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시내버스 종점 기행

안동 시내버스 종점 기행

$20.24
Description
종점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여기 ‘안동의 시내버스 모든 노선 타보기’를 버킷리스트로 삼고 4년간 안동 24개 노선 시내버스를 타고 안동 구석구석을 누빈 작가의 종점 마을 여행기가 책으로 나왔다.

종점인 오지마을에 내려 자연을 만나고 문화재를 둘러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으로 남겼다. 『종점 기행』은 2015년 봄부터 2019년 봄까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에 연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동에는 너무나 많은 문화재가 산재한다. 고향 안동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비교적 덜 알려진 곳, 가까운 곳이지만 새로 생긴 곳을 중심으로 시내버스 기행을 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에는 살강 마을, 절강, 무실, 서미, 월애, 오미 등 자연부락 이름이 등장해 정겹다.

몽실이가 떠나간 살강 마을 외딴집을 찾아가고, 금곡 시냇물에 발을 담그며 다슬기도 주웠다. 그곳 그 땅을 지키는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고, 귀촌한 청년의 참살이도 들여다 보았다. 솟을대문 집 종손 종부의 애환도 듣고, 절집에도 들렀다. 스님과 인연이 닿으면 다담을 나누고 여의치 않으면 부처님과 오래 독대했다. 청정도량 툇마루나 정자에서 먼 산 바라기만으로도 족했다. - 서문 중에서-

“담배 모중 했니껴? 안주 할 때 안됐지요. 딴 일은 밭에 다 했니껴? 신 것만 해 놓으면 돼. 늦으면 늦은 대로 하면 되지 뭐. (중략) 오기는 뭐하러 오니껴. 바쁜데 올 여게 어데 있니껴. 맹 서로 소식 다 듣고 사는데. 예, 드가입시더.”
- 본문 중에서-

등 안동 토박이말도 곳곳에 등장해서 구수하다.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나답게 느껴진다.’는 서미숙 작가는
장대비에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게 해준 할머니, 막차가 올 때까지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준 할아버지,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진 운동화를 말려준 청년의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서미 고샅길에 비녀 지른 할매는 아직도 마실을 가실까, 임동 아지매는 올겨울에도 손두부를 만드실까, 사과꽃이 지천이던 백자리 아지매네 청계는 여전히 알을 잘 낳고 있을까? 모두 궁금하고 보고 싶어 다시 종점에 가고 싶어 한다.

“종점에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사람들의 사연이
굽이굽이 서려있다”
- 책 속에서-
저자

서미숙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학도서관 사서, 독서논술 NIE강사,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할머니사업단 연구원으로 일하고, 격월간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편집 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계간 《문장》에 ‘만권의 책을 읽다’ ‘사랑 할배’로 등단했으며 2015년~2019년 《안동》지에 종점 기행을 연재했다. 2020년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발간, 2020년 경북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활성화지원사업 선정, 2021 ‘코로나 19 예술로 기록하다’ 선정 및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로 등록. 2021~2023, 2023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준비금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종점 기행』을 책으로 묶었다.

공저로 2009 『안동 맛집』 『안동의용소방대 80년사』, 2017 『일팔청춘』, 2019 『이야기할머니사업단 10년사』, 포토에세이 『동네 한 바퀴』, 2021『중구동의 어제와 오늘』, 2022 『용상동의 어제와 오늘』, 2023 『태화동의 어제와 오늘』을 발간했다.

현재 안동시 한 책 읽기 도서선정위원장, 북코 낭독회 리더, 안동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위원, 한국문인협회 전통문학 연구위원, 금아피천득기념사업회 문화예술위원, 문장작가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경북문인협회, 안동문인협회, 문장인문학회, 수필미학, 권정생 문학 해설사로 활동 중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ramsl

목차

4 여는 글
봄
13 살강마을을 찾아서 / 38번 외천
27 호수가 보이는 산골에서 봄을 만나다/ 57번 절강
39 문향과 충절의 기상이 서린 무실 / 633번 무실
51 시사단에 올라 도산서원을 보다 / 59-1번 의촌
61 사과꽃 피는 백자리 / 28-1번 백자
73 무논에 내려온 구담성당 / 76번 구담
83 독립운동의 성지 오미마을 / 242번 오미
여름
97 금곡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 28번 금곡
111 하늘이 만든 감옥, 서미동 / 43번 서미
123 영혼을 치유하는 소울스테이 / 76번 구담
135 우물에서 정이 샘솟는 월애/ 38번 월애
147 인심 온후하고 인덕 있는 덕강 / 633번 덕강
가을
161 용단지 모시는 목현마을 / 43번 목현
175 외가 가는 길 / 34번 토갓·사시나무골
189 가재가 내려오는 영봉사 / 54번 옹천 압령골
199 늦가을 애련사에 올라/ 77번 천주마을
213 단호 캠핑장 가는 길 / 436번 단호
223 거문고 소리 그리워지는 개실마을 / 354번 개실
겨울
237 안동민속박물관은 살아있다 / 3번 시내순환
251 놀면서 배우는 안동문화관광단지 / 3-1 시내순환
265 오래된 참나무가 지키는 마을 / 33번 임동·대곡
277 선성현 예끼마을, 예술의 옷을 입다 / 67번 서부리
291 퇴계의 뿌리를 찾다 / 67번 온혜
307 석탑이 산재한 임하 / 11번 임하
부록
318 안동 시내버스 종점지도
319 안동 시내버스 신·구번호 변경내역

출판사 서평

기행은 물론 여행만 하더라도 명승고적이나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 떠나기 일쑤이다. 일찍이 신경림 시인이 ‘민요기행’을 하면서 민중의 생활세계를 노래와 함께 살핀 적이 있다. 그러나 시내버스 종점마을을 찾아가는 ‘종점 기행’이라는 것은 새삼스럽다. 일찍이 없었던 기행이기 때문이다.
기행은 목적지를 오가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데, 종점마을에 가서 과연 그런 기록 거리들을 찾을 수 있을까. 수필가 서미숙의 〈〈종점 기행〉〉을 받아드는 순간 그런 우려부터 앞섰다. 시내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오지마을 풍경이란 으레 그저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 탓이다. 그런데 머리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첫차로 떠나 종점 마을을 누비다가 초저녁 별을 보며 막차로 돌아오곤 했다.” “그곳에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새소리 물소리 벗 삼아 느릿느릿 걷다보면, 미움도 욕심도 내려놓게 된다.” “어르신들의 오래된 이야기, 요즘 세상에 대처하는 지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과 인연이 닿으면 다담을 나누고, 여의치 않으면 부처님과 오래 독대했다. 청정도량 툇마루나 정자에서 먼 산 바라기만으로도 족했다.”
머리글 몇 문장만 읽어도 종점마을 기행을 따라나서고 싶어진다. 문제는 종점마을이 아니라 찾아가는 사람의 수준이다. 누가 종점마을을 찾아가 어떻게 마을과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냥 심드렁할 수 있는가 하면, 거기서 사람살이의 오랜 슬기와 따뜻한 인정, 절절한 사연들을 곡진하게 만나게 되면 뜻밖의 감동으로 마음이 설렐 수 있다. 저자는 예민한 눈썰미와 다양한 독서 이력, 준비된 사전지식에서 비롯한 창조적 상상력이 종점마을을 살아있게 만들고, 다정한 말붙임은 주민들을 모두 훌륭한 마을정보 제공자로 만들었다.
나의 심드렁한 선입견을 일거에 거두어 간 것은 첫째 기행인 38번 종점의 살강마을이다. 버스가 한티재를 지나자, 저자는 권정생의 소설 「한티재의 하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남편 건재가 죽자 정원은 살 길을 찾아 어린 3남매를 데리고 친정으로 먼 길을 걸어가는데, 낙동강 나루지기 노인이 남루한 행색의 정원에게 신었던 짚신을 벗어주는 장면이다. 인간의 측은지심을 사무치게 그려놓은 대목이다.
버스가 권정생 동화나라를 지나칠 때는, 몽실이 개가한 엄마 따라 댓골 김씨네 집에서 살다가 고모 손에 이끌려 돌아와 친아버지와 살게 된 노루골을 떠올린다. 노루골이 있는 망호리는 몽실 마을로 거듭나서 깡통 들고 밥 얻으러 다니던 몽실이가 이웃에 진 빚을 갚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에게 살강 가는 길은 권정생 문학의 현장이었다. 허물어진 빈 집만 보아도 몽실이네가 거지가 되어 곁방살이 했다는 집을 연상하고, 살강마을을 걸으면서 “소꿉을 싼 치맛자락을 오불치고 엄마 손에 끌려가던 몽실이가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그 길”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살강마을 기행은 권정생 문학 기행이나 다름없이 민중들의 절박한 사연들이 곳곳에 사무쳐 있다.
다른 마을 기행도 풍부한 사전지식과 지방지에 입각해 있어서 마을의 역사와 사라진 풍속, 문화재의 해설까지 익숙하게 한다. 한 마디로 ‘마을 가이더’ 준비를 해서 마을 답사를 하는 까닭에 주민들이 모르는 사실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사실도 속속들이 알아낸다. 처음 만나는 어른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 지명유래도 알아내고 오랜 전설도 되살려내며, 시집살이 이야기도 살뜰하게 듣고 ‘어육장’ 만드는 법도 배운다. 그러느라 아침 일찍 도시락 싸들고 첫차로 떠난 길이 저녁 어둠살이가 져야 막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의 시처럼, 저자는 마을을 자세히 볼 줄 알고 오래 볼 거리를 찾을 줄 안다. 따라서 뚝눈에는 띄지 않는 풀꽃조차 아름답게 보이고, 목례나 하고 지나치기 쉬운 낯선 어른들도 일일이 통성명을 하고 살아온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며, 고향마을 쏘다니듯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마을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본다. 그러느라 조붓한 산길을 혼잣서 걷기도 하고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며 자전거를 얻어타고 이웃마을까지 가는가 하면, 100살 넘은 할아버지 도사를 뵙기도 하고 79세 처녀 할머니를 만나기도 하며, 귀촌한 청년을 만나 젖은 신발을 말리기도 한다.
글 쓰는 능력으로 말하면 저자는 수필가이다. 그러나 〈〈종점기행〉〉을 보면 예사 수필가가 아니다. 우선 사물을 자세히 보는 관찰자이고, 시골 노인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훌륭한 대화자이자 인터뷰어인가 하면, 마을의 문화유산을 찾아볼 줄 아는 답사자이고, 민중생활사 자료를 채록하는 구술생애사가이며, 오래된 전통을 복원하는 민속지 작성자이다. 일인다역의 역할을 하며 종점마을이라는 새로운 기행 영역을 개척한 기행작가이기도 하다. 먼저 관찰자로서 돋보이는 저자의 문장을 보자. 이른 아침 절강마을 망호정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쓴 대목이다.
저만치 호수는 거대한 솜사탕 공장인가 싶다. 밤마실 왔던 안개는 미처 떠나지 못하고 고샅을 배회한다. 가녀린 꽃대를 머금은 광대나물과 빈 밭에 여기저기 흩어진 봄동이 서릿발을 이고 앉았다. 정자 가까이 이르자 차가운 바람결에 청아한 향기가 감겨온다. 호수를 굽어보며 홀로 선 매화가 찬 서리 속에서도 해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구름 같은 매화보다 지금 내 앞의 한 그루 매화가 더욱 소중하다.
인적 없는 정자 앞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스스로 한 그루 매화가 된다. 안개는 고샅을 배회하고 봄동은 서릿발을 이고 앉았으며, 매화는 해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자에게 모든 자연 현상은 사람처럼 살아 있는 모습으로 재창조된다. 사물을 대하는 마음도 이렇거늘 주민들과 말붙임은 더 다정다감하다. 낯선 만남이지만 용하게 말을 붙여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재주가 있다. 금곡마을에서 만난 오동댁(77세) 할머니에게 ‘할머니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던가?’ 하고 여쭈었다.
요새가 최고 좋으이더. 몸이 불편해서 글치. 오새 만게 걱정 없거든. 옛날에는 영감이 빚지어 놓으면 그 빚을 갚느라고 쇠띠 빠지도록 해가 갚아야 되지요. 약 먹고 죽을라꼬 약병도 뚜껑 땄다가 내가 이걸 먹으마 이 아(아이)들 고아 된다 싶으고, 내 하나가 희생하만 아들이 이런 고통 안 받는데 싶어 들섰던 뚜껑을 다부 닫고 내 몸 하나 희생을 해야 될따, 이래가주 살아 왔니더.
오동댁은 열 여덟 살에 선도 보지 않고 금곡으로 시집 왔다. 일곱 살 위의 남편과 사별한 지 25년째다. 남편이 젊을 때 담배 농사로 목돈을 쥐게 되면 길안 장터에 가서 노름을 하고 술집 출입을 하느라 하룻저녁에 다 날려버리고 때로는 빚까지 지고 들어왔다. 마음고생이 워낙 심해서 죽을 작정을 했는데, 그 때 아이들이 두 살 터울로 올망졸망 셋이나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 열었던 약병 뚜껑을 도로 닫았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도 털어놓기 어려운 절박했던 삶의 고비를 술술 털어놓은 것은 저자를 딸보다도 더 미덥게 여긴 까닭이 아닌가 한다.
구담 성당에서 만난 금성임(89세) 할머니로부터 하느님을 믿게 된 사연도 어렵지 않게 들었다. 세레명이 소피아인 할머니와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옮긴다.
예전에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베가 날 보국대 안 보내려고 일찍 시집 보내부랬어. 영감님은 16년 전 구십에 돌아가셨고. 내가 사람한테 위로를 못 받고, 부모한테도 위로를 못 받고, 가장한테도 위로를 못 받고, 그래가주고 하느님께 의지해야 되겠다 싶어 내 스스로 나왔어. 교회 가려고 뻐덕한 광목 치마저고리 입고 나서니 할아버지께서 어디 가냐고 물어. 그 집이 종손이라 제사 모셔야 하니 가려면 교회 가지 말고 성당 가거라 해서 성당을 다니게 됐어. 그래그래 마음을 잡아서 아들 둘 데리고 오늘까지 왔어.

짧은 이야기 속에 소피아 할머니의 신앙생활 동기와 가족사와 사회사, 교회사가 다 갈무리되어 있다. 교회와 달리 성당에서는 조상 제사를 금기시하지 않는 까닭에 시어른의 허락을 받아 성당에 다닐 수 있었다. 사람은 물론 부모나 가장한테서도 위로를 받지 못해 하느님께 의지하려고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은 여느 신도들 수준의 기복신앙과 수준이 다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까닭에 완전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사람하고는 상대가 안 돼. 위로가 안 돼.”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로서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려는 신앙심은 상당히 성찰적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춘산댁 탁오출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는 트럭에 탔다가 탈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칠 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서 이름이 오출이다. 열세 살에 학교에 갔는데 2학년이 되자, 방위라며 딴 방으로 빼내어 며칠 가르치더니 어느 날 군용 트럭이 와서 모두 태우기 시작했다. 지금 가면 집에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눈치를 살피다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근처에 있는 코스모스 밭으로 뛰어내려 숨었다. 신발도 잃어버린 채 맨발로 재를 넘어 집으로 도망을 왔다.
마루 밑에 숨어 있는데, 이틀 후에 순사들이 찾아와 딸을 안 내놓으면 오빠를 보국대로 끌고 가겠다고 협박하고 갔다. 올케는 시누이 때문에 신랑이 죽게 생겼다고 울었다. 궁리 끝에 이웃마을로 시집간 언니 집에 가서 금줄을 쳐놓고 숨어 있었다. 친척 어른들이 시집만 보내부만 안 붙잡혀 간다고 시집을 보내라고 했다. 부모는 “단발머리를 어예 보내노?”하고 걱정하다가 시집을 보냈다. 그래서 열다섯 살에 시집을 왔다. 그때 트럭을 탔던 동갑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가서 여태 소식이 없다. 강제로 끌려가다가 탈출한 증인들이 곳곳에 살아 있는데도 일본정부는 아직도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민중생활사가 어른들의 생애담을 통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어르신들마다 살아온 이야기가 소설이다.” 할 만큼 온갖 이야기들이 구수하다. 문화유산 답사자로서 면모도 여기 저기 보인다. 의촌리 종점마을에 있는 번남댁에 관한 서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