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세습되는곳,한성파크빌리지레전드
-희석작가장편소설『전설의아파트』출간
-가장일상적인곳을배경으로펼치는가장첨예한균열
-차별,계급,지역정치등르포에가깝게해부하는리얼리즘소설
·동번호가계급이되는곳
원룸에서투룸으로,빌라로옮겨다니다마침내3천세대대단지‘한성파크빌리지레전드’에월세살이를시작한은환과유원.따뜻한남향집이라는사실하나에마음이기울어이사했지만두사람은곧이단지만의기이한문화와마주한다.
자가동과임대동을가르는선,같은평수인데동마다다른관리비,입주민카뮤니티앱에서조용히사라지는비판댓글들.장편소설『전설의아파트』는,한국인이라면누구나익숙한풍경속에서가장첨예한균열을읽어낸다.
·익숙해서더서늘한아파트커뮤니티
『전설의아파트』의현실감은상당부분‘노블라운지’라는,온라인아파트커뮤니티공간에서가지고온다.입주민인증마크가발언의무게를가르고,‘추천해요’가쌓인글이곧단지의여론이되며,불편한댓글은어느새사라진다.
아파트커뮤니티앱이나카페를한번이라도들여다본독자라면어쩔수없이고개를끄덕이게된다.작가는이익숙한공간을과장하지도,악마화하지도않는다.다만우리가매일무심히스크롤하던그말들이실은얼마나촘촘한위계의언어였는지를,한발떨어져보여줄뿐이다.
·권력은어떻게단지를장악하는가
『전설의아파트』의또다른힘은권력작동방식을르포에가깝게해부한다는데있다.관리비라는일상의숫자,입주자대표회의회장이쥔행정권한,그권한을매개로단지와구청과건설사가한몸이되는구조,그리고선거를둘러싼정교한합법과위법의경계등.희석작가는이모두를손에잡힐듯구체적으로그리며하나의정치적텍스트로만든다.
·나는‘그런사람’이아닌가
이소설이끝내가리키는것은차별세습이다.숨쉬듯자연스럽게차별의말을내뱉는어른밑에서자란아이는그말을고스란히물려받고,동번호로사람을가르는일은한세대에서멈추지않은채다음세대의입을빌려더멀리번진다.그러나『전설의아파트』는손쉬운분노도,후련한응징도건네지않는다.누군가는무너지고누군가는빠져나가며,단지는그대로다음계절을맞는다.
작가가끝내우리앞에남기는것은통쾌함이아니라질문이다.나는정말‘그런사람’이아닌가.동번호를,평수를,시세를단한번도사람의척도로삼은적없다고말할수있는가.소설속안덕수,한동준,서형섭등의모습에서나를발견하지않았는지,작가는『전설의아파트』를통해묻는다.
책속으로
순간안경에김이훅서렸다.깜짝놀라안경을벗고김서린렌즈를닦았다.이해가안됐다.종일집을비웠다가방금열었는데왜?심지어보일러를틀어놓은상태도아니었다.맑은안경을다시눈에얹었을때가장먼저보인것은베란다로들어오는정오의햇살이었다.-18쪽
나는내삶보다유원의삶이평화롭고편안하길바랐고,유원은내가내삶을조금더먼저챙기길바랐다.동등한사랑을공평하게주고받는것이란얼마나어렵고불가능에가까운일인지,우리는함께살며더욱자주깨닫고있었다.-24쪽
이름이묘하게입에붙지않았다.노블라운지.‘노블(noble)’과‘라운지(lounge)’의합성.보통인간은자기가원하는계급성에도달하지못할수록계급을상징하는단어에집착한다.노블라운지도어쩐지비슷해보인다.우아하고고결하고싶지만그럴수없는사람들이모여만든가장얄팍한공간이아닐까걱정된다.-36쪽
소위자가동사람들은자신의거주지가임대가아닌자가소유라는이유로,자가동들이레전드단지의부동산시세를올려주고있다는이유로,임대동은오히려레전드이미지만손상시키는눈엣가시라는이유로관리비차이가당연하다고여긴다.자리가사람을만들어버린셈이다.-73쪽
입주자대표회의회장은단지안의행정권한을다쥐고있다.단지안에서어떤사업을할지,어떤행사를열지,어떤외부손님을단지안으로들일지를사실상결정하는자리다.명목상으로는입주민의대표지만,실제로는단지안여론을좌우할수있는행정·정보의통로에앉아있는사람이다.-109쪽
“그쪽사람들은이걸뭐랄까...누굴멸시하는단어라는생각자체를안하는거같더라고요.그게더무섭죠.어른들이부끄러워하면애들은안따라해요.어른들이부끄러워하지않으면애들이그대로밖에서써요.”-134쪽
정치인은약속으로생명을연장하는사람이며,유권자는그약속에대한믿음을표로보내는사람들이다.결국,유원이속한정당,보수적인지역에서살아남기어려운진보정당은시민들에게약속을담보로표도,믿음도받을수없다.-136쪽
차별은대물림된다.숨쉬듯자연스럽게차별의말을내뱉는어른밑에서자라는어린이는,어른에맞먹거나더심한차별주의자로성장할위험이다분하다.가정바깥에서,학교에서올바른지도를받더라도집으로돌아오면무용해진다.학교에서따끔하게지도받은아이가집으로돌아가서울면,그말을가르쳤던보호자는되레학교에항의하는게일상이됐다.-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