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변화규칙을찾고,
그것을추동하는원인을분석하고,
세계의문자들이갖는공통성과차별성,
그것이주는문화적의미를찾고자하는
연규동교수의치열한고민과문제의식,
그학문의여정을함께해본다.
“언어는인류의고귀한자산입니다.인류를최고의영장으로만든언어에대한연구가줄곧관심거리였고,고대언어는음성이아닌문자로기록되었기에‘문자’에대한연구로그관심이집중되었습니다.그리하여우리의한글,즉훈민정음에서부터주변의문자로,다시세계의문자로그대상을넓혀나갔습니다.게다가언어든문자든모든언제나변하게마련입니다.그규칙과원인을과학적으로논리적으로찾고자했습니다.”
평생문자의일반이론연구에매진해온언어학자연규동교수가생전한인터뷰에서한말이다.도서출판따비의신간《문자와언어-문자에대한새로운시각》은병마와의싸움끝에2022년2월세상을떠난연규동교수의유작으로,문자에대한새로운시각을제시하여언어학의범위를훨씬더넓힐뿐만아니라,인간의언어생활과더불어문자생활을통찰하고자한다.
왜문자인가
우리는일상에서‘한국어’를잘모르는외국인에게‘한글’을잘모른다고한다든가,‘한국어’는잘하지만‘한글’을잘모르는한국인에게‘한국어’를잘못한다고하는등한글과한국어를혼동해서사용하기는경우가많다.그러나한글과한국어는엄연히다른것이다.한글(훈민정음)은15세기에세종대왕이만든문자체계이며,한국어는한국에서우리가사용하는언어다.세종대왕이한글을만들기이미오래전부터이땅에서는한국어를사용해왔다.
이처럼‘문자’와‘언어’를혼동해서쓰는것은언어생활에서문자가차지하는비중이그만큼크다는방증이기도한다.특히요즘처럼얼굴을마주보지않으면서문자교환만으로도의사소통이이루어지고있는시대에,그형태가어떠하든문자의중요성은더욱강조될수밖에없다.그것은역사적으로도마찬가지였다.
문자가지역에따라불균형하게창조되고발전해왔음에도문자를중요하게봐야하는이유는,그것이그저우연히생기고사라지고하는것이아니라낡은시대를저물게하고새로운시대를불러오는큰위력을보여주었기때문이다.문자사용은소통방식을바꾸었고,사회제도를새롭게했으며,새로운세력을등장하게하는통로가되기도했다.
문자의일반이론은무엇을다루는가
이와같은중요성에도불구하고,우리나라에서발간된문자의일반이론에관한연구서는아주드물고,일반적으로우리에게는‘문자’에대한관심도,제대로된개념정립도잘이루어지지않은상황이다.이에,이책은우선1장‘언어와문자’에서언어와의비교를통해문자의개념정립을엄격하게시도하고,2장에서는본격적으로‘문자의생성및발달원리’를꼼꼼하고체계적으로살펴본다.구술문화와문자문화,음성중심주의와문자중심주의의비교를통해문자의개념을정리해가는1장은그간우리가파편적으로,피상적으로알고있던문자와글자,글자와글씨,상형문자와그림문자,표음문자와표의문자등의개념을더깊고,체계적으로,그리고21세기의다양한변화에맞춰폭넓게바라볼수있는길을제시해준다.
또한,2장은익히알려진문자의생성원리인상형(象形),지사(指事),전주(轉注),회의(會意),가차(假借),형성(形聲)등을다루는데서더나아가,문자가표상하고있는단위에따라단어문자,음절문자,음소문자로나누어살펴본다.여기서그치지않고,변화하는언어생활과환경속에서문자가어떻게대처해나가는지역시다룬다.문자들이서로차용하며변해가는과정,즉유럽사회의알파벳,동아시아의한자,서아시아의아랍문자,인도의데바나가리계열문자등이변해가는과정등을흥미진진하게살펴본다.
시대의변화에따라문자역시그모습을조금씩달리할수밖에없는데,6장‘자용론:문자의화용론’은문자의시각성,문자의공간성등으로그변화의양태를살펴보고,7장‘문자의혼종’은한자전용,한자혼용,한글전용을비롯해한글쓰기가다양하게변주되는양상을고찰하고있다.
무엇보다흥미로운지점은우리가쉽게얘기하고있는한글의우수성과과학성을‘훈민정음’의문자유형(2장),도상성과자질성(5장)등문자학의측면에서고찰하는대목이다.흔히한글이발음기관모양을본떴다고하거나디지털시대에적합한문자라는등자랑스러워하는대목이문자학의측면에서어떤의미인지,그특징과한계등을체계적으로일별하는즐거움을준다.
결국,이책은우리가익히쓰고있는한글,알파벳,한자등을비롯해우리가잘알지못하는문자들까지,그것들이어떤원리로만들어졌는지,각각의장단점은무엇인지,유사성은무엇인지,그리고변하는시대속에서어떻게빠르게변화하거나더디게변화하면서충돌을일으키는지를문자학의관점에서조금더체계적으로이해할수있게도와준다.무엇보다,문자를어떻게바라봐야할지그길을보여준다.
언어와문자를논하면서스스로경계할것은언어와문자의우수성따위를함부로말하지말라는것이다.언어에우열이없다는것은이미오래전부터익히계몽돼왔지만,문자에대해서는일종의우열의식이아직많이남아있다.적어도지금까지는,완벽하고전지전능한문자는찾아내지도만들어내지도못했다.모든문자들이그나름대로편리하거나,멋있거나,해당언어와최적화되어있어모두그나름의장점들이있다.…자신의문자에대한잣대를남들에게강요할일은아니다.(본문18쪽)
저자연규동교수는병마와싸우는와중에도이원고를놓지않았으나,안타깝게도채완성하지못하고세상을떠났다.저자가미처완성하지못한아이디어는짧은메모로정리되어있으며,이책은그의메모를그대로살려실었다.그짧은메모안에도다양한논점들이담겨있어그의저작이더이어지지못한데대한아쉬움을불러일으키지만,이것으로도관련연구의진행에도움이될것이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