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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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것은 일종의 궤도이탈, 무방향성,
삶의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일이었다.”

온전한 삶에 이르기 위한 자기 돌봄의 분투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소외된 사람들의 내밀한 고통을 특유의 환상적 장치와 상상력으로 예리하게 보여주었던 김이은의 신작 소설집 『산책』이 출간되었다. 등단 20년의 작가 이력을 쌓는 동안 그의 작품 세계는 조금씩 변모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에서는 「산책」과 「경유지에서」라는 두 편의 단편을 통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우리 안의 뒤틀린 욕망을 다룬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저자

김이은

2002년〈현대문학〉에단편소설「일리자로프의가위」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마다가스카르자살예방센터』『코끼리가떴다』『어쩔까나』등이있고,장편소설『검은바다의노래』『11:59PM밤의시간』『열두켤레의여자』등이있다.

목차

산책
경유지에서

해설:진짜삶을위한자기돌봄의이야기(고영직)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작가는『산책』에서집에대한우리안의물질적욕망을응시하는가하면(「산책」),진정한관계가갈수록더피곤하게느껴지는세상에서타인이라는가능성을아직도여전히믿어도되는지묻는다(「경유지에서」).두작품모두집이세상에맞서바리케이드를친일종의요새가되어가고,사람들사이의관계또한갈수록관계의점도(粘度)가희박해지는세상을응시한다는점에서비슷한문제의식을갖고있다.작가는닮은꼴의두소설속인물들의권태롭고무기력한일상을섬세한언어로묘파하며우리가사는현시대를삶의이유를잃어버린시대로진단한다.온전한삶의의미를찾지못한채일상을부유하는삶의비극성에주목하는것이다.

소설의시대는쪼그라들었어도여전히작가들은어딘가에서스스로의최선을다해소설을쓰고있다.누군가보아주기를기다리며붙박여흔들리는후미진곳의꽃한송이같다.인적드문그곳에서자그마한향기를뿜어낸다.
크고화려하고거대한세상에서참으로보잘것없을지도모른다.그러나누군가막다른길에부딪혀길을찾지못할때꽃한송이의작은향기가위로가되리라믿는다._「작가의말」에서


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시리즈
한국문학의눈부신결산
소설집9종,앤솔러지시집1종출간

이책은경기문화재단주관‘2022경기예술지원문학창작지원’선정작으로,경기도에거주하는문인들에게창작지원금을지원,그들의작품을시리즈로출간하는기획의결과물이기도하다.올해출간되는시리즈는9명의소설가들이참여한소설집9권,13명의시인들의신작시를묶은앤솔러지시집1권으로구성돼있다.온몸으로건져올린발칙하고싱싱한언어들,시대를감싸안는빛나는감수성이오늘의소설,시의면면을보여주기에전혀부족함이없다.올한해우리문학의눈부신결산중하나로보아도좋을것이다.


안락한미래와욕망의집을좇다-「산책」

세개의장으로구성된「산책」은서울강남에사는언니윤경이수도권변두리신도시로이주한동생여경의집을방문해단지내를함께산책하는이야기이다.작품이전개될수록‘산책’의여유는온데간데없고불안감이스멀스멀강화된다.여경은강남구역삼동브랜드아파트로이주한언니윤경의이십이평집에대해“강남하꼬방같은데”라고힐난하고,윤경은신도시삼십사평짜리여경의집에대해“변두리싸구려집”이라고폄하한다.윤경은“편안한미래”를위해지금힘들어도견디지못하고,“언젠가번듯하게살게될것”이라는가능성자체를포기해버린듯한동생여경이못내마뜩잖다.

여경도그걸처음봤을때같은생각을했었다.잎자루가공처럼둥글게부풀어물고기의부레같다고붙여진이름이란다.그안에공기가들어가부레옥잠이물위에떠오를수있게한다.
“꽃이일년에딱하루핀대.꽃말은승리.”
하루짜리승리라.여경의말을듣고윤경은그리생각했다.그토록짧은것을승리라말할수있는까닭이무얼까._22쪽

윤경이보기에여경은현실감이떨어지는구석이있다.애가없어서그런가.아니면현실감이떨어져서애를안낳은건가.애가있어봐야정신을차리지.대출을받든어쩌든어떻게든지서울에,집값오를곳에붙어있어야지.교육이며집값이며생각하면죽을각오로강남에붙어있어야하는거아닌가._27쪽

윤경과여경,두자매가이렇듯신경전을벌이는까닭은‘가난’의기억때문이다.태흥사라는사찰에서공양주노릇을한할머니와접선하듯만났던유년의가난했던기억은두자매에게망각하고싶은상처로남아있다.가난의트라우마는두자매에게‘안락한삶’에대한욕망으로나타난다.

같은부모에게나서비슷하게성장하고별반차이없이출발했는데윤경은강남에아파트를갖고있지만여경은변두리싸구려집에서살고있지않은가.윤경은몇년뒤집값이더오르면평수를조금씩늘려또이사를할것이다.그러다보면언젠가번듯하게살게될것이다.그가능성으로지금힘들어도견딜수있다.그런데여경은아예그가능성이없지않은가.늙어서고생안하고초라해지지않으려면지금좀힘든게나은게아닐까._32쪽

「산책」은‘서울강남’과‘변두리신도시아파트’라는두공간의대비를통해집에대한우리안의일그러진욕망을그려내는작품이다.윤경과여경,두자매는과연“편안한미래”를마주할수있을까.


상실과외로움을넘어‘자기돌봄’으로-「경유지에서」

두번째단편「경유지에서」에서는상실과외로움의시간을견디며사는두남녀를통해어느곳에도쉽게정주하지못하고,‘경유’하듯사는삶의불안정성을만나게된다.낡고오래된동네의골목에사는주인공‘이화’는어머니의죽음이후영어학원에등록한후,충동적으로원어민강사‘에릭’에게자신의주소지를건넨다.그후두사람은한동안동거를하다헤어진다.에릭은“뜨내기알바생”같은느낌을자아내는사람이다.

인생을낭비하고소비하고준비하지않고,뭐그런기발하고바람직하지않고그래서누구나꿈꿔보는그런일이뜬금없이떠오른것이다.그런생각이들자이화는속이울렁거리기시작했다.전혀예상하지못했던일이라금방울음혹은웃음이터지거나혹은오줌이찔끔나올것같은기분이되었다.이화는수업내내집중하지못하고그생각에빠져있었다._45쪽

이화는가만히서서내려다보았다.기묘한느낌이었다.이집에서저토록동물적이면서커다란,금방이라도터질것같은생명의기운을느끼는것.낡고오래되고늙어,같이망하자고삐걱거리며속삭여대는마룻바닥을대부분차지한에릭은오래전부터그자리에누워있던것처럼힘차게코를골았다.인간이저렇게생동감넘치는생물이라는게새삼스러웠다._48쪽

작가의진술에따르면,이화는깊은슬픔과상실의시간을맞아자신을철저히방기하고자한다.어쩌면어머니의죽음이후외로움의시간이더깊어진것일테다.하지만자기인생의궤도를이탈하고,무방향으로내달리려는이화의시도는결국인생이란어차피‘혼자’라는사실을더강화할뿐이다.작품의뒤에서이화가에릭에게엄마이야기와개이야기를정성껏써서보내는메일에서도확인할수있다.결국,이화는“모든것들이지겹고무얼하든어디있든어차피혼자라는것”을확인하게되고,이점은에릭또한다르지않다.“여기가일곱번째경유지”로선택한에릭의경우이화와의만남에서도여전히삶이란‘경유지’에가까운것이라는생각을바꾸지못한다.실제이화는에릭에게긴메일을보내고난후예전과는조금다른감정을느끼는데,더이상인생을방기하며‘살던대로’살지않으려는태도변화를보인다.이러한변화는작더라도중요하다.자기를돌볼줄아는사람은타자를돌볼줄아는감각을회복할수있기때문이다.

이화는애초에뜨내기같았던에릭의첫인상을새삼상기했다.언젠가이곳을떠나다른곳으로옮겨갈사람.이화는역시나올바른선택이었다고스스로흡족해했다.정확한이유를설명하기는어렵지만이제이집에서더살수도있겠다는생각이들었다._63쪽