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의 대화

강나루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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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다
김종호 시인의 제7시집 『강나루의 대화』가 푸른생각의 푸른시인선 30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절망과 고독을 더욱 실존적으로 경험하면서 신(절대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내적으로 깊어진 시편들을 보여준다.
저자

김종호

저자:김종호
1939년에제주도애월에서태어나애월에서살고있으며,2007년월간『문예사조』신인상으로등단하였다.시집으로『뻐꾸기울고있다』『설산에올라』『순례자』『소실점』『날개』『김종호시선집』『잃어버린신발』등이있다.2018년유화개인전을열었으며,제주문학상을수상하였다.

목차

1부
벽앞에서/여섯개의벽1/제7의벽/투명한벽2/그전능의화가/하늘길/존재/나까딱없어/가을의기도/무엇인가있다/바닷물소리/창가에서/슬픔의꽃

2부
아기의첫울음같은/너와나/우연에대한생각/잃어버린발자국/강나루(此岸)의대화/너를떠나라/새소리9/나무여,바위여,낙엽이여!/놓친다는것/망명자/종점/고내오름오르는길은/끝없는연주

3부
내가사랑한여자/아내의창/어디나가득하다/효자손/혼자밥먹기/샤워를하면서/나의첫페이지/무거운밤/양말/오막살이

4부
통일/어떤정의(正義)/법/이상한늪/무성한입/돌멩이2/돈아/열려라참깨/나무들은/거미줄/공짜에대하여

5부
코스모스/가다가문득/나무의사랑/질경이/행복2/허공4/나무에기대어서/나무들은다만/너의모습은/이별에대하여/사랑2

6부
춘정/파란꽃/달맞이꽃/내도바닷가에서/즐거운허밍/가을엔2/창에드리운햇살은환하고/수줍은봄/복사꽃/섬/산길을가다가/수석(水石)1

작품해설:외로움의시학_박덕규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까마득한길이
어제처럼만같다.
걸음걸음인도하신이
마지막한걸음도
헤이실것을믿는다.

노을빚기

노을이
저리곱다하오시니
내노을한채
빚으렵니다.

쌓아도,쌓아도
닿지않는하늘
고이고,받치고
한땀한땀다듬어서

채색옷도곱게
내노을한채
빚어드리리라합니다.

책속에서

김종호의시는외로움에서비롯되고외로움속에서절망하며외로움속에서깊어진다.그것은무엇보다김종호가살아온자연환경과관련이깊은것으로보인다.김종호는제주애월에서살고있다.특정시기제주를떠난적이있기는하지만제주에서자라고산세월이대부분이다.아시다시피제주는바다로에워싸인섬이다.바다는해안에서수평선에이르기까지대개일망무제(一望無際)다.제주에산다는것은일망무제한바다와더불어산다는뜻이기도하다.김종호의시에바다가그득한것은너무도당연하다.
(중략)
김종호의시는외로움속에서그외로움을외면하지않고그것과내적인대화를통해깊어진시다.그과정은기독교인으로서절대자앞에서괴로워하면서도그괴로움과정면으로마주하면서절대자앞에나아간것과같다.그는시는왜쓰는가하고스스로에게물었다.그대답은이러했다.‘시는쓰는게아니라사는것’이라고.그렇다,시는시인이쓰는행위이지만그것은곧자신이살아내는행위다.왜?살기위해서.그러나여기에김종호는보다더뜻깊은대화의결과를덧붙임으로써자기시쓰기의깊이를보여준다.‘나는시를쓴다,침몰하는배의사람들,그사람들과끝까지관계맺음을하기위해서!’김종호의시는이렇듯외로움과함께하고그것을견뎌냈다.
―박덕규(문학평론가·단국대교수)해설중에서

<잃어버린발자국>

해는중천에누렇게뜨고
아지랑이불타는들녘,문득
사위는멈추고,새소리도들리지않는
무성영화속을걸어가는실루엣
어린적볕이과랑과랑한들녘에서
탈을따먹으며길을잃었을때,
겁이와락났을때,꿈결인듯
나를부르는그목소리
내안에누구실까
멈칫멈추면멈추고,다시걸으면
뒤를당기는목소리
슬며시돌아보니,
저어린것이울고있는게아닌가

너거기서왜울고있니?
-발자국을잃어버려서요.
그깟발자국은어따쓰려고?
-집으로돌아가려고요

“번쩍!”번개가스치자
아이는간곳없고,
나는왜여기서있는가
지금어디로가고있는가

<강나루(此岸)의대화>

강나루에무연히섰노라니
하루를무겁게굴려온해
불타는강물로잦아들때
줄곧따라온바람일까,툭친다.

당신이초조하게기다리는것은무엇입니까?
-강을건너려고도강선을기다리고있지요.
나룻배는언제도착합니까?
-그야강주인의마음이겠지요.
당신이줄곧걸어온길은무엇입니까?
-후회와아픔과슬픔,그리고그리움입니다.
그때마다사정없이엉덩이를들이받는
성질고약한염소한마리몰고왔지요.
당신이애타게찾아헤매던행복은무엇입니까?
-아,그또한후회와아픔과슬픔,그리고그리움입니다.
왜그런가요?
-행복은그모든것의화학작용일테지요.
‘바다의눈물’진주를보세요,
그은은한무지갯빛이아픈상처라는걸
아는사람은많지않지요.
당신은사랑의실체가무엇이라생각합니까?
-그것은아버지의회초리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것은용서의눈물이지요.
아버지는먼저자신의종아리를때리십니다.
십자가를생각해보면알수있지요.
그러면어머니의사랑은무엇입니까?
-사탄의질투도뚫지못하는암탉의날개지요.
‘엄마’,이는너무슬픈이름이지요.
그러면이성의사랑은무엇인가요?
-바라볼때황홀한별,
닿는순간스러지고마는별,
언제나가슴에서반짝이지요.
그러면완전한사랑은없습니까?
-그것은그리움너머에서피는꽃,
나를다소진하고나서비로소피는꽃.
왜세상에는완전한사랑이없는것입니까?
-탐욕때문이지요.탐욕으로는
거울의뒷면을볼수없으니까요.
그런데사람은왜죄를짓습니까?
-하나님은보이지않기때문입니다.
그렇다면하나님은존재하지않는가요?
-아닙니다.내가존재하니까요.
허공은텅비어서어디나가득하지요.
그러면사탄의존재는무엇입니까?
-그는어둠의제왕,죽음은그의권력,
쾌락과욕망은그의전가의보검이지요.
사탄의유혹은무엇입니까?
-그의혀밑에서내뿜는모호한안개지요.
개념이삭제된환상속에몸을숨기지요.
당신의약점을살짝말해주시겠습니까?
-음……핑계입니다.
본의아니었다는,너무취해서필름이끊겼다는……
당신은무엇을위해시를씁니까?
-시는쓰는게아니라사는겁니다.
길을가는자의노래이지요.
당신의인생에서어떤삶을원하시나요?
-저타이타닉호의악사들의연주입니다.
물속에잠기는순간까지연주하는것이지요.
아,배가도착했군요.잘가세요.
-잘있어요.
세상에미련도없다했는데
왜눈물이나죠?

<효자손>

밤아홉시면어김없이
서울작은놈이알람을울린다
혼자사는늙은애비,냄새날까봐,
고독사로매스컴을탈까봐걱정인게다
“야,이놈아!죽을때되면어련히전화할까,
전화비오른다.”어스레떨면서도그게고맙다
코로나숨을쉬면서사람이그립다

등이가려울때
아내에게등을돌려대면
족집게처럼가려운데를긁어준다
등이가렵지않은데도무장들이댄다
내흉계를빤히보면서도
“목욕자주헙서.”괜한핀잔을얹어
구석구석부드럽게쓸어준다
등을통째로맡기고느긋이행복하였다

이제는효자손이아내를대신한다
이리저리몸을뒤틀며벅벅긁어대면서
눈물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