히내하루는당신인가봅니다
언제쯤이면내가당신없는온전한
내하루를보낼수있을지
나는아직상상조차할수없습니다
지겹도록반복되는하루속에당신은
여전히나와일상을보내고있습니다
누군가내게사랑이무어냐고물어본다면
나는당신이야기를하겠습니다
무엇을위해당신을기록하는거냐고
물어온다면그저내하루를쓰는거라고
그렇게대답하겠습니다
그리고이일기가여러권이되어
그끝에다다른다면
내삶의이야기를마쳤노라고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