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자명성과공감의발견
저자는자연성,평등성그리고보편성이인권이요구하는세가지특성이라고말한다.이세가지특성을모두충족시키는최초의권리선언은18세기에제퍼슨이기초한미국「독립선언」(1776)이다.그리고프랑스의「인간과시민의권리선언」(1789)이선포되고난뒤인권이라는개념은비로소역사화된다.저자가인권의기원을18세기계몽주의시대에두는것은이때문이다.그러나이보편적이고평등한권리선언은무산자,노예,자유신분의흑인,종교적소수자,여성들을아무렇지않게배제했다.
노예제와대인종속,그리고자연법칙처럼보이는굴종에기반한사회에살던사람들이과연어떻게그들과는다른인간을동등한존재로상상하게되었는가?어떻게권리의평등이별그럴듯하지않은장소에서‘자명한’진리가되었는가?특히놀라운것은노예소유주인제퍼슨같은인물,그리고귀족이었던라파예트같은인물이자신들은전인류의자명하고양도할수없는권리를위해일한다고말할수있었다는점이다.어떻게권리의평등이자명한진리가되었는가?저자의문제의식은바로이것이다.저자는이자명성의개념을설명하기위해먼저‘공감’이라는새로운감각에대해설명한다.
“그러나자연성,평등성,보편성마저도충분치는않다.인권은정치적내용을획득할때비로소의미가있다.인권은자연상태에서가아니라사회에서인간이갖는권리이다.신의권리나동물의권리에반대되는권리가아니라인간서로서로에대한권리인것이다.”(27쪽)
소설읽기와공감의확산
기본적으로권리는자율적인격을전제로한다.그러나저자는자율성을넘어계급,인종그리고성별을초월한‘공감’의학습을통해인권의성취가가능했다고주장한다.18세기의개인들은‘동정’이라는새롭고심오한감각을고양했는데이것이곧오늘날의정확한용어로공감이다.공감하는능력이인권의평등한소유를만들어냈는데그로부터인권은자명한것이되었다.소설읽기는공감의감각을퍼뜨리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새로운독서는새로운개인적경험(공감)을창출했고그것은다시새로운사회적?정치적관념(인권)을낳았다.”
18세기의개인들은사랑과결혼을소재로한당시의베스트셀러소설을읽으며“전통적인사회적경계,즉귀족과평민,주인과하인,남성과여성,아마도성인과아동간의경계마저넘어공감했다.그결과타인들을자신처럼,마치동일한내면적감성을지닌존재로보게되었”던것이다.저자는장자크루소의『신엘로이즈』와새뮤얼리처드슨의『파멜라』와『클라리사』가당시독자들에게불러일으킨사회적논란과공감의확산과정을고찰함으로써소설읽기의확산이결국계급과성,그리고민족적경계를허물며공감의발전에지대한공헌을했음을밝혀낸다.
“법률적으로인가된고문이종식된것은재판관이그것을포기했거나계몽사상이그것에반대했기때문이아니다.고문이종식된것은고통과인격에대한전통적틀이깨지고한단계한단계새로운틀로대체되었기때문이다.이새로운틀에서개인은자신의신체를소유하고신체의분리와불가침성의권리를갖는다.또한다른사람들의열정,감성,그리고동정심역시인정해주었다.”(128쪽)
타인의고통을공감하기
소설읽기를통한공감의사회적확산은연쇄적으로당시법률에의거해자행되던고문과잔인한형벌을철폐하자는주장을불러일으켰다.이는공감이야만성과잔인성에대한혐오의감정으로까지발전했음을보여준다.저자는이책에서18세기서구사회의합법적고문과형벌을비중있게다룬다.특히가톨릭으로개종하려는아들을죽인혐의로사형된한개신교도의사례를통해당시에자연스럽게이루어지던끔찍한고문과처형방법을소개하고있다.공감이라는새로운감각을학습한개인들은고문당하는타인의아픔을자신의아픔과동일한것으로느끼기시작했다.이는곧신체의발견으로이어졌다.개인들이신체를소유하고타인으로부터침해받지않기를바라게된것이다.이를통해타인의고통에대한공감이고문을종식시키는데근본적인역할을했음을확인할수있다.
추천사
인권의정치적영향에대한도발적이고매력적인역사._게리J.배스,〈뉴리퍼블릭〉
속도감있으며도발적이고종국에는낙관적이다.선언이빈말이아니라변화를이끈다고저자는주장한다.우리는선언이표명하는우리가되고싶어하므로._〈뉴요커〉
놀랍다.(…)저자는단몇페이지에도엄청난근거를제시하며대단한명료함을보여준다.이책은그야말로역작이다._고든S.우드,〈뉴욕타임스북리뷰〉
인권을사회사와연결하는것은주제에대한독창적이고흥미로운접근이다.(…)저자는생생하고정보가풍부한역사를제공한다._조슈아무라브치크,〈월스트리트저널〉
이것은우리시대의대표적역사가의작품으로,강력한인권사상의출현과발전을다룬놀라운역사다._아마르티아센(하버드대교수,노벨경제학상수상자)
우아한이책은명쾌하고독창적인답변을제공한다.(…)저자는(서구)인이서로관계를맺는방식을변화시킨일련의광범위한문화적변천속에권리담론을솜씨좋게배치한다.(…)18세기유럽풍경에대한헌트의숙련된묘사덕분에이책은계몽주의문화에대한해석에신선함을배가시킨다._마야자사노프,〈워싱턴포스트〉
풍부하고우아하며설득력이있다.(…)린헌트는이책과본인의이력전반에걸쳐현대정치를형성한정치적사건과현대적감성을형성한문학적발전사이의연결을통해배울것이많다는것을보여주었다._〈런던리뷰오브북스〉
인권의역사를쓰는작업이유행한지는십여년밖에되지않았다.이책은그중가장두드러진성과이다._새뮤얼모인,〈더네이션〉
인권의역사를탐구하는이들에게는필수적인출발점이된책.필독서이다._S.N.캐츠,〈초이스〉
헌트의역사책은매우통찰력있게도인권의이념이지속적으로확장되어야하며,아직충분히진척되지못한과제라는점을강조한다._알렉산더베빌라쿠아,〈하버드북리뷰〉
고도의문화사,대학과일반공공기록관에추천한다._데이비드케이머,〈라이브러리저널〉
미국인들이테러와의전쟁에서저지른실수에대해지도자들에게책임을묻기시작하면서,이책은가장심각한실책중하나를되돌아보는길잡이역할을해야했다.그실책이란미국이독립선언을소환함으로써테러와의전쟁에서승리할수있다는믿음이다._앨런월프,〈커먼윌〉
여전히진행중인발명_조한욱(한국교원대명예교수)
린헌트는불가능한것을가능하게만드는역사가이다.20세기후반기를풍미했던역사학의새로운잡다한경향을‘신문화사’라는포괄적인이름으로부른것이그였다.역사가들이‘심리사’라는영역을가까스로받아들이던시절,프로이트의심리학을적절하게이용하면서프랑스혁명이여성사의관점에서정말로혁명이라고불릴수있을지의문을제기하며논의의장을열었던것도그였다.언제나원초적인성욕을자극하여상업적성공을거두려던포르노그래피가실은역사의변천과깊은관련을맺고있는문화적,사회적발명품이었음을밝힌것도그였다.
『인권의발명』에서헌트는또다른도전에눈을돌린다.눈물샘을자극하던18세기의감성소설들을‘인권’이라는개념과연결하는것이가능할까?그는소설을통해제시되는‘공감’의능력이인도주의적감정의배양에필수적이었기에인권이라는개념이실체를가질수있도록만들어준일상이었다고논한다.그개념이미국과프랑스의인권선언을묶어주며그정신은20세기유엔의세계인권선언까지이어진다.인권은만들어진것이다.
헌트는그‘발명’을구체적으로논증하지만한편으로는그것이아직도더완성되어야할이유를오늘날의제반문제점들과연결시킨다.따라서그것은아직도진행중인‘발명’이다.여기에우리가이책을읽어야할필요성이있다.
상상력의힘_정귀순((사)부산인권플랫폼파랑이사장)
지난2022년8월24일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한국사회의대표적인권유린사건인형제복지원사건이‘국가의부당한공권력행사에의한중대한인권침해사건’임을인정하고국가의공식사과와피해회복을위한조치를권고하였다.이로써한국판홀로코스트라불렸던곳에서엄청난고통을당한피해자들은35년의지난한과정을거쳐겨우‘사회적복권’의첫걸음을내딛게되었다.물론기뻐할일이지만이렇게더딘걸음을걷게된것은사실상이사건의공범이라할수있는시민들의무관심,공감과연대의부족이라자책하지않을수없다.
언젠가간담회자리에서피해자한분이물었다.“인권이뭡니까?”이질문에는간결하게답하기어려울때가많다.자칫뻔한이야기를하거나아니면장황하게말하게되기때문이다.이책의저자린헌트는말한다.“인권은정치적선언이다.”그리고그선언이타인에게상상력을불러일으켜공감을획득하는순간“권리라는혁명적논리가뿜어내는불도저같은힘”이비로소작동되기시작한다고.
그의말에는내가인권현장에서늘하는고민이고스란히담겨흥미롭다.즉권리에서배제된이들이어떻게자신의목소리를낼것인가?어떻게이들도다른이들에못지않게독립적으로느끼고사고하고행동하는,즉자율성을가진개인이되고자나설수있을까?이들이용기를내어자신의이야기를풀어내기시작할때어떻게해야더많은사람들이귀기울여듣게할것인가?이책은타인에대한상상력과공감의크기만큼세상이변화될수있다고말한다.우리가야무진꿈을꾸며비록작은힘이라도서로합쳐한발한발나아간다면꽉막힌현실을조금이라도더나은방향으로바꾸어갈수있지않을까?
현장의활동가들은답을찾기를원한다.대체로학술적인책에서답을찾기란쉽지않지만이책의저자는“인권은악에대항하는,우리가공유하는유일한보루”이므로인권의전망을지속적으로개선해나가기를제안하고있다.그의제안처럼최근들어문제의식의확장이이루어지고있다.국민으로서의인간으로부터국가의틀을넘어서는인간(난민과이주민의권리),배타적인인간이아니라자연과공존하는인간(환경권,기후위기와인권,동물권),성적다양성(성소수자의인권)등다양한영역으로인권이확장되고있다.물론각종쟁점을둘러싼정치적갈등이불거져내상을입는경우도허다하지만그래도여전히우리는늘더나은삶과사회를꿈꾼다.우리의그침없는상상력이불도저같은힘으로현실을떠밀고나아갈수있으리라믿는다.
마지막으로인권의이론과실천이만나는접점을확장하기위해애쓰는동지이자이책의역자인전진성선생께감사드린다.
책속에서
이책에서역사적사실로서서서히형체를드러내는인권은근대서구의발명품이다.자연법이나천부인권사상등은결코시대와지역을뛰어넘어유효하지않다.이책은‘권리가보편적인가’하는철학적질문을‘언제부터사람들이인권이보편적이라고믿게되었는가’라는역사학적질문으로바꾼다._옮긴이서문
우리는18세기사람들이권리를제한했다는점을잊어서는안되겠지만거기서멈춘채로우리자신의상대적‘진보성’을자화자찬한다면,이는초점을벗어난일이다.노예제와대인종속,그리고자연법칙처럼보이는굴종에기반한사회에살던사람들이과연어떻게그들과는다른인간을―경우에따라서는여성마저도―동등한존재로상상하게되었는가?어떻게권리의평등이별그럴듯하지않은장소에서‘자명한’진리가되었는가?(25쪽)
모든사람은대개어릴적부터공감하기를배운다.비록필수적인어떤성향은생물학적으로제공되지만,각문화는공감의표현을특정한방식으로형성한다.공감은오직사회적상호작용을통해서발전한다.따라서상호작용의형식은나름의방식들로공감을형상화한다.18세기에소설독자들은공감대를확장하는법을배웠다.책을읽으며전통적인사회적경계,즉귀족과평민,주인과하인,남성과여성,아마도성인과아동간의경계마저넘어공감했다.(50쪽)
인권은오직대중이타인들을근본적으로동등하게생각하도록배울때만자랄수있었던것이다.그들은,궁극적으로허구적이긴해도,드라마에서만은현재적이며친숙하고평범한등장인물들과자신을조금이나마동일시함으로써비로소평등을배우게된다.(69쪽)
여걸캐릭터가호소력을지닌까닭은그들이자립하길바랐으나이를결코실현하지못했기때문이다.여성들은부친이나남편에게서독립할법적권리가거의없었다.독자들은그러한여성들이피할수없던압력을잘이해했기에여걸들의독립성에대한요구가매우통쾌하다고느꼈다.(70쪽)
인간성은이제본래악이라기보다는개선되어완성될수있는것으로간주되었다.이러한관점에의거할때,범죄자는잘못을저지를수있으나재교육될수있는존재였다.더욱이생물학적인데바탕을둔열정은도덕적감수성의자양분이되었다.정서는신체적감각에대한감성적반응이고,도덕성은이러한정서가사회적요소(감수성)를갖도록하는교육이다.(127쪽)
새로운체제에서명예는행위와관련되었다.남성과여성의구분은명예의문제에서시민지위와처벌형태의문제에이르기까지관철되었다.여성의명예(그리고덕성)는사적이고가정의영역에머문반면,남성의명예는공적성격을띠었다.남성과여성은모두처벌을받을때치욕을당할수있었지만,오로지남성만이명예를상실할권리를갖고있었다.권리에서와마찬가지로처벌에서도귀족과평민은이제동등해졌지만,남성과여성은그렇지못했다.(162쪽)
새로운권리는,비록그것이정치적권리는아니었더라도,여성을위한새로운기회의장을열었고여성들은즉각이기회를잡았다.개신교도,유대인,자유신분유색인이행동으로이미보여주었듯이,시민성이란그저당국이부여해주는무언가가아니었다.그것은자신의소관사항으로인식되는어떤것이었다.도덕적자율성의한가지기준은논지를펼치고주장하는능력,그리고일부에게는싸우는능력이었다.(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